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9화 (29/328)

EP.29 징검다리

3일간 기절해있다 깨어난 후.

깨어나자 마자 나를 반긴 건 눈물을 펑펑 흘리는 서은이었다.

'오빠 진짜 미쳤어요!' 이러면서 나를 퍽퍽 때리는 서은이. 아니, 서은아. 진짜 아파! 그만해!

대충 일어나서 좀 달래면서 느낀건데, 애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아무래도 갑자기 3일동안 시체처럼 쓰러져 있으니까 많이 걱정이 되었나보지.

그래도 나 쓰러져 있다가 깨어났다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서은이의 모습에 조금 감동받았다. 그래도 같이 산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를 위해 눈물도 흘려주고. 같이 게임하고 논게 효과가 있구나!

그래서 눈물 흘리며 앞으로는 몸관리 하라고 말하는 서은이한테 쓰게 웃으며, 앞으로는 주의하겠다고 다짐했다. 뭐, 다짐했다고 해서 앞으로는 안 이럴꺼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야.

깨어나서 서은이를 달래주고, 간병을 해준 수빈씨한테 감사인사를 건넨 뒤 내가 바로 한 것은 여론조사였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했지?

그리고 스타더스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을려나.

음, 그리고 나온 결과로는 나의 인기가 현재 절정이라는 분석이었다. 국민들이 빌런인 나를 오히려 히어로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기사가 많이 보였다.

흠... 역시, 이렇게 되나.

내가 꼴받아서 그냥 죽였다는게, 오히려 호감 요소가 되었다. 시원하다나.

그리고 충격적인 것은 크로코다일맨 이놈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독가스 맞고도 안죽었다고? 물론 혹시나 해서 좀 약한걸 쓰기는 했는데... 그래도 그걸 버틸줄은 몰랐다. 하기는, 원작에서도 처리하는데 애 좀 먹은 놈이니까.

현재 악어화 상태에서 다시 평범한 남자로 돌아왔다는 그는, 치료후 동부 초상 능력자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음, 이거는 어째 원작대로 흘러갔네.

동부 초상 능력자 구치소. 이스트 카르케리스라고 한다. 말 그대로 초능력을 가진 빌런들을 모아서 수감하는 곳.

히어로 협회와 마찬가지로, 각 국가마다 일명 '카르케리스'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카르케리스, 라틴어로 감옥이라는 뜻이다. 최초의 초상능력자 전용 구금소 '아메리카 카르케리스'가 미국에서 세워진 직후, 그 이후로 다른 국가에서 세워지는 모든 초상능력자용 감옥은 카르케리스라고 쓴다.

각 국가별 최고 보안 등급의 시설로, 수감자별로 각자의 특성에 맞게 능력을 제한하는 온갖 도구들이 깔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해바다 무인도에 세워져 있는데,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으로 지켜져있는 곳이다. 물론, 원작에서는 서은이가 그냥 해킹해서 털어버렸지만.

어쨌든 놈이 거기 살아서 갇혔다고 하니, 나중에 써먹을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가 좀 멍청하니 써먹기 쉬울거 같기도 하니. 근데 그게 악어화 상태에만 그런건지 인간일때도 그런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긴 하다만.

하여튼, 나는 며칠 또 놀고 쉬었다.

애초에 나는 소시민이라고.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나면 번아웃이 와서 조금 쉬어줘야 한다.

...어째 노는동안 서은이가 내 옆에 붙어있을 때가 전보다 조금 더 많아진거 같기는 하다만. 애가 왜이래?

물론, 매일 누워서 뒹굴거리며 논거는 아니다. 가끔씩은 서은이와 수빈씨에게 대한민국 히어로 사회에 대해 알려주기도 한다. 둘다 방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기술만 연구했는지, 시사 이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게 많아서.

"자, 오늘은 대한민국의 히어로 현실에 대해 알아봅시다. 수빈씨, 대중이 히어로에 대한 인식이 어떨거 같나요?"

"음... 좋겠죠? 아무래도 자기를 구해주는 사람이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좀 틀려요. 자, 예를 들어 봅시다. 가족이 빌런한테 습격당했어요. 그래서 바로 히어로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히어로가 오기도 전에 빌런이 이미 죽이고 도망간거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누구를 원망하는줄 아십니까?"

"당연히 빌런을 원망하는거 아니에요?"

"아, 물론 빌런도 원망하죠. 빌런도 원망하지만, 히어로도 빌런만큼 원망합니다. 너가 늦게 온 바람에 우리 가족이 죽었다고요."

" ...근데 그게 히어로 잘못은 아니지 않나요? 자기가 늦게 오고 싶어서 늦게 온것도 아닐텐데."

"그렇죠. 그런데 시민들은 그거 신경 안씁니다. 그냥 너가 빨리 올 수 있었는데 너가 밍기적대는 바람에 죽었다. 이러면서 원망한다는 거죠. 뭐 이게 다가 아니기는 한데, 어쨌든 이런 비슷한 것들이 모여서 히어로에 대한 불신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히어로를 그리 신뢰하지 않죠."

