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큰집
이하율.
그녀가 벌써 이 저택에 살게 된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누나 일어났어?"
"어? 어..."
옆방에서 하품을 하며 들어온 그녀의 동생, 차윤이.
그런 그의 머리를 슥슥 문질러준 뒤, 그녀도 일어날 준비를 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긴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가자, 부엌쪽에서 긴 검은색 생머리를 한 여자가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건지, 요리를 하다가 말고 고개를 드는 그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건냈다.
"하율아, 일어났네? 잘 잤어?"
"네 언니. 언니도 잘 주무셨어요."
"응."
슥 웃어준 뒤 다시 밥을 더는 그녀.
하율 자신도 그녀의 옆에 서, 요리하는걸 같이 도왔다.
수빈언니는 처음에는 괜찮다며 말렸지만, 하율이 자신도 꼭 돕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자 마지못해 함께하게 허락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볶음밥과 여러 반찬들.
이내 시간이 지나고,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두 인물이 등장했다.
"서은아, 눈 뜨고 걸어라. 넘어지겠다."
"으으응. 오빠가 좀 잡아줘요."
"아이고..."
은색의 단발머리를 한 여자와, 그녀를 잡고 같이 올라온 남자.
자신보다 두살 어린 한서은이라는 애와, 이 집의 주인 다인이다.
"다들 잘 잤어? 하암."
"안녕히 주무셨어요오..."
그렇게 둘은 비적비적 걸어가더니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같이 산지는 얼마 안됐지만, 늘 아침에 약해보이는 저 둘.
그렇게 요리가 거의 마무리되고.
수빈언니는 소파에서 졸고있는 둘을 깨우러, 그리고 나는 방에 있을 동생을 깨우러 갔다.
"차윤아... 벌써 공부하고 있어?"
"응!"
차윤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침밥을 먹기도 전부터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의 동생.
이제 다음 월요일부터 학교를 가기로 했으니, 그 전까지 미리 예습을 하겠다고 밝힌 그녀의 동생이었다.
애가 알아서 공부를 하니, 참 기특했지만...
'차윤아.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거야?'
'난 공부해서 꼭 큰사람이 돼서, 다인형을 도와줄거야!'
...그렇게 당차게 선포하는 동생을 보며, 그녀는 쓴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밥 다 됐으니까, 나가서 먹자."
"알았어!"
그렇게 마지막까지 문제를 끄적이다, 일어나서 거실로 향하는 차윤이.
그런 동생을 보며, 그녀는 조금 씁슬해졌다.
저렇게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를, 지금까지는 공부는 커녕 밥도 제대로 못 먹여줬으니...
그렇게 다시 밖으로 가자, 다같이 식탁에 앉아있는 이들.
그녀와 동생까지 자리에 앉자, 그제서야 모두가 수저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그렇게 다같이 식사를 했다.
볶음밥은 맛있었다.
"서은아, 눈 뜨고 먹어 눈!"
"아... 떳어요..."
"차윤이는 반찬도 안가리고 다 잘먹네?"
옆쪽에 수빈언니가 흐뭇하게 웃으며 그리 말하자, 차윤이는 먹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잘먹어야지 다인형처럼 크죠!"
"그래! 하하하하. 이 형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려면 쑥쑥 먹어야된단다."
"으... 오빠 자의식과잉 극혐."
"씁..."
그렇게 만담하며 투닥거리는 다인과 서은 둘을 보며, 이하율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이 집에 그들과 함께 산지 벌써 1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일주일 동안 같이 살며, 이하율은 많을걸 알았다.
저 앞에 앉아있는, 옆에 여자애와 투닥거리는 남자가 다인.
그의 정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빌런, 에고스틱이었다.
지금까지 저지른 테러만 3번, 죽인 다른 빌런들만 수십명.
평소에 일에 치여사느라 몰랐지만, 그는 인기도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심지어 차윤이조차 좋아하고 있을 정도로.
맨날 막 뭐 부수는 영상을 보고 있길레 뭘보나 했더니, 알고보니 에고스틱 다시보기랜다 참...
같이 살면서 본 에고스틱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뭐랄까... 착한사람? 이었다.
