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3 일주일
작업을 진행할 때, 캐릭터 해석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원작 만화를 수십번 읽은 나인만큼,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굉장히 잘 알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거다.
예를들어 서은이의 같은 경우는 한은그룹에 대한 복수심이 하늘을 찔렀기에, 이를 잘 활용해 영입 할 수 있었다. 하율이는 남동생을 제일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이용해 꼬셨고.
이는 스타더스에게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내가 스타더스에게 수상해보일만한 행동을 많이 하긴 했다. 테러를 내가 일으키곤 스타더스에게 구하라 하질 않나, 그녀를 대신해 칼빵을 맞아주질 않나...
만약 내가 아이시클, 그러니까 이설아같은 애한테 그랬으면 바로 내 정체를 들켰을 가능성이 높다.
...아닌가. 이설아 걔는 지금도 이미 내 정체를 어느정도 파악했을거 같은데... 일단 얘는 나중에 접근하기로 하고, 중요한 점은 이거다.
스타더스는 정의 자체를 형상화 한 인물이니만큼,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초창기에 다른 빌런들을 죽이고 다녔을 때, 대중들은 은근 날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혐오했겠지. 자기 마음대로 남을 죽이고 다니는 살인마라고. 이렇듯, 그녀는 자신만의 확고하고 단단한, 흔들리지 않는 정의관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뭔 짓을 하던 별 관심도 없을거라는 소리. 물론 저번에 약간 내 의도를 의심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건 그냥 찰나의 호기심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를 별로 신경쓰지도 않을거같은 기분. 아마 에고스틱에 대하여 까먹고 있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개인적으로 기억정도는 해줬으면 한다. 잊혀지면 슬프잖아...
하여튼 결론은, 내가 이 세계 사람들에 대한 해석이 어느정도 돼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걸 밑바탕으로 모든 행동을 진행한다. 아군을 영입할때도, 적들과 대립할때도. 그들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지 거의 다 예상이 된다는 소리.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이번에 새로운 동료를 영입하고 있다.
"....."
최세희.
어린시절에 능력을 자각한 후, 부모님으로부터 절대 히어로가 되지 마라, 능력을 밝히지 마라 등 강요를 받으며 자라왔다.
그렇게 평생 자신의 능력을 억제하며 살았으나, 그게 억제될리가 만무.
과충전된 배터리마냥, 10만볼트를 뿜어내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것이다.
그렇게 하도 억제되다 보니 시작된 파괴본능. 막 가로수같은걸 보면 전기날려서 뽀개버리고 싶어하는 등, 하도 오래 참고 살다보니 조절이 잘 안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다보니 점점 성격도 날카로워지기 시작한 것.
잘 모르는 사람들이 겉으로만 보기에는 무슨 양아치처럼 보이는 것이다. 실상은 단지 내면에 억제된 능력 사용 욕구에 의한 짜증이지만.
그렇게 참으며 살다가 성인이 된 이후 근근히 사람들 안보이는데서 몸안에 쌓인 전기를 조금씩 방출시키며 살던 삶.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죄책감 없이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쓴게 아마 나랑 만났을 때인거다. 아마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겠지. 속도 시원했을거고.
사실 그 정도는 뭐, 전기로 된 창 비스무리한거 몇번 날린게 다라 능력을 마음껏 썼다고 보기에도 민망하지만.
그게 지난 수십년간 단 한번도 자유롭게 쏘아보지 못했다가, 처음으로 한거라면 얘기가 다르다.
원래 한번 맛들리면 못 헤어져나오는 법.
나와 함께라면 이보다 더한 쾌락을 맛볼 수 있을거란걸 아는데.
달콤한 자유를 맛본 그녀가, 과연 나의 제안을 거부할수 있을까?
"흐흐흐흐흐....."
"오빠, 왜 이렇게 기분 나쁘게 웃어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서은이를 바라보여,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다려라 서은아. 오빠가 친한 언니 만들어줄게.
***
"포인트 있으세요. 네. 기다리세요."
서울의 한 카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최세희는, 오늘따라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3일 전부터.
'같이 테러 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미친놈."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그녀의 옆에 있던 알바생이 움찔거리는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테러범인줄 아나. 살다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
그렇게 코웃음을 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그날부터 좀 이상해졌다.
놈한테 전기를 쏘아버릴때의 그 해방감.
그때, 자신은 깨닫지 못했었지만 분명... 즐거웠었다.
능력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타인이 보는 앞에서 사용했을 때 그 시원함, 통쾌함.
한명에게 능력을 조금 사용했을 때도 그랬는데, 수십 수백명이 보는 앞에서, 마음껏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사용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시발. 내가 진짜 미친건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말도 안되는 소리. 자신이 그렇다고 테러범이 되라는 소리인가? 애초에 그 미친놈을 어떻게 믿고!
'그래. 내가 테러범이 될 일은 죽었다 깨도 없어.'
***
그날 밤.
그녀는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에고스틱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이건 그냥 어떤놈인지 궁금하니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해가며,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에고스틱.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다.
