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7 밀실
"...."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좆됐다는 결론.
여전히 당황한 채 얼타고 있는 스타더스를 뒤로 하고, 나는 빠르게 주위를 스캔했다.
프로 악당은 위기의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법.
평소와 달라진 점은 뭐지? 어디인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사면을 둘러본 나는, 이내 무언가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
꺼져있는 전자시계 였던것이, 불이 켜지고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2 : 58.42]
[2 : 58.41]
[2 : 58.40]
...
시계에서 보이는, 줄어드는 시간.
그래, 모든 비밀은 풀렸다!
"어... 어라?"
여전히 어버버 거리고 있는 스타더스.
아니, 저렇게 당황하면 어떡해?
자고로 유능한 히어로라면 이런 상황에선 나처럼 빠르고 냉철하고 객관적이게 사태를 관조해야 하는법.
내가 아는 스타더스는 이러지 않았다.
이렇게 얼타지 않았다고!
....그래, 생각해보니까 그 스타더스는, 원작 후반부에 구르고 굴러 노련해진 스타더스였지.
지금의 스타더스는 아직 덜 굴러서 그런지,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읍. 근데 아무리 그래도 저러면 안되지.
"스타더스!"
"으, 응?"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가르켰다.
"저기 보이십니까?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걸 보니, 아마 저 시간이 다 지나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진정하시죠."
"어? 아, 아."
그제서야 위를 올려다 본 스타더스.
시계를 바라본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중얼거렸다.
"3시간...?"
"네, 3시간만 있으면 됩니다. 뭐 그렇게 길지도 않으니, 기다리죠. 읏차."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 앉아버렸다.
여기서 한 세시간 갇혀있어야 하는데, 서있을 수는 없지.
다리 아프다고.
그렇게 앉은 다음에, 스타더스에게도 앉아서 기다리자고 하는 그때.
쾅-.
스타더스가 다시 벽을 쳤다.
"아니, 뭐하세요?"
"저기서 3시간 뒤에 문이 열리는건지 아니면 폭탄이 터지는건지 뭔 줄 알고 기다려?"
그렇게 말을 하며 계속 문쪽을 주먹으로 쿵쿵 치는 그녀. 그러다가 여기 무너지겠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가 애써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먼저 포기해버렸다.
"쯧..."
자신의 손을 문지르는 그녀.
뭐야?
자세히 보니까 주먹쪽에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아니, 뭐하는거야 대체?
"아니, 그렇게 미련하게 치시면 어떡합니까, 안그래도 능력도 억제되어있는 상태인데."
"....."
"에휴, 자. 이걸로 지혈이라도 하세요."
나는 보따리에 있던 붕대를 하나 꺼내서 그녀에게 던져줬다.
서은이랑 수빈씨가 다치면 쓰라고 챙겨준 건데, 이게 이렇게 쓰이네.
"...."
나한테서 붕대를 건내받은 스타더스는, 살짝 고민하더니 이내 조금 잘라서 자신의 팔에 감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게 고맙다는거 아니에요?"
"......"
정곡을 찔린 듯 살짝 움찔하는 그녀.
아니, 고맙다는 인사 받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네.
...원래 그녀가 빌런한테 저렇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솔직히 붕대를 던져줬을 때도 다시 내 얼굴에 날아오는걸 각오했었다. 순순히 받아서 오히려 내가 살짝 의아했을 정도.
뭐지? 지금 이맘때쯤은 성격이 좀 유한가?
그건 아닐텐데. 그럼 나한테만 특별취급 하는건가?
왜지? 딱히 그럴 이유는 없는데.
라고 생각할 무렵 붕대가 내 얼굴로 날아왔다.
그럼 그렇지.
"악! 아니, 기껏 생각해서 줬더니. 제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그냥 굴려주면 어디 덧나나요?"
"...."
내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째려보자, 그녀는 살짝 옆쪽으로 눈을 피했다. 자기도 좀 미안하긴 한가보지?
...근데 사실 빌런한테 미안할건 없긴 해.
"쩝, 앉아서 기다리기나 합시다. 그리고 딱 보니까 3시간 후에 문 열린다는 뜻 같은데요. 뭐 '직감'적으로 느껴지는거 없으십니까?"
