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 더 테러 라이브
서울에는 참 집이 많다.
길거리를 보다보면 나오는게 아파트, 아파트...
물론 단독주택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지상을 빼곡히 채운 집들중 하나.
평범해 보이는 단독주택이 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주택.
만약 당신이 그 집 앞에서 문에서 누가 나오는지를 보면.
주로 여자 한명이 왔다갔다 하고, 가끔씩 남자랑 여자아이도 나오는 걸 볼 수 있을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가정집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만약 안으로 들어간다면.
뭔가 이상한걸 느낄 수 있을거다.
왜 안에 있는 문도 비밀번호로 잠겨있지?
그리고 그 문도 열어서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무언가 이상한 걸 느낄 수 있을거다.
그 집의 안에는 텅 비어있으니까.
가구가 몇개 있기는 하지만, 한번도 사용 안한 듯 소복히 먼지가 쌓여있다.
마치, 사람이 한번도 살지 않았던 것 처럼.
근데 그러면, 왔다갔다 하던 그 남자와 여자 둘은 무엇이란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당신은, 등 뒤로 뭔가 소름이 돋는걸 느끼고나서.
귀신의 집이야 이렇게 소리지르며 도망칠지도 모른다.
근데 사실 여기가 뭐 귀신이 사는건 아니고.
집이 지하에 있을 뿐이다.
저 깊은 지하에.
지상에서 출발해 수백미터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아주아주 넓은 공간이 나온다.
수십개의 방에, 온갖 첨단기기들과 편의시설로 무장한 이곳.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빌런 1위.
10대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인물 1위.
포부스 선정 이 남자가 대단하다 1위.
수십만의 팬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악당 에고스틱이 살고 있는 비밀의 지하기지.
일명 에고-베이스다.
그리고 이곳의 수장인 나는.
현재 계획을 짜고 있었다.
"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봐라!"
집 어딘가에 있는 수많은 방 중 하나.
그곳 벽면에 붙여진 커다란 칠판에는.
[제 3차 대규모 테러 관련 회의]라고 써져 있었다.
내가 썼다.
"이번 테러의 목적이 뭐에요. 인지도는 이미 충분하니까, 위압감을 높이겠다고?"
"그래. 지금 내가 착하다고 믿는, 마치 나를 히어로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거 같은데, 그 생각을 고쳐줄려는거지. 어디까지나 나를, 충동적이고 나 꼴리는데로 하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어... 사실 어느정도는 이미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거 같긴 한데... 알았어요. 근데 그러면 그냥 아무나 붙잡고 학살하면 되는거 아닌가?"
"서은아!"
나는 화들짝 놀라서 서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내가 애를 잘못키웠어!
...생각해보면, 서은이는 원래 빌런이기는 했다. 나랑 살면서 성격이 많이 유들해진거지. 원작에서는 그냥 대한민국을 멸망시킬까 말까 했던 애니까.
어쨌든, 이런건 미리미리 교육시켜야 한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민간인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막 함부로 죽일려고 하고 그러면 안돼."
"아니, 무슨 조건이 이렇게 까다로워요? 빌런이라면서 사망자 0명인게 더 웃긴데."
"어허, 다른 빌런들은 몇명 내가 죽였다. 당장 수빈씨 친구들만 해도 내 손으로 처리했는데?"
그렇게 말하자 순간 수빈씨가 흠짓하는게 보였다.
미안해요 수빈씨, 머그컵든 손은 떨지 말고.
"흠... 일단 알겠어요. 그러면 감옥에서 범죄자를 학살하는건 어때요? 민간인도 아닌데."
"어... 음..."
반박할 말이 없네?
아니다, 있네.
"서은아, 근데 요즘 사람들 반응을 보면 그랬다가는 오히려 인기가 더 오를수도 있어. 사이다라고."
"그런가..."
"그리고 뭔가 좀, 그냥 무작정 벌이는 테러가 아니라. 막 잘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구멍이 있을거 같으면서도? 결국 못 빠져나가서 모두가 죽게 생기는. 그런 상황이 있어야돼. 지금까지 내가 벌인 것들을 봐봐. 죄수의 딜레마. 트롤리 딜레마. 물론 이렇게 딜레마 까지는 아니여도, 좀 머리써야 하는 그런 테러여야 한다는거지."
"흐음.. 어렵네요."
그치? 어렵지?
이게 쉬운게 아니다. 대체 무슨 테러를 계획해야돼?
나는 원래 평범한 소시민이었다고.
막 혼자 집에서 무슨 테러를 일으킬까 이런 생각을 평소에 한적이 없다는 말이다.
서은이는 머리를 끙끙거리며 열심히 다음 테러를 구상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수빈씨도 조용히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원래 앞에 테러 2개는 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했어서, 둘은 그냥 실행만 하면 됐었는데. 이제는 내가 아이디어가 다 떨어져가지고 집단 지성의 힘이라도 써봐야 한다. 도와줘!
아, 근데 이걸 말 안했네.
