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32화 (32/328)

EP.32 Rising Airplane

"자! 두번째 문제의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과일은... 천도복숭아였습니다! 1000도 복숭아니까, 제일 뜨겁겠죠! 하하하하하하!"

"그럼 바로 세번째 문제 나가보겠습니다. 신하가 왕과 헤어질때 하는 말을 세글자로 하면?"

"정답은 바이킹이었습니다. Bye, King! 하하하하하하!"

"네번째 문제! 소고기가 없는 나라를 다섯글자로 하면 뭘까요?"

"정답은 소고기무국이었습니다! 소고기無國! 하하하하하!"

그렇게 문제가 지속될 수록, 승객들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져만 갔다.

처음에는 꽤나 잘 맞추던 이들도, 문제가 계속될수록 하나 둘 틀리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게임은, 한번 틀리는 순간 그대로 아웃.

즉, 후반으로 가자 남아있는 사람들이 몇명 없게 되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남은거라 할 수 있다.

에고스틱 자신은 솔직히 8번째 퀴즈쯤 되면 한명도 남아있지 않을거라 예상했으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세명이나 남아있었다.

어릴때부터 유머 서적을 많이 읽었는지, 나오는 족족 다 맞춘 꼬마 남자애.

풍선껌을 씹으며, 뭔가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여고생.

소싯적에 회식할때 부하직원에게 아재개그 좀 많이 던져봤을 것 같은 아저씨 한명.

아직까지 스마트폰을 들고있는 이 셋에, 승객들의 눈빛이 집중되었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 이 셋이었기에.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긴장되는 상황에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 간절한 눈빛들이 온 사방에서 날아오니,

머리가 좀 벗겨진 아저씨는 주위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삘삘 흘리고 있었다.

물론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는 상황 파악을 못했기에 개의치 않고 다음 문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게 게임인줄 아는 모양. 옆에 있는 아이 엄마만이 애가 타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빨간 야구점퍼를 입으며 풍선껌을 씹고 있는 여고생.

대체 이 시간대에 왜 혼자서 교복을 입고 비행기를 타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턱을 괴고 무심히, 앞에서 나오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지상에서 그들이 있는 상공을 바라보는 자가 있었으니.

[...스타더스. 자네 도착했나?]

"네, 도착했습니다. 일단은."

히어로 협회 제주 지부.

그 건물 깊숙한 지하실에서, 스타더스는 통신에 응답했다.

"우웩, 욱. 우웨에에엑."

"....김자현, 괜찮냐?"

"너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우웨에엑."

옆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자는 김자현. 히어로명 섀도우워커.

스타더스와 함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3명의 A급 히어로중 한명이며, 셋 중 특정상황에서는 제일 강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 '특정상황에서만' 제일 강한 인물이다.

섀도우워커. 순수하게 밤에만 강한 히어로.

밤에 한정하여, 아무 무리없이 어디로든 그림자에 녹아 이동이 가능하다.

100km이상 이동하고 나면 아마 높은 확률로 심장마비로 사망할 에고스틱이나, 총 한방 맞았다고 빌빌거리며 겨우 100m씩 이동하던 텔레포터와는 다르다.

자신이 있는 곳이 충분히 어둡기만 하다면, 그리도 이동할 곳도 똑같이 충분히 어둡다면.

이론상 지구 반대편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물론 지구 반대편은 낮이라 이동이 안되겠지만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밤에는 몸의 반이 사실상 그림자가 되기 때문에 무적이다.

그러니까, 죽지 않는다. 물리공격이든, 생화학 공격이든 사실상 무적이니.

거기에 자신의 그림자속으로 상대를 빨아들여, 어디로든 이동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밤의 제왕. 대한민국의 범죄자들이 밤에는 무언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빌런들이 절대로 밤에는 테러를 벌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이름붙이기를 일명 그림자 납치.

그냥 신고가 접수되자마자 그곳으로 이동해 범죄자를 순식간에 감옥으로 이동시켜 버린다.

즉, 시간을 저녁으로 한정하면 세계를 기준으로 보아도 웬만한 히어로들 중에서 탑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S급 히어로에 제일 근접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 약점때문에, A급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낮에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

순간이동이던, 불사던.

빛이 있다면 다 무용지물.

밤에는 분명히 운동신경이 좋던 그의 몸이, 이상하게도 낮만 되면 급격히 약해진다.

아니, 약해지는 걸 넘어 아예 깨어있는 것도 힘들어 하기 때문에 낮에는 늘 잠만 잔다.

물론 낮에도 아예 쓸모가 없는건 아니다.

순간이동이던, 불사판정이던. 충분할 정도의 '어둠'만 있다면 어느 정도는 낮에도 사용 가능하다. 물론 혹독한 부작용이 따르겠지만.

그래서 한국 히어로 협회는 서울, 부산, 제주. 세곳의 협회 지부 아래에 지하실을 만들었다.

인공적으로 매우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 그가 그림자 이동으로 다른 히어로라도 이동시킬수 있게.

그런 이유로 잠을 잘 자고 있던 섀도우워커 김자현은 오밤중에, 가 아니라 오낮중에 깨어나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스타더스를 데리고 그림자 이동을 했던 것이다.

비록 본인은 이를 매우, 매우 마음에 안들어 하는 것 같았지만.

"우웩... 하아... 야, 이거 꼭 해야 했던거냐? 나 죽을거같다...."

"그래,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미안하다, 푹 쉬고있어라."

"하아... 죽겠네..."

그렇게 스타더스는 도착하자마자 어디론가 뛰어가버렸고.