"...직감."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직감. 너 초감각말이야. 거의 미래예지에 가까운.
사실 나도 저 3시간뒤에 뭔 일 일어날지 모르겠으니까 너가 좀 알아봐.
그렇게 잠시 얼굴을 찡그리던 그녀는, 이내 얼굴을 풀었다.
아마 직감적으로 3시간후에 열린다고 느낀 모양.
휴, 다행이다. 뭐, 아직 스타더스의 초감각이 완전히 발달하지는 않았겠지만... 이정도는 맞을거다.
그렇게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가만히.
움직이지도 않고.
좁은 방안에서, 단 둘이.
서로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적막하게.
"...."
잠깐.
이건 지옥인데?
***
그렇게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한시간이 지났다.
들리는건, 서로의 자그마한 숨소리뿐.
물론 나라고 가만히만 있던건 아니다.
보따리에서 과자를 꺼내 먹었다. 맛있더라.
스타더스는 내가 보따리에 손을 넣을 때 순간 움찔하더니, 그냥 과자를 꺼내니까 살짝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왜. 내가 안에 있는 총이라도 꺼낼까봐 긴장한걸까?
...적어도 내가 그럴일은 없으니, 안심해라.
아닌가? 오히려 안심하면 히어로로써의 위기감이 없는건가?
"과자 좀 드실래요?"
"...말도 안되는 소리."
배고파 보여서 물은건데, 싫음 말고.
그렇게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 계속 조용히, 가만히 있었다. 어색해 죽겠네.
그리고 어색한 것과는 별개로, 1시간이 흐른후부터 느낀건데... 여기 산소가 좀 부족하다. 호흡이 가빠진다고. 이게 밀실의 비애인가?
산소가 부족한건 아주 큰일이다. 산소가 부족하면 뇌가 안돌아가서 이성적인 판단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고. 즉,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물론, 나는 그랬다가는 큰일난다. 내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몇개인데.
그래서 차라리 입을 꾹 닫고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가지고 몸을 비틀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것도 익숙해 졌다. 보따리 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보고 싶은 충동이 잠시 들기도 했으나, 그랬다가는 내 신원이 노출될 수도 있었기에 참았다. 여기서는 순간이동도 못써서 도망칠 수도 없다고.
그렇게 이제는 그녀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도 익숙해 질 무렵, 나는 한시간만 더 이렇게 있으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아니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좁은 방에 둘이 갇혀있으니까 숨이 잘 쉬어지지도 않는 것 같다.한은그룹 이새끼들은 밀실에 산소발생기도 안달아놨어?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놈들 덕에 머리가 점점 멍해지고 있다. 마치 약에 취한거처럼. 아니, 정확히는 술 마신것 같다는걸까? 여러분, 산소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야, 이게 갇혀있는 3시간이라 다행이지 더 갔으면 진짜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할 무렵.
불현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마포대교."
"네?"
멍 때리며 천장을 보고 있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다시 고개를 내려봤다.
무릎을 모은 채 손으로 다리를 감싼 자세로 있던 그녀는, 나를 보지도 않고 아래를 내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마포대교에서, 자동차 떨어지던거 너가 멈췄어?"
살짝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묻는 그녀.
아니, 여기서 갑자기 이걸 묻는다고?
그녀를 자세히 보니, 이미 눈이 살짝 감긴 채였다.
뭐야, 자는거야? 그건 아닌거 같은데?
아, 그녀도 지금 좀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런건가.
....신체 능력자인데 산소 좀 부족하다고 저렇게 헤롱거리나?
아, 쟤도 능력 지금 억제된 상태지?
그렇게 내가 안돌아가는 머리로 북치고 장구치고 있을 때, 그녀는 나에게 한번 더 채근했다.
"..자동차, 너가 멈췄냐고."
자동차? 내가 자동차를 왜멈춰. 자동차가 멈추면 수동차인가?
아, 마포대교 얘기하는건가. 그 떨어지게 생긴거 내가 살짝 멈춘거?
...그걸 기어코 봤다는 말이야?
나는 그런거 멈춘 적 없다. 아무튼 없다고.
