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37화 (37/328)

EP.37 폭풍전야

논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녁.

부산에서 하루 신나게 돌아다닌 우리는, 그만 잠을 자기 위해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부산에서 제일 비싸다는 5성급 호텔, 'The Signiture' 호텔.

개인적으로 이렇게나 부산의 상징적인 호텔 이름이 영어인건 애국자인 나로써는 영 마음에 안드는 일이다. 우리말로 하지. 시그니쳐대신 사인이라는 좋은 한국말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사인도 한국말이 아닌거 같기도 하고. 아니, 일단 여기서 시그니쳐는 그 뜻으로 쓰이는게 아닌가? 몰라, 일단 들어가자.

내부의 로비는 굉장히 크고 고풍스러웠다. 마치 사람 수백명은 너끈히 들어갈 것같은 공간. 수빈씨는 일단 짐 지키고 있으라 하고, 나랑 서은이는 체크인을 위해 프론트로 향했다. 예약을 서은이가 해서 서은이도 같이 갔다.

"어서오세요. 예약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 한서은으로 되어있을겁니다."

"네, 확인되셨습니다. 2708호 키 드리겠습니다."

"....방이 한개인가요?"

"네. 한방만 예약하셨네요."

"아, 네..."

나는 카드키 하나를 든 채 로비로 터덜터덜 걸어나오며 옆에 있던 서은이에게 물었다.

"서은아, 왜 방을 한개로 잡았냐?"

내 의문어린 시선에 서은이가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뭐, 돈도 아끼고 좋잖아요...."

"우리가 돈을 왜아껴? 너랑 나랑 합치면 넘쳐나는게 돈인데."

"에잇! 침대도 슈퍼킹이니까 그냥 와서 자요!"

"서은아? 심지어 침대도 하나라고?"

내가 황망히 서은이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수빈씨가 와서 서은이를 껴안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셋이 자면 좋죠 뭐. 후후, 기대되네요."

"어... 그 저희는 예전에도 한번도 셋이 잔적은 없는데...."

둘은 내 말을 안듣고 슝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버렸다.

내 가장으로써의 권위가...

***

"와, 방이 진짜 넓어요!"

호텔 방 안으로 들어온 서은이가 방방 뛰어다니며 감탄했다.

애가 늘 새초롬하게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걸 보다가, 이렇게 눈을 반짝거리며 활발히 움직이는걸 보니까 좋네.

역시 학생은 밖에 나가서 좀 뛰어놀고 그래야해, 암.

"와, 무슨 목욕탕이 온천만하네요."

화장실쪽으로 들어간 수빈씨도 눈을 휘둥그래 뜨며 말했다.

그래, 역시 5성급호텔이라 이건가?

살면서 가본 호텔중에 제일 크고 넓었다.

무슨 가구 하나도 부티나는 목재로 이루어진게, 마치 실수로 불태웠다가는 수천만원을 물어내야 할것 같은 기분.

이 호텔에서는 절대로 불장난을 하면 안될것같다. 아, 불장난은 원래 하면 안되나?

"야경은 멋지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커튼을 치웠다. 말 그대로다. 높은 층이라 그런지 부산 시내의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절경. 저 멀리 밤바다가 파도 치는 것도 보인다.

"하아암... 와, 티비 엄청 크네."

나는 침대방에 있는 티비를 보며 감탄했다. 우리 기지에 있는 티비도 이정도 사이즈는 아닌데, 하나 바꿀까?

근데 이와중에 침대는 진짜로 하나였다. 물론 사이즈는 엄청 커서 마치 침대 4개 붙여논것 같기는 한데... 굳이 침대 하나로 잡았어야 했을까?

캐리어를 끌고 어수언하게 있는 이들에게 나는 먼저 말했다.

"일단 짐정리하고, 씻고 좀 놀다가 자자."

오늘 하루종일 이리걷고 저리걸었더니 피곤해.

***

그렇게 모두가 씻고, 침대에 누웠다.

