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합리적 의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입니다. 오늘 낮, 빌런에 의한 비행기 테러가 있었죠. 이 떨어지는 비행기를 우리나라의 히어로가 잡아내어 모두를 살렸습니다. 자세한 소식 전재승 기자가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낮 1시. 지상파 채널 3사의 화면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예능을 보여주던 티비의 화면이 검은색이 된다. 그리고 갑자기, 어떤 비행기 내부의 모습이 화면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떨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리고 들리는 에고스틱의 목소리.
[상공 최대의 퀴즈쇼, 더 에고쇼 라이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티비에는 전에 찍힌 에고스틱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어쩐지 사악하게 웃고 있는 모습.
[지난번에도 두차례에 걸쳐 공중파 화면으로 자신의 테러현장을 송출한 에고스틱의 행각으로, 이번이 세번째 테러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들리는 에고스틱의 목소리.
[룰은 간단합니다! 총 10문제에 넌센스 퀴즈가 나갈텐데, 그거를 맞추시면 됩니다! 단 한명만이라도 모두 맞추시면, 암전히. 그리고 안전히! 비행기를 놓아드리죠. 그런데 만약 모두가 틀린다면? 펑. 폭탄이 터진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승객들. 당황하며 퀴즈를 풀고 있다.
[넌센스 퀴즈를 맞추면 살려주고, 아니면 비행기에 붙여둔 폭탄을 터트리겠다는 그의 말에 승객들은 당황속에서도 침착하게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들려오는 에고스틱의 익살맞은 목소리.
[...는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깝네요. 그럼 뭐, 쩝. 그만, 안녕히가세요!]
그와 동시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기체 내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비행기가 점점 하강하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바뀌고.
뉴스는 지상에서 저 멀리 바다를 찍는 카메라의 영상을 보여줬다.
얼핏 보기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 비행기가 비스듬히 내려가고 있는게 보인다.
그렇게, 비행기가 열심히 추락하고 있을 때.
한 작은 점이, 비행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점이 비행기와 부딪히고.
쿠웅-.
영상을 찍고있는 카메라에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진동.
앵커의 말이 이어진다.
[그렇게 추락하는 비행기를 향해, 한 인물이 날아갑니다. 그녀의 정체는 A급 히어로 스타더스. 비행기의 착륙 예상 지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비행기가 추락하자 단신으로 그것을 막기 위해 날아간겁니다.]
[원래 익히 알려져있는 그녀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했지만, 그 예측을 비웃듯이 비행기가 서서서 느려지는 모습입니다.]
영상 속 비행기는 눈에 띄게 느리게 추락하고 있는 모습이였다.
[결국 비행기는 멈춰졌고, 승객들은 전원 안전하게 구조되었습니다. 스타더스는 이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피로로 인하여 기절한 것일뿐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히어로 협회는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전재승 기자였습니다.]
그렇게 기자의 보도가 끝나고.
뉴스는 다시 서있는 여자 앵커를 비췄다.
입을 여는 그녀.
[네, 영웅. 영웅이란 무엇일까요. 정의, 구원, 희생, 믿음... 이번에 스타더스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행적은, 그야말로 영웅의 것이었습니다. 저희 방송사를 대표해, 대한민국 시민들을 지켜준 스타더스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렇게 앵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그래, 그정도 했으면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된다니까? 내려와서 바다도 보고 기분이나 풀어. 오랜만에 같이 달려보자.]
"알았어, 이번에 갈게."
[진짜? 약속! 약속이다?]
"응, 응."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휴대폰을 놓고 책상 앞 의자에 앉은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
벌써 그녀가 비행기를 홀로 막아선지 며칠이 지났다.
자신도 대체 어떻게 막았고,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지 신기한 일이었지만.
어찌됐건 중요한건 그녀가 비행기를 막아 사람들을 구했고, 그녀는 아직까지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손을 한번 주먹쥐어 말았다 풀어보았다.
힘이 이번에도 세졌다.
그것도 그전과는 다르게 훨씬.
그녀의 이례적인 성장을 보고, 협회는 아마 지금까지 자신들이 그녀의 힘을 과소판단 했다고 판단하였다.
이미 그녀에게 그만한 힘이 있는데 아무도 그걸 몰랐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그녀의 능력의 상승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향해 날라갈 때,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질주할 때.
또 그녀는 하나의 벽을 넘었다.
어째서인지, 비행할때의 속도가 그전보다 훨씬 빨라진 것이다.
협회는 그녀가 지금까지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고 설명했지만.
자신의 힘이었기에, 그녀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원래 이정도였던 것이 아니라, 능력이 성장한 것이라는걸.
그럴수가 있나- 라고 의심할게 아닌.
