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7 출범식
"빌런 연합이요?"
"그래."
지하기지.
나는 거기서 일원들을 모아놓고, 내 원대한 계획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히어로 협회에 대응하는 또다른 세력이 되겠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빌런들을 모아, 대한민국에 또다른 실세의 한축이 되겠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모아서 하는게 뭔가요?"
"하는거? 테러랑 다른 빌런 처리지."
"...아니, 우리가 빌런 연합이 될거라면서요. 그런데 다른 빌런들을 처리한다는게 무슨 소리에요?"
"무슨 소리냐니. 우리와 '함께하는' 빌런들이랑은 연합하고, 우리랑 대적하는 빌런들은 처리한다는 소리지."
지금까지 내가 수많은 빌런들을 처리했듯, 그 일은 계속해서 할 생각이다. 물론 주로 원작지식을 가진 내가 슥삭하는 형태다 되겠지만.
새로운 빌런들또한 원작지식을 바탕으로 몇명만 더 영입하면 된다. 제일 강하던 애들로만.
"어쨌든, 그래서 우리 연맹의 이름을 정해야 돼. 에고스쿼드 어때?"
나는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에고스쿼드. 에고분대. 나쁘지 않지 않나?
그러나 내 말을 들은 최세희가, 미묘한 얼굴로 답했다.
"너가 그때 말한 에고스쿼드가 이거였구나? 음... 나쁘진 않은데..."
그녀는 본격적으로 턱을 괴고 생각했다.
그러자 덩달아 다른 이들도 심각한 얼굴로 같이 이름을 뭐로 할지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이게 뭐라고 그렇게 진지하게 정해? 그냥 대충 아무거나 하지.
"저기요? 애들아? 에고스쿼드로 그냥 가는게 어떨까요?"
내가 그녀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말하자,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마주치며 답하는 하율이.
"다인 오빠. 한번 정하면 계속 쓰게 되는 이름인데, 한번 정할때 제대로 정해야죠."
묘한 기백을 내뿜으며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너네 마음대로 해라.
"...오빠 빌런명도, 애초에 우리가 있었으면... 제대로..."
뭐라고 수근거리며 계속해서 의논하는 그녀들.
그렇게 몇시간의 논의 끝에 빌런 연합의 이름은 에고스트림으로 결정되었다.
...근데 그거나 에고스쿼드나 뭔 차이가 있냐?
***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현재, 쓰러진 최세희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허공에 떠있었다.
스타더스의 눈을 마주보면서.
"오래만이네요. 에고스틱입니다. 반갑습니다!"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오빠 나 죽어 오빠 나 죽어 오빠 나 죽어]
[이거 지금 무슨 구도냐ㅋㅋㅋ]
[방송 시작하자마자 상황 개꿀잼이네ㅋㅋㅋㅋㅋㅋ]
[바로 스타더스랑 대립 ONㅋㅋㅋㅋ]
채팅창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언제봐도 빌런의 방송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나를 보며 좋아 죽는 채팅창. 여긴 이미 내 팬카페의 놀이터가 된 모습이다.
하여튼 지금은 채팅창이 중요한게 아니지.
일단은 눈앞에 스타더스에게 집중하자.
"잘 지내셨습니까, 스타더스?"
나는 그녀에게 윙크를 하며 인사를 건냈다.
자고로 매력적인 빌런이란, 히어로에게 격식없이 친한것마냥 유쾌한 모습을 보여줘 상대를 자극하는법.
실제로 그런 내 전략이 통했는지, 그녀는 약간 벙쩌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눈동자까지 흔들리는 모습. 아니, 왜 저래?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인가?
이내 다시 약간 정신을 차린듯한 그녀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에고스틱... 너, 살아있었냐?"
뭔 질문이 이래?
"네. 당연하죠. 사지 멀쩡히, 건강하게 살아있습니다. 아쉽게도요!"
내가 그렇게 농담을 던지자, 약간 안심한듯 한숨쉬는 그녀.
