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3 기분 탓
나는 폰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내가 다리 부숴서 사고를 막아낸게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지..?
모두가 내가 모든걸 알고 다리를 부순거라고 확신하는 상황. 참으로 곤란하다.
아니, 전까지만 해도 막 날 억까하더니, 왜 이제는 억빠를 하고 그러는거야?
...사실, 쟤들 추측대로 내가 다 알고서 부순게 맞긴 한데. 어떻게 확신까지 하는지는 미스터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플망고 사건 때문이야. 그때 정체만 제대로 숨겼어도.
내 팬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오지는 않았을거 같은데...
*
[오늘부로 망고스틱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로 망고스틱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망고스틱과 나는 한몸으로 일체가 된다.
망고스틱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세상에 70억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나는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세상에 1억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나 또한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세상에 천 만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세상에 백 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나는 아직도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세상에 한 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나일 것이다.
세상에 단 한 명의 망고단도 없다면, 나는 그제서야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망고스틱, 나의 사랑.
망고스틱, 나의 빛.
망고스틱, 나의 어둠.
망고스틱, 나의 삶.
망고스틱, 나의 기쁨.
망고스틱, 나의 슬픔.
망고스틱, 나의 고통.
망고스틱, 나의 안식.
망고스틱, 나의 영혼.
망고스틱, 나.
=[댓글]=
[어질어질하네요]
[이 글 보고 동네 과일가게 가서 망고 풀매수했다]
[인기글 가자]
[망고를 국회로]
[지지합니다]
[대한민국은 망고가 지키고 있어요]
[이 글만 봐서는 여기가 에고스틱 팬카페인지 망고 먹방하는 사람들 모임인지 구별이 안가네ㅋㅋㅋ]
[이거 망고 바이럴이네ㄷㄷ 델몬트 네 이놈들!!]
[망하하하하하]
*
서은이가 보여준 팬카페 글은, 참 어질어질했다.
아무리 나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인 팬카페에 올라온 글이라고 해도 좀....심하지 않나?
무슨 사이비 종교에 신이 된듯한 기분.
그래, 뭐. 내 지지자들이야 힘든 시기를 보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더 악질은 서은이었다.
"망고스틱, 나의 빛. 망고스틱, 나의 영혼..."
"악! 그만해라!"
"왜요, 재밌는데. 망고스틱, '나'!"
"제발... 그걸 굳이 육성으로 말하지는 말아줘..."
한가로운 낮.
거실에서 한적하게 뒹굴거리고 있던 나는, 갑자기 정신공격을 당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 팬카페는 왜 들어가보고 그러는거야?
"수빈씨, 살려주세요! 이 콩알만한게 절 계속 괴롭히네요."
"뭐요? 콩알?"
"뭐가, 콩알 맞잖아 악!"
"염동력 쓰지마요. 쓰기만해봐."
"콩알을 콩알이라 부르지 못하고... 알았어 알았어!"
"이리로 안와요?"
서은이가 휘두르는 방석을 피해 도망친 나는, 웃으면서 메론을 깎고있던 수빈씨가 있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애가 난폭해졌어. 아무래도 잘못 키웠나봐...
휴우,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하하, 그만 놀고 와서 과일이나 드세요. 서은아, 과일먹을래?"
"네 언니."
나한테는 쌍심지를 키더니만, 수빈씨에게는 사근사근한 서은이였다.어째서 나한테는...!!
"이제 슬슬 애들이 올 시간인데..."
수빈씨가 중얼거리던 떄, 딱 맞춰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아이들.
"다녀왔습니다~."
교복을 입은 채, 학교에서 돌아온 남매.
그런 그들을 보며 서은이는 손을 흥들어줬다.
"언니, 차윤이. 왔어요?"
"애들아, 손씻고 와서 과일 먹으렴."
"네~."
손을 씻으러 종종 가는 아이들.
나는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다, 옆에서 메론을 우물거리고 있는 서은이에게 조심히 물었다.
"서은아, 너는 진짜 학교 갈 생각 없어?"
"네에?"
메론을 먹다말고 무슨 소리냐는 듯 옆을 흘겨보는 서은이.
