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4 지하라는 이름의 미궁
"스읍, 네. 저는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거기 벽에 붙은 검은색 무언가가 제가 어둠을 쓰는걸 막더라고요. 그림자이동 하기도 힘들어보입니다."
"알겠네. 김선우 박사라 했나? 그 새끼는 대체 뭘 만든건지..."
"협회장님, 저도 가면 안돼요? 우리 하루 혼자 보내기는 너무 위험한데!"
"아이시클. 말했지 않나. 거긴 너무 위험해. 자네가 무력이 있어도, 기습에는 취약하지 않나? 자기 방어가 약한 상태로 들어가는건 도박일세."
협회 최고층에 있는 회의실.
협회장과 A급 히어로 3명, 그리고 최고위계의 간부들만 모인 그 회의실에서는, 한창 열띤 토론이 일어나고 있었다.
"히잉... 아니 그럼! 하루 혼자 거기 가는건 말이 되고요?"
"하아... 나도 계속 반대했네. 근데 스타더스가 자꾸 고집을 피운거라네. 아이시클 자네가 말려보던가."
"하루야! 거길 갑자기 왜 들어가? 이미 안전하게 봉쇄도 됐는데 굳이 거기 급하게 들어갈 필요 없잖아?"
자신을 보며 칭얼거리는 설아의 모습에, 하루는 잠시 말을 골랐다.
자신이 왜 거기를 들어가는가.
이유는 많다.
"설아야. 거기 안전장치가 언제 풀려 괴물들이 빠져나갈지 모르잖아. 미리 처리해 두는게 맞지. 그리고 한은그룹 걔네들이 또 뭐 더 숨기는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료 확보도 해보고."
"힝..."
차마 반박을 못하고 투덜거리는 설아를 보며, 하루는 뒷말은 삼켰다.
사실 자신도 굳이 이렇게까지 급하게 가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예전보다 강해진 자신의 힘은, 거기에 가서 뭔 일이 벌어져도 몸은 성히 챙겨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을 줬고.
그리고.
그녀는 살짝 초조하기도 했다.
사실 신하루 그녀는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서울에 있는 빌런들은 거의 다, 자신이 처리할 수 있고 테러도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이.
실제로 에고스틱 그놈을 제외한 모든 빌런은 자신이 검거해서 감옥에 쳐박아버리기도 했고... 에고스틱이 일으킨 테러도, 어쨌든 막는데는 성공하지 않았었나.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이번에 일어난 재앙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에 에고스틱이 없었으면 대체 희생자가 몇만명이 나왔을지 끔찍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한낱 빌런보다... 무용했다는 것을.
히어로인 자신도 못한 일을, 빌런이 사실상 대신 해결해준 것.
생각해보면 이번만이 아니다.
저번에 엘리게이터맨이라는 빌런이 일으킨 테러도, 에고스틱이 없었으면 더 큰 피해가 있을 뻔했다.
'이래서는 안돼.'
실제로 그녀는 약간 초조해 지기도 했다.
빌런보다 못한 히어로라니. 그런건 있을 수 없다.
사후처리라도 똑바로 해야, 히어로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지 않겠나.
"그래도 시간 좀 들여서 있다가 가는게 어때...?"
아이시클이 소심하게 건낸 한마디에, 옆에 있던 섀도우워커가 슬쩍 끼어들었다.
"어차피 내가 거기 들어갔을때 보듯, 아주 깊숙히 들어가면 전파가 안 터져서 시간을 끌어봤자 의미가 없기는 해.. 이왕 들어갈거면 더 늦기 전에 빨리 가는게 맞을거 같은데..."
결국 최후의 반론도 기각당한 아이시클은, 걱정된다는 듯 스타더스를 바라보았고.
스타더스는 아이시클에게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줄 뿐이었다.
그래. 지하.
거기서 한은그룹, 그들이 대체 무슨 짓거리를 했던건지, 그녀는 기필코 밝혀내고 말 것이다...
"자, 그럼 계획이나 세워보자."
그렇게 히어로 협회 최상층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바로 내일 이루어질, 스타더스의 한은그룹 지하 공략에 대해 회의하며.
***
서울 지하 깊은 곳, 에고-베이스의 회의실.
깜빡이는 조명 밑에서, 나는 설명을 마쳤다.
"...그 밑에, 한은그룹 이놈들이 연구하던 꿈의 생명체 베히모스라는게 있어. 그걸 인터셉트 하기 위해 바로 내일! 출발한다."
내 말이 끝나자, 갑자기 조용해지는 회의실.
뭐야. 왜 반응이 없어.
내가 눈만 꿈뻑이고 있자, 그제서야 듣고만 있던 하율이가 입을 열었다.
"저, 오빠.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둘째치고, 일단 혹시 위험한 일인가요?"
위험하냐고?
"어... 좀 위험하긴 할거야. 사실 나도 거기 안에는 잘 모르거든."
실제로 원작에서도 한은그룹 지하를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냥 기괴한 괴물들이 가득하고, 그 안에 베히모스가 있는걸 김선우가 탈취했다 정도?
사실 좀 쫄리기는 한데 뭐, 여차하면 하율이가 힐 해줄테고.
제일 중요한건.
'로켓 펀치...'
나도 블랙 로켓펀치 해보고 싶다고.
언제까지 위력도 쥐꼬리만한 염동력 원툴로 살아갈 셈인가.
인간은 원래 도박을 하고 살아야 하는법!
"...그래서 오빠, 또 위험한 짓을 기어코 하시겠다고요?"
