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60화 (60/328)

EP.60 여론

다음날 아침.

"진짜 이제는 괜찮은거에요?"

"어어. 아, 컨디션이 다시 좋아졌다니까?"

"이상하네... 하루만에 좋아질리가 없는데... 병원가기 싫어서 억지로 나은척 하는거 아니에요?"

거실에서 나는, 자고 일어났더니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말해줬다.

그러나 말해줘도 다들 믿지를 않기에, 막 온 방안을 순간이동으로 슉 슉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니 이게 아침부터 뭐하는건지...

"뭐야... 진짜 괜찮아졌나보네요?"

"헉, 헉. 그렇다니까. 속고만 살았니?"

"이상하네... 어떻게 그게 하루만에 나아지죠?"

어제까지만 해도 피를 토하면서 죽어가던 내가 갑자기 쌩쌩해지자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내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말에 유야무야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저쪽에서 어쨌든 다행이라며 좋아하는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하율이만, 조용히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기분이 좀 나아졌나보다. 솔직히 어제는 새벽감성에 사로잡힌 괴물이 되가지구 좀 무서웠어... 그렇게 죄책감 느끼면서 자책하니까 좀 미안해졌었다고.

하긴, 다 큰 어른처럼 보여도 얘도 아직 고2밖에 안되니까. 아 이제 다음 달이면 해가 바뀌니까 고3인가?

생각해보니 이제 서은이가 지금 중3이니 다음달이면 고등학생이네. 하는건 아직도 중학생같은데 말이지. 씁.

어쨌든 날도 밝았으니, 나는 저번 테러의 결과나 보고받기로 했다.

자료정리는 수빈씨가 다 해주셨다. 아니, 요즘 애만 셋 돌보느랴 엄청 바빠보이던데, 대체 언제한거지?

결론적으로 내 이번 테러가 초래한 결과는 이렇다.

마포대교의 완전한 붕괴.

아주 그냥 기둥부터 싸그리 다 터트리는 바람에, 그냥 마치 그곳에 다리가 없던것처럼 깔끔하게 없어졌다고 한다. 잔해들을 다 치우고 다리를 새로 만들려면 몇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하는 상황.

좋아. 완벽하다.

이제 그 미친 검은 촉수괴물이 만화에서처럼 닥돌해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신나게 앞으로 앞으로 진격하다가 그대로 한강물에 꼴아박을 놈을 생각하니, 벌써 즐거워졌다. 아, 그날은 꼭 팝콘 꺼내고 생방송으로 지켜봐야지.

피폐의 시작? 그런건 없다! 앞으로 내 인생을 피폐물로 만들 요소는 미리미리 제거할거다. 스타더스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어쨌든 마포대교는 한 3년 뒤까지는 다리고 자시고 기둥 하나 복구시키는 것도 힘들다고 하니까,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사건이 내 기억으로는 내년 3월, 그리니까 약 4개월 후에 일어나니. 혹시 하율이 영입때 처럼 내가 시간을 잘못 기억하거나 사건이 미리 일어날 수도 있으니 넉넉잡아서 부숴놨다. 이제 두려울건 없다!

그렇게 내 목표인 다리 박살내기는 완벽하게 완료했고.

예상치못한 소식도 듣게 되었다.

"뭐? 내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네 오빠. 이제는 여론이 사실상 거의 다 오빠를 욕하는 분위기에요."

"아니... 뭐, 애초에 무시무시한 빌런이 되는게 내 목표였으니까 욕은 먹을 수 있다고 쳐도. 갑자기? 배 박살내려고 하고 기차에 선로 묶고 비행기를 떨어트려도 막 빨아주더니, 이제와서?"

사람 50명을 내 마음대로 몰살 시킬려고 할때는 가만히 있더니, 이번에는 심지어 대중 참여형 투표였는데 왜지?

"이게 어떻게 된거냐면요..."

서은이가 들려준 얘기는 참 황당했다.

테러를 하고 있을때는 다들 '히히 십만원 개꿀' 이러다가, 내가 700만명이나 십만원을 타갔다는 결론을 내자, 사람들이 꽤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들 그 짧은 시간안에 오백만명 절대 못넘긴다, 기껏해야 백만명 넘길까 말까다 하던 사람들이 전부 입을 꾹 닫고 모르쇠를 시전.

