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7 의심에서 확신으로
[지난 수요일, 빌런 에고스틱에 의해 붕괴한 마포대교의 처리 작업이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마포대교 전체가 기둥부터 완전히 부서진 이 테러는, A급 영웅 스타더스에 의해 사상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는데요.]
[전문가들은 다리를 다시 짓기까지 몇년은 훌쩍 걸릴것같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한편 서울 시민들은 다리 붕괴로 인하여 교통체증을 겪고 있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
신하루.
누군가 신하루한테 그녀의 숙적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주저없이 에고스틱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실 에고스틱이 그녀의 아치에너미가 된 이유는 실로 단순하다.
그냥 에고스틱이 늘 스타더스를 지명했기 때문에.
에고스틱.
솔직한 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빌런을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다 에고스틱을 고를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한 시기를 꼽자면 불과 1년도 안된다. 그렇다. 그는 1년만에, 지난 수십년간의 역사가 있던 다른 빌런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가 된 것이다. 에고스틱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사실 따지고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일으킨 모든 테러 활동을 지상파 3사로 매번 생중계 했으니.
물론 그가 유명한 이유가 그것일 뿐이고, 인기있는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정말 수없이 많겠지만...
결국 중요한건 그가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하여, 그의 반대급부인 스타더스의 인기또한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인기도 인지도도 없는 B급 히어로들은 너도나도 전부 자신이 에고스틱과 싸우기를 희망한다.
뭐,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적수가 돼서 맞서게 되면 그대로 전국에 생중계로 그 모습이 보여지는 만큼, 한방에 자신을 모두에게 알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 뭐든간에 어떤 유명한 것의 라이벌이 되면, 그 인기를 어느정도 공유받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애석하게 그런 기회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에고스틱은 매 테러에서 모두, 자신을 막은 인물로 스타더스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에고스틱의 유별난 스타더스 지목은 사실 꽤나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애초에 그가 최초로 저지른 범행인 두 빌런 암살에서 모두 스타더스를 지명했었으니.
범행현장에 '스타더스에게.' 라고 남겨놓은 그. 마치 빌런을 선물로 잡아줬다는 의미를 내포하는걸로 보이는 메세지이다.
그리고 그 뒤에 그가 저지른 테러.
배와 기차에서 그는 자신의 적수로 스타더스를 지명했다.
이 두 사건에서 스타더스는 각각 연설과 무력으로 그의 테러를 저지하였고, 이로 인하여 그녀의 인기또한 크게 뛰었었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에고스틱과 스타더스의 관계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심지어 열애설도 나왔을 정도이니... 아직도 에고스틱이 기차를 겨우 막아선 채 쓰러진 스타더스의 눈을 감겨주고 떠나는 영상이 인기동영상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세간에 알려진 것.
그리고 스타더스 자신은, 이보다 더 많은걸 알고있다.
"......"
그는 그녀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정체. 스타더스가 아닌 신하루라는걸.
자신이 갔던 축제에서 벌어진 테러.
협회에 들려 인식저해를 받기에는 늦어, 이대로 얼굴노출을 각오하고 나서려 할때.
그가 갑자기 나타나 테러를 진압했다.
그냥 저 빌런이 자신을 기분나쁘게 해서라는, 얼토당치도 않은 이유로.
그래, 거기까지는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모르는, 신하루 그녀만 아는것.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그가 속삭였던 말.
앞으로는 얼굴을 노출하고 나설 생각은 하지말라고.
인생이 고달퍼질테니.
그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가지게 된 의문.
대체 자신이 얼굴을 노출하려고 한건지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자신이 거기 있다는걸 안건가? 그래서 나선건가? 자신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억측이다. 라고 그녀는 그때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그가 한 일.
비행기 테러를 일으켜, 자신이 추락하는 비행기를 지켜만보고 있을 때.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떨어지는 비행기를 구하라고 한 일.
거기에 그의 평소 행적도... 사상자 없는 테러, 다른 위험한 빌런들 암살, 다른 신분으로 테러 진압등이다.
그렇게 이런 일들이 맞물리며 그녀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에고스틱. 그가 과연 단순히 빌런이 맞는가?
이런 저런 상념에 휩싸인 그녀는, 결국 결심했다.
에고스틱 그놈이 다음 테러를 일으키면, 그때는 꼭 놈이 노리는 바를 알아내겠다고.
그런데 문제는 그가 테러를 4개월동안 일으키지 않고 사라졌다는거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만큼, 그녀의 의구심은 점점 커져만갔다. 마치 집에서 나왔는데 나오기 전에 가스를 잠갔는지 확신이 안들때 느끼는, 그런 찝찝한 기분.
그렇게 그녀가 점점 더 오래 에고스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그가 언제 등장하나 하고 에고스틱 팬카페까지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드디어 그가 왔다. 네번째 테러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그녀는 슈트를 입고 협회로 바로 날아갔다.
