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81화 (81/328)

EP.81 서울 불바다

서울.

화창한 햇볕이 대지 위에 활짝 깔린 대도시는, 여느때와 다름이 없어보였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할거라고는 예상되는 평범한 도시.

비록 가끔가다 테러범들이 나오고, 괴물들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이벤트를 제외하면, 늘 언제나 한결같은 도시였다.

10년뒤에도 이 모습 그대로일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지만, 당장 다음주까지는 이렇게 평화로울거 같다고 생각되는 이곳.

그렇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상의 종말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거라고는.

평범한 대지.

높은 건물들 사이, 옥상에서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이 이변을 알아차렸다.

늘 보던것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높은 건물들, 그 뒤 어두운 배경에 흐릿하게 보이는 산맥,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

아마 멍하니 보고 있던 사람이라면 전혀 몰랐을만한 무언가.

그러나, 눈썰미 좋은 사람은 금새 파악했을만한 그것.

어 시발.

저거뭐야.

서울 도심 한쪽.

저 멀리, 산맥 옆쪽에.

거대한 무언가가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기둥에 머리부분을 반원으로 세운듯한, 회색빛의 몸통. 길게 강철로 이루어져 뻗은 두 다리. 그리고 길게 늘어트려진 강철의 팔.

전체적으로 기계 병기처럼 보이는, 이 도시 앞에 있다고 믿겨지지가 않는 무언가.

그리고 사람들이, 눈을 비비며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와중에.

그것이, 지상을 박살내며 도심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한걸음 걸을때마다 대지가 울리고, 다른 한걸음 옮길때마다 땅이 흔들리는 채, 다가오는 그것.

마치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그것은, 발치에 있는 모든 것을 박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그제서야, 사람들도 이변을 눈치채고.

그것의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던 것들을 모두 멈추고 대피하기 시작하며.

평화롭던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이내, 아무런 제지없이 도시 한복판까지 온 그것.

건물들 한복판에 우뚝 솟아, 엄청난 위압감을 뽑내고 있는 그것.

이미 그 거대 병기의 다리가 놓인 곳은, 아스팔트 바닥이 전부 박살나 있었고.

그 앞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있었다.

차들의 크락션 울리는 소리,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 소리.

가히 도시의 모든 이들이 깨어나, 어떻게든 한시라도 빨리 그것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직 아무것도 안하고 단순히 앞에 서있을 뿐인데도, 도심을 마비상태로 만든 그것.

가만히 서서, 자신이 일으킨 혼돈의 카오스를 내려다보던 그것에서.

드디어, 무언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부와 협회의 개들이여.]

온 도시로 울려퍼지는, 실로 엄청난 데시벨로 나오는 음성.

마치 쇠가 긁히는 듯한, 잡음이 끼인듯한, 그래서 더욱 소름끼치는.

그 음성이, 거대병기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신인류로 진보하는 우리를 막아선, 구 인류의 잔재들이여.]

[진화와 혁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능하고 열등한 종속들이여.]

[네놈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기어코,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열 한은(韓恩)을 무너트렸으니.]

[무언가를 멸망시킨 자들이여, 자신들도 멸망할 각오를 하라.]

거기까지 말한, 누군가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했고.

이내, 아까보다 훨씬 또렷하고 커다란 음성으로

통보하듯, 선언했다.

[오늘, 정부, 협회를 포함한 서울은]

[여기서, 끝난다.]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말과 동시에.

그 거대한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팔을 휘둘러 앞에 있는 건물들을 그냥 그대로 박살내버린 그것.

위풍당당하게, 몇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것만 같던 마천루가 덧없이 반으로 부서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그 병기는 도시를 마구잡이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수십년동안 산업화의 시절 쌓아올린 수많은 건물들이.

그것의 손에, 덧없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우웅.

마치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재앙처럼, 신화적인 존재처럼 막힘없이, 눈앞에, 주위에 있는 모든 건물을 박살내는 그것.

등장한지 단 몇십분만에, 이미 도시를 반파시킨 그것이 드디어, 도망치던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으, 으으...."

"사, 살려주세요...."

"흐아아앙. 엄마아아."

"아, 아."

이내 열심히 도망치던 사람들도.

자신을 가리는 그 그림자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아.

아무리 도망쳐도.

이제는 도망갈 수 없구나.

여기까지구나.

그렇게 공포에 질린 사람들 앞.

단 한걸음만 더 걸으면 수백, 수천명을 한번에 해치울 수 있을 지점에서.

그것이 다시, 마지막으로 말했다.

[잘가라.]

[무능한 협회를 탓하며.]

[지옥으로 가거라, 인간들이여.]

그렇게 그것은, 옆에 있던 빌딩을 마치 무뽑듯 팔로 뜯어버렸고.

이내 외벽이 뜯긴 채 덜렁거리는 그것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팔을 겨누고.

이내 사람들이 체념하여, 눈을 감은 순간.

갑자기 그 거대병기가 움찔하기 시작했다.

