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31화 (31/328)

EP.31 퀴즈쇼

"나는 살짝 그런게 좋더라."

아이스티를 마시며, 나는 말을 이었다. 음. 달달하네.

"살짝... 분위기와 상황의 대비가 주는 언밸런스함? 예를 들어, 이런거지. 막 동화 속 세상이야. 왕자와 공주가 하하 호호 웃으며 살고 있어. 둘이 숲속 동물 친구들을 모아서 연회를 열기로 했어."

"여기까지만 들으면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잖아? 근데 여기서 변주를 주는거지. 멋진 왕자랑, 아름다운 공주랑, 용맹한 사자와, 귀여운 토끼랑, 느긋한 거북이가 모여서. 함께... 음. 뭐, 맞담배를 피는거지."

"아니 오빠, 그게 무슨 엽기적인 소리에요?"

서은이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게 기겁하며 볼 거는 없잖아...

"저는 무슨 얘기인 줄 알거같아요."

"수빈언니?"

서은이가 마치 배신당했다는 듯 수빈씨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수빈씨는 당황하며 그게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다인씨가 하고 싶은 말이 무슨 얘기인 줄 알것 같다는 거야. 살짝 잔혹동화? 그런 느낌 얘기하시는거죠?"

"음, 맞아요. 비슷한 느낌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정확히는, 그것보다는 뭐랄까... 오징어 게임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에 가까운 거랄까.

오징어게임, 구슬치기, 달고나 뽑기등.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고, 듣기만 해도 동심을 일으키는 그런 것.

그런 것들이 즐거운 게임을 위해 사용되는게 아닌, 생존과 죽음을 위해 사용될때의 그 괴리감.

달고나를 제대로 뽑으면 선물로 달고나를 주는게 아닌, 달고나를 제대로 뽑지 못하면 끔찍하게 죽는. 그런 룰. 그런 룰이 있는 게임은 얼마나 잔혹하면서, 동시에 웃기고 친숙하기에. 큰 괴리감을 준다.

...이 얘기를 둘에게 해봤자 횡설수설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는 타박을 듣고 말거다. 서은이는 직접적으로, 수빈씨는 눈빛으로.

그리고 사실, 이해시키기도 애매한게 이 세계에서는 그 오징어 게임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가 없다. 국뽕요소가 하나 줄어들다니, 애국자인 나로써는 참 슬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테러가 그런거라고요?"

"맞습니다. 뭐든지 테러가 컨셉이 확실해야죠. 딜레마는 2번이나 썼으니, 이번에는 잔혹동화 컨셉으로 갈겁니다."

***

[THE EGO SHOW]

[Now Live]

고도 25000피트.

외부와는 전화, 인터넷 등 모든 통신이 단절된.

하늘 위의 밀폐된 공간.

대략 80명 정도의 사람이 타 있는 이곳은.

숨소리만이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의 말소리만 없어졌을 뿐이다.

사람들은 말없이, 조용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

[상공 최대의 퀴즈쇼, 더 에고쇼 라이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자, 그럼 게임을 시작해 보죠!]

그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뉴스에서 저녁을 먹으며 흘려들었던 목소리가.

자신들이 유튜브로 낄낄대면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이렇게도, 공포스러운 것일지는.

분명 방송에서 한번이라도 들었던 목소리였다.

약간 경박하면서도, 동시에 유쾌하고, 그러면서도 사람을 저절로 집중하게 만드는 그런 목소리.

그런데 어째서, 지금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이다지도 사람에게 원초적 공포를 주는가.

그들은 이제서야 지금까지 에고스틱이 해온 일들을 새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대규모 테러만 2회.

직접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사람들만 해도 10명 이상.

협회 선정, '대단히 잔혹하며 도주 가능성이 높은' A급 빌런.

다들 웃으며 망고스틱 망고스틱 그랬지만.

현실로 닥치고 나서야,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에고스틱이 빌런이라고 불리는지를.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그의 말은,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게임을 진행하는듯 하였지만.

그 안의 내용은, 잔혹하기 그지 없었다.

[자, 게임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1번. 절대 소리를 내지 말것! 누구라도 소리를 내는 순간, 폭탄에 부착된 3개의 전선중 하나가 저절로 잘립니다! 다 잘리게 되면... 아시죠?]

[2번.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말 것! 컨닝은 범죄입니다 범죄. 어떠한 방식으로도 서로의 소통이 들키면... 이건 뭐, 그냥 바로 폭파시킬게요. 퀴즈쇼는 다음에 언제든 하면 되니까.]

계속해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발언들에, 비행기에 탄 사람들의 표정이 창백히 질렸다.

어떤 이들은 침을 삼키고, 누구는 눈물을 보였으며, 신을 향해 눈을 감고 기도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피커에서는 계속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그러면 이제 핵심내용인 3번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화면이 바뀐 좌석 앞 디스플레이 장치.