지난 3번의 테러에서 그녀 자신을 불렀으니, 아마 다음번 테러에서도 부를거라 확신하며 말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히어로들이 접근하면 바로 다리를 폭파시킬꺼라고 경고하며, 에고스틱이 벌인것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사회실험.
무슨 십만원을 나눠준다는둥 그러는 그의 말.
신하루는 그걸 듣고, 그의 첫 테러가 연상됐다.
인간이 이기적인 어쩌구 저쩌구...
그래, 그래도 첫테러 그때는 자신보고 무슨 연설을 하라고 했었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라고 그녀는 추측했으나.
그런건 없었다. 그는 그저 다리 위에서 그의 팬이라는 사람과 시시덕거리고 놀 뿐, 스타더스 자신은 1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쁜놈.
자신은 그를 신경쓰며 하루 하루를 기다리며 보냈는데, 정작 그는 그녀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이렇게 의혹의 늪에 빠지게 하고서는, 나몰라라 하는 모습.
그러더니 결국에는 다리를 폭발시켰다.
뭐, 그건 그녀가 예상했다. 에고스틱 이놈은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놈이니.
그렇게 미리 그가 예고한 저녁 7시에 마포대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다리가 폭발하자 마자 앞에서 바로 출동했다. 그녀는 히어로인 만큼, 제일 중요한건 결국 사람을 구하는 일이기에.
허공에 떠서 자신을 지켜보던 에고스틱.
하. 지금까지는 뭐 아는척도 안하더니 이제야 자신을 보는건가.
뭔가 그가 벌인 사고를 자신이 수습하는 모양새라 심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해야할 일을 했다.
그렇게 첫번째 차를 구하고 두번째 차를 구하러 날아가던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저건 못구한다고.
코앞,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는데 성공한 그녀였으나.
손을 뻗는 순간 직감적으로 느낀것이다. 딱 한걸음 정도가 부족하다고.
그녀에게 닥치는 절망감.
그러나 그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떨어지던 차가, 살짝 멈추었고.
닿을 수 없던것처럼 보이던 떨어지는 자동차를, 그녀는 구하는데 성공했다.
순간 그녀 자신이 잘 못 본것인가 생각했지만.
진짜로, 그녀의 앞에서 잠깐동안 차가 떨어지는 것을 멈춘것만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건 단 한명뿐...
양 팔에 차를 들고있던 그녀는, 위로 고개를 확 들어보였다.
그렇게 그녀가 본 모습은, 이쪽을 보며 팔을 아래로 내리고있던 에고스틱.
자신과 눈이 마주친 그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고개를 돌려, 망토로 자신의 몸을 가린 채 그대로 사라졌다. 순간이동을 해서.
....눈까지 마주쳐놓고, 그 타이밍에 그렇게 갑자기 황급히 가버리면 더 이상하다는걸 모르는걸까.
그렇게 그녀는, 이번에는 거의 확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쟤, 사실 그냥 악당 아닌거 아니야...?
***
물론, 그런 성급한 추측은 굉장히 위험했다.
일단 에고스틱은 기물파괴와 사람들에게 단체로 위협을 조장하는 대규모 테러만 4번 일으킨 빌런이니까. 비록 우연히 사상자가 없었을 뿐.
...물론, 지금와서 생각하기에는 우연인지 아니면 에고스틱 그가 전부 의도한 것인지도 헷갈리지만. 어쨌든.
중요한건 이걸 그녀 혼자만이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위험하다는거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녀가 빌런을 과소평가한 것이되어 나중에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니.
그러니 그녀는 이를 상담할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에고스틱에 대해서도 상의할 수 있는 친구.
그리고 그러한 친구는 그녀에게 단 한명밖에 없었다.
같은 A급 히어로이자, 어릴적부터 자매처럼 같이 자라온 친구 이설아. 부산쪽을 담당하는 그녀 아이시클.
늦은 밤, 그들은 사람이 없는 카페에 앉아있었다.
상담할거리가 있다는 자신의 말에, 섀도우워커행 순간이동을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온 이설아.
카페를 통째로 대실 한 둘은, 야경이 살짝 창문으로 보이는 2층에서 앉아있었다.
조용히 녹차를 홀짝이며 신하루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설아.
그런 그녀에게, 하루는 자신의 추측을 털어놓았다.
에고스틱의 사상자는 없던 테러들.
협회의 기록으로 알아낸, 에고스틱이 죽인 빌런들은 전부 막대한 위험성을 지녔던 이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한 2번의 다른 테러 진압.
거기에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행기 테러때 그에게 온 전화와 이번에 떨어지던 자동차를 그가 자신이 잡을 수 있도록 멈춘 일까지.
전부 다 말해주었다.
그렇게 한참에 걸쳐 신하루 그녀가 한 이야기를 차를 마시며 조용히 들어주던 설아.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설아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들고있던 차를 내려놓고.
비게 된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설아는 자신에게 말했다.
"세상에 하루야...! 너 에고스틱은 어둠의 S급 히어로 '애플망고'라는 그 썰을 믿는거였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듯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를 보며, 신하루는 벌써 후회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 괜히 상담한다고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