"아,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히어로가 딱 나타나서 구해줄 수 있는 상황이어야해. 모두가 죽기 일보 직전에, 히어로가 갑자기 탁 나와서 구해주는거지."
"아 진짜! 뭐 이렇게 조건이 많아요!"
서은이는 그 말까지 듣자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짜증을 왈칵 냈고, 조용히 듣던 수빈씨는 처음으로 한마디를 했다.
"...그리고 그 히어로는, 또 스타더스인가요?"
"네? 뭐, 그렇죠."
"흐음..."
그녀는 거기까지 듣더니 들고있던 머그잔에 물을 한모금 마셨다.
호룩-.
"그놈의 스타더스, 스타더스. 아주 우리랑 살지 말고 스타더스랑 살림 차리지 그래요? 누가 보면 이미 결혼했겠어."
서은이가 얼굴에 턱을 괴고 빈정거렸다.
뭔가 부루퉁해 보이는 얼굴.
어, 나 이거 육아서적에서 본적 있어.
내가 나름 한때 선생님을 꿈꾸었던 몸.
교사지망생의 필독서, 에밀에서 뭐 비슷한걸 본 적 있는거 같다.
애는 부모가 자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 질투한다고 했었나?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라고 했던 것 같았다.
"아유, 서은아. 걔는 그냥 내 반대포지션으로 나 자신을 띄울려고 부르는거지, 내가 걔를 위해 뭔가를 하는거겠니? 당연히 나는 우리 식구랑 서은이가 먼저지."
"흥."
삐졌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는 서은이었지만, 입꼬리 올라가는거 다 보이거든?
애 키우는게 쉬운게 아니다...
아니, 중3이면 애도 아니지 않나?
근데 사실 서은아.
다 스타더스를 위해서 하는게 맞긴 해...
알려지면 피바람이 불 진실은 저 밑 깊숙한 곳에 꾹꾹 숨기고, 우리는 계속 회의나 이어갔다.
그렇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놓던 중에, 수빈씨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지금까지 하신 테러가. 배, 기차. 2개 맞으시죠?"
"그렇죠?"
"그럼 간단하네요. 다음에는 비행기에 테러해요."
"비행기요?"
비행기라.
음. 배, 기차, 비행기까지 하면.
이동수단 3부작인가?
나쁘지 않은데?
"나쁘지 않네요. 근데 비행기를 어떻게 떨어트리죠? 그러니까, 떨어트리는 건 쉬운데. 그 전에 약간 딜레마나 아니면 똘끼있는 쇼를 보여주고 떨어트려야 한다는 거죠. 또 막 모두가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도 줘야 하고."
"아,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요?"
그렇게 수빈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거기까지 들은 나는.
"수빈씨, 천재에요?"
"하하..."
그렇게 우리의 다음 테러가 결정됐다.
내가 스타더스한테 테러를 다음달에 하겠다고 예고했으니.
그 전까지, 한번 완벽히 준비해볼까.
***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
국내선이라 작은 비행기이지만, 그래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짧은 비행시간동안 사람들은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쪽잠을 잔다던지, 책을 읽는다던지, 아니면 좌석 앞에 달려있는 디스플레이로 영화를 본다던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그랬었다.
갑자기 비행기의 불이 모두 꺼지기 전까지는.
"...?"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좌석 앞의 디스플레이가 모두 켜지고, 모두에게 같은 영상이 송출되자.
그때서야,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THE EGO SHOW]
[Now Live]
"이거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시청하고 있던 영화가 끊긴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던 사람들도, 갑자기 자신의 앞에 있던 디스플레이가 켜지자 뭔일인가 하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원래는 안내방송 용도로 쓰이는 스피커에서,
기장이 아닌. 다른 누구가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고도 25000피트에서 일어나는 지상 최대의 퀴즈쇼. 아니! 상공 최대의 퀴즈쇼, 더 에고쇼 라이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갑작스럽게 스피커에서 들리는 한 남성의 목소리.
그의 말이 끝나자, 마치 개그프로처럼 스피커에서 박수소리도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와-. 짝짝짝짝짝.]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 밝은 소리가, 싸늘해진 비행기 소리와 대비됐다.
"아니, 이게 지금 뭐하자는거야? 승무원! 승무원 어딨어!"
그러나 어떤 승무원도 오지 않았다.
드디어 승객들이, 무언가 잘못됐다는걸 느꼈을때.
안내방송에서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자, 자! 뭐 일단, 쇼의 극적긴장감을 위해 비행기에는 폭탄이 부착되어 있답니다! 여러분이 허튼 짓을 하면... 펑! 아이고, 조심하는게 좋겠죠?]
이미 그의 말이 끝나기 전부터 사방에서는 비명이 가득했다. 에고스틱을 한번이라도 들은 자라면, 그가 허튼 말을 하지 않는다는걸 알기에.
수많은 비명 속에서도, 스피커에서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자, 게임을 시작해 보죠!]
***
[스타더스, 에고스틱이 킨 방송 보고있나? 놈이 또 테러를...]
"네, 지금 보고 있습니다."
저놈이 또 무슨 짓을 하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