진짜로, 그녀의 능력이 강해졌다.
어째서?
자신의 능력으로 해치울 수 없는 상황을 만났는데, 능력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알아서 성장했다고?
그게 말이 되는가? 얼마나 편의주의적인 이야기인가.
그러나 그녀의 능력이 강해졌다는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었기에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성장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딱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녀의 현재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에고스틱, 그였다.
이번 비행기 테러 사건으로 인하여 에고스틱을 무차별적으로 안티히어로라고 추종하는 이들은 많이 사라졌다. 이번 일을 통해 그가 협회가 공인한 빌런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사람들.
비록 이번에도 민간인 피해는 없었긴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스타더스가 막지 않았으면 진정 많은 이들이 죽었을 뻔한 일이었기에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당사자인 스타더스 혼자, 대중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력하게 그저 가만히 서있었을때, 문득 온 연락.
그리고 그는 말했다.
자신보고, 저 추락하는 비행기를 막으라고.
'날아가셔서 비행기를 구해야죠.'
자신이 그걸 어찌 막냐고, 반문하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 그.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의 추락을 막으세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게 아니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이 없는 저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당신이 없으면 저는 그저 흔하디 흔한, 일개 빌런일 뿐이죠.'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갑작스러운 발언에 그녀가 살짝 얼타고 있을때.
그는 뒤이어 진심에 가득찬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했다.
'그러니 나서세요.'
'주먹을 쥐고 다리에 힘을 주고, 저 하늘로 날아 사람들을 구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당신이니까.'
그녀가 지금까지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신보다 더욱 더 자신을 믿는듯한, 신뢰하는 듯한 그의 말.
지금까지 한명이라도, 그녀를 이렇게 믿어준 사람이 있었는가?
A급으로 히어로로써 처음으로 활동할때도, 너무 어리다. 사건을 빨리빨리 해결하지 못한다 등 별로 좋지 않은 소리만 들었었다.
애초에 히어로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대중의 시선속에서 그저 묵묵히.
자신의 정의관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묵묵히 해왔을 뿐이다.
근데 처음으로 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듯이 말을 그녀의 숙적인 빌런이 했다는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말대로 됐고.
대체 자신의 뭘 믿고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의 말대로 성공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자살행위.
그 어떤말을 써도 어올릴법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처음 예고했듯이.
"에고스틱..."
홀로 있는 집안에서, 그녀는 조용히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을 믿는다고 했다.
비행기를 들라고 했다.
근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실 자신을 믿는다고 한 부분이 아니다.
자신보고 비행기를 들라고 한 것이다.
어째서?
그가 비행기를 떨어트려놓고, 그걸 자신보고 구하라고 한다?
그럼 처음부터 왜 떨어트렸는가?
단순히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죽여대는 사이코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
자신이 가만히 있었으면 그대로 떨어졌을 비행기.
그러나 그가 자신보고 구하라라고 말을 했기에, 그녀는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왜 구하라 했냐고.
넌센스퀴즈를 틀리면 비행기가 추락하는 미친 데스게임은 기획하고 싶지만, 민간인이 죽는 것은 별로 보고싶지 않다 이건가?
그래, 그럴 가능성도 있다. 있는데.
그녀의 직감은, 어째서인지 그게 아닐 것 같다고 외치고 있었다.
'당신이 없으면 저는 그저 흔하디 흔한, 일개 빌런일 뿐이죠.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그가 한 말이, 계속해서 그녀의 귀에 맴돌았다.
자신이 없으면 그는 그저 평범한 빌런이기에, 그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째서 자신이 없다고 해서 그가 평범한 빌런이 되는거지?
그의 대적자로 자신이 아닌 다른 히어로가 와도, 사실 상관 없는게 아닌가? 자신이 그의 근처에 있는 유일한 A급 히어로라 그런것인가?
그게 아닌것 같다.
그녀의 직감이 계속해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무 근거도 없고, 논리적 비약이 심한, 얼토당치도 않은 추측. 까놓고 말하자면 거의 일종의 망상이었지만.
그녀는 이번에는 그녀의 감각이 말하는 것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조사해 봐야겠어."
그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었지?
그게 결국 어떻게 귀결됐지?
그가 일으킨 모든 사건을 모아보면,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에고스틱. 그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무언가를 의도하고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심.
합리적 의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한번 추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신하루는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에고스틱. 너가 숨기고 있는게 무엇이던. 계획하고 있는게 무엇이던.
내가, 그것을 찾아내주마.
***
"쓰읍, 왜 귀가 간지럽지?"
"오빠, 귀를 안파서 그런거 아니야?"
"아니, 그건 아닌거 같은데."
대체 뭐지. 누가 내 욕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