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55화 (55/328)

EP.55 인터뷰

다리가 무너지든 사람이 죽든 무지성으로 10만원을 일단 받아가는 대중들.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한 특별 이벤트!

당신이 10만원을 받아가면 죽게 생긴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그 첫번째 대상인 차를 향해 나는 걸어갔다.

나를 따라오는 염동력으로 띄워진 카메라는, 이 모든 광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좋아, 준비는 완벽하다. 아마.

"똑똑. 창문 좀 열어주실래요?"

내가 똑 똑 창문을 두들기자, 스르륵 내려가는 창문.

사라진 창문 사이로 보이는 것은, 건장해보이는 20대 남성이었다.

휴, 다행히 막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기에 막 뜬금없이 북해빙녀 이런 애 타고있어봐, 일이 좀 곤란해지거든. 다행이네.

"아이고,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혹시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치 레크리에이션 사회자처럼 자연스럽게 진행을 하는 나.

이런데서 괜히 위협하고 겁주고 그러면 괜히 분위기만 싸해진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포인트.

다행히도, 남자는 내 말을 받고 대답해주었다.

"예, 안녕하세요. 최영진이라고 합니다."

당차게 대답한 남성.

어라... 근데.

왠지 좀 당당하다?

테러의 한복판에 휘말려 죽네 사네 하는 분위기에 어올리지 않는 모습.

심지어 자신을 죽일수도 있는 테러범이 눈앞에 있는데도, 몸에 떨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눈빛에서 겁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는게 느껴진다.

아니 오히려 어째, 눈이 똘망똘망한 모습?

나는 이점을 콕찝어 질문해봤다.

신기하자너.

"네 최영진씨. 반갑습니다. 아니, 그런데 영진씨, 지금 겁을 왜인지 하나도 먹지 않으신거 같네요? 좀 불안하고 그런거 없으십니까?"

"하하. 불안이요?"

마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양, 허허 웃는 남자.

그러더니 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눈을 빛내며 또박또박 말했다.

"불안할게 뭐있습니까. 500만명이나 돈을 받지 않는 이상, 이 다리와 저는 모두 무사한거 아닙니까? 저는 믿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제가 사랑하는 조국은, 약간의 자본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끈끈한 한민족의 정으로 묶인 사이입니다. 제가 죽을일이 없는데, 어째서 겁을 먹어야합니까?"

맑은 눈으로 대답하는 남성.

으윽, 그의 눈이.

순수해! 너무 순수해!

막 눈에서 후광을 뿜는거 같아, 그만해!

이게 무슨 인간찬가인가 뭔가냐?

나는 눈을 질끔 감았다.

아니, 전생이면 몰라도 이 대한민국 사람들은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이 테러의 기획자임과 동시에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양심이 쿡쿡 쑤여왔다.

세상에 이런 순수한 사람이 있다니.

그리고 양심의 통증을 느끼는건, 채팅창을 보니 나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아ㅋㅋ]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라... 와티시, 어째서 가슴에 통증이?]

[내 마음속 삼각형이 막 저를 쿡쿡 찌르는데 이거 암인가요?]

[아니요. 그건 양심통입니다.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소리죠.]

[10만원...이미 받았다고...]

[받을까말까 고민했는데 그냥 안받기로 했다]

[ㅅㅂ안받는다 그깟 푼돈 사람 목숨에 비할바 못되지]

[아니 왜 안받는거야 너네가 그러니까 받은 내가 나쁜놈 같잖아.]

[팩트) 받은 놈들은 나쁜 놈들이 맞다]

[미안합니다...]

으음,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진 않다.

내가 원래 기대하던건 막 죽을까봐 벌벌 떨고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제 그걸 본 국민들이 죄책감을 가지는 그림을 기대했는데...

뭐, 어쨌든 둘 다 결론은 돈을 받지 않겠다는 거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람들이 돈을 안받아가면 안받아갈수록 이득이다.

왜냐고? 어차피 500만명이 넘든 안넘든 그냥 그냥 500만명 넘었다고 뻥치고 다리 폭발시킬꺼거든.

...

뭐.

어쩔 수 없다. 인생을 도박에 맡길 수는 없는 법.

그러면 500만명 안넘었다고 머쓱하게 '아... 400만명밖에 신청 안하셨네요? 그럼 전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할수는 없잖어! 이 다리 안 폭파시키면 세계...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다함께 피폐물로 돌입한다. 이건 일단 무너트리고 봐야한다고.

그리고 뭐 내가 500만명 넘었다고 한들 누가 증명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보고 돈받은 사람 계좌 명단 까보라 할꺼야? 그럼 돈 받은 몇백만명이 나를 지켜줄거다. 정확히는 자신을 지키려 하는거겠지만은.

그리고 사실, 돈이 좀 아깝다.

물론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는건 맞다. 어느정도냐면, 쉽게 말해서 한 나라 1년 예산정도?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방황하다가 정신차리고 서은이 만나기 전까지는 하루종일 원작 지식으로 돈벌고 살았다. 대충 미국 부패 기업에서 돈 뜯고, 다른 나라 빌런이 못쓰고 죽어 숨겨져버린 돈도 찾아서 쓰고... 물론 나중에는 서은이의 도움이 좀 있었지만, 어쨌든.

돈이 많기는 많은데, 한번에 5000억 이상 태우는건 좀 부담이 된다.

나중가면 자본이 꽤나 중요해지는데, 여기에다가 좀 너무 많이 태우는 것 같기도..?

