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80화 (80/328)

EP.80 멸망의 전조

이 세계가 참 생각해보면, 지랄맞은 세계다.

나는 창밖으로 도시들을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인다. 높디 높은 건물들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 이렇게보면 마치 내가 전생에 살았던 세계와 다른점이 전혀 없어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굉장히 다르다. 주로 지랄맞은 쪽으로.

일단 기본적으로 가끔가다 초능력을 각성하는 이들이 태어난다. 근데 이 초능력이 적당한 능력이면 몰라. 다 지랄맞게 강한 놈들이 나온다는게 문제지.

당장 스타더스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빌딩 몇십개를 다 박살낼 수 있을거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거기에 해외로 나가보면 더 개판이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매달 멸망의 위기를 겪는다 해도 무방하다.

물론 세계의 균형덕분인지, 웬만한 빌런들보다 강한 히어로들이 나오는 덕분에 어찌어찌 굴러는 가고 있다. 즉, 히어로들이 없으면 국가들은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았다. 그덕에 정부의 영향력이 협회에 비해 굉장히 축소되어있는 세계다. 대통령도 살짝 편집증적이고.

거기에 빌런들만 문제냐? 그것만이 아니다. 한은그룹을 보면 알겠지만, 대기업들도 그냥 돌았다. 비밀실험은 기본, 그 라이벌 기업인 유성기업도 정부와 협회를 압박해 대한민국을 뒤에서 조절하는 흑막이다. 한은그룹이 무너지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먹으려 하고 있겠지. 뭐, 나로써는 그러는 편이 더 이득이기는 하다. 그렇게되면 이설아 하나만 컨트롤하면 되니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이 세계가 정상이 아니라는거.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테러를 마구 일으키고, 정부는 구실을 못하고 기업이 조절하는 데다가, 심지어 신도있고 저승도 있고 그냥 난리가 아니다. 평화롭던 예전 세계가 그립다고.

"...."

나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더 웃긴건 뭐다? 이정도면 굉장히 평화로운거다.

이제 갈수록 더 강한 빌런들이 나오고, 세계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질거거든

그리고 스타더스 혼자, 그 모든걸 감당해야되겠지.

"오빠, 대체 혼자 청승맞게 뭘보고 있는 거에요?"

"...아니다. 이제 가자."

옆에서 들려오는 서은이의 말에 비로소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래.

결국 내가, 이 모든걸 다 막아야하는 법이다.

***

내가 빙의한 만화, [스타더스트!]는 팬들이 총 임의로 크게 4페이즈로 구분한다.

스타더스의 성장물과 약간의 일상물 전개가 띄는 1페이즈. 대략 지금의 시간대이며, 제일 평화로울 시기다.

그리고, 한은그룹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2페이즈. 이때부터 빌런들이 점점 많이, 더 강한 능력을 들고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팬들이 2페이즈의 시작이라고 명명한 사건이자, 이 세계관이 사실 피폐물이라는걸 못박는 이벤트.

그게 바로 한은그룹 서울 침공 사건이다.

전에 베히모스 사태와는 비교도 안가게 죽어나가는 사람들, 막지 못하여 무력감과 자책감에 시달리는 스타더스, 삐그덕거리는 협회와 정부, 그리고 불타는 서울.

히어로들은 이때까지 뭐했냐는 성토가 전국을 뒤덮으며 한국이 박살나는 무시무시한 사건!

아비규환이 되는 시내! 박살나는 건물들과 인간! 산불!

근데...

그거 내가 그 일이 일어날거 알고있잖아?

한은그룹 넌 좆됐다 애들아.

원작에서의 히어로들을 향한 짜릿한 복수극, 장렬한 산화?

그런건 없다 선우야!!

"후흐흐흐흐흐."

"다인씨. 사람 많은데서 이러시면 안돼요..."

"오빠..."

"얘 원래 자주 이러냐?"

"형...?"

전망대를 내려오는 길.

나도 모르게 사악한 웃음을 지었더니 일행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다 너네 좋으라고 하는거라고.

"...오빠가 저렇게 웃을때면 또 뭔가 사악한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건데."