80년대 미국 카툰풍의 흑백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오며, 영어로 글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EGO's Funny Non-Sense Quiz]

'넌센스 퀴즈...?'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에 답하듯, 스피커에서 나오는 에고스틱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룰은 간단합니다! 총 10문제에 넌센스 퀴즈가 나갈텐데, 그거를 맞추시면 됩니다! 단 한명만이라도 모두 맞추시면, 얌전히. 그리고 안전히! 비행기를 놓아드리죠. 그런데 만약 모두가 틀린다면? 펑. 폭탄이 터진답니다!]

듣기에는 너무나도 간단해보이는 얘기였다.

넌센스 퀴즈 10문제를 맞춰라?

마치 초등학생들끼리 서로 놀게 없을때 할 만한 놀이.

어른들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유치한 놀이.

그러나 판돈으로 목숨이 걸려 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넌센스 퀴즈는 1번부터 제가 직접! 읽어드릴거고 여러분 앞에 있는 디스플레이에서도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정답은 어디로 보내면 되냐고요? 여러분 휴대폰에 문자 앱을 보시면 됩니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와있죠?]

그의 말을 끝으로 사람들이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보자, 실제로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THE EGO SHOW 정답은 여기로!]

처음번호로 온, 문자 하나.

대체 전파도 안터지는 비행기에서 어떻게 문자를 보냈는지 모르겠지만은, 어쨌든 그것은 분명히 와있었다.

다시 안내방송이 들려오는 스피커.

[문제가 나가고, 3분안에 답을 써서 문자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와, 3분! 무려 컵라면 하나가 다 익을 시간. 참 길다, 그죠? 왜, 컵라면에 물 부어놓고 3분 기다리면 먹을 수 있을때까지 체감상 한참을 기다려야 하잖아요. 여러분들을 위해 좀 넉넉히 줬습니다. 하하.]

'뭐가 넉넉하냐 이 미친놈아!'

사람들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소리를 내는 순간, 폭탄의 전선을 터트리겠다는 에고스틱의 약속이 있었기에.

[한문제라도 틀리면 바로 아웃! 재도전 기회는 없습니다. 첫번째 문제에서 틀리면, 남은 아홉 문제의 답을 알아도 아무 의미가 없겠죠? 그래도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한명은 다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있겠죠. 전 믿습니다!]

듣기에도 굉장히 불합리해 보이는 규칙.

그러나, 그들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사람들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스피커에서 경쾌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경쾌하게 들리는 에고스틱의 외침.

[자!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제 1회 에고쇼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문제! 타이타닉의 구명보트에는 몇명이 탈 수 있을까요?]

그와 동시에, 그 질문이 그대로 승객들의 좌석 앞 디스플레이에 떠올랐다.

[첫번째 문제. 타이타닉의 구명보트에는 몇명이 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아래, 굵은 빨간색 글자로 카운트다운되기 시작한 숫자.

[3 : 00]

[2 : 59]

[2 : 58]

사람들은 서둘러, 휴대폰으로 답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시간이 다 지나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에고스틱의 말이 다시 방송되기 시작했다.

[네! 첫번째 문제의 제한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정답은.... 구명 보트기에 9명! 이었습니다. 야, 좀 쉬운걸로 했더니 거의 다 맞추셨네요. 역시 해학의 민족 한국인! 멋집니다.]

[9명]이라고 문자를 보낸 이들에게는 [정답!]이라는 문자가 수신되었다.

몇몇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몇몇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고스틱의 방송은 계속되었다.

[자! 그럼 바로 두번째 질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세상에서 뜨거운 과일은 무엇일까요?]....

***

[지옥의 퀴즈쇼ㄷㄷㄷㄷ]

[와 내가 저기 있었으면 오줌 지렸을듯]

[에고스틱 ㄹㅇ 빌런 맞는데 히어로라고 올려치기 한 사람 누구냐? 저사람들 다 죽게 생겼구만]

[팩트) 나만 아니면 된다]

[와 근데 비행기에 폭탄은 어떻게 설치한거임? 기본적으로 폭발물 검사 철저히 하지 않나?]

[나도 몰?루]

[기장은 뭐하고 있는거냐ㅇㅇ... 비상착륙 하면 일되나?]

[그랬다가는 바로 에고좌가 시밤쾅 해버릴거 같은데.]

"협회장님, 범인이 저 상공에서 저러고 있을때, 저희가 할 수 있는게 뭐죠?"

"우린 쓸모가 없다."

협회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방송을 보며, 말을 이었다.

"가서 팝콘이나 가져와라 스타더스."

스타더스는 옆에 있던 팝콘을 협회장 얼굴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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