처음에 자신들보고 같이 살자고, 지원해준다고 했을 때는 우리를 뭐 어떻게 해볼려고 하는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돈이 얼마나 많길래 우리한테 그렇게 아낌없이 주나 했던 의심도, 이 커다란 대저택을 보고 사라졌다.
아. 돈이 정말. 정말 많구나.
에고스틱, 다인. 그는 실제로 자신의 말을 지켰고, 우리에게 딱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같이 살면서 느낀건, 그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는거다. 차윤이와도 놀아주고, 자신도 은근슬쩍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또 그와 함께 사는 수빈언니. 그녀는, 자신과 차윤이가 마치 그녀의 동생인것 처럼 챙겨줬다. 옷도 같이 나가서 골라주고, 요리도 알려주고, 학교 행정절차도 같이 밟아주고...
그런 그녀가, 이하율은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했다.
지낸지 일주일.
그녀는 마치, 아직도 꿈을 꾸는 것같았다.
그녀가 기억하던 어린시절부터 이어져왔던 고아원장의 학대와, 최근까지 작은 판잣집에서 전전하던게 어제같은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무슨 귀족 아가씨처럼 이런 고풍스러운 큰집에서, 삼시세끼 꼬박꼬박 잘 챙겨먹으며 살 수 있다니?
사실 그녀 자신의 만족감보다는, 그녀의 동생 차윤이가 그 모진 고통을 겪지 않고 클 수 있다는게 너무나도 좋았다.
어린시절부터 몸이 약해 고아원에서도 원장에게 핍박당하기 일수라, 늘 그녀가 챙겼던 그녀의 동생.
그가 밝게 웃으며 함께 떠들면서 밥을 먹는 모습만 봐도, 그녀는 배가 불렀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다시한번 다인의 모습을 힐끔 보았다.
그녀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던건 다 눈앞에 남자, 다인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자리에서 그녀의 남동생과 그녀는 죽었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알고 딱 찾아와주었고.
자신과 남동생을 구해주었다.
사실 그녀가 다인을 믿게 된 건 수빈언니의 영향도 크다. 이 집에 살게 된 이후로 그녀는 에고스틱에 대한 모든걸 찾아보았고, 그 와중에 수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수빈도 마치 자신과 비슷하게 거두어버린 인물.
테러를 일으키던 그녀를 다인이 같이 데리고 갔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에고스틱이 그녀를 어떻게 한거냐 하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그녀는 이제 안다. 수빈은 잘 지내고 있다는걸.
사실 수빈언니도 마치 천사처럼 착해보이지만, 그녀도 테러를 일으킨 일종의 테러리스트다.
에고스틱은 애초에 협회가 주목하는 A급 빌런이고.
저기 은색 머리의 여자애도, 겉보기에는 그냥 작고 귀여워 보이지만 알고보니 천재 해커랜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들이 자신과 동생을 가족처럼 맞이해 줬다는게 중요하지.
사실 그녀도 떳떳하지 않다. 애초에 소매치기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으니...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다인에게 너무나도 큰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는 의심을 거의 거두고,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 찼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는 자신의 능력, 그러니까 사람의 상처를 웬만하면 거의 다 치유할 수 있다는걸 모르는 눈치였지만.
'나중에 다쳐서 돌아온다면...'
그때는 기필코 은혜를 갚으리라.
그녀는 혼자서 조용히 그리 다짐했다.
***
"아저씨. 지하실로 가요."
"서은아... 기껏 이사했는데 햇빝도 좀 쐬고 그래야지."
"아 빨리이요."
"그래, 그래. 알았다."
서은이가 하도 칭얼거리는 바람에, 나는 결국 지하실로 향했다. 안가면 계속 아저씨라고 부를거 같어...! 형에 이어 아저씨냐...
가는법은 간단하다. 그냥 순간이동 장치를 타면 된다.
서은이를 3개월간 닥달해서 만든 순간이동장치. 꼭 뭔가 닥터후에 타디스마냥 생긴 이거에 문을 열면, 바로 지하실로 직행한다.
순간이동장치가 깔린 곳끼리만 이동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뭐, 애초에 목적이 집과 지하실을 잇는 거였으니까.
