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8 상담
"우리 하루가 애플망고 음모론을 믿었다니... 헉!"
입을 틀어막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친구, 이설아.
이에 신하루가 불퉁한 표정으로 그녀를 째려보자, 그제서야 베시시 웃으며 손을 내리는 그녀였다.
"헤헤, 장난이야 장난. 화 풀어."
"나 진지해."
"아이구, 우리 하루 어린이 삐졌어요? 어떡해~"
생글생글 웃으며 계속 놀리던 설아는, 헛기침을 하다니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그래. 뭐, 일단 듣기에는 확실히 이상하기에는 하네. 테러는 하지만, 사람들이 죽는건 원하지 않는 빌런이라..."
잠시 생각에 빠진 설아는, 자신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짝 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냥 뭐 그럴수도 있는거 아니야? 약간 그 뭐야, 엔터테이너 같은거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걸 즐기는 그런 타입? 인가보지. 그래... 뭐랄까."
잠시 말을 고르던 그녀는, 이내 손뼉을 치며 말했다.
"테러는 하고 싶은데 민간인은 죽이기 싫어하는 빌런이라고 보면 되겠네. 자기가 저지른 테러로 죽게 생긴 사람들 좀 구하라고 연락한걸 보면."
그렇게 말한 설아는 고민 해결이라는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다시 녹차를 마셔 목을 축이는 그녀.
거기까지 조용히 듣기만 하던 신하루는, 이내 입을 열고 이렇게 물었다.
"....그럼 너는, 걔가 무해하다고 보는거야?"
"응? 뭐 무해하다고는... 일단 건물이나 비행기 같은거 다 부수는건 맞으니까. 빌런은 맞지. 그냥 민간인 죽는걸 싫어하는 빌런. 그게 무해하다고 볼 수도 있을려나? 민간인 다 죽이려고 드는 빌런들보다야 낫네."
"그리고 해킹 실력이랑 이번에 돈 뿌리는거 보면 뭔가 있는 놈은 맞는데, 너말 들으니까 오히려 안심이 되는데? 그정도 능력이 있는데 사람들 죽이려 들면 그게 더 끔찍했겠다."
거기까지 말한 설아는 다시 차를 한모금 들어 마셨고.
아직도 고민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하루를 보더니 다시 생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하루, 그게 고민되서 이 언니한테 상담 좀 해달라고 한거야? 에고스틱 그놈이 빌런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누가 언니야... 아니, 뭐. 좀 걸리는게 있어서..."
"걸릴게 뭐가있어. 원래 세상에 이런 빌런 있고 저런 빌런 있는거지. 사람 5명을 토막살인해서 주술할려고 하는 빌런도 있는데, 사람 죽는거 별로 안좋아하는 빌런도 있을 수 있는거 아니야? 오히려 고민할 필요가 없네. 앞으로 걔가 일으키는 테러는 민간인 피해를 너가 막을 수 있는 선에서만 일으킬 거라는거니까. 빌런들 죽이고 다니는거는... 뭐, 사적제재기는 한데 민간인 죽이는거 까지는 아니니."
테러로 사람을 안죽이면 오히려 좋은거인데 뭘 고민하냐는 듯 말하는 설아를 보며, 하루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설아의 말이 맞다. 그냥 민간인 피해는 없는 테러는 일으키고 싶은 빌런. 에고스틱. 그렇게 그를 정의하면 끝날 문제다.
테러의 이유는 여타 다른 빌런들처럼 단순한 쾌락을 위해서 하는거로 보면 되고.
아마 그게 에고스틱에 대한 정상적인 해석이겠지.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무언가의 의구심이 남아있었다. 말로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의 안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직감'.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 단순한 자신의 쾌락추구가 아닌,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가 테러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테러를 즐긴다는 것 보다는 무언가를 노린다는게 있었다.
어떠한 다른 의도로, 무언가를 의도하며 테러를 일으키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게 무엇일까. 그걸 모르기에 아직까지는 그녀의 모든 생각이 망상으로 치부되는 거지만.
다시 고민에 빠진 하루의 얼굴을 보며, 설아는 웃었다.
"아니 하루야. 나 여기까지 부르길레 엄청 큰 고민일줄 알았더니, 빌런얘기였어? 애가 이렇게 워커홀릭이여서 어떡하니 응?"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그녀.
"하루야. 우리도 사람이야. 일 안할때는 머리 비우고 쉬어야지. 응? 대학생이면 좀 행사도 나가고. 그래가지고 친구 사귈 수 있겠어?"
"....친구 있거든."
"아, 그 너가 말한 선배? 그건 친구가 아니지. 언니지! 어쨌든 좀 쉴때는 쉬자 이거야. 그래가지고 남자는 한번 사귀귀나 하겠니?"
"너도 남자 사귄적 한번도 없잖아."
조용히 듣다가 뼈를 때리는 신하루의 말에, 설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니, 나는 그룹 차원에서 사생활 통제를 하니까 그렇지... 나도 어? 감시만 아니었으면 확."
"그래 그래. 알았어."
피식 웃으며 말하는 하루의 말에 투덜거리던 설아는, 이내 그녀도 웃고 말았다.
그렇게 에고스틱에 대한 이야기는 유야무야 넘어가며, 그녀들은 근황 토크를 하기 시작했다.
이설아가 애기 꺼낸것은 최근 그녀의 고민.
"하... 내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나가는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야."
이설아.
그녀의 친구이자, 부산을 담당하는 A급 히어로인 얼음능력자.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 대기업 중 하나인 유성기업 회장의 딸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기를 재벌 3세인 그녀.
