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0 요양
"서은아."
"왜요?"
"이것 좀 풀어주면 안되겠니?"
"안돼요."
나는 내 침대에 묶인 수갑을 절그럭 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렇다고 내 손을 침대에 묶는건 너무하잖아...
그리고 난 어차피 순간이동하면 그냥 빠져나갈 수 있는데?
"그거 빼기만 해봐요. 오빠 얼굴 다시는 안볼꺼야."
"....."
그런 내 기색을 읽었는지 서은이가 서슬퍼런 기색으로 말했다.
쩝... 내가 얘한테 한게 있어가지고 뭘 할 수가 없네.
"알았다, 알았어. 그냥 누워있으면 되지?"
나는 결국 항복하고 다시 침대에 몸을 기댔다.
오른손에는 링거가 꽂혀있었다. 수액이래나 뭐래나.
한은그룹 지하에서 스타더스를 대신해 칼빵을 맞은지 벌써 몇주가 흘렀다.
사경을 해매다가 하율이가 해준 힐 덕분에 겨우 목숨은 붙였다. 몸에 분명 구멍이 뚫렸었는데 살았다니, 이게 기적이지 뭐가 기적이겠어.
거기에 여기까지 순간이동해서 몰아닥쳤던 피로도까지 생각하면, 진짜 살아있는게 용했다.
근데 문제는.
내가 거의 죽을뻔했다는걸 우리집 모두가 알게 되었다는거지.
그 결과 방에 감금되었다.
"......"
"자. 아~ 하세요."
"...수빈씨. 제발, 제발 밥은 제가 직접 떠먹으면 안되겠습니까?"
"안돼요. 아~."
"하아...."
그래. 솔직히 인정해서.
나 같아도 정말 깜짝 놀라긴 했을꺼다.
만약 서은이, 수빈씨나 남매중 한명이 어디 나갔다 왔다가 몸에 구멍이 뚫려서 피를 철철 흘리며 나타난다? 진짜 심장 떨어지는 기분일걸.
실제로 내가 쓰러지고 몇주 후에 깨어났을 때, 다들 내 앞에서 펑펑 울었으니까.
...그래도 침대에 수갑을 채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쨌든 깨어나고서도 그렇게 몸이 썩 좋지는 않아서, 한동안은 침대에서 링거 맞으며 누워 있었다.
"...지금까지 숨겨서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오히려 살려줘서 고맙다고 해야지, 무슨 소리야. 뚝!"
그리고 하율이는 나에게 자신이 치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어렸을적 멋모르고 말한 고아원장을 제외하면, 나한테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고백한 것.
물론 거실에서 대놓고 쓰러져있던 나를 치료했으니 모두가 알게 됐겠지만, 뭐.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먼저 말할때까지 가만히 있었을 뿐.
이렇게 공식적으로 나는 힐러를 얻게 되었다.
'다쳐도 하율이가 치료해주면 되니까 괜찮은거 아닐까?' 라고 말했다가 서은이한테 머리를 얻어맞는 해프닝이 있었긴 한데, 어쨌든.
내가 좀 괜찮아진 이후, 다들 제일 먼저 물어본것은 그거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크게 다친거냐고.
그냥 사실대로 '스타더스 지켜주려다가 다침'이라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
무언가 쎄한 기분이 들었다.
왜인지 이렇게 말했다가는, 좆될거같다는 기분이.
나에게도 스타더스처럼 초감각이 있다는 말인가? 이 기분은 대체 뭐지?
...그래, 이렇게 말하자.
"괴물이 뒤에서 기습했다고요?"
"그래. 방심하고 있다가 맞았지 뭐야."
거짓말은 아니다. 진실의 일부만 말했을 뿐.
괴물의 기습때문에 찔린거는 맞다. 다만 내가 일부러 찔린거긴 한데, 이걸 말했다가는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으니 가만히 있자.
이미 여기까지만 말했는데도 다들 표정이 굳었거든.
