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1 그녀의 고뇌
한은그룹 지하를 조사하고 온지 어언 한달.
그날 이후로, 신하루는 일상에서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
공부를 하다가도, 히어로 활동을 하다가도, 쉬다가도, 잠을 자려다가도.
불숙불숙 치솟아오르는 생각은.
'....걔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아직도, 지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지?
왜 그런거지?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그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면.
누구든 아마 평생에 걸쳐, 고마워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 구해준 사람이, 그녀를 구해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히어로와 빌런은 어떤 관계일까?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그냥 적대관계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주적이라고 여기는 앙숙.
빌런에게 히어로만큼 거슬리고 없애버리고 싶은 존재가 없고.
히어로는 빌런을 심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걸 불사른다.
그러니까, 빌런이 히어로를 구한다는건 농담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그녀에게 실제로 이루어져서 문제지.
"...."
한은그룹 지하.
그녀가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해주지 않은 말이지만.
에고스틱은, 자신의 몸을 날려 그녀를 구했다.
아마... 그가 나서지 않았으면 자신은 이미 이 자리에 없었겠지.
빌런은, 히어로가 쓰러지면 제일 반기는 존재가 아니던가.
사실 따지고보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빌런들이 전부 자신이 사라지는걸 바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던 빌런들도 수십명이고.
그런데 어째서.
에고스틱 그놈은, 자신을 구했지?
아니. 자신을 구한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쨰서 스스로 몸을 날리면서까지 그런거지?
"......"
책상에 앉아 일을 하던 신하루는, 자신도 모른 채 다시 생각에 빠졌다.
최근들어 계속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생각. 아니, 그래. 의아함.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궁금증.
왜 그는 자신을 구한걸까?
사실상 이번 일은, 그녀가 에고스틱에 대하여 갖고 있던 모든 의심들의 종지부를 찍는 일이었다.
그래.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그는 다른 빌런들을 처리하고 다녔다.
그가 일으킨 테러는 전부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그녀만 알고있는 사실들.
그는 자신보고 얼굴을 노출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테러를 막으라고, 스스로를 믿으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만이 예측한 재앙을 막기위해 다리를 부쉈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자신의 몸을 바쳐 그녀를 구했다.
그래. 그래.
이제는 정말로, 정말로 인정해야한다.
에고스틱. 그는 평범한 빌런이 아니다.
아니, 평범하지 않다. 그 말로 그를 정의할 수 있을까.
사실 그녀는 이제 그를 빌런이라고 해야할 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는 바로 스스로를 부정했다. 아니. 테러를 일으키고 ,민간인을 겁박했으며, 다른 빌런들을 자기 마음대로 살해한 이가 빌런이 아니면 누가 빌런이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일으킨 일들 이상으로, 뒤에서 다른 일들을 많이 해왔다.
따지고보면 그로 인하여 사망한 민간인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구해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의 추종자들이 인질을 붙잡고 일으킨 테러. 그가 막았다.
엘리게이터맨이 도심에서 난동을 일으킨 테러. 그가 막았다.
호텔에서 몽키스패너가 일으킨 테러. 그가 막았다.
한은그룹이 만든 괴물로 인하여 일어난 재앙. 그가 막았다.
...그리고 자신까지. 그가 구했다.
사실 그가 저지른 전과만 놓고 보면 그는 빌런이 맞지만.
그가 한 업적들만 따지고 보면, 그를 히어로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러면 어째서 그는 이렇게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는가.
그가 악한 이라면, 사람들을 구하는 이유가 설명이 안되고.
그가 선한 이라면, 그가 테러를 일으키는 이유가 설명이 안된다.
사실, 전자는 설명할 수 있다.
그가 악한 이라면 왜 사람들을 구했는가?는 이미 자신에게 그가 직접 설명한 일이니까.
추종자들이 일으킨 테러는,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켜서.
엘리게이터맨이 일으킨 테러는, 자신을 언급한게 꼴받아서.
자신에게 비행기의 사람들을 구하라 한 이유는, 그와 자신의 대립구도를 강화하기 위해서.
호텔에서 몽키스패너가 일으킨 테러는, 지나가다가 그냥 기분내켜서.
한은그룹이 만든 괴물로 인하여 일어난 재앙은, 어그로가 뺏길까봐.
그래. 다 이유가 있다.
그가 스스로 구구절절, 하나하나 설명해준 이유들이.
그 이유들이, 다 그저 변명같다면 너무 과민반응일까.
아니. 한번 맞다고 쳐보자.
그가 지금까지 저지른 결과적으로 선했던 일들은 전부 그가 설명한 대로고, 그는 실제로 악한 빌런이라고.
근데 그렇다고 해도.
