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39화 (39/328)

EP.39 광대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채 오밀조밀 모여있는 이곳.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이렇게나 조용할 수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쥐 죽은듯이 고요한 이곳.

떨고있는 인질들도, 총을 든 테러리스트들도, 의자들탑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자도.

모두 조용한 이때.

군중에서 일어난 한 남자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짝짝짝짝짝짝.

찔끔찔끔, 치는 시늉만 내는 그런 허접한 박수소리들과는 다르다.

어떻게 하면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심열을 기울여 연구한것처럼 청명한 박수소리.

사람 한명이 냈다기에는, 너무나도 잘 울려퍼졌고.

너무나도 잘, 모두의 이목을 이끌었다.

그렇게, 조용한 곳에서 박수치는 남자를 바라보던.

이 모든 테러의 기획자이자 A급 빌런, 몽키스패너.

그가 입을 열었다.

"저 미친놈은 뭐야?"

말그대로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쏘아보일듯, 총을 들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어그로를 끌면, 그게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심지어 그의 괴상한 얼굴쪽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나타단 남자.

샛노란- 약간 주황색인가? 어쨌던 언벨런스한 옐로우 마스크. 심지어 마스크도 눈매는 약간 웃고있고, 눈 아래 별표도 있는게 마치 광대나 쓸 것처럼 보였다.

그 괴상망측한 생김새에, 테러 쫄따구들도, 심지어 산전수전을 다겪은 노련한 빌런 몽키스패너도 멈칫-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일단 그는 눈짓으로 카메라맨한테 영상을 끄라고 손짓했다. 괜히 돌발상황이 송출되어 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으니까.

몽키스패너가 누구인가.

그의 능력은 사실 보잘것 없다. 약한 괴력. 뭐 그의 능력은 옷으로 감추어도 보이는 터질듯한 근육으로도 쉽게 유추가능하다.

그러나 몽키스패너는 비슷한 능력의 다른 빌런들과는 다르게, 약한 능력이지만 협회가 A급 빌런으로 지정했다.

아무리 협회가 빌런 랭크를 히어로에 비해 과하게 높게 주는걸 감안하더라도, 실로 이례적인 일.

그가 그런 높은 랭크를 받은 이유에는, 그의 뛰어난 조직능력에 있다.

대체 어떻게인줄은 모르겠지만, 수백명의 부하들을 자신 밑에 수족처럼 부리는 것.

일명 '점핑 몽키 클럽'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함께, 그들은 대한민국 지하에 암약하며 은행도 털고, 마약도 팔며 지냈다.

보스 몽키스패너가 갑자기, 더 큰 물에서 놀겠다며 부하들을 이끌고 멕시코로 가기 전까지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먹겠다며 호기롭게 떠난 이들은, 역으로 카르텔에게 탈탈 털리고 말았다.

수백명을 호령하던 부하는 이제 백명 남짓.

테러로 미친듯이 번 돈도 홀라닷 날려버렸다.

그렇게 터덜터덜 고향으로 돌아온 그.

이대로 가면 망할 것같다고 느낀 그가, 묘수를 냈다.

한국에서 진짜 대형 테러로 돈을 뽑아먹은 뒤, 멕시코에 한번 더간다!

그렇게 부산항에 밀항해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그.

원래는 돌아오자마자 무지성으로 할려고 했으나, 저 위에 서울에서 레고스틱인가 뭔가가 먼저 테러를 하는 바람에 계획이 저지되어 왔다.

테러는 어그로가 생명인데, 저렇게 남이 어그로 끌고 있을때 테러를 일으켜봤자 정부가 관심을 덜준다. 관심을 덜주면 받을수 있는 돈도 줄어든다.

...그렇게 기회만 노리던 그에게 존버 끝에 승리한달까? 최고의 기회가 왔다.

어둠의 지배자, 섀도우 워커가 쓰러졌다는 것.

사상최초로, 테러를 밤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거를, 노련한 몽키스패너를 놓치지 않고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먼저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요약하자면.

비록 멕시코에서 말아먹기는 했지만, 몽키스패너는 기본적으로 눈치도 빠르고 휘하 직원들을 수백명 거느렸던 능력있는 빌런이라는 것.

그리고 몇년에 걸쳐 발달한 그의 직감은- 지금 저 가면의 남자가 심상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놈, 뭐하는 놈이냐!!"

그는 일단 그렇게 말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만약에, 만약에 초상능력자가 없는 세계였다면 가뿐히 그냥 총을 쏘았겠지만.

이세계는 저놈이 어떤 능력을 가진지 모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왜 저런놈이 튀어나오는거지?'

로또 1등당첨보다 희귀한게 초상능력자다.

로또 1등은 매주 나오기라도 하지.

고작 이정도 인원에서 튀어나오는거는 희귀한 일.

그러나, 몽키스패너가 누구인가.

초상능력을 가진 수많은 히어로들 사이에서도 세력을 유지하며 끈질기게 살아온 그다.

이정도 이상사항은 자신의 힘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다고 믿는 그였다.

...아직까지는.