나를 옆에서 오랜기간 지켜봐온 서은이만이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옆에서 중얼거렸다.

사악하다니.

나는 인류를 구원해주려고 하는데, 억울해 죽겠네.

물론 김선우를 필두로 한 한은그룹 애들 입장에서는 치가 떨리는 일이겠지만 말이야.

***

한은그룹.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은, 대외적으로는 친절한 이미지를 메이킹하면서 뒤에선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렇게 불법적이고 비인륜적인 인체실험, 괴물 창조를 비밀리에 하고있던 그들은 베헤모스 사건으로 그 모든 음모가 들키게 된다.

그 결과는 회사는 망하고, 회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은 해외로 탈주했지만, 김선우 박사를 필두로 한 실험을 한 연구원들은 도망치지 못했다.

원작에서 김선우가 베히모스를 탈취해 스타더스와 싸워도 보지만, 결국 패배하고 도망친 그.

결국 그를 필두로 한 직원들은 자신들은 끝났다는걸 깨닫게 되고, 이왕 다 죽게 생긴거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크게 한방 터트려 다같이 죽고 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게 바로 한은그룹 서울 침공 사태.

그리고 그들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거대 병기였다.

***

"그러니까. 근시일 내에 한은그룹이 최후의 발악으로 밤에 거대 로봇을 끌고 서울을 침공할꺼라고요?"

"로봇이 아니고 병기인데, 어쨌든. 그래."

"....."

에고-지하 기지의 회의실.

서은이, 수빈씨, 그리고 이번에 새로 합류한 최세희에 하율이까지. 전원이 모인 그곳에서 나는 얘기를 꺼냈다.

"...거대 병기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떻다는 거에요?"

"거대한 산맥처럼 큰 살짝 뭔가 문어 느낌에, 몸통은 반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강철의 팔다리가 붙어있는..."

"아니, 잠깐, 잠깐."

내 얘기를 듣던 최세희가 말을 끊더니 황당하다는 기색으로 나한테 물었다.

"곧 거대 병기가 서울을 침공할거라고? 넌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나는 모르는거 빼고 다 알아."

"아니. 그게 뭐야...."

최세희가 황당하다는 듯 눈을 치켜뜨고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원래 비밀이 많은 남자가 매력적인 법이래. 아마.

"하여튼, 우리의 계획은 그 거대병기를 탈취하는거야."

"그걸? 어떻게?"

"뭘 어떻게야? 그냥 순간이동으로 조종대 가서 애들 다 두들겨패고 우리가 조작하면 끝이지 뭐."

"그게 그렇게 쉽게 된다고?"

"어려울건 또 뭐야?"

인간이 뇌가 죽으면 죽듯이, 거대 병기도 조종석 뺐기면 그대로 끝인거다.

"...근데 그건 걔들도 미리 알고 대비를 해놓지 않았을까?"

"당연히 했겠지."

정확히는, 저녁 한정으로 어디든 순간이동 할 수 있는 섀도우워커를 대비했지.

베히모스에서 추출한, 어둠에 대항하는 물질로 그냥 떡칠을 해서 놈이 못오게 막았다.

이걸 설명하자, 의아해하는 최세희.

"....너는? 너가 순간이동하는건?"

"나? 나는 당연히 고려조차 안했겠지."

"왜?"

"그야 나는 히어로도 아니고 그냥 일개 빌런이니까...?"

"아."

그녀가 이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바보 도터지는 소리를 냈다. 아니, 나를 대체 뭘로보는거야?

"다인씨. 그런데 그 기계가 그렇게 강력해요? 그냥 폭탄 몇발 쏘면 안돼요?"

"안돼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게 그냥 병기가 아니다. 원작에서 보면 가히 압도적인, 보는 이에게 하여금 '저건 못막는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압도적인 크기에, 대체 뭐로 만들었는지 뭘 쏘아도 흠집하나 안나는 가히 경이로운 물건.

괜히 그게 원작에서 페이즈1의 최종보스라고 불렸던게 아니다. 그냥 압도적이라니까? 이때까지 스타더스가 맞닥트렸던 것들과는 상대가 안된다. 가히 끝판왕.