매크로로 열심히 빠져나가는 돈만 해도 지금 1분당 한 몇십억은 빠져나가고 있다. 너무 막나갔나봐.

윽. 서은이가 왜 이리 돈을 물쓰듯 쓰냐며 잔소리한게 아직도 귀에 이명처럼 울린다. 하율이는 손가락으로 몇천조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 세보다가 기절했었지. 음.

어쨌든, 결론은 그래서 사람들이 적당히 돈을 받아도 된다는거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다 합쳐서 백만명도 안넘을 줄 알았다. 아니, 기간도 짧게 줬는데 백만명이나 넘기면 다행이지.

그런데 이 세계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내 기대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오빠, 벌써 300만명 이상이 돈 받아갔는데요?]

[....뭐라고?]

나는 아까 서은이에게 온 연락을 떠올렸다.

아니 사람들아! 진정 양심을 저기 한강 밑바닥에 던졌단 말입니까?

대체 왜 이럴때만 열심인거야...

하여튼간에 이게 내가 최영진군의 순수한 말에 가슴이 아팠던 이유다.

미안! 너가 그렇게 믿고있는 대한민국 국민들... 이미 배신하고 돈 냥냥하게 타갔더라....!!

라고 지금 내 눈앞에서 믿음과 신뢰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그에게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차마, 못하겠어...

"크흠. 알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믿으시는 최영진군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끝으로 할 말 계십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메라를 보며 굳건한 믿음로 말하는 그.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제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거죠? 늘 사랑합니다. 한국 파이팅!"

이제는 카메라를 보며 파이팅 포즈까지 취하는 그.

음, 어질어질하군.

도망치자.

"네! 잘 들었습니다. 다음 분으로 그럼 가볼까요?"

내가 그렇게 황급히 철수하려던 그때.

차안에 있던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잠깐!!!"

"예?"

갑자기 나를 불러세우는 그.

뭐야?

"왜 그러시죠?"

"빌런양반. 에고스틱이라고 했습니까?"

"네, 근데요?"

"제가 지금 4시간째 굶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앞으로 4시간 더 굶게 생겼는데, 혹시 먹을거는 없습니까?"

이제는 당당한 표정으로 내게 먹을걸 요구하는 그.

나... 진짜 이런 캐릭터는 태어나서 처음인걸?

근데 더 웃긴건.

생각해보니 내가 먹을걸 나눠줄려고 가져오기는 했다. 까먹고 있었네.

"아, 잠시만요."

나는 도로위 어딘가에 놔둔 보자기로 순간이동했다.

그래, 여깄네.

총이랑 최루탄이랑 마이크랑 기타등등 모든 내게 필요한게 다 담겨있는 에고-보자기.

그걸 들고 나는 다시 차 앞으로 순간이동했다.

"잠시만요, 아, 여깄다. 크림빵 좀 드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빵을 받아가는 남자.

참 넉살 좋다.

[이게 뭐야ㅋㅋㅋㅋㅋㅋ]

[테러범한테 밥 좀 달라는 인질과 달라하니까 진짜로 준비해둔 빵 건네주는 테러범ㅋㅋㅋ 이거맞냐?]

[어질어질하네 ㅅㅂㅋㅋㅋㅋㅋ]

[이게 빌런이냐고ㅋㅋㅋㅋ]

[아무리봐도 망고스틱은 취미로 빌런 짓 하는 히어로가 맞다]

[ㄹㅇ다리 부수려 하는것도 다 깊은 뜻이 있는거라고ㅋㅋㅋ]

[밥 잘 사주는 옆집 빌런ㅋㅋㅋ]

어쨌든 이제는 진짜로 이 차로부터 볼일은 끝났다.

나는 다음 차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휴... 뭐 대화 별로 나누지도 않았는데 기가 빨린다 기가 빨려.

"네, 이제 다음 인질분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떤분이 저를 반겨줄지, 저도 기대가 되네요."

나는 그렇게 카메라를 향해 말하며, 다음 자동차로 걸어갔다.

이번엔 제발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좀 어? 겁내하는 사람들 말이야. 테러리스트한테 인질로 붙잡혀서 죽네 사네 하고 있으면 좀 긴장하고 쫄고, 그래야 하는거 아닐까?

그렇게 희망을 품고 나는 차로 걸어갔다.

아까 전 남자 혼자 덩그라니 타고있던 승용차와는 다르게 이번 차는 커다란 SUV.

오, 살짝 희망이 더 생긴다.

저기 타고있는건 어디로 놀러가던 일가족이 아닐까? 자신도 공포에 떨면서 자식을 지키려 드는 부모...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딱 좋다.

제발, 나 돈 좀 아끼자.

그러나 SUV로 다가갈수록 나의 희망은 점점 부질없다는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차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소리.

그것도 뭔가 신명나는 락음악이었다.

...뭔가 아주 불길한데.

그러나 나는 프로, 일단 차문을 두들기고 봤다.

"똑똑. 안녕하세요. 창문 좀 내려주시겠어요?"

내가 두들기기가 무섭게, 창문이 드르륵 내려왔고.

그와 동시에 내 귀를 시끄럽게 때리는 메탈 사운드와.

"꺄아아아아악!!! 망고스틱!!!!"

"와어떡해찐실물이야미쳤다정말."

"망고스틱 팬이에요!!!!"

"망고! 망고! 망고! 망고!"

찢어지는 함성을 지르는 여대생들이었다.

...돌겠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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