이 지하기지에 3개월간 박혀 있으면서 느낀건데, 여기는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그전까지는 여기서 정신없이 일만하느라 못느꼈지만, 쉬면서 있어보니 답이 없더라. 아니, 사람이 햇볕은 받고 살아야지.
그래서 큰맘먹고 저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커다란 대저택을 샀다. 남아도는게 돈인 나여도 실로 엄청난 지출.
뭔가 80년대 저택같은 이 고풍스러운, 이 웅장한 위용을 보면 내 가슴도 웅장해진다.
이렇게 큰 집을 산 이유는 단 하나.
앞으로도 여러 능력자들을 꼬셔서, 나의 빌런연합, 일명 에고-스쿼드에 본부가 될 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5명이서 오종종 살고 있지만, 미래에는 여기가 꽉 찰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되겠지?
"하아. 역시 집이 최고에요."
"서은아, 우리 집은 저 위에 궁궐같은 저택이야..."
"전 여기가 편해요. 하아, 내 모니터들. 외로웠지?"
...물론 저기서 자기 모니터를 껴안고 있는 서은이처럼, 이사를 반대한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수빈씨는 좋아하는거 같다. 특히 애 둘을 알뜰살뜰 챙기는게 보는 내가 다 흐뭇하더라. 의외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인거 같다니까. 생각해보면 서은이랑도 금방 친해졌었지.
저 남매. 어째어째 친해지는데 성공한거 같다. 하긴, 거지처럼 살고있던 애들 돈 다 대줘 집 줘 거의 구해줬는데 싫어하면 그게 더 이상한거겠지...?
이차윤인가? 얘가 내 추종자인게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됐다. 살짝 보니까 거의 자기 누나한테 에고스틱에 대해 세뇌시키고 있던데... 든든하다!
하여튼 이하율을 영입한거는 진짜 아주 잘된일이다. 거의 예비목숨을 여러개 한 것과도 마찬가지. 죽기 직전 상태여도 쟤한테 달려가면 구해줄거다. 아마도?
어쨌든 이하율까지 포섭했으니, 대충 할 일은 다한거 같다.
3개월... 아니 이제는 거의 4개월인가? 하여튼 나름 알차게 보낸거 같다. 이제 거의 겨울이 다되가네.
"오빠, 또 무슨 생각해요?"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으니 서은이가 볼을 부풀리며 나를 노려봤다. 얘가 저 남매가 이사해 온 이후로 부쩍 나한테 달라붙는단 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야. 맞다, 서은아. 이제 우리 그거나 하자."
"네? 그게 뭔데요?"
서은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길래, 내가 씨익 웃으며 답해줬다.
"뭐긴 뭐야. 새로운 테러지."
너무 오래 쉬었다.
이정도면 대중들이 나를 잊게 생겼다고.
느슨해진 반도에 긴장감도 주고, 스타더스한테 어그로도 끌고, 미래에 위기도 막고.
*
[망고스틱이 다음주에도 안오면 바지에 똥을 지리겠다.]
경고했다.
=[댓글]=
[지지합니다]
[나는 광화문앞에서 똥을 싸겠다. 말리지 마라.]
ㄴ[캡쳐함]
ㄴ[그러니까 다음주에 광화문에서 볼 수 있다는거지?]
ㄴ[M][캡쳐했다 안싸면 차단함ㅅㄱ]
ㄴ[메니저 등장ㅋㅋㅋㅋㅋ]
[글쓰니는 바지를 하나 더 주문했다고 한다]
[야 아직도 기다려? 독하다 독해ㅋㅋㅋㅋㅋ]
*
...바지에 똥을 지리려고 하는 우리 망고단도 말릴겸. 새로운 테러 새끈하게 한번 해줘야지.
테러를 일으키자는 말에 얼굴이 밝아지는 서은이. 내가 애를 잘못 키웠나..? 테러를 좋아하는 여중생이 되었다. 아니 이제 여고생인가...
"와! 드디어 하는거에요?"
"엄...그래. 이번 테러 컨셉은..."
'마포대교는 무너졌다'로 가자.
마포대교는 무너질거다 이 섀끼들아.
내가 무너트릴꺼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