저 한숨의 의미는 뭐지? 내가 살아있어서 안심한건 아닐테고, 여전히 미친놈처럼 보인다는거에 안심한건가? 잘 해석이 안된다.
"...그래. 다행이군."
응? 다행?
"네? 다행이요? 제가 살아있다는게 그렇게 다행이셨습니까? 야, 스타더스씨가 그렇게 절 생각하고 있으셨을줄은 제가 몰랐습니다. 안부라도 미리미리 전할껄 그랬네요. 하하하!"
내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얼굴이 살짝 빨갛게 물드는 그녀.
나는 이렇게 겉으론 웃으며 농담을 던지면서도, 속으로는 머리를 핑핑 돌리고 있었다.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라는거야. 아, 저번에 내가 다치고 이동한게 다행이라는건가? 근데 그걸 신하루가 왜 신경쓰지? 얘 원래 그런거 신경쓰는 애 아닌데?
잠깐, 이거 방송중인데.
나는 잠깐 채팅창을 곁눈질해봤다. 역시나 개판이 나있는 채팅창.
[빌런을 걱정해주는 히어로라... ㅗㅜㅑ]
["살아있었냐?" "다행이다." 둘이 무슨 로맨스 영화찍음?]
[지금 기레기들 노트북키고 개같이 열애설 시즌2 적는중ㅋㅋㅋㅋㅋㅋ]
[잘 모르겠는데 일단 클립땄다 ㄹㅇㅋㅋ]
[스타더스가 망고스틱에게 감겼다... 대한민국은 끝났다...]
좋아. 이제 채팅창은 신경 꺼야겠다.
하여튼 내가 그렇게 계속해서 능글맞게 웃고있자, 스타더스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쏘아붙였다.
"내가 직접 너를 수용소에 넣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거다. 너 같은건 법의 지엄한 심판을 받아야하니까. 합당한 처벌없이 객사한게 아닐까 걱정했을뿐, 다른 의미로 말한게 아니다!"
아 그런거였어?
하긴, 그녀가 나를 걱정했을리가 없지. 빌런을 걱정하는 히어로?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적이 없다.
법의 심판도 안받고 어디서 몰래 콱 죽었을까봐 걱정하다니, 참 스타더스 답다.
...그와 별개로 얼굴이 여전히 빨간 그녀였다. 왜지?
어쨌든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내가 안고있는 최세희를 보며 나에게 묻는 그녀.
"...그래서, 지금. 왜 나타난거지?"
"보면 모르겠습니까? 제 동료를 구하러 나왔죠."
"...동료?"
의아하다는 듯 나를 보며 되묻는 스타더스.
그래,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스타더스, 그리고 동시에 이 영상을 보고있을 전국민에게 알릴 차례가 왔다.
내 포부를, 내 목표를.
일단은, 이렇게 시작하자.
나는 그렇게 계속하여 미소지은 채로, 말을 이었다.
"네! 동료 말입니다. 정확히는 제 '연맹'에 속해있는 동료죠."
"연맹...?"
나를 보며 되묻는 그녀. 리액션이 바로바로 튀어나와서 좋다.
그리고, 그래.
이제 여기서부터 쇼를 시작하자.
"그렇습니다. 연맹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위로 쏘아올라갔다.
내가 갑자기 공격하는줄 알았는지 스타더스가 살짝 움찔했지만, 나는 그러든 말든 약간 더 하늘 위로 올라갔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내가 그녀를 확실히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었을 때.
나는 그녀를 향해, 그리고 전방에서 나를 찍고있는 카메라를 향해, 목소리를 깔고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십쇼. 히어로들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협회가 있죠. 협회가 있기에 지원이 있고, 협력이 있으며, 권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
카메라 영상에서는 미리 준비해둔 CG로 히어로 협회의 건물의 모습이 내 뒤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말을 살짝 멈췄다.
동시에 뒤에 협회의 모습이 사라지고, 검은색으로 물드는 배경. 동시에, 카메라 클로즈업.
점차 내 얼굴을 가까이 비추는 화면을 향해, 나는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빌런들에게는, 대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다시 내 주위로 CG가 나갔다.