그가 스스로의 목숨까지 걸면서 그녀 자신을 구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건가?
"하아...."
사실 그녀의 속마음은.
에고스틱을 단순한 악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아니, 악인이건 선인이건 그의 말대로 자신은 그에게 빚을 졌다. 자신이 죽을 위기를 그가 스스로를 희생해 살려줬으니.
그러나 아예 나쁜놈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지금까지 일으킨 테러와 빌런 사살이 계속 밟힌다.
그러나 나쁜놈이라고 하기엔 또...
"으...."
그래.
이건 답이 안나오는 문제다.
사실 에고스틱에 대해 생각하기만 하면 머리가, 마음이 어지러워져 그녀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나쁜놈은 맞는데? 그래도 착한 일들도 많이 했고? 근데 자신은 왜 구한거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그녀의 마음 속 깊숙히 어딘가, 직감의 영역에서.
왜인지 자꾸, 그가 사실 악인이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는거다.
그 마음에는 논리도 근거도 없다.
다만 메아리처럼 자꾸만 그런 기분이 들 뿐.
사실 내가 오해하고 있는건 아닐까...
알고보니 에고스틱이 지금까지 일으킨 테러도 무언가 깊은뜻? 같은게 있다던가...
"내가 미쳤지."
그녀는 상념을 털어내고 옆에 있던 물을 한잔 들이켰다.
이제는 막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도 들고있다.
"...."
그리고 이렇게 에고스틱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늘 마지막에는, 하나의 생각으로 마무리지어진다.
걔는 지금, 무사할까.
사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히어로가 빌런을 걱정하다니. 어디 소문이라도 나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을만한 일.
...아니. 에고스틱의 인기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 않을수도 있기는 하겠다만. 어쨌든.
늘 에고스틱에 대한 생각의 귀결은, 그에 대한 걱정으로 끝난다.
정말 심하게 부상당했었는데.
곧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그게..
아니. 그 이전에 그게 치료한다고 나을 수 있는 상처일까?
그녀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그는 거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큰 상처를 입었었다.
...어떻게 그래도, 방법이 있겠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한거겠지?
....설마. 그대로 죽어버린건 아니겠지.
자신을 구하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
아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울해지는 기분을 막기 위해 다시 되새겼다.
에고스틱. 그 비밀많고 꿍꿍이 많은 놈이 그렇게 허망하게 쓰러졌을리가 없다. 분명 어디선가 쉬고 있겠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다가도, 자신이 지금 히어로면서 빌런 걱정을 하고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면 또 뭔가 못할 짓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건 빌런을 걱정하는게 아니다. 그냥 자신을 구하다가 그렇게 된거니까. 아. 그래. 빌런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죽어버리면 안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니까 그런거다. 그래.
"하아..."
걱정이 되지만.
걱정 하나 맘대로 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그녀는 계속 끙끙거릴 뿐이었다.
...그래. 일단 이놈이 살아있어야 물을 수 있으니까. 일단 에고스틱, 이놈이 살아있다는걸 확인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논리로 그녀는 오늘도 에고스틱의 팬카페에 들어갔다.
그가 살아는 있는지, 뭘 하는지 근황이라도 나와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에 매일 들어가게 되는 이곳.
*
[유입필독)한달 가지고 징징? 응 저번에는 거의 반년이었어ㅋㅋㅋㅋㅋ]
[하루 한번 감사의 망고스틱 퍼먹기... 26일차]
[마음 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복귀한다... 기다려라...]
[저번 공포방송 하이라이트 ver.7]
[아니 클립 지워졌는데 뭐지?]
[근데 이제 뭐함?]
[에붕이 오늘 우리 대학 축제에 에고스틱이 오는 꿈 꿨어]
*
늘 올라오는 결과적으로 쓸모없는 게시글들만 보며,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의 생사를 확인하는건, 그가 일으키는 테러로 자연히 알게 되겠지.
그렇게 오늘도. 따지고보면.
히어로는, 빌런이 테러를 일으키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당분간 직접 테러 안한다."
"진짜죠?"
"그래. 당분간은 조용히 살테니까 제발... 제발 그만 물어봐!"
"잘 생각했어요. 몸을 그렇게 굴렸는데, 당연히 당분간은 몸조심 해야지."
"해야지는 반말이고... 하여튼, 다음 테러는 내가 직접 일으키지는 않을거다."
"네? 그럼 어떻게 하게요?"
"외주를 맡겨야지."
나는 거기까지 말한 뒤 씨익 웃었다.
그래. 언제까지 내가 직접 뛰어다니며 테러를 일으켜야 해.
내 테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당분간은 없다!
***
[신하루님, '에고스틱 공식 팬카페'의 성실회원으로 승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