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9 변곡점
베히모스.
원작에서는 김선우 박사가 와서 회수해 가는 검은 물질.
작은 검은색의 촉수 여러겹으로 만들어진 이것은 사용자의 신체에 붙어, 붙은 부위를 강화시켜준다.
물론 베히모스의 유용성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사용자의 생각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는 만큼, 활용법은 많다.
주먹처럼 뭉쳐 로켓펀치마냥 쏘아버릴 수도 있는 등, 꼭 신체에 붙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활용법은 무궁무진.
원작에서는 이걸 통해 김선우가 스타더스랑 싸운다.
그러니까, 일반인도 이것만 있으면 초인과도 싸울 수 있다는 소리.
그러니까 나도, 이것만 있으면 스타더스랑 1대 1 대전을 할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닐까?
"....그거 안 내려놔?"
"제가 이걸 왜 내려놉니까?"
굳은 표정으로 내게 으르렁 거리는 그녀를 향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느덧 베히모스는 내 오른손을 완전히 감쌌다.
내 오른손은 촉수로 이루어져 있으니-
나는 한번 손으로 주먹을 쥐어봤다.
"좋네요."
좋다.
뭔가 오른손에서 힘이 넘치는 기분.
특히 이 촉수들이 내 뇌랑 직접적으로 연결됐는지, 내가 원하는데로 움직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 이정도면 스타더스와 싸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만보고 있는 그녀.
당장 달려들어 나한테서 이걸 떼어놓고 싶어하는 걸로 보이지만, 어림도 없지.
내가 그냥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면 끝이라는걸 알기에, 달려들지도 못한 채 저렇게 가만히 있는거다.
순간이동이 좋긴 좋아.
"스타더스. 제가 조언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뭔줄 아십니까? 바로 빌런을 믿지 말라는겁니다! 솔직히 어떻게 이걸 모르셨는지 의아하네요. 하하하하하!"
내가 능글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래. 원래는 여기까지만 한 뒤에 '수고요~' 이러고 튈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쓰읍. 이대로 가면 좀 그렇지?
이왕 새로운 능력도 얻은겸.
스타더스한테 경각심도 줄겸.
나는 검게 물든 오른손을 스타더스에게 까딱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정 빼앗고 싶으시면... 와서 빼앗아 보시던가요."
내가 그렇게 웃으며 말하기까지 하자, 그녀도 더이상 참지 않았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주마."
쿠웅-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 내쪽으로 날아오는 그녀.
"이 악물어라."
그녀는 그 말과 동시에, 나를 향해 주먹을 뻗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이미 주먹을 장전한지 오래.
그러나 사나이는, 멋없게 아녀자와 직접 몸을 맞대며 주먹다툼을 하지 않는법.
그녀가 내 코앞까지 와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나는 그대로 내 원래 있던 곳에서 한뼘 뒤로가, 주먹을 장전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쏘았다.
애고류 비기(祕器)-
로켓펀치(火箭强拳).
콰앙.
내 손에서 쏘아진 검은 주먹 모양의 촉수는, 그대로 스타더스에게로 향했고.
그렇게 스타더스가 휘두른 주먹과 그대로 부딪혔다.
쿠우웅-.
굉음을 내며 맞붙는 주먹.
스타더스는 자신의 힘을 견디는 주먹에, 살짝 당황한것처럼 보였다.
그래. 이게 베히모스의 위력이다 이말이야.
...물론 내가 이걸 오른팔에 휘감아 물리적으로 싸우는게 아닌, 작은 사이즈의 주먹 하나에 모든 촉수를 응집시켰기에 그녀의 힘을 견딜 수 있는거다. 거기에 스타더스도 나를 여기서 즉사시킬 생각을 하지는 않을테니 힘조절도 어느정도 하고 있는 상태일테고.
근데 그런게 중요해?
중요한건 내가 어찌됐건 그녀랑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다는거지.
"야!! 정정당당하게 싸워!!"
"악당이 언제 정정당당하게 싸우는거 보셨습니까?"
그녀는 계속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원거리에서 촉수로 이루어진 주먹만 쏘아대는 나를 보며 일갈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방금 스타더스 컨셉 무너지지 않았어? 원래는 '네이놈!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이랬어야 했을텐데.
음. 조금 빡쳤나보다. 왜 빡쳤지?
전투를 이어나가며 그녀의 표정을 보니,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찬 얼굴.