그때.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서은이가 조용히 말했다.
잠깐, 뭔가 회의실 안이 좀 싸늘해진거 같은데?
"아니, 뭐. 죽기야 하겠니? 하하."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쥐고 있던 서은이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 불길한 기분은?
"아니!!!! 오빠는 생각이 있는거예요 없는거예요!!!! 몸을 그렇게 막굴리는게 말이 돼요!!!"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치면서 화를 내는 서은이.
아니, 저런 싸가지 없는!
나는 다급히 도움을 바라는 눈길로 수빈씨를 바라보았으나.
"...다인씨, 저번에도 다쳐서 돌아오시더니, 이번에도 그러신다고요?"
똑같이 서늘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오히려 서은이에게 동조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믿을사람 하나 없다더니!!!
결국 메챠쿠챠 혼났다.
거, 참 사람이 몸 좀 굴릴수도 있지.
안전한 길로만 가서는 큰 수익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남자라면 베팅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게 말했더니 욕을 더 먹고 말았다.
어째서 나한테는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는거지?
어차피 다치면 하율이가 치료해 줄거야. 난 믿고있다.
....치료해 주겠지?
어쨌든 아래에서 카메라를 들고 가 실시간으로 화면 틀어주고, 소통도 계속 꾸준히 하겠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아니, 이 조직의 대장은 나 아니야?
어째서 내가 허락을 받고 있어야 하는거지?
뭔가 뭔가 이상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내일 출격이다.
***
그렇게 다음날 낮.
사람들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을 그때, 나는 한은그룹 건물 붕괴현장에 숨어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 사이에서 보이는, 마치 싱크홀 같은 구멍.
아마 저게 베헤모스가 튀어나온 것이겠지. 참으로 거대하다.
...물론 협회는 그 위에 빠르게 시멘트를 부어서 매워버렸지만. 아니면 거기 안에 있는 괴물들이 다 튀어나올테니 잘한거다.
어쨌든, 거기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한은그룹의 숨겨진 지하실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다.
파인 땅 아래쪽에 있는, 여러겹의 차폐문으로 닫혀있는 곳.
그리고 그 앞에는, 협회의 사람들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엄중히 지키고 있었다.
총과 선글라스를 끼고 앞에서 순찰을 하고 있는 그들. 선글라스에 양복까지 입은 모습이, 마치 맨인블랙을 보는 듯 했다. 근데, 뭐.
저렇게 순찰을 하고 있던 말던.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순간이동 하나면 모든게 해결 아니겠는가? 순간이동이 짜세다. 부작용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여튼간에, 잠시 상황을 살핀 나는 준비가 끝난 뒤 바로 안쪽으로 순간이동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뀌는 공기.
감았던 눈을 뜨자, 분명 밝은 햇볕 아래 서있던 나는, 어느세 퀴퀴한 지하에 있었다.
위쪽에는 전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중.
그렇게 음침한 분위기에, 앞쪽으로 어두운 복도가 쭈욱 늘어져 있는 모습. 아마 저 안쪽에는 괴물들이 우글거릴거다.
음. 어두컴컴한데 괴물들까지 있다라.
"...."
아니, 이런거에 쫄아서는 프로 빌런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스타더스의 아치에너미. 물론 자칭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런거에 겁먹어서는 안 되지.
나는 일단 준비해둔 보따리를 봤다. 총, 폭탄, 카메라, 거기에 간식도 챙겼다. 간식은 중대사항이지.
옷도... 검은색 마술사 모자에 검은 로브, 거기에 검은 망토까지. 완벽한 올블랙 패션. 화룡점정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회색빛 가면까지. 좋다. 퍼펙트.
모든 준비를 끝마친 나는, 카메라를 켜고 방송을 틀었다.
원래 이런거는 또 송출해줘야 제맛이거든.
테러도 아니기에 지상파 전파납치는 안하고 단순히 유튜브 스트리밍만 했을 뿐이었지만.
채팅창은, 갑작스러운 방송에도 불구하고 채팅들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챘다.
[?????]
[뭐임?????]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새로운 방송 우효wwwwww]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이게 서울의 수호자이자 S급 히어로인 애플망고의 방송인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4개월 잠수타던게 어제같은데 실화냐? 진짜 망고스틱은 전설이다...]
[마포대교 ㄹㅇ이번에 이렇게 될줄 알고 부순거임? 해명좀]
[근데 여기 어디냐? 왜이리 어둡지]
[오늘은 또 무슨 미친짓거리를 할려고ㅋㅋㅋㅋ]
가파르게 올라가는 시청자숫자.
그런 그들에게, 나는 두 팔을 벌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의 에고-라이브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한은그룹 새끼들 분명 이거 보고있겠지?
엿 좀 먹어봐라.
협회는...뭐.
어차피 걔네 여기 무섭다고 절대 차폐막도 안열고 버티던 놈들인데, 내가 오히려 가는길에 괴물들도 몇마리 해치워줄테니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
***
"젠장! 스타더스에게 지금 연락 되나?"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습니다! 아마 이미 시간이 꽤 경과한 만큼, 너무 깊숙히 들어가서 더이상 통신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아니, 우라질! 쟤는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들어가고 지랄이야! 에잇, 이제 거기서 만나던 말던. 나는 모르겠네. 화나 죽겠으니까, 팝콘이나 가져오게 비서!"
".....네, 협회장님."
협회장은 비서가 가져온 팝콘이나 우적이며 에고스틱의 방송을 시청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참으로 잘 실천하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