EP.83 최강자들의 전투
수도권 외곽 지역.
폐허가 된 잔해들만 가득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이곳에서.
거대한 철갑으로 이루어진 병기가,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다.
엎어진 반구형태로 이루어진 머리부분과, 길게 늘어트려진 두 팔. 굉장히 크고 높은 몸통과 다리까지.
척 보기에도 굉장히 위험해보이는, 거대한 병기.
그리고, 그 앞에.
그것과 비교하면 잘 보이지도 않는, 단신의 사람이 한명 공중에 서있었다.
자신보다 거의 수십, 수백배는 더 큰 병기를 한치의 두려움도 없다는 듯,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바로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 스타더스
.
그리고 그 거대병기의 조종석에서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건 바로 나, 에고스틱이였다.
"아이고. 여기가 완전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죠?"
나는 마이크를 향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거대병기 어딘가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쩌렁쩌렁 나가는 내 목소리.
내 코앞에 있는 스타더스의 귀에 다이렉트로 꽂힐만한 데시벨이다.
"저도 이거를 모니까, 막 이대로 서울로 진격해버리고 싶고 그런 충동이 드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뭐. 제가 그렇게 하는지 안하는지는 스타더스,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여기서 저와 싸워서 이기신다면, 제가 순순히 물러나죠. 그러나 제가 이기면? 그대로 서울 불바다를 목표로 달리겠습니다."
"그러니."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기계를 조작해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먼저 들어와보시죠."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을 끝낸 순간, 이미 그녀는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내쪽을 향해 주먹을 쥐고 날아오고 있었다.
뭔가 웃고있는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드디어 내가 오랜 세월동안 격투게임으로 다져온 실력을 뽐낼때가 됐다.
나는 본격적으로 조종대에 손을 갖다대며, 내 뒤에 있는 일행들에게 외쳤다.
"다들 꽉 잡아! 지금부터 본격적인 싸움 들어간다!"
그리고서는, 나도 기계를 조작해, 그것이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자,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해보자.
***
스타더스.
그녀는 자신을 압도하는 거대한 로봇을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위압감을 느끼기는 했다. 자신보다 몇배나 더 큰데, 당연히 좀 괜히 압박되고 그런게 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자신을 부른 에고스틱 때문일까.
그와 싸워서 이기면 서울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말이, 마치 그러는걸 보고 싶지 않다면 꼭 이기라고 자신한테 동기부여를 하는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이 거대한 기계의 앞에 서서도 별로 두렵지 않은건.
이전에 지금처럼 극복하지 못할것만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좌절하고 있을 때.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라서일까.
"....그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디한번, 붙어보자.
그렇게 그녀는 주먹을 쥐어들고 거대한 로봇을 향해 날아갔고.
그 로봇도, 주먹을 뻗기 시작하며.
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
"네! 말씀드리는 순간! 스타더스와 에고스틱이 탄 거대병기가 격돌했습니다! 와, 카메라가 이렇게 멀리있는데도 충격파가 여기까지 전달되고 있습니다. 스타더스가 현재 측면을 향해 공격하는걸, 에고스틱이 막고 있는데요. 아, 에고스틱의 반격! 거대한 팔이 스타더스를 향해 날아옵니다! 스타더스, 아슬아슬하게 피합니다!"
[에고스틱 스타더스 싸움수준 ㄹㅇ실화냐? 진짜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이다. 그 찐따같던 스타더스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스타더스 요리조리 잘피하네ㅋㅋㅋㅋ]
[아니 스타더스가 저 큰걸 어떻게 상대함? 짜고치는 고스톱 아니냐?]
[스타더스 떨어지는 비행기도 든 애인데ㅋㅋㅋ 너무하네]
[걍 이번 전투도 경력으로 추가될듯ㅋㅋㅋㅋㅋ 거대병기 탄 빌런이랑 전투ㄷ]
[심지어 막상막하로 싸우는중ㄷㄷ]
[이번에야말로 스타더스 S급으로 승격 가냐?????]
[아니 망고스틱 저거 로봇 막 뺏은거 아님? 왜저렇게 조작 잘하는데ㅋㅋㅋㅋ]
[우리 망고는 다재다능하다고ㅋㄱㅋㅋㅋ]
[ㄹㅇ에고스틱도 솔직히 이정도면 S급 상향 가자. 솔직히 이때까지 보여준것도 웬만한 S급들 다 뺨치는데]
[ㄹㅇ이번에 저 한은그룹 미친새끼들 격파했는데 ㄹㅇ 빨리 S급 히어로로 승격시켜줘야지]
[나 망고단 아닌데 동의한다]
[팩트)팬카페에서 좌표찍어서 여기 망고단밖에 없다]
[아닌데여. 별먼지단도 있는데ㅡ.ㅡ]
[자기가 에고스틱이 방송 안틀어줘서 서운한 망고단이면 개추ㅋㅋㅋㅋㅋ]
[ㄹㅇ왜 뉴스 채팅방에서 이러고 있어야하냐고~ 에고스트림 사이트 왜 이름값 못하고 스트리밍 안하는데]
[근데 오늘따라 화력 좀 적다? 에고스틱 공식방송이 아니라 그런가?]