결과적으로 내 말대로 인간이 이기적이 다는게 증명된 셈이니까.

근데, 여기서 문제가 좀 이상해졌다.

외국에서 이 사건을 자기네들 나라 뉴스에 보도하기 시작한 것.

동방의 작은 반도에 있는 나라 한국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을 다루며, '한국인 700만명이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테러를 일으키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라고 보도하며,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실종이라고 참담하다는 뉘앙스의 뉴스를 풍겼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이 좀 망신거리가 됐다는 말이다. 이에 외국 네티즌들도 저 저 이기적인 것들을 보라며 쯧쯧 거렸고.

거기에 인지부조화가 온 국뽕티비들. 외국 커뮤니티에서 한국 좋아 이러는걸 퍼와서 영상을 제작해야 하는데, 무슨 한국 욕밖에 없으니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에 이 모든 일을 초래한 에고스틱에 대한 분노로 국뽕티비들이 자신의 이름값을 못하고 국뽕대사 일제히 에고스틱을 씹어대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

대충 결론은 외국인들의 이런 반응은 다 에고스틱이라는 천인공노한 패륜적인 놈 때문이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의 농간에 놀아난 희생양이라는거다.

이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는 영상들은, 외국 뉴스를 보며 마음을 아파하던 장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고...

이걸 기자들이 다시 퍼와서 기사를 양산, 결론적으로 쓰레기같이 인간의 마음을 농락하는 에고스틱 때문에 자기들이 피해를 받았다는게 결론이다.

사실 자기들이 돈을 안받았으면 되는 일을, 괜히 전부 에고스틱의 잘못으로 돌리는건 그야말로 적반하장.

그 결과 나름 호감이던 에고스틱은 갑작스럽게 역적이 되어버린것.

"어...."

거기까지 들은 나는 좀 황당했다.

그래, 내가 빌런이 된 이후로 나를 좋아하는 여론에 당황했던건 사실이다.

그래서 제대로된 트루 빌런이 되기 위해 욕좀 먹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게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니까 좀 웃기긴 하다.

"음, 뭐. 내가 계획하고 유도한 테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결과적으로 나 때문이 맞기는 한가...?"

"그게 왜 오빠때문이에요! 자기들이 700만명이나 했으면서 이제와서 오빠 탓하는건 말이 안되죠. 오빠가 유도를 했어요 뭘 했어요."

"맞아요! 형은 잘못 없어요!"

잠시 물을 마시고 나오던 하율이의 동생 차윤이도 옆을 지나가면서 나를 두둔해줬다. 하하...

"쩝... 근데 그럼 이제 망고단도 없나? 망고단이었던 사람들도 돌아선건가."

"아 망고단이요? 아니요. 걔네는 오히려 단결했던데요."

"단결했다고?"

이건 또 뭔얘기야?

"사람들이 오빠만 욕했겠어요? 당연히 오빠 지지하던 사람들도 욕했죠. 그러니까 오히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단결하던데요. 봐봐요."

그래?

나는 휴대폰을 켜서 에고스틱 공식 팬카페에 들어가봤다.

인기글로 들어가 글목록을 살펴보니, 어째 활활 불타고 있는 게시글 제목들.

*

[대체 왜 돈은 자기들이 받고 우리 망고 욕함?]

[망고한테서 10만원 받고서는 입싹닫고 욕하는거 보소ㅋㅋ]

[아 자기들이 이기적인걸 인정할것이지 왜 망고한테 ㅈㄹ?]

[학교에서 우리 망고오빠 욕하는 애들 참교육 해주고 왔다(인증있음)]

[에고스틱으로 물귀신하는 사람들 역겨우면 개추ㅋㅋㅋㅋㅋㅋ]

[실시간 우리 학교 에타... 이새끼 뭐냐?]

*

"음...."

나는 인기글 목록을 보고 침음을 흘렸다.

윗부분만 슬쩍 봐도 그냥 개판이 났네.

"하. 물론 오빠가 잘했다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오빠 잘못만 있는마냥 몰아가는게 어이가 없다니까요."

소파에 앉아 내 뒤에서 같이 폰을 바라보던 서은이는, 이내 벌러덩 누워버렸다.