자신은 그저 가끔가다 가게에서 일하다 그가 테러할때 티비나 인터넷 뉴스로만 소식을 들은게 전부라 몰랐지만, 그는 상당히 유명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빌런 1위, 유일하게 팬카페가 존재하는 빌런, 웬만한 히어로들보다 더 인기가 좋은빌런...
인터넷에 치는 순간 기사와 게시글들이 샐 수 없을정도로 주르륵 뜰 정도.
"....이렇게 대단한 놈이었다고?"
이런 놈이 왜 자신에게 접근한거지?
아니, 그전에 자신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건 어떻게 알았지?
그런 의문을 가진 채, 그녀는 계속 그에 대한 설명을 읽어봤다.
이를 통해 깨닫게 된건.
돈이 많다, 해킹 실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그가 일으키는 테러는, 지금까지 어떠한 이유로든 단 한번도 사망자가 나온 적이 없다.
'.....그러면...괜찮은게 아닐까?'
그녀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번 시원하게 능력을 사용한 이후로 점점 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온몸이 전기를 그냥 뿜어버리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기분.
가만히 있어도 몸에 스파크가 날 정도다.
"하...시발..."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잘 생각해보십쇼. 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해 큰 고통에 빠지시지 않았습니까? 저와 함께라면... 당신의 본능을 숨기고 살 필요가 없을겁니다...'
떠오르는 그의 말.
그래,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힘들다. 언제까지 참고 살 수는 없는법.
분명 아직까지는 전혀 믿을 수 없는 놈이지만, 그래도.
다음에 찾아오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는 볼 수 있겠지.
무슨 테러를 하자는건지, 어떤 조건을 주겠다는건지.
일단은 들어보고, 고민해보자.
이 충동을 억제하기가, 더는 힘들다.
"지금 한 3일쯤 됐고... 곧 온다고 했으니까."
내일쯤 다시 오려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
다음날.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
내면에 충동은 점점 더 쎄지고 있다.
그냥 어디에다간에 전기를 뿜어버리고 싶은 기분.
산이라도 올라가 능력을 방출하는걸로 해소된다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고있지 않으면 딱히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는 법.
너무 오래 능력을 숨기고 살다보니 파괴욕과 더붙어 과시욕까지 생긴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착실하게 빌런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일, 내일은 오겠지.'
다음날.
그는 역시 찾아오지 않았다.
슬슬 그녀는 큰일이 난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시작된 충동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사람들이 많은 곳만 가도 전기를 방출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지경에 도달했다.
자신때문에 이 주위에 기물들이 박살난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는 채 짜릿해지는 기분.
'...이대로는 안돼.'
에고스틱. 그가 분명 자신은 곧 온다고 했다.
언제부터 '곧'이 5일이었지? 왜 안오는걸까?
...설마, 자신이 너무 그때 강력하게 거부하자 그냥 포기했나?
그래. 찾아보니까 에고스틱 이놈은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다리 테러만 봐도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건지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지경.
...그새 자신은 버리고, 그냥 다른 빌런들 찾으러 간거 아닐까? 생각해보면, 자신 말고도 능력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은 많을거다. 어쩌면 깔끔하게 다른 사람이나 구하자고 생각했을수도 있지.
...첫만남부터 전기를 날린건 실수였나? 아니, 그녀는 억울했다. 갑자기 어두운 골목에 혼자있는데 말을 걸어오면 누구라도 그러지.
".....하아."
이제는 별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가 하자는 대로 할테니, 사람을 해치지 않고...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의 말을 따르는게 맞아 보인다.
그렇게 지나친 파괴충동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녀의 머리는 슬슬 정상적인 사고에서 동떨어져, 제대로 생각을 이어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날.
카페.
"세희씨. 어디 아프세요? 오늘따라 기운이 없으시네?"
"......"
".....어, 그럼 파, 파이팅!"
다음날.
밤.
조용히 집으로 걸어가던 그녀의 눈앞에, 한 남성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세희씨. 제 제안은 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할께."
"네?"
"한다고. 테러든 뭐든."
***
....아니. 내가 일주일만에 꼬실 수 있을거라고 호언장담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쉽게 함락된다고?
나는 내 눈앞에서 애절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있는 주황색 머리칼의 최세희를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
고작 일주일 가지고 왜이러는거지?
우리 망고단 애들은 2달 3달도 거뜬히 버티던데?
어쨌든, 기회는 왔을때 바로 잡아야 하는법.
"무슨 심경에 변화가 생긴지는 모르겠지만... 좋습니다. 같이 가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고.
그녀는, 주저없이 내 손을 맞잡았다.
진짜 일주일만에 새로운 빌런(예비)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된 이상, 테러를 예상보다 빨리 실행할 수 있겠는걸?
스타더스, 생각보다 금방 다시 보겠네.
두달? 두달이면 금방이지 뭐.
***
'....진짜, 죽은건 아니겠지?'
"하루야.... 또 무슨 생각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