"아니, 히어로일은 나도 재밌고, 회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가니까 좋기는 한데... 왜 다들 내가 무슨 옷 입었는지 그렇게 관심이 많냐고오..."
테이블쪽으로 손을 쭈욱 뻗으며 한숨을 쉬는 그녀.
그런 그녀에서 하루는 '힘들겠네'라고밖에 말해 줄 수 없었다.
인식저해를 받는 등의 행동으로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스타더스와 다르게, 아이시클은 딱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능력을 각성해 아이시클로 불리기 전부터, 그녀는 제벌 3세 이설아라는 이름으로 이미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으니.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 신분을 숨기지 않은 채 이설아라는 이름 그대로, 히어로 활동을 할때도 딱히 인식저해같은 무언가를 하지 않고 맨얼굴로 나섰다.
"그래도 뭐, 이거 시작한 이후로 전처럼 심하게 간섭하지는 않아서 그건 좋지만. 솔직히 우리 회사 이미지에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여겨서겠지."
"너도 힘들게 사는구나..."
"그래. 그나마 부산쪽은 수도권보다 테러가 적어서 다행이지. 너처럼 많았으면 진짜 와..."
거기까지 말한 이설아는 혀를 내두르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무슨 기사를 읽더니, 얼굴을 구기는 그녀.
이에 의아하게 생각한 하루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아니, 우리 경쟁사있지. 한은그룹. 거기 기술고문중 한명이었던 김선우라는 또라이 있는데, 그놈이 석방됐다네. 무슨 인체실험하다가 잡혀간 놈인데 어떻게 풀려났지? 또 로비 엄청 했나보구만."
"김선우..."
"에휴. 요즘은 뭐 잘 풀리는 일이 없어."
설아는 혀를 쯧차며 휴대폰을 다시 책상에 놓았다.
그렇게 그녀들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갔고.
시간이 어느덧 훌쩍 지나, 깊은 밤이 되고 말았다.
밖에서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비.
"이만 갈까?"
"그래."
그렇게 여기서 헤어지기로 한 둘.
카페의 밖으로 나오자, 앞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양복을 입은 보디가드들이 쫘악 서있었다.
"아가씨. 타시죠."
"어. 하루야, 너도 태워줄까? 비도 오는데."
"아니, 난 좀 걷다가 가게. 너 먼저 들어가."
"그래..? 알았어. 근데 너 우산은 있어? 아저씨, 우산 남는거 하나만!"
그렇게 하루는 앞의 양복입은 사람들로부터 우산 하나를 받고 감사를 표했다.
"하루야, 난 이만 간다. 다음에 또 고민거리 있으면 바로 불러, 알았지?"
"응. 조심해서 들어가."
그렇게 그녀는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떠나는 친구를 배웅해주었고.
이내 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집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산을 때리는 빗물.
빗방울 소리만 들려오는 밤거리를, 우산 하나에 의지하며 그녀는 나아갔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니 좋았다.
말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는 설아가 유일하기도 했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의 새벽이 다돼가는 저녁인만큼, 캄캄한 하늘.
달만이 외로이 떠있는 하늘을 보며, 그녀는 다시 상념에 잠겼다.
결국 설아도 에고스틱. 놈에 대해 딱히 신경을 쓰지 말라고 조언해 줄 뿐이었다.
그냥 사람 해치는걸 꺼리는 빌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그러나 하루는 여전히 그가 신경쓰였다.
설아도, 자신도 놓치고 있는 무언가 있는 기분.
그가 지금까지 행동이 무언가 큰그림을 그리고 있는거 같다는 직감.
그리고 그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닐것 같다는, 근거없고 말도 안되지만... 그럼에도 계속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그렇게 스타더스는, 자신도 모르는 채 초감각으로 에고스틱의 본질을 꽤뚫으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실체를 알지는 못하는 만큼, 지금은 계속 찝찝하고 그가 신경쓰일 뿐.
"하아..."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그녀는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자신은 에고스틱을 때문에 이렇게 심란해하고 있을 때.
막상 에고스틱 그놈은 자기 집에 누워서 배불리 잘 살고 있겠지?
***
"쿨럭, 쿨럭."
"꺄아아악!! 오빠 진짜 왜이래요!!! 이거 병원 가봐야하는거 아니에요? 병원 가자고요!"
"서은아, 내가 어떻게 병원을, 쿨럭, 가니.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거야, 쿨럭."
"이렇게 피를 한바가지 쏟고 있는데 뭐가 괜찮아요!!"
"형 죽으면 안돼... 히잉."
산 깊숙한 곳에 있는 커다란 대저택 안.
그 안에서 누워있는 나는, 지금 피를 한바가지 토하고 있었다.
저택에 인원들이 몰려와 나를 둘러싸며 걱정하고 있는 모습.
저 문쪽에는 하율이가 안색이 하얗게 질려 나를 바라보고 있는게 보인다.
아 시발.
다리에서 너무 무리했나.
"쿨럭."
나는 그러게 다시 나오는 각혈.
억울해 죽겠다. 대체 힘을 쓰면 얼마나 썼다고 갑자기 이러냐?
좆망 능력 같으니라고...
다리를 붕괴시키고 집으로 오자마자 기절한 뒤 3일후에 일어난 나.
일어나자마자 피를 한바가지 토해내고 있습니다.
죽겠다.
언젠가 스타더스가 내가 그녀를 위해 이렇게 구르고 있다는걸 알게 되는 날이 올까?
아니. 안 올거야, 아마.
아이고...
"쿨럭, 쿨럭."
"꺄아아아악!"
그리고 서은아 넌 비명 좀 그만 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