다들 처음부터 그런 위험한데를 왜 들어갔냐고 나를 하도 괴롭혀서, 앞으로 저런데는 안가겠다고 겨우 약속을 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쩝. 사나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인데.
그렇게 며칠간의 감금생활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오히려 몸에 안좋다는 내 애원에, 드디어 일어나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이 산골짜기에 있는 덕분에, 어디 갈 필요없이 집앞 마당이 사실상 공원처럼 가꾸어져 있어서 걷기에 참 좋다. 짚 앞 둘렛길, 현대인의 로망 아니겠는가.
물론 나 혼자 걸은건 아니다. 나를 감시하겠다며 서은이가 딱 달라붙었거든.
....아니, 내가 여기서 갑자기 도망가겠어 뭘 하겠어? 참으로 억울하다.
생각해보니까 그냥 나랑 같이 걷고 싶은걸수도 있네. 뭐.
어찌됐던간에 날은 좋았다.
이제는 봄이라 그런지, 새들도 날아다니고 꽃들도 좀 펴있고... 바람도 선선하니 좋네.
"오빠, 진짜 몸 괜찮은거 맞아요?"
"어. 이제는 멀쩡해. 내가 대체 몇주나 쉬었니? 아직도 안나으면 그게 이상한거지."
"...가슴에 구멍이 뚫렸었는데 금방 낫는게 더 이상한데요."
"하율이가 워낙 힐을 잘해줘서. 역시 모든 팀에는 힐러가 필요하다니까. 아니었으면... 큰일났겠지."
그래도 하율이한테 미안하기는 하다.
얘도 나 치료해준 다음에 힘이 빠져서 잠깐 기절했었다고 들었거든.
....사실 처음부터 힐러 목적으로 영입한거긴 한데, 또 그랬다니까 좀 마음이 불편해.
나는 여전히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내가 머리를 만져도 아무말 안하고 가만히 몸을 맡기는 서은이. 얘가 원래 이런애가 아닌데, 내가 쓰러진 이후로 좀 유해졌다.
하긴. 제일 처음으로 반시체가 된 내 모습을 본게 서은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서은이의 비명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마음의 준비라도 했지, 서은이는 그런것도 없이 달려갔다가 내 모습을 봤다고 한다. 솔직히 사람이 가슴에 구멍뚫리고 피 흘리는거 보고있으면 트라우마 되겠어.
...애가 정말 많이 놀랐다고 한다. 수빈씨의 말에 의하면 계속 울었데나. 미안하네.
그래. 재밌는거라도 보여주자.
"서은아, 이거 봐봐라."
"뭔데요?"
나는 내 몸쪽에 있던 베히모스를 손 위에 뭉쳤다.
사실상 내 이번 개지랄의 유일한 소득.
검은색의 리모트 컨트롤 가능한 액체괴물이다.
...뭔가 이렇게 말하니 좀 없어보이기는 한데, 어쨌든.
그걸 여러개의 공처럼 뭉쳐봤다.
순식간에 생긴 4개의 꿈틀거리는 검은색 공.
"짠. 저글링!"
나는 그걸로 저글링을 했다.
비밀의 연구소에서 사람 수십명을 갈아만든 생체병기 특.
저글링 공으로 쓰일 수 있음.
"...오빠. 재밌어요?"
서은이는 짜게 식은 눈길로 그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상하다. 요즘 애들은 저글링 안좋아하나?
***
하여튼 그렇게 몸조리를 꽤 오래했다.
한 몇주 지나자 이제는 완전히 돌아온 컨디션.
이제는 침대에 누워 수액만 맞는 삶을 드디어 졸업하고, 방에 제대로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돌아온 개인시간.
역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끝."
이번에 있던 일들까지 전부 일기에 적은 나는, 이내 일기를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열쇠까지 잠궈놓았다.
'그 빌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매일 이렇게 일기를 써야한다. 그 이후에는 태워버리면 될 테고...