*

"...네놈, 뭐하는 놈이냐!!"

의자들로 이루어진 탑 위에 서서, 나를 향해 고함을 치는 저놈.

누군지 물어보신다면, 알려드리는게 인지상정.

태연히 서있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나는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잠깐만, 여기서 에고스틱이라고 밝히면 안되는거 아니야?

내 스스로 이런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 내가 대한민국에서 꽤나 유명인사다.

나름 뉴스에 한 다섯번 여섯번 얼굴을 비춘 남자란 소리.

...물론 굳이 뉴스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애초에 내가 테러영상을 라이브로 틀기는 했다만.

하여튼, 여기서 내 이름을 까봐야 좋을게 없다.

이름을 말하는 순간 내가 염동력과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다는걸 깨달을테니.

그렇게 나는, 이름을 말하려다 유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름은... 알거 없습니다. 지나가던 시민이라고 해두죠 그냥."

나는 능글거리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내 말을 들은 놈의 얼굴이 구겨졌다. 내 여유로운 태도와 전혀 긴장하지 않은 평온한 말투로 미루어 봤을때 내가 생각외의 강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하긴, 나 같아도 테러 일으키는데 광대같은 가면 쓴놈이 옆에와서 빈정거리면 당황할것 같어.

그리고 이게 나의 계략이다.

상대가 나를 과대평가하게 하기!

강자가 상대를 방심시킨 다음에 허를 찌르지만, 약자의 싸움은 좀 다르다.

약자는 스스로를 부풀려, 자신의 능력보다 자신을 훨씬 있어보이게 포장해야 하는법.

그래야 상대가 경계하고, 경계한만큼 시간을 끌 수 있다.

그렇기에 초반 박수로 어그로를 끈것.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저 몽키스패너인가 뭔가가 뭐하는 놈인지는 잘 모른다. 아니, 나는 스타더스랑 서울에서 싸우는 적만 알지, 저 밑 부산에서 뭔 일이 일어나도 잘 모른다. 거기는 북해빙녀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러니까, 난 저놈의 능력을 아까 몰래 검색해서 겨우 알았다는 소리다. 괴력, 약한 괴력이라.

...괴력은 좀 곤란하다. 놈이 내 척추를 반으로 접으려고 달려드는거야 순간이동으로 피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나의 공격이다.

괴력 자체가 신체강화를 의미하는 거라, 웬만한 총이나 폭탄으로는 흠집도 안난다는거. 특수 공격수단이 없는 나로써는 쬐애끔 처치곤란하다. 내장도 튼튼해서 독가스가 먹힐지도 미지수. 애초에 여기서 독가스 터트렸다가는 다 몰살이겠지만.

그러니까, 일단 해치울수 있는 거부터 해치워볼까.

터벅, 터벅.

군중을 해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는 계속 갔다.

끝내 그놈의 의자산 앞으로까지.

나를 제지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복면쓴 잡졸들이 나에게 총을 겨누는걸, 의자산 위에 앉아있는 몽키스패너가 손으로 막았기 때문.

쐈다가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거지.

결국 의자위에 서있는 그의 아래까지 온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비웃으며.

"이런... 이런. 여기서 무슨 재밌는 사건이 터졌다길래, 무거온 몸을 이끌고 제가 직접 여기까지 왔것만. 별 볼일도 없는 자의 장난이었군요. 저 위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고 거기에 앉아 있는게 당신의 전부인가요? 이 대머리야."

갑작스러운 나의 폭언과 도발에, 놈이 진심으로 빡친게 보였다.

"네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후회하게 해주마!"

끝까지 일단 상황을 관망하던 그는, 의자산 꼭대기에서 점프해 나에게 달려들었다.

열받은거 외에도, 이렇게 많은 부하들과 시민들 앞에서 얕보였다가는 별로 좋지 못할거라는 판단도 있었겠지.

그러나 놈이 나에게 달려들어 내가 있던 곳을 짓밟은 순간.

나는 이미 거기 없었다.

놈은 모르고있었겠지만, 내 능력은 순간이동이거든.

놈이 눈치챈 직전, 나는 이미 아까 그놈이 앉아있던 의자로 이루어진 산 위의 의자, 그 꼭대기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정말... 허접하군요."

나는 그렇게, 지루하다는 듯, 따분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저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주위를 둘러싸던 잡졸들이 든 총기가 놈들의 손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것들은 일제히, 그대로 총구를 반대편으로 겨누어.

순식간에 총을 뺐긴, 아까까지 들고있던 자신의 주인을 향해.

총알을, 발포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피가 튀기며.

그렇게 수십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한순간에. 이토록 짧은 시간, 미처 무언가 눈치를 채기도 전에.

한꺼번에, 즉사했다.

"휴우..."

이거 카메라로 찍고있는 사람들 없지?

협회가 보면 나 바로 S급으로 승격시킬꺼 같은데...

그와 별개로, 방금꺼 하나로 내가 몇달간 비축해둔 염동력을 다썼다.

아, 내 능력은 왜이렇게 허접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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