서은이가 가운데 눕고, 나랑 수빈씨가 양 옆에 누운 자세.

우리는 누워서 티비나 보며 쉬기로 했다.

뭐 재밌는거 없나 채널을 돌리고 있을때, 옆에서 휴대폰을 보던 서은이가 입을 열었다.

"오빠, 나 물 좀 가져다줘."

응? 뭐라고?

잘못들은건가?

"물."

그러나 서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번 더 말했다.

아니 서은아, 너가 손이 없니 발이 없니...

"서은아...이제는 오빠를 그렇게 부려먹으려 하다니. 크흑... 내가 너를 잘못키웠구나. 좀더 엄하게 키울껄, 아이고 아이고.."

내가 장난스래 통곡하는 소리를 내자, 서은이가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오빠 그런게 아니라! 오빠 염동력 있잖아. 그냥 그걸로 쓰윽 꺼내주면 안돼요? 손만 까딱하면 되는거 아니에요?"

아,그런거였나.

난 또 우리 서은이가 패륜아인줄 알았잖어...

"음, 아쉽지만 서은아. 그냥 너가 일어나서 가져오렴."

"힝... 알았어요."

"아니 이거 왜 그러냐면, 오빠는 힘을 아껴야돼."

"힘? 무슨뜻이에요?"

"음...내가 이걸 설명을 안해줬나? 어디보자... 너 RPG게임 하다보면 MP같은거 알지. 마나라고 해야되나? 마법사들이 마법쓸때 채워야하는 수치."

"아 그거요? 그 HP칸 아래 있는 파란 막대기?"

"그래 그거. 오빠 염동력이 그런거야. 자주 쓰다보면 힘이 딸려서 무슨 인형뽑기기계 집게손 정도의 힘밖에 안되는데, 안쓰고 가만히 있거나 차징? 뭐라고해야되지 정신집중? 하다보면 힘이 조금 더 쎄지거든. 그래서 위기 상황을 대비해 힘을 비축해 놔야 한다는거지."

실제로 마지막으로 쓴게 몇달전의 악어놈 처리할때라 그런지, 지금은 그래도 꽤 강해진 느낌이었다. 존버는 승리한다...!!

"아. 이제 알았네. 전 그냥 막쓰는줄... 갔다올게요."

그렇게 서은이는 터덜터덜 호텔 미니냉장고를 향해 갔다.

난 그동안 채널이나 돌려봐야지.

예능...뉴스...

난 그냥 뉴스나 틀었다.

솔직히 이 세계는 뉴스가 예능보다 더 재밌어.

뉴스에서 뭐 B급 빌런이~ 화염 능력자가~이러는데 재미가 없을 수가 없지.

뉴스를 틀자, 그곳에서는 금발머리를 한 여자와 하늘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의 사진이 나왔다. 어, 왼쪽은 스타더스인데. 오른쪽은 걔잖아. 북해빙녀.

뉴스에서는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섀도우워커의 혼수상태 보도 이후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우려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자, 협회 소속 A급 히어로 스타더스와 아이시클이 직접 해명에 나섰습니다. 둘은 24시간 비상체제로 있겠다고 하며, 기존과 마찬가지로 스타더스는 서울 및 수도권, 아이시클은 경북 경남 및 부산쪽을 전담한다고 밝혔습니다.]

뭐, 원래부터 스타더스는 서울 담당이고 북해빙녀는 부산담당이었으니까, 지금 저 얘기는 사실상 저 둘이 24시간 일한다는 얘기다. 불쌍하네...

북해빙녀는 아직은 아무도 이렇게 안부르고 정식 히어로명칭인 아이시클로 뉴스에 나온다. 뭐, 북해빙녀는 후반부에 북한을 얼려버리고 나서 붙은 이명이니까 당연한거겠지만은.

내가 짧게 원작을 회상하는동안, 앵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넓은데 둘 가지고 커버가 되겠느냐' 라며 우려를 표하자, 협회가 '위험을 대비해 잘때 침대 옆에 야구 방망이를 하나씩 구비해놓으라'라는 입장을 밝혀 전국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여전히 협회는 저러고 있구나.