그래서 이건 누가 읽으면 큰일 나. 내 비밀을 다 적어놨다고.
...그런데 자꾸 서은이가 내 일기를 읽으려고 들어서 큰일이다. 이거 읽으면 안돼. 지지야.
조만간 대책을 마련해야겠다.
"휴우..."
할일도 다 한 나는, 의자에 기대서 머리를 정리했다.
이번 한은그룹 지하실에서 일어난 일. 내가 원하던 베히모스를 먹는거까진 성공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사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나도 죽을 수 있다는걸 깨달았으니까.
내가 죽으면 좀 곤란하다.
서은이와 수빈씨, 하율이가 어떤식으로 움직일지도 모르겠고... 결과적으로, 세계가 다시 맛이 가게 될꺼니까.
사실 지금하는 모든일은 다 피폐물이 되는걸 늦출뿐, 원작의 최종보스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죽은 이후의 세계도 미리 생각해 놔야하는 법이겠지.
"...."
아무래도 노트를 하나 더 사야겠구만.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런 일이 안일어나도록 재발 방지에 대한 이야기나 해보자.
이번에 느낀건데, 내가 무력이랄께 거의 없어서 어딘가에 혼자 직접 나서기에는 좀 위험한 감이 있다.
"...아니. 이제 없는건 아니지."
나는 내 오른팔 어깨쪽에 붙어있는 검은 무언가를 봤다. 베히모스. 이제 이게 있으니 어느정도 무력은 있다. 날아오는 총알같은건 어지간하면 얘로 막으면 되겠지.
...근데 내가 실제 전투에 참여할 일 자체가 많지 않을거라, 사실상 그냥 보험 느낌이다. 최악의 순간에 꺼내는.
하여튼. 중요한건 무력도 거의 없고.
더욱이나 내가 자꾸 전면에 나서니까 힘들다는거다.
그래. 역시 내가 구상한 그걸 더욱 빨리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냥 대한민국의 모든 빌런들을 내 아래에 둬서 통제하는 것.
히어로들에게도 그들을 관리하는 협회가 있는데, 빌런들도 그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게 생기면 내가 직접 주도적으로 테러를 할 필요도 없겠지.
전부 외주를 줘서 맡기는거다. 대충 민간인 피해 없고 스타더스만 강해질 수 있게.
그렇게 되면. 어쩌면. 내 은퇴가 꿈이 아닐수도 있겠지.
나는 뒤에 멀직히 서서, 모든 테러들을 관리하고 컨펌하는 역할만 하는거다.
...근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휴... 일단 그녀부터 섭외해봐야겠구만."
나는 그렇게 다음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은 무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겠지.
...
계획을...짜야하는데...
"하아...."
나는 계획을 짜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미래에 대한 계획이고 뭐가 다 필요없고.
지금 제일 큰 걱정은.
"....스타더스는 어떡하지."
대체 그녀가 날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세상에 어떤 빌런이 히어로가 죽게 생긴걸 자기가 대신 몸빵을 해서 맞아주겠어.
이거는 진짜 나를 의심하기 시작해도 할 말이 없다.
"...아. 몰라."
모르겠다. 그래도 나중에 입 잘 털면 되겠지.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짓들이 있으니까. 갑자기 이번에 이거 하나로 의심하지는 않을거다.
에이. 지금까지 테러만 4번 일으켰는데, 그래.
...그렇게 믿어야지. 걱정하지말자.
"...."
...아니 그전에. 마지막에 그런 모습으로 헤어져서.
나 죽은줄 아는건 아니겠지...?
***
"하루야. 요즘 왜 이렇게 멍때려?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니."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 추욱 늘어져가지고 계속 표정이 안좋던데. 뭔일 있던거 아니야?"
뭔 일이 있기는 했어요.
신경쓰이는 일이.
그런 생각은 속으로 삼킨채, 신하루는 애써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뿐이였다.
그날 이후로 한달째 되던 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