....배신감? 대체 왜 배신감을 느끼는거지? 악당이 배신을 하는건 '상식'이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의 쓴맛을 덜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싸움을 이어나갔다.
계속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면서 얍삽하게 촉수로 잽만 날리는 공격.
아무리 방이 넓어도 서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주먹다툼을 하다 보니 벽도 부숴지고 난리가 났다.
...슬슬 원패턴이라 질리는데.
순간이동을 너무 많이 했더니 지친다. 힘들어.
애초에 내가 이렇게까지 몸을 움직여가며 싸운적이 있나? 없다. 사실 내가 싸운다기 보다는 베히모스가 대신 싸워주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어느정도 교육이 되지 않았을까?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찬 채 쌩쌩한 모습으로 날아오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주먹을 장전했다.
그녀가 똑같이 나를 향해 주먹을 뻗을 때, 나도 뻗어서.
쾅-.
이번에는 비슷하게 원거리에서 공격한게 아닌, 내가 직접 베히모스를 오른팔에 감싸고서 그녀의 주먹을 받아냈다.
팔이 조금 저릿저릿 하긴 하지만, 이정도는 막아낼 만 하지.
이게 내 마지막 공격일거거든.
이제 입만 조금 털고 도망쳐야지. 서은이가 걱정하고 있을거다.
나는 그렇게 그녀와 몸이 맞닿은 채, 그러니까 주먹이 부딪힌 상태로 마지막 인사를 건냈다.
"오늘의 교훈. 아셨죠? 악당은 믿는게 아니..."
그래.
악당은 믿는게 아니라고.
앞으로는 이렇게 통수맞지 말라고 조언을 하려고 마지막까지 조언을 하려고 할 때.
그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코앞에서, 나를 잡아 죽일듯이 바라보고 있는 스타더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는 텅 비어있었다
그래. 비어있었었다.
갑작스럽게 그녀의 뒤에, 뭔가가 튀어나오기 전까지.
그것은 거대한 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2m정도로 거대했고, 입은 기괴하게 찢어져 있었으며.
마치 거대한 낫과도 같은, 하얗고 날카로운 팔을 가진 모습.
정말 갑작스럽게,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그것.
아무도 예상치 않던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튀어나온 그것은.
나타난 순간부터, 이미 그 낫과 같은 팔을 스타더스의 등 뒤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생각이 잠시 멈췄다.
스타더스는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방비하게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그리고 내가 뭘 할 셈도 없이, 이미 그 하얀 낫은 그녀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우리가 미쳐 해치우지 못한 하나의 괴물.
*
《RKCB-1107》
[가칭]순간이동자
[유의사항]순간이동을 하여 도망칠 수 있으므로 A등급 보안을 늘 유지한다. 뒤에서 덮치므로 주의를 표할 것.
*
그래. 그런걸 읽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놈을 발견하지 못하고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신경쓰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다른 괴물들은 너무나도 쉽게 죽이면서 왔으니까.
그리고 나의 그런 방심은, 커다란 비수가 되어 스타더스를 향하고 있다.
어떻게해야 하는가.
말하기에는 너무 늦다. 이미 촉수는 그녀의 주먹과 맞붙고 있다. 염동력으로 하기엔 너무 약하다.
잡고 순간이동? 하필 베히모스로 주먹 맞대고 있어서 잡을 수도 없다.
그럼. 어쩔수 없잖아.
나는 그대로 순간이동 했다.
그녀의 등 뒤, 괴물이 낫을 휘두르고 있는 그 자리로.
그리고 내가 대신해.
그대로 그것에, 찔렸다.
푸욱-.
"무슨....! 뭐야!"
등 뒤에서 들리는 그녀의 비명.
나는 그녀와 등을 맞대고, 대신 그것에게 찔리며, 그녀에게 향하던 주먹 그대로, 놈에게 날렸다.
퍼석.
너무나도 쉽게. 머리가 박살나며 하얀 가루로 흩날리는 그것.
그래. 참 쉽게, 이렇게 쉽게 해치울 수 있는 놈이었다.
내가 이렇게, 가슴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 해치웠으면 더 좋았을텐데.
"이, 이게 무슨일이냐! 어, 어 너가, 왜...."
굉장히 당황한 채 말을 더듬고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위쪽에서 들려왔다.
그야 황당하겠지. 아까까지만 해도 싸우던 빌런이 갑자기 뒤로 이동해서 대신 칼찌당했는데.