수많은 빌런들이 히어로들에게 격파당하는 모습이, 작게 내 주위를 맴도는 모습.
그런 영상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빌런들의 역사는 지금까지 늘 개별활동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쉽게 각개격파되었고, 어떠한 세력도 이끌지 못한 채 한때의 유행으로, 검거되어 수용소의 이슬로 사라졌죠."
나는 이제 망토를 휘날리며 더 높은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쓰러진 채 숨을 힘겹게 나에게 안겨있는 최세희.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는 상태로, 살짝 꽉 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까지, 빌런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빌런들은 매번 패배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빌런들은 홀로 외롭게 활동해야 합니까?"
거기까지 말한 난, 다시 고개를 들어올려 스타더스를, 그리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민국의 빌런들이 단결하여 함께 히어로들을, 그리고 자신들의 적들을 맞서는 모습."
"저는 제가 직접, 그런 세계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소개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나는, 최세희는 염동력으로 고정한 뒤, 팔을 활짝 벌렸다.
그와 함께, 내 앞으로 나오는 자막.
[THE EGOSTREAM]
이제는 장엄한 음악마저 흘러나오는 가운데.
나는 다시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오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저는 이제, 빌런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빌런 연합 에고스트림, 오늘부로 출범합니다."
"긴장하는게 좋을겁니다, 협회."
거기까지 말한 나는, 망토를 펄럭이며 뒤로 돌았다. 위풍당당한 내 뒤로 망토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역시.
나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일렉츄! 지금 바로 100만 볼트!"
"...하아."
내 품에 안겨있던 최세희의 낮은 한숨과 함께, 가슴에서 뒤쪽으로 전격파들의 줄기가 강하게 날아갔고.
그와 동시에 치잇-하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스타더스. 아직 저를 잡기엔 5년은 이릅니다. 조금 더 분발하시지요."
내가 슬쩍 뒤를 돌며 말하자, 전기파를 피하는 스타더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내가 주저리 떠들때 기다리다가, 내가 방심한 틈을 타 기습을 할려고 했는듯한 모양.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상대가 그녀의 사고방식을 다 꿰뚫고있는 내가 아니었다면.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디오스."
"야!"
나는 거기까지 말하며, 빠르게 튀었다.
채팅창에서 난리를 일으키고 있는 방송은 꺼버리고, 일렉트라가 내뿜는 전기를 피해 다가오는 스타더스를 보며.
가기전에, 한마디 더 해줬다.
"그리고 스타더스. 조만간 저흰 또 볼일이 있을겁니다. 그때 보죠."
그렇게 살짝 미소지으며 말한 뒤, 나는 정말로 순간이동했다.
뒤에서 뭐라뭐라하는 스타더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였다.
다음에 보자고.
***
=[사회부]=
[빌런 일렉트라 - 에고스틱. 둘은 무슨 관계인가?]
[속보)빌런 일렉트라, 협회 A급 판정.]
[한국형 '빌런 연합' 출범계획 밝힌 에고스틱... '테러공화국'이 오는것인가 -권성현기자 칼럼]
[[단독]한국 초상 능력자 협회, 에고스틱의 빌런 등급 승격 검토중. '조직적으로 다른 빌런들을 규합시켜 세력을 구축하는 모습이 상당히 우려스럽다.']
*
=[연예부]=
[연예가중계) 에고스틱의 그녀는 누구? 일렉트라에 대하여 집중 분석!]
[에고스틱-일렉트라. 보기만해도 설레는 모습들 순간포착!]
[대중들의 관심은? 에고스틱 빌런연합 창설(23%)이 2위, 에고스틱 열애설(48%) 1위]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합니까?" 애틋한 눈길로 일렉트라를 껴안는 에고스틱의 모습(현장사진)]
['스타더스 바라기' 에고스틱은 어디로?]
[스타더스는 가라! 에고스틱-일렉트라. 짧은 순간에도 이목을 사로잡은 둘의 케미.avi]
*
기사를 읽던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구겼다.
"......"
뭔가, 뭔가...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짜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