입안에 든 메론을 빠르게 오물거리고 꿀꺽 삼키더니, 서은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또 그 소리에요? 저는 딱히 학교 갈 생각 없다니까요. 어차피 거기서 가르치는거 다 아는데 거길 왜가요, 시간만 아깝게."
"아니 그래도, 학교를 꼭 공부하러만 가는건 아니잖아. 가서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이어지는 내말에, 서은이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더니 대꾸했다.
"됐어요. 제가 가면 오빠는 누가 도와주겠어요? 해킹도, 자금 운용도, 구체적인 테러 실행방안도 다 제가 짜는데."
음, 맞긴해.
그래도 나 때문에 학교도 못가고 나랑 같이 집안에만 콕 박혀있는게 미안해서 그러지.
그런 내 기색을 읽은걸까.
서은이는 입을 오물거리더니, 살짝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저는 다른 사람은 필요없어요. 오빠랑 수빈 언니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얼굴이 붉히며 옆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서은이.
아니.
너무... 너무 귀엽잖아!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에구, 우리 서은 어린이. 오빠랑 언니만 있으면 충분해요?"
"이씨. 조용히해요! 그리고 쓰다듬지 마요."
얼굴은 붉힌 채 말은 그렇게 하면서, 고개는 은근슬쩍 내가 쓰다듬기 편한 방향으로 돌리는 서은이였다.
아니, 너가 고양이니?
이런 애가 이제 고등학생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서은아. 역시 너는 고딩보다 중딩이 어올려.
그렇게 서은이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뭐. 어차피 내 계획은 이 큰집에 사람을 꽉 채우는거니까, 앞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충분할것이다.
...근데 앞으로 올 사람들이 다 유사 빌런들인데, 이거 괜찮을려나?
생각해보니 서은이도 원작에서는 빌런이었으니까? 괜찮겠지?
그래도 서은이는 이번에 한은그룹이 쫄딱 망한거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다행이다. 수빈씨의 표정은 약간 미묘했지만...뭐, 좋은게 좋은거지. 이제 김선우를 필두로 한 잠수탄 임원진들만 처리하면 될거다. 근데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한은그룹의 보물이나 털어먹어야지.
한은그룹의 베헤모스 프로젝트.
인간을 초월할 수 있는 생명체, 한마디로 생체병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예전에 인간을 후천적으로 초상 능력자로 만들겠다며 생체실험으로 인간들을 갈아넣으며 했던 프로젝트를 대차게 말아먹고, 그들이 새로 추진한 계획.
인간에게 초능력을 주기 보다는, 일단 초능력을 가진 생명체들로 군대를 만들겠다는 것.
한마디로 괴물 군대를 만들려고 했다는 소리다. 한국정복이라도 하고 싶었나보다.
어쨌든 그렇게 이것 저것 다양한 괴물들을 만들었다.
막 몸이 칼같은 괴물, 순간이동하는 괴물, 불꽃을 쏘는 괴물, 눈알이 10개 등인 괴물들....
얘네들의 문제는, 어...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만들다보니 생긴게 다 끔찍하게 생겼다. 고어같은 느낌? 하여튼 발랄한 느낌이 아니라 지옥에서 올라온, 약간 만들어지다 만 실험체느낌이다. 죽여줘...라고 말할 것만 같은 느낌?
어쨌든 그러다가 걔네들이 딱 만든게 베히모스였다. 무려 한국 정복의 제일 큰 문제인 섀도우 워커의 어둠을 막을 수 있으며, 내구성이 심각한 다른 실험체들과 다르게 핵폭탄도 견딜 수 있는 기적의 물질로 몸이 구성된 생명체.
바로 유레카를 외친 놈들은 그것을 복사해 마구마구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그만했던 원본과 달리, 증식으로 키운 그 검은 왕꿈틀이를 그들은 베헤모스라고 이름붙였다. 히나 헤나 뭔 차이인지...
어쨌든 그렇게 한국정복의 야망을 품고 열심히 만들었던 그것의 문제는, 다 좋은데 물에 약하다는거다. 그리고 이건 진짜 심각한 문제였다, 3면이 바다로 둘러쌓여있고 장마도 긴 나라에서 물이 약점이라니?
그래서 그들은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참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다. 더, 더! 조그마한 물 정도로는 흠집도 안나게 크기를 무식하게 키우고, 이것 저것 하던중.