말을 너무 길게 했더니 목이 아파.

나는 옆에 뜯어논 패트병을 들어 한입 마셨다.

"입 대고 마시지 마요."

...서은이에 타박을 들으며 말이다. 아니, 서은아. 휴대폰 보고 있는줄 알았는데 내쪽에는 언제 또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니?

서은이가 바라보길레 결국 입을 떼고 마셨다. 아니, 너는 너 물 마시면 되잖아...

목을 축인 나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히어로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거죠. 아니, 목숨걸고 일하는 것도 서러운데 욕까지 얻어먹으니 말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히어로가 몇명 없어서, 유사시에 바로 현장에 누가 가기에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딜레이가 생길수 밖에 없죠. 그런데 욕을 먹는다, 이말입니다."

"아하..."

수빈씨는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마트폰을 보고있던 서은이도 이쪽을 향해 귀를 쫑긋하고 있는걸 보니, 내가 역시 설명을 잘하나?

사실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만 해도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물론 지금은 다른 할게 너무 많고, 애초에 신분증도 없어서 뭘 할 수가 없다.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신분세탁하고 선생님이라도 해볼까.

어쨌든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게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이 된다 이말입니다. 히어로의 불신에 지친 히어로들이 히어로를 때려친다. 히어로 수가 감소한다. 히어로 수가 적어져 범죄 현장에 대처하는 속도가 더욱 늦어진다. 그러면 히어로들에 대한 불신이 더욱 쌓인다... 악순환입니다. 사실상 B, C급 히어로들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가 있죠. 나라 치안이 A급 3명에 달린 상황인겁니다 지금."

"경찰이라도 도우면 좋았을텐데, 법으로 경찰은 초상능력을 사용하는 범죄가 발생했을 때에는 출동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사실상 빌런 혼자 총든 경찰들 따위는 싹 쓸어버릴 수 있어서, 가봤자 도움이 안된다 이거죠."

그러니까 결론은 이거다.

개판.

히어로는 천시받고, 빌런들은 갈수록 많아지는 사회.

히어로 숫자 대비 빌런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

스타더스가 왜 그렇게 혼자 구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그래서, 오빠가 빌런들을 제거한다는 거에요? 아주 다크 히어로 납셨네?"

가만히 듣고 있던 서은이가 빈정거렸다. 크흑, 서은아. 요 몇일간은 좀 잘 대해주더니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구나.

"....다크 히어로 까지는 아니고. 그냥 대한민국의 명운에 관심이 좀 많다고 할 수 있지."

"그냥 오빠가 스타더스 좋아해서 그 여자 일 대신해 주는게 아니라요?"

"어허, 서은아. 그 여자라니. 말을 이쁘게 해야지."

근데 맞긴 해.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았니?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걸 바로 인정하는건 하수.

나는 태연하게, 상황을 넘겼다.

"그게 아니라, 그냥 내 마음에 안들어서..."

"제가 보기에도 다인씨는 스타더스에게 관심이 매우 많은거 같던데요?"

수빈씨가 내 말을 끊고 반론을 제시했다.

수빈씨가 내 말을 끊었어. 그 착하던 수빈씨가.

내가 말 한마디 하면 겁에 질려 눈물을 글썽이던 순박하던 수빈씨는 어디가고...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갑작스러운 두 여자의 시선.

갑자기 나를 추궁하는 듯한 그 눈길에, 나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자, 자. 제가 뭐, 관심이 많다? 네,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근데 그게 뭐 별다른 의미가 아니라, 이제 그 히어로랄게 사실상 스타더스밖에 없으니. 이게 또 빌런이란게 히어로가 있어야 성립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뭐야. 그래, 대비구조. 이제 아치에너미로 스타더스를 설정을 한거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명을 하고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니, 내가 이걸 왜 변명하고 있지?

여전히 서은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서은아, 대체 왜 그러니. 나는 억울하단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제 또 슬슬 테러나 기획해 봅시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서은이의 관심이 스타더스가 아닌 딴 곳으로 옮겨졌다.

"테러? 또?"

"그래. 지금 뭐랄까. 내 호감도가 너무 올라갔어. 정확히는 호감도가 아니라 기대감이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그걸 다시 낮출려면 대규모 테러뿐이다."

"하아... 그걸 또 언제 준비해."

"걱정하지 마렴. 이번 테러 하고 나면 한동안 쉴꺼니까."

서은이의 투정거림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쉰다고? 진짜? 그럼 우리 여행도 가나?"

"여행?"

서은이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자, 나도 모르게 긍정하고 말았다.

"그래, 여행, 좋지. 끝나고 가자."

"아싸! 약속한거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슝 달려가는 서은이.

아니, 테러 준비하자니까... 지금 설마 여행 준비하러 가는 거는 아니지?

수빈씨는 그런 우리를 보며 그저 작게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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