지금 내 상태는 빈말로도 좋지 않다.
바닥에 엎어져, 가슴에 무슨 주먹하나 들어갈만한 구멍이 나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모습.
미친새끼. 무슨 몸을 관통했어.
존나 아프네.
"쿨럭."
나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했다.
가슴으로도, 피를 뱉고. 입으로도 피를, 뱉고. 개판 이구만. 하, 하하...
"아니...대체..왜....괜찮...젠장....어째서....이게..무슨...."
위에서 들려오는 스타더스의 목소리.
이제는 이명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는다.
빨리, 돌아가야한다. 집으로.
이러다가. 정말. 죽겠. 어.
잠깐, 그래도. 가기 전에... 한마디는, 해야지. 안이상하지.
나는 죽을 힘을 다해 한마디를 짜냈다.
"쿨럭. 이번, 이번. 에. 하나. 빚지신, 겁니다."
여전히 몹시 당황한,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떨리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고선.
나는그대로, 순간이동했다. 집으로.
늦지, 않아야할텐데.
하하하.
***
늦은 밤.
산골짜기 깊은 곳에 숨겨져있는 커다란 저택.
그곳의 부엌에서. 세명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아니. 오빠는 대체 언제 오는걸까요?"
볼을 부풀린 채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하얀 머리칼의 여자애는, 한서은.
그녀는 지하로 내려간지 시간이 경과한 후, 연락이 끊어진 다인을 걱정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리고 하율아. 넌 내일 학교가는거 아니니? 이제 슬슬 자러가야지."
옆에서 건낸 걱정 어린 수빈의 말에, 쓴 웃음은 지으며 고개를 젓는 하율.
"아니요. 저도 조금만 더 같이 기다려볼께요."
"휴우. 진짜 이 오빠는 맨날 사람 걱정이나 시키고..."
그렇게 세 여자의 한숨소리만 깊어지고 있을 때.
우당탕-.
거실에서 들리는, 무언가 나자빠지는 소리.
"어! 오빠 드디어 왔나봐요!"
서은이는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서둘러 뛰어나갔고.
그런 그녀를 따라 남은 둘도 일어나 거실로 향하고 있을 떄.
거실에서, 먼저 달려간 서은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서은아! 무슨일이야!"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놀란 둘이 거실로 서둘러 달려가자.
그들이 본것은.
상체에는 구멍이 뚫려있고.
그곳에서 온몸으로 피를 흘리는 채.
서은이에게 기대 쓰러져있는, 에고스틱의 모습이었다.
"오빠, 오빠! 어. 어떡해. 오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옆에서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서은이.
숨을 희미하게 쉬는 채 쓰러져, 피를 쏟아내는 그의 모습을 본 둘도
갑작스럽게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아. 아아. 이, 일단, 일일구, 전화. 전화해야돼...."
충격에 빠진 상태로, 손을 벌벌 떨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이수빈.
그러나 손이 너무 심하게 흔들린걸까. 휴대폰은,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그녀의 손을 빠져나가 바닥에 부딪히며 박살이 났다.
"아. 안돼."
그렇게 이수빈이 여전히 초점이 나간 상태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있는 폰을 더듬거리며 주울 때.
그녀의 옆에 있는 하율은, 이미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서은아. 비켜."
"네? 아. 네..."
무언가의 결의로 가득 찬 하율의 말에, 울고있던 서은이는 엉금엉금 떨어져 그에게서 물러났고.
이내 쓰러져있는 그의 코앞까지 온 하율은, 무릎을 꿇고 다인의 몸에 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번쩍.
그들이 있던 거실은, 갑작스러운 빛으로 가득찼다.
***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감각.
온몸이 따스해지는 이 기분.
아아.
하율이가, 나섰구나.
다행히 안 늦었구만.
살았네. 살았으면 됐지 뭐...
하하. 진짜 죽을뻔했지 뭐야.
사나이로 살다보면 뭐, 한번쯤은 이렇게 사선에서 탭댄스도 해보고 그래야하는 법이지. 다 나중가면 좋은 추억이 되고 그러는거다. '하하. 그때는 정말 아찔했지!' 이러면서.
...그런데 깨어난 이후가 문제네.
서은이랑 수빈씨, 하율이 모두 충격받았을테고.
스타더스는....
아몰라. 그건 나중에 깨어나서 생각하자.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파이팅, 미래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