뭐, 협회야 늘 저랬으니까 딱히 어색할것도 없다. 애초에 내 기억에 협회장부터 좀 돌았었던거 같으니...

근데 진짜 치안이 좀 불안하기는 하겠네. 나도 뭐 준비해놔야 하나?

"오빠, 또 뉴스봐요? 이럴때보면 진짜 아저씨같다니까."

갑자기 극딜을 퍼부으며 침대방으로 돌아온 서은이. 아니야, 억울해. 너한테는 이게 일상이겠지만 나는 꼭 영화보는 기분이라고.

"어? 근데 그거 물이 아니라 콜라네? 그건 어디서 났어?"

"콜라요? 미니바 열어보니까 있던데요?"

순간 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서은아! 그걸 마시면 어떡하니! 호텔 미니바 안에 음료수나 과자가 얼마나 창렬한지 알어? 너가 마시고 있는 그 콜라캔이 한 오천원 할껄?"

내가 화들짝 놀라며 말하자 서은이는 왜 이러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뭐 한잔에 오천원이든 오만원이든 어때요. 저희 돈도 많은데."

서은이의 말에 나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맞다, 우리 돈 많지?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원작지식으로 번 돈이랑 애초에 서은이가 벌어놓은 돈까지 합치면, 굉장히 많다.

근데 너무 오랫동안 소시민처럼 살아서 그런가, 그걸 까먹게 되네.

"애초에 오빠, 이 호텔만해도 얼마인데요. 여기가 부산에 있는 모든 건물들 땅값중에 제일 비쌀걸요? 여기에서 유일한 5성급 호텔인데."

"음, 그래. 많이 마셔라. 마시고 이빨은 꼭 닦고."

"나 참. 내가 애에요?"

볼을 부풀리며 나한테 항의하는 서은이. 어, 너 지금 보면 굉장히 애같아...

수빈씨는 그런 우리를 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

"하아암... 이제 졸리네. 그만 잡시다 다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놀려면 일찍 자야하는법.

그렇게 다들 양치하고 불끄고 자리에 누웠다.

다같이 눕긴 했는데 침대가 워낙 커서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근데 같이 한 이불 덮고 자니까 좀 그렇긴 하네.

누운지 얼마 안됐는데, 반대편에서 수빈씨가 조용히 쌕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잠들었나. 눕자마자 잠드네.

나도 자기위해 눈감고 누워있을때, 옆에서 같이 누워있던 서은이가 아직 안자고 있었는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 재밌었어요...."

"음? 그래, 뭐가 제일 재밌었는데?"

"바다 본것도 좋았고, 시장 구경도 재밌었고... 가끔씩은 이렇게 놀러다니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그래. 앞으로 가끔은 놀러 나오자."

놀러 나올 수 있으면 말이지.

일단 내 머릿속에 있는 테러계획들과 스타더스 성장 프로젝트는 다 완료하고...

"내일도 재밌게 놀려면 이만 자자."

"네에..."

서은이는 하품을 한번 하더니 배개에 얼굴을 파묻고 누웠다.

나도 빨리 자야지.

호텔이 참 조용하니, 잠이 금방 들것같다.

그리고 그 말대로, 나는 몇분뒤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내일 눈뜨면 해가 떠있겠지?

***

그러나 아직도 달이 어두운 도시를 비추는 늦은 밤, 호텔.

쿵.

쿵쿵쿵.

사방에서 들리는 무거운 발소리.

콰아앙-.

어디서 들리는 무언가 터지는소리.

꺄아아아악. 쨍그랑.

누군가의 비명과, 무언가 깨지는 소리.

쾅쾅쾅쾅쾅쾅.

우리방을 두들기는, 층간소음에.

""FBI OPEN UP!!!!""

그리고 방문 앞에서 들리는 고함소리까지.

"아니 시발..."

나는 자다가 말고 깨서 중얼거렸다.

대체 나한테 왜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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