얼래. 이놈이 자의식이 확고해졌네?
그렇게 그놈은 탈출했다. 다 박살내고.
다행히 나로 인해 강에 꼴아박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이거다.
한은그룹 지하는 지금 마굴이 되어있다. 베헤모스 그 미친 왕꿈틀이가 다 부수면서 올라와, 다른 괴물들을 막고있던 장치가 거의 망가졌거든.
그래서 온갖 괴물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다행히 최후의 보안시스템만은 어떻게 안뚫려서 차폐막으로 다 지하에 가까스로 가둬두기는 하고 있지만.
그리고 나는, 그 미궁에 들어가 볼 생각이다.
"손 다 씼었어? 와서 좀 먹을래?."
"네 언니."
"네 누나!"
"읏."
내가 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그새 하율이랑 차은이가 손을 다 씻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화들짝 놀라 내 손을 치우는 서은이는 덤. 얘가 은근 부끄러움도 잘 타.
"잘먹겠습니다~"
밝게 웃으며 메론을 포크로 집어 자기 동생에게 먼저 건네주는 하율이를 보며, 나는 다시 상념에 빠졌다.
괴물들이 가득한 한은그룹 지하.
그 미궁 제일 깊숙한 곳에는, 보물이 숨겨져있다.
바로 거대 왕꿈틀이의 원형, 베히모스.
작고 검은 촉수들로 이루어진 그 조그만한 놈은, 아직 거기에 갇혀있다.
음? 걔 그냥 단순히 검은재앙의 미니 버전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
얘는 자의식이 없이 그냥 인간에 말에 따르게 만들어져서, 말이 촉수지 그냥 검은색 나노 슈트같은 느낌이다.
입고 착용하는 것처럼, 싸울때 오른쪽에 결집시켜서 오른손을 강화하기도 하고, 그걸로 검은 날개를 만들어서 날아오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자유자제로 움직일 수 있는, 촉수로 이루어진 입자-슈트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원작에서는 몇달 뒤에 몰래 숨어든 김선우 박사가 그걸 다시 탈취해, 스타더스랑 나중에 싸우게 되는데.
싸움 도중 그가손을 쫙 뻗자 몸에 붙은 검은 물질들이 주먹의 모양으로 뻗어져 나가던 모습은, 마치 사나이의 로망 로켓 펀치.
...물론 그것보다는 '내 오른손에 흑염룡이 있다...'할때 오른손이랑 더 비슷하긴 했는데, 어쨌든.
그래. 나는 그걸 갖고 싶었다.
안그래도 염동력이랑 순간이동 가지고는 몸 하나 지키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걸 갖게 되면 훨 낫지 않을까? 적어도 총맞고 비명횡사할 일은 줄어들거다.
물론 이건 단순한 소망일 뿐, 너무 위험해서 시도할 생각은 없었는데. 저 미궁에 들어가는건 조금...
그러나 최근에 하율이를 영입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다쳐도... 죽지만 않으면 쟤가 치유해 주면 되는거 아니야? 그치?
그러니까 음, 몸을 막굴려도 되는거 아닐까?
그렇게 결심한 것이다.
그래, 가자.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지하미궁에 들어가, 검은 슈트를 탈취해 오는거다.
나도 파워업좀 해보자고!
원작 대로라면 히어로들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협회가 반대해서 거기로 내려가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거기서 혼자 열심히 탐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타더스라도 만나봐. 진짜 갑분싸 되는거다.
내 계획은 완벽해!
시기는 빠를수록 좋으니, 당장 내일 간다.
막 일이 꼬이고, 그렇게 되는 일은 없겠지?
예를 들어 원작과 달리 스타더스가 그 지하로 내려가는 바람에, 거기서 딱 마주친다던가.
하하, 나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그런 일이 벌어질리가 없잖아?
세상이 나를 그렇게 억까할리가.
***
"알겠네. 스타더스, 자네의 한은그룹 지하 탐사 작전을 승인하지. 언제 출발할 생각인가??"
"바로 내일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
"오빠, 왜 몸을 떨어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식탁에서 애들과 메론을 먹던 나는,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몸을 떨었다.
뭐지, 근데 뭔가 쎄한데...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