"오빠. 이번에 다리 부순게 그 다리 앞에 있는 한은그룹 애들이 실험하다가 괴물같은게 나올거라고 해서 그런거죠? 만약 괴물이 나온다면 무조건 그 다리 건너니까?"

"어? 어, 그렇지."

"하. 진짜 오빠 말대로 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서은이가 씨익,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진짜로 오빠 때문에 괴물을 막게 되면, 사람들이 그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어라?

그러게.

무슨 내 욕이 가득한걸 보고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 무슨 고층빌딩같은 괴물이 한강에 꼴아박게 되면 전국민이 보게 될거다. 그걸 숨길 수 있을리도 없으니.

뭐, 그때 되면 사람들 반응이 웃기긴 하겠네. 아니지, 오히려 내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줄려나? '우연이었다'라고 주장할 내 말을 지지해줄거 같은데. 아니면 자기들만 바보되니까.

뭐, 그건 그때 알게 될 이야기.

나는 그냥 뉴스나 보면서 놀았다. 당분간 검은괴물꼴박 사건전까지는 집에서 계획이나 짜며 놀아야지.

그렇게 인터넷 뉴스를 보던 그때, 내 눈에 확 띈 뉴스기사가 보였다.

[한은그룹 기술고문 김선우 가석방 판결 후 출소.]

"오."

거기서 나는 육성으로 외쳤다.

드디어 원작대로 저놈이 깜방에서 나왔구나.

이 모든 사태에 시발점이 된 놈이자.

한은그룹의 멸망에 제 1책임자.

그리고 내가 다리를 박살내게 만든 이유, '검은괴물'프로젝트를 진행한 놈.

"저 놈이 나왔으니, 이제 시간문제겠구만."

큰거 오겠다.

***

서울. 한강 아래.

지하 깊은 연구실 안에,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김선우 박사님. 복귀를 환영합니다.""

"어. 됐고. 안내해."

"옙!"

모두를 고개 숙이게 만든 사람은, 안경을 쓰고 퀭한 얼굴에 머리가 얇아 보이는, 연구복을 입은 남자.

한은그룹 기술고문이자.

비밀리에 진행되는 프로젝트, '탈 인간'의 최종 감독관이자 책임자.

김선우.

"일단 다른 놈들은 나중에 보고하고, '그것'은 얼마나 완성되었지?"

"거의 다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지성도 슬슬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좋아. 어디보자고."

태블릿을 두들기며 나아가는 그를, 다른 연구원들이 안내했다.

이윽고 어두운 복도를 계속하여 지나고 몇십개의 철문을 통과하자.

나온것은 지하에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강당과도 같은 뻥 뚫린 곳.

수많은 연구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그곳에, 육안으로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수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공터의 한쪽 벽면에 있는 것은 벽이 아닌 유리. 연구원들이 있는 곳을 제외한 이 넓은 곳이 전부 하나의 커다란 수조였다.

물 대신 연녹색의 무언가 화학용품으로 가득 차있는 수조.

김선우 박사는, 조용히 앞으로 걸어가 자신 키의 몇십배는 되는 수조 유리벽에 손을 대었다.

"현재 베히모스 베타의 상태는 굉장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련한 눈빛으로 수조 안을 바라보는 그.

녹색의 수조 안에는, 마치 커다란 집 크기의 검은색 촉수 덩어리가 몸을 말고 꿈들거리고 있었다.

"...곧, 너를 완성시켜주마. 베히모스."

박사는 불타오르는 눈으로 수조 안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은, 순수히 광기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

"응~ 베히모스 한강 꼴박 순삭 예정이죠? 5년 연구 아무 소용도 없어지고 회사도 망할 예정이죠?"

"오빠. 대체 어디서 이상한 말투를 배우다가 쓰는거에요? 그거 인터넷 방송 용어죠!"

혼자 김선우 출소 기사 보고 신나서 중얼거리다가 서은이한테 정상적인 한글 좀 쓰라며 혼났다.

중학생이 어른보고 가벼워보이는 신조어 쓰지 말고 진중한 말좀 하라고 혼내는 상황.

...이게 맞나? 어른이 중학생보고 제대로 된 말 좀 하라고 혼내는 경우는 봤어도... 그 반대는 대체...

아니 서은아, 너한테도 좋은 얘기라고.

물론 그런 나의 항변은 무시되었다.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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