[ㄴ지금 아까 저거 때문에 서울 남쪽 재난경보떠서 다 피난가느라 빠져서 그런듯]
[아닌데? 나 지금 가족들이랑 도망친 다음에 길바닥에서 이 방송 보고있는데?]
[미친놈ㅋㅋㅋㅋ]
[근데 이와중에 스타더스 ㄹㅇ잘싸우네ㅋㅋㅋㅋㅋ]
***
처음으로 전투가 시작된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하하하하! 스타더스씨, 고작 그것밖에 안되시는 겁니까! 좀 더 잘해보시지요!]
거대 로봇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스타더스는 그걸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꽤 오래 지속된 전투로, 지친 나머지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스타더스.
땀을 흘리며 간신히 그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그녀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아보였지만, 그만큼 그 로봇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처음에 말끔했던 외관과는 다르게, 계속된 그녀의 공격으로 이제는 어디선가 연기도 나오고있는 모습.
물론 이제는 지쳐 날아다니는 것만해도 힘든 스타더스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타격이 있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를 악물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녀의 실력으로는, 이기기 힘들어보였다.
애초에 체급 차이가 너무 컸다.
저것은 자신을 한방만 때리면 되지만, 자신은 저것을 전방위적으로 두들겨 패야한다.
또한 놈이 휘두르는 주먹은 강철로 이루어져있는 만큼, 한대 맞을때마다 충격이 꽤나 컸다. 거의 몸이 울리는 느낌.
그녀의 능력이 이전에 비해 많이 강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역부족.
[벌써 지치신겁니까? 이게 다란 말입니까!!!]
그의 목소리와 함께 또 날아오는 병기의 주먹.
"크윽."
그녀는 겨우겨우 막아서며 신음을 흘렸다.
이제는 몸도 지쳐, 더이상 힘도 들어가지 않는 상황.
계속해서 날아다니는 것마저 한계에 몰린.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대로 그냥 희망을 꺾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
그러나.
그녀는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았다.
신하루.
그녀가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을 맞닥뜨린게, 이번이 처음이던가?
아니다. 전에도 그녀가 좌절했던적이 있었지.
자신은 이길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겨내지 않았던가.
지쳐서 숨을 헐떡이던 그녀는, 다시 눈을 불태웠다.
그래, 여기서 이대로 포기하는건 말이 안된다.
그녀는 다시 숨을 들이마신 뒤, 그 거대병기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녀는 그의 기대대로 기필코, 그를 쓰러트리고 말것이다.
그리고.
[오호? 바로 그겁니다! 이렇게 나와야 제가 싸울맛이 나죠!]
[오빠, 좀 똑바로 조작해요!]
[야. 조심해!]
"...."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말 뒤로 작게 흘러나오는 어떤 여자들의 목소리.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문채, 주먹을 쥐었다.
저 거대병기를 쓰러트릴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기필코 쓰러트린 뒤, 그의 옆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녀들이 대체 누구인지도 알아내고 말겠다.
그렇게 그녀는, 어디서 솟아난건지 모르겠는 힘으로 다시 거대병기에게 달려들었다.
***
"그래. 이거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쳤다.
점점 지쳐가더니, 다시금 각오를 되새겼는지 젖먹던 힘으로 나에게 덤벼드는 스타더스.
내 과격한 조작에 뒤에있는 여성진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이 스타더스를 폭발적으로 성장 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오늘부터 앞으로 미친듯이 강한 빌런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이번에 많이 강해져야 그녀가 앞으로 편할거다.
특히 이번이 성장할 제일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원래 운동도, 계속해서 너무 너무 지쳐서 손가락 하나 못 까딱하겠을때 드는 덤벨이 효과가 좋듯이.
그녀도, 너무너무 힘든 상태에서 그래도 계속해서 싸울 때, 능력이 한계를 뚫고 성장한다.
즉, 이번이 아주 그냥 쭉쭉 세지기 좋은 때란 말씀.
"하하하! 더! 더 공격해 보세요!!!!"
나는 광기의 젖은 목소리로 스타더스를 상대하면서도, 머리속으론 뇌를 핑핑 돌렸다.
이정도면 대략 한 몇시간뒤면 힘이 많이 세졌을때니까.
대충 실수인척 몇방 맞아준 다음에, 넘어져서 으악 나를 이기다니! 이런 다음에 도망가면 되겠지?
좋다. 계획은 완벽하다!
흑. 이렇게 계획대로 술술 잘 풀려가는게 얼마만이냐 .
감동이에요.
***
히어로 협회.
작전통제실.
"잘한다! 그래, 저기서 바로 어퍼컷! 캬 깔끔하네. 하루가 확실히 센스가 좋아. 음음."
그곳의 벽면에 붙어있는 대형 모니터로, 팝콘을 씹으며 스타더스와 에고스틱의 전투를 지켜보는 협회장.
그런 그에게, 직원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협회장님!"
"왜그래?"
"대통령, 대통령이....!"
그리고 이어지는 직원의 말은, 협회장마저 얼굴을 굳히게 하는데 성공했다.
"저, 저 현장을 향해, 미사일을 쏘셨다고 합니다!"
"하..."
거기까지 들은 협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들린 팝콘통을 놓쳐 떨어트렸고.
이내 그에게선, 낮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좆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