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38화 (38/328)

EP.38 FBI OPEN UP!

야심한 밤, 부산 최고의 호텔.

그곳에서는 비명이 곳곳에 난무하고 있었다.

"으...뭐야, 당신들 누구야!"

"닥치고 죽기싫으면 나와라!! 빨리빨리 움직여!!!"

밤을 틈타 들어닥친 의문의 괴한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 층들로 이동해, 자고있던 손님들 방문을 부숴버리며 인질로 잡기 시작했다.

자다가 일어나자마자 얼굴에 겨누어진 총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

그들을 억지로 일으켜, 괴한들은 이들을 모두 1층으로, 1층으로 모았다.

"이게 마지막 층인가?"

"그래, 빨리 빨리 해치우자고. 아니면 보스가 분노하실거라네."

이미 아수라장이 된 복도.

총을 겨눈채 소리를 지르는 괴한들과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는 인질들로 혼란스러운 복도를 가로질러, 두 테러범은 자신들이 할 일을 하러 갔다.

아직 남아있는 방들에서 인질들을 잡아 오는것.

방문을 부수려고 드는 테러범에게, 옆에 있는 다른 테러범이 그의 손을 잡아 멈춰세우며 말했다.

"잠깐, 나 해보고 싶은게 있네. 늘 남의 방문을 부슬때마다 이걸 한번 외쳐보고 싶었어."

"그거 뭔가?"

"들어보게..."

그의 말을 들은 테러범은, 기가 차다는듯 웃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어이가 없군... 그래도 뭐, 좋다. 그것도 나름 사나이의 로망이기도 하지. 내 같이 해주겠네."

"고맙군. 그러면 하나 둘 셋 하고 시작하세. 하나, 둘... 셋!"

그렇게 그들은 방문을 동시에 걷어차며 함께 소리쳤다.

""FBI OPEN UP!!!"

그렇게 부숴진 방문을 넘어 안쪽으로 진격하던 이들은, 침대에 누워있던 비몽사몽한 남자가 손을 한번 휘젓자 갑자기 날아오른 들고있던 총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허망한 최후였다.

***

"이 새끼들은 대체 뭐야....?"

자다가 깬 나는, 비몽사몽한 눈을 부비며 중얼거렸다.

아니 갑자기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눈떠보니까 무슨 복면쓴 두명이 나한테 총을 겨누고 있잖어.

놀라서 그 총을 염동력으로 조작해 둘의 대가리를 치게 했다.

불시에 급습을 당한 그들은 침대 밑에 떨어져있었다. 얘네 뭐야?

"으으음... 무슨일이에요?"

옆에서 자고있던 수빈씨와 서은이도 드디어 깨어났다. 아니, 이 사단이 나는동안 우리는 대체 뭘 하고 있던걸까...

깨어나보니 들려오는 소리만 놓고 보면 아주 지옥도가 다름없다. 비명 소리, 우는 소리, 고함지르는 소리, 깨지는 소리, 부숴지는 소리, 총쏘는 소리 등등...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테러가 난거 같은데?"

아니 내가 진짜.

진짜로 웬만해서는 욕을 안쓰는 남자인데.

이건 정말 시이이이발 너무한거 아니냐?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거야...

지금까지 내가 딱 두번 놀러갔는데 왜 두번 다 갑자기 이런 사건사고가 벌어지냐고..

부산에 호텔이 그렇게 많은데!

왜! 내가 있는 호텔에서 이런일이 벌어지는건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같다.

나는 억울하다. 분명 착하게...까지는 아니어도 성실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어째서! 신은 나 김다인을 낳고 저런 흉악한 악당들을 낳았단 말인가.

신이시여, 오늘도 정의로운 빌런이 되게 해주세요...

"하아암... 오빠, 대체 이게 무슨일이에요?"

자다가 깬 서은이가 피곤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 무슨 헛짓거리가 일어냐고 있냐는듯, 그냥 귀찮은 표정. 어째 이제는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그새 테러에 적응이 된거여?

"잠깐, 주차장좀 보고 올게."

그렇게 나는 빠르게 주차장 안의 내 차로 순간이동했다.

"움직여, 움직여!!"

"물자 날러! 무기 챙겨!"

지하주차장도 이미 개판.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 쓴 사람들로 가득 찬 군용트럭이 몇 다스씩 있었다.

신입, 멈춰라. 이곳은 지옥이다.

여기가 좀 안전해보이면 이곳에 서은이와 수빈씨를 대려다 놓을려 했는데, 그건 좀 무리가 있어보인다. 매애애애애우.

뒤적뒤적.

일단 나는 내가 챙겨온 바구니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노란 마스크, 체크.

무선 이어폰이랑 연결장치. 서은이와 떨어져서도 대화하려면 이것까지 챙겨야지. 체크.

총들은... 일단 내 계획대로라면 기관총은 에바고, 권총 작은것들만 챙겼다. 일단은.

빠르게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긴 나는, 잠깐 호텔 밖을 본 뒤 다시 방으로 이동했다.

아주 신속하게 행동하여 채 일분도 안지난 상황. 빠르게 돌아온 나는 불안해보이는 서은이와, 조용히 장황을 살피는 수빈씨에게 물품들을 건냈다.

"자, 일단 권총들 챙기고... 어떻게 쓰는지 수빈씨는 알테고 서은아 너한테는 저번에 가르쳐줬지?"

밖에는 여전히 소란스럽고 고함이 난무하는 상황.

오래 있다가는 들킬 수 있으니, 빠르게 설명해보자.