"저는 아무것도 안멈췄습니다. 전 늘 앞으로 달려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뭔 개소리야..."
그렇게 웅얼거리며 답한 그녀는, 다시 또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비행기는, 나보고 왜 구하라고 했어?"
"그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빌런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저에 맞서는 적, 히어로가 필요하다고. 빌런이 그냥 테러만 한다고 해서 단순히 빌런이 아닙니다. 그에게 막아서는 적수가 있을때, 비로소 빌런은 빌런다워지는 법이죠. 그래서 그랬습니다."
"....."
내 대답에 다시 입을 가둔 그녀.
음, 사실 방금 그건 히어로는 빌런이 만든다는 말을 거꾸로 했을 뿐이다. 몰라, 머리도 어지러운데 대충 답해.
이제 슬슬 머리도 아픈데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무렵.
그녀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럼, 마포대교 무너트린건... 이번에 그 괴물이 올라오는 사태가 일어날걸 미리 알고서 무너트린거야?"
아니, 기어코 그녀마저 나에게 이걸 묻는단 말인가.
거의 사람들 모두에게 한번씩 다 들어본 것같은 기분이다. 거참.
아무튼 늘 그랬듯, 그저 우연이라고 답하기 위해 그녀를 볼려는 찰나.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고개를 다시 숙인 그녀.
그러나 나는, 방금 똑똑히 보았다.
마치 내 모든 비밀을 알아내겠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을.
"......"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 지금까지 웅얼거리며 어눌하게 말한 건 다 연기였다는 말인가? 나를 방심시키기 위한?
신하루, 실로 무서운 여자다. 마치 독사와도 같군.
정신이 좀 다시금 들자, 나는 침을 삼켰다.
그래. 이제 생각해보니까 뭔가 이상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왜 나랑 동맹맺는걸 선뜻 받아들였을까?
이제봤더니 나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아내기 위해, 정보를 빼갈려고 그런거 아니야?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스타더스, 신하루! 대체 어디까지 큰그림을 그린거냐...
잠깐, 지금까지 그녀가 질문한게 뭐였지?
자동차 떨어트린거 멈춘게 나냐는 것과.
비행기는 왜 구하라고 했냐고 물은 것과.
마포대교는 내가 검은 괴수 사태가 일어날 걸 알고 부순거냐고 물은 것...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얼굴이 굳었다.
그녀가 나한테 던진 질문들을 종합해보면.
나를 빌런이 맞는지, 의심하고 있는거 아닌가?
아닐수도 있다. 그냥 내 과대망상이고 착각일 수도 있다.
직감적으로는 그런거 같기는 하지만, 내가 스타더스 그녀처럼 직감적으로 진실만을 맞추는 초감각을 지닌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위기다.
애초에 늘 가짜 악당, 악당을 흉내내는 사람으로써 빌런의 근본력에 늘 자격지심을 갖고 있던 나인데.
정체가 들켜서는 안된다.
사실 테러같은것도 전부 그녀를 위함이고, 나는 이 세계를 그저 구해내고 싶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그래, 지금이 오히려 기회다.
이렇게 둘이 있을때, 완전히 오해를 덜어버리면 돼.
그녀가 가진 나에대한 의심을 버리게 하고, 나를 완전무결한 사악한 악당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럴려면, 오히려 정공법으로 간다.
나는, 손으로 가면이 안 가려진 얼굴쪽을 가리며 킥킥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
내가 갑작스럽게 웃자, 의아해하는 그녀.
스타더스야, 스타더스야.
진정한 악당은, 상대의 정신을 뒤흔들어 상황을 자신의 손아귀에 올리는 법이란다.
그런의미로, 막나가는 것도 하나의 전술이 될 수 있지.
자, 그럼 판을 한번 뒤흔들어보자.
"당신에게만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그래요. 맞습니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재앙이 벌어질 걸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서 일부러, 그 다리를 부쉈습니다."
내 갑작스러운 인정에, 당황하는 그녀.
그래. 내가 이렇게 선선히 수긍할줄은 몰랐겠지.
그럼 한번 계속, 아가리를 털어보자.
"그래서 뭐."
"어쩌란 말입니까?"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