결국 스타더스도 못쓰러트리고 포기했을 정도니.

이게 얼마나 강하고, 압도적이고, 경이로운 물건인지 모두에게 설명한 뒤, 나는 한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걸, 내가 그냥 꿀꺽할려고."

나는 그 말을 하며 나도 모르게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내 이 세계에서의 목표가 무엇이었는가.

스타더스에게, 감당가능한 시련만 내려주자.

그리고 이건, 절대로 그녀가 감당가능한게 아니다.

그러면.

내가 직접, 감당가능한 시련으로 개조시켜주면 되는거 아니겠는가?

"아마 바로 이번주에 일어날테니, 다들 미리미리 준비하자고. 특히 최세희 너는 나랑 함께가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계획을 짰다.

한은그룹도 확실하게 끝내고, 스타더스도 성장시킬 절호의 찬스.

특히 김선우를 비롯한 한은그룹 놈들.

자기들이 최후의 한방으로 그렇게 준비하던게 개같이 망하면, 표정이 어떨지 정말 궁금하네.

후흐하하하하하.

****

지방 깊숙한 곳 어딘가.

한은그룹 비밀기지 섹터 C.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한 지하의 한가운데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피골이 상접해 몸이 야위었고, 씻지도 못했는지 꾀쬐쬐했지만.

눈만은, 형형한 독기로 타오르는 그들.

하얀 가운을 입은 그들이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한 남성이 그들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고.

이들 중 가장 지쳤으나.

눈만은 제일, 누구든 씹어죽일 듯한 독기로 타오르는 남성.

한은그룹 베헤모스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으며.

이사진들한테 팽당해, 한국에 잔류하고 있는.

김선우 박사.

그는 그의 곁을 바쁘게 따라오는 연구원에게, 씹어먹듯 말을 뱉었다.

"그래서. 최종 점검까지 끝냈다고?"

"그렇습니다 박사님. 이제 출격만 하면 됩니다."

"내가 보지."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간 그가 도착한곳은.

마치 거대한 도시 하나를 세로로 돌려 지하에 집어넣은것 처럼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의 빈 공당.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우는.

세로 길이는 족히 마천루의 몇배요, 가로 길이는 거대한 산맥같은.

한은그룹 이들이 자신의 마지막 불꽃을 갈아 만든, 파괴를, 붕괴를, 혼돈만을 위해 만들어진 최후의 역작.

멸망을 위해 만들어진 병기, 프로젝트 옥토패스(Octopass)였다.

"그래... 드디어. 드디어 만들어졌구나."

그걸 본 김선우는 이를 악물고서는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스스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즉석에서 전 직원을 향해 소리쳤다.

"전 직원은 들어라!!!"

이 넓은 강당을 가득 채우는, 파괴적인 성량.

옆에있던 연구원이 급히 옆에 마이크를 세팅해, 시설 전지역으로 목소리가 나가는 와중에.

그의 목소리가, 지하에 울려퍼졌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은그룹을 위해, 그리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희생했는가!"

"오직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헌신한 우리를, 질타하고 매도하는 국민들은! 대체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진화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새로 창조하려고 한 우리를, 얼마나 탄압하며 이제는 숙청하려 드는가!"

"이런 썩어빠진 나라는, 더이상 필요없다!"

"이제 우리가! 이런 증오스러운 나라를 우리 손으로! 불바다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소명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내일!"

그는 마지막 말을, 불타오르는 눈길로 씹어먹듯 뱉었다.

"서울을 멸망시킨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주위에서 울려퍼지는 환호. 동조. 불바다. 멸망. 분노.

그런 온갖 소음속에서,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 바로 내일.

서울은 그의 손아귀에, 비로소 종말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될거다.

***

"그래서, 그 병기를 강탈할 계획이 뭐라고요?"

"조종석에 가서 몽키스패너로 조작하는 놈 뚝배기를 퍽. 끝. 그러면 이제 우리꺼지."

"...그렇게 쉽게 된다고요?"

"어."

참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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