"....?"

체념하고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던 사람들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다시 떴을때.

무언가 움찔움찔 하며, 여전히 팔을 올린 채 정지상태로 있는 그것.

그러더니, 갑자기 그 병기로부터 정체불명의 비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뭐냐! 넌! 으윽, 으아아아악!! 연구, 원. 으. 윽.]

....

잡음.

뭔가가 깨지고,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박살나는 듯한 소음.

그러더니 들리는, 퍽. 퍽. 무언가가 찍히는 소리.

그리고 다시, 정적.

"....."

갑자기 고요해진 도심.

아까까지만 해도 사방을 울리던 병기의 스피커가 멈추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도시.

간헐적으로 사람들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거대한 병기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건물을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멈춰있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

"뚝배기!"

"으아아아아악!"

나는 렌치로 조종석에 앉아있던 놈을 퍽 퍽 내리쳤다.

맥없이 나가 떨어지는 놈.

"저자식 뭐야!!!"

"죽여!!!"

근처에 있던 연구원들이 나에게 덤벼들자.

나는 내 뒤에있던 최세희에게 소리쳤다.

"세희츄! 100만볼트!!!"

"옛다. 얍."

그렇게 최세희가 간단하게 전기를 쏴주자.

몸을 부르르 떨더니 죄다 쓰러져버리는 한은그룹의 똘마니들.

그리고 그 끝에, 홀로 넓은 조종석 끄트머리 벽쪽에 몸을 기대며 뒷걸음칠하는 김선우 박사가 있었다.

"김선우 박사님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에고스틱입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김선우. 1페이즈의 최종 보스이자 서은이와 수빈씨의 원수이기도 한 그.

처음으로 실물로 본 그는.

내 생각보다도 더 비루하고, 더 한심해 보였다.

"네, 네놈!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거냐! 네놈은 빌런 아니였냐?"

"저요? 저 빌런 맞죠. 집에서 잘 쉬고있는데 갑자기 멋진 로봇이 나타났는데, 이걸 안 뺏으면 그게 빌런입니까?"

"너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아느냐! 이 멍청한 자식아, 너가 새 인류의 진화를 막고있는거라고!"

"하하. 대체 서울 시민들 학살하는게 진화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아재."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하하 웃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지랄하지 말고 그만 닥쳐, 이 노망난 미친새끼야."

"뭐라고! 이노오오옴!"

"세희야. 쏴."

"이응."

눈깔이 뒤집혀가지고 달려드는 김선우를 향해, 뒤에 있던 세희가 전기한방 쏘자 그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땅바닥에 쓰러진 놈을 발로 걷어찬 뒤, 나는 그대로 놈들을 우리 에고-지하기지에 감금해뒀다.

그렇게, 조종석은 텅 비고. 나랑 최세희 둘만 담게 되었다.

"후흐흐... 하하하하하하!!!!"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미친놈처럼 웃었다.

"하하하하하!!!!"

"야... 왜 그래?"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최세희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한참을 미친듯 웃었다.

아니 웃기잖아.

이렇게 허무하게, 1페이즈의 최종 보스이자 대한민국을 무정부상태로 만드는 트리거, 수만명을 죽이고 스타더스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피폐물로 만드는 이게.

이렇게 쉽게, 진압됐다는게.

"하하...."

너무 웃어서 나온 눈물을 살짝 닦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깔끔한 하얀 벽면에, 몆십개의 전광판으로 뒤덮인 벽면. 그리고 밖이 보이는 조종석.

떨고 있는 사람들 수천명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나는 조용히 조종대로 다가갔다.

한은그룹 놈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넣어 만든, 그들 최후의 역작.

제지가 없는 한 도시 하나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으며, 어지간한 충격은 전부 다 버티는, 그야말로 첨단 과학의 상징.

실로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는 이 거대 병기.

"자, 한번 조작해볼까?"

할께 많다. 일단 이거 끌고 스타더스와 싸울 예정인건 당연지사. 오랜만에 우리 별먼지 성장 좀 빡세게 시켜보자고.

일단 그전에, 저기서 오들오들 떨고있는 국민들이나 안심시켜 주도록 할까.

"아, 아."

나는 마이크를 키고 입을 열었다.

쇼를 시작해보자고.

***

그렇게.

시민들을 향해 공격하기 전, 갑작스럽게 멈춘 거대병기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움직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시 흘러나오는 목소리.

[아, 아.]

아까와는 다른, 좀 더 밝고 경쾌한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의아해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미쳐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그 거대병기로부터 계속해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인사올립니다. 에고스틱입니다!]

그래.

갑작스럽게, 정말 갑작스럽게. 아무도 예상하지도 못 했던 이름이 갑자기 들려왔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그의 말.

[한은그룹 애들이 멋진걸 만들었더라고요? 아무튼....]

어딘가 살짝 웃음기까지 섞인 채,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뺏었습니다.]

[이건 이제 제 겁니다.]

그건 진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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