홀로 남은 섀도우워커는, 자신을 부축하러 내려오는 직원들을 기다리며 숨을 골랐다.

"하아... 제발, 빌런새끼들아. 제발 밤에만 범죄 저지르라고..."

그의 독백은 어둠이 내려앉은 지하실 깊은 곳에 내려앉을 뿐이었다.

요즘 빌런들의 특징은, 무조건 낮에 활동하는 것이었기에.

***

[...아홉번째 문제의 정답은 덕수궁이었습니다!]

"아 씨발."

[어! 방금 누가 소리내지 않았나요? 자, 자. 전선 하나 자르겠습니다~ 아이고! 이제 두개 남았네요!]

정답을 확인한 여고생의 순간적인 욕설에, 폭탄의 선이 하나 잘려버리고 말았다. 3개중 하나가 잘려서 남은 것은 2개.

주위에 있는 승객들이 모두 그녀를 째려봤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저 꼬맹이를 믿는게 아니었는데.'

다행히 거의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 말이었기에 다른 승객들도, 에고스틱마저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 한 말이었다.

물론 승객들은 지금 전혀 다행인 상황이 아니었다. 여고생도, 그리고 꼬맹이 마져 둘 다 틀린 상황.

울상을 지으며 아쉬워하는 아이를 그의 어머니가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렇게 지금 남은건 단 한명.

머리가 벗겨진체 식은땀을 폭포수처럼 흘리고 있는, 가운데에 앉은 아저씨 한명뿐이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에고스틱의 익살맞은 웃음소리.

[아이고! 이제 한분 남았네요. 그 유명한 최후의 1인인가요? 어디보자... 김덕배씨! 네, 김덕배씨가! 현재 유일하게 앞에 9문제를 모두 맞추신 분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화들짝 놀라는 아저씨.

[그렇기에 유일하게! 10번째 질문에 도전할 수 있으신 분이죠. 지금 현재 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는 80명 모두의 목숨이 김덕배씨의 손가락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어깨가 무겁겠습니다. 김덕배씨, 지금 소감이 어떠신가요? 한마디 해보시죠.]

안그래도 긴장해 죽을려고 하는 사람한테 말까지 하라고 하니, 슬픈 중년 김덕배씨는 지금 거의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주위 사람들 모두의 눈빛을 받으며, 김덕배씨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 그. 참, 참으로 채 채 책임이 막중하고-"

[이럴수가! 제가 아까 분명 누구라도 말소리 내면 전선 하나 자른다고 하지 않았나요? 근데 왜 입을 열고 그러시나요? 전선 하나 더 자르겠습니다.]

그러더니, 진짜로 비행기 어딘가에 붙어있는 선이 툭, 하고 잘려버렸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좌석 앞의 화면을 통해 보게 된 사람들.

"!!!.....!"

순간적으로 어이를 잃은 그들은 분통을 터트리려했지만.

이제는 전선이 정말로 하나 남은 탓에,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표정으로 분노를 표할수 밖에 없었다.

[와ㄷㄷ 진짜 악마네]

[이거완전 움직이면 쏜다! 손들어! 이러고 '어, 왜 손 움직임?'하고 쏘는거랑 비슷한거 아니냐ㅋㅋㅋ]

[이게... 에고스틱? 내가 지금까지 알던 망고스틱은 어디에?]

[???: 정신이 좀 들어?]

웬만하면 에고스틱에 호의적이던 채팅창도 그 악랄함에 혀를 내두를 때.

에고스틱만이,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를 키울 뿐이었다.

[한마디를 왜 말로 합니까? 바디랭기쥐로 하면 되지. 수화라던가. 나 참, 센스가 없네.]

오히려 자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는 에고스틱의 말에, 사람들은 끓어오르다가, 문득 차분해졌다.

다들 분통을 터트리다 알아채고야 만 것이다.

폭탄의 폭발을 막을 선이 하나 남은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애초에 마지막 퀴즈를 틀린다면, 그대로 폭탄이 터진다는걸.

숨막힐듯한 싸늘함이 가득한 이곳.

오직 스피커의 목소리만이, 밝게 마지막 질문을 건낼 뿐이었다.

[자! 드디의 10번째, 마지막 문제입니다! 이걸 맞추시면 모두들 그냥 비행기에서 안전히 내리시면 되고요, 틀린다면... 아시죠? 자, 문제 들어갑니다. 어린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기름은?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3 : 00]

[2 : 59]

[2 : 58]

...

그렇게 마지막 문제가 던져지고.

모두의 이목이 땀흘리는 중년 아저씨에게 집중됐다.

정답을 전혀 유추할 수 없는 사람들도

정답을 어느정도 알겠는 사람들도

정답을 확신하는 사람들도, 차마 아무 말도 못하는 채.

그저 그 중년의 아저씨만을, 간절히.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바라볼 뿐이었다.

"...."

그렇게 붉어진 얼굴의 아저씨는, 한참을 고민했고.

[0 : 03]

[0 : 02]

[0 : 01]

마지막 순간, 정답을 썼다.

[삼, 이, 일. 땡! 자, 정답을 맞춰보겠습니다. 어디보자, 아이유라고 쓰셨네요. 자, 보자 보자. 네! 정답은...]

숨 막힐듯한 긴장감.

비행기 위 승객들도.

지상에서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가 침을 삼키며 기다린 끝에, 정답이 발표됐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기름은...오월오일(5월 Oil)이었습니다! 아이유는,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깝네요. 그럼 뭐, 쩝.]

에고스틱은 한번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만, 안녕히가세요!]

쾅.

"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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