"지금 테러가 밖에 보니까 막 무장한 차들이 도로를 돌아다니고 헬리콥터도 날아다니고, 좋지가 않다. 그러니까 지금은 나랑 딱 붙어있는게 좋겠어. 일단 우리도 인질인척 내려가자."

내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놈이 내 잠을 깨워?

용서할 수 없다.

1층에 가면 놈이 있을 것.

하아, 평범하게 살고 싶었건만.

나는 총을 손아귀에 쥐었다.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2달만이구만.

'빌런' 에고스틱으로 돌아갈 때다.

"오빠... 왜 이런 상황에서도 폼을 잡는 거에요?"

서은이의 황당하다는 듯한 시선에 나는 괜히 뻘줌해져서 주머니 깊숙한 곳에 총을 넣었다.

다행히 잘때 입은 옷이 그냥 검정색 츄리닝이라 주머니에 넣는거는 문제 없었다. 하늘색 구름그려진 털잠옷 입었어봐, 얼마나 무안했겠어.

총 챙기고, 이어폰 끼고, 가면은 바지 깊숙한 곳에 쑤셔박고... 그래,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자, 일단 우리도 가자."

내가 그들에게 눈길을 주며 고개를 돌리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라왔다.

방밖으로 나서니 아주 개판.

막 뭐 도자기 깨져있고 스프링클러 작동하고 난리도 아니다.

"너네는 뭐야! 빨리빨리 안움직여!"

총구를 들이밀며 으르렁거리는 괴한.

"아이고, 예 예. 갑니다 가요."

나는 살짝 비굴하게 웃는 척 하며 옆으로 지나갔다.

"빨리 안가면... 으윽!"

계속 입을 놀리는 놈이 들고있던 총을 염동력으로 조작해 개머리판으로 코를 쳐버렸다.

으악 하다니 쓰러지는 괴한.

너는 너무 말이 많았어.

다행히 워낙 난장판이라 아무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밖으로 나온 인질들은 다들 정신이 나간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누가 호텔에서 자다가 갑자기 빤쓰차림으로 밖으로 끌려나올지 알았겠어.

남자, 여자, 가족,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등 다양한 사람들이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다른 인질들과 섞여 어기적 어기적 복도를 이동하다 보니 엘리베이터 앞으로 도착했다.

"자, 계단으로 내려가라! 빨리 빨리!"

사람들을 좁은 계단으로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는 이놈들.

...여기 27층인데, 계단으로 내려가라고?

진심?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의 잔혹성에 이를 악물었다.

잘자고 있는 사람을 깨운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거의 암벽등반을 시킬려 들어?

너네는 다 죽었다.

저거를 내려갈 수는 없지.

나는 내 양쪽에 붙어있는 둘에게 속삭였다.

"꽉잡아."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부드럽게 순간이동했다.

조금... 조금 많이 힘들겠지만, 어쩔수 없다.

저걸 어느세월에 하나하나 내려가.

우리가 뿅 사라진건 다들 못봤을거야 아마.

봤으면? 아 자기가 잘못 본걸로 생각하겠지 뭐.

***

호텔의 1층 로비.

분명 몇시간 전만 해도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며, 사람들이 고풍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이곳은 갑자기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대성당처럼 넓은 이곳에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히 빈틈없이 앉아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복면을 쓴 괴한들이 총을 들고 순찰하고 있는, 살벌한 풍경.

야심한 밤. 평화로운 하루의 즐거운 마무리가 되었어야 했을 호텔은, 소란스러운 끔찍한 마무리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리고 로비 여기저기에 산재해있던 의자들을 무지성으로 쌓아 올린, 정문 쪽의 의자탑.

바리케이드로 남의 친입을 차단한 그 문을 등지고, 수북히 쌓여있는 의자들 가운데 홀로 똑바로 서있는 고급스러운 의자.

그리고 그런 의자탑 가운데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남자.

A급 빌런, 몽키스패너.

자기가 해적왕인마냥 양옆으로 꼬부라진 수염을 만지작 거리며, 입에 시가를 물로 앉아있는 놈.

"....인질들은 모두 모였나?"

그가 시가를 씹으며 저 의자산 밑에 있는 참모에게 묻자, 참모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외쳤다.

"넵! 30층까지 있는 전원, 여기 아래 확보해 놨습니다!"

"...그래, 알겠다."

한참을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앉아있던 놈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꿈틀거리는 그의 거대한 근육.

그가 일어서기 시작하자, 복면을 쓴 카메라맨이 황급히 촬영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넓고,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꽉찬 이 로비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그 남자가 일어서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내 그 육중한 덩치를 다 일으켜세운 그가, 큰 소리로 전방, 그러니까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협회와 정부에게 고한다."

묵직하게 말한 그는, 이내 숨을 흡-하고 들이마시더니 크게 외쳤다.

"지금 여기에!!!! 인질 수천명을 잡고있다!!! 지금 즉시 우리가 부르는 계좌로 현금을 입금하지 않는다면!!!! 모두 몰살하겠다!!!! 계좌번호는 일!공!공!이!-"

그렇게 놈이 폭발적인 성량으로 외치는 와중에.

갑자기, 저 숨죽인채 있는 인질들 틈사이에서, 웬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짝짝.

놈의 외침 말고는 고요한 이 공간에.

갑작스럽게 울려퍼지는 박수소리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라이브로 방송을 하고 있던 몽키스패너 그놈마저, 말하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그 박수소리일뿐.

근처에 있는 시민들이 경악과 공포에 찬 눈길로 박수를 친 미친놈을 찾아 고개를 돌릴 때.

나는 그 시선들을 받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으로는 계속 박수를 치며.

어그로가 이정도는 되야지.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