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 그녀의 결심
"언니... 그냥 내가 들까?"
"아니! 내가 딴 건데 내가 들어야지, 할 수 있어."
신하루는 선배가 10단 아이스크림콘을 위태롭게 들고 있는 걸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저거 저러다 흘릴 거 같은데.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기어코 중심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아이스크림콘.
"어어어... 안 돼!"
채현언니의 비명과 함께, 옆에 있는 남자에게로 쓰러지는 아이스크림.
그렇게 꼼짝없이 옆에 있던 남자에게 아이스크림이 묻나 했으나.
이변이 일어났다.
"흐아앗!"
아이스크림이 떨어짐과 동시에 남자가 그걸 굴러서 피한 것.
실로 엄청난 반사신경이었다. 대체 왜 굴러야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빠!"
"다인씨!"
그 남자의 옆에 서 있던 두 여자가 그에게 황급히 다가왔다.
남자의 이름이 다인이었구나.
남자는 비록 먼지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옷을 탈탈털며 일어났다.
"아, 괜찮아. 괜찮아."
물론 표정만 평온하지, 옷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먼지투성이가 된 그의 몸.
"아이고... 괜찮으세요? 너무 죄송해요. 제가, 제가 덜령여서... 흑."
눈물을 글썽이며 그에게 다가가는 채현언니. 자신도 그녀와 같은 일행이었기에, 신하루도 당황했지만, 그에게 다가 갔다.
자신들이 다가오자, 너스레를 떨며 웃는 그 남자.
"괜찮습니다. 사람이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죠. 제가 좀 유난을 떨었네요. 하하, 살짝만 피할걸."
"흑, 그, 그래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오히려 남자가 울기 시작하는 그녀를 달래주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신하루도 괜히 미안해졌다. 자신이 나서서 잡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고 정말 착한 남자에게 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평범한 사람이었어도 불같이 화냈을 상황일 텐데, 저렇게 태연히 넘어가 주는 사람이 있다니.
....뭐, 저 남자만 태연하고. 옆에 있는 여자 둘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사실 저게 정상이기는 하다. 저렇게 유들유들하게 넘어가 주는 남자가 특이한 거지.
"자, 서은아. 이만 갈까...?"
남자는 어떠한 배상도 필요 없다는 듯, 일행을 챙겨 자리를 뜨려고 했다. 어찌 보면 서두르는 듯 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렇게 넘어갈 채현언니가 아니다. 어떻게든 보상이라도 해주기 위해 언니가 손을 뻗는 그 순간.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평범한 대학생 신하루이지만, 동시에 히어로 스타더스였기 때문에.
그녀의 상황판단은 빨랐다.
테러다.
높은 확률로, 빌런의 테러.
쾅-. 쾅-.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판단은 빨랐고, 행동도 빨랐다.
일단, 채현 언니를 대피시키는 게 우선이다.
"언니, 따라와요!"
"어? 어..?"
연속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언니의 손을 잡고, 그녀는 소리가 난 곳의 반대편으로 달렸다.
현재는 스타더스로의 힘을 어느 정도 개방한 상태이기에, 남들과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현장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물론 손이 잡힌채 끌려오는 채현은 죽을 맛이었지만.
"꺄아아아아악!"
다 같이 반대편으로 뛰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그녀들도 껴서 함께 달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들리는 소리.
거리가 꽤 됨에도, 여기까지 들리는 엄청난 굉음이었다.
"스타더스!!!!! 스타더스 나와라!!!!!!!"
순간, 달리던 그녀의 몸이 살짝 굳었다.
손을 붙잡힌채 따라가는 것맛으로도 눈이 반쯤 풀린 김채현은 전혀 못 느낄 정도의, 짧은 순간 굳은 신하루의 몸.
물론 잠깐 멈칫한 다음에 곧바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내면은 혼란 그 자체였다.
뭐지? 왜 갑자기 자신을 언급하는 거지?
그러나 일단, 그녀는 다른 건 다 젖혀두고 채현 언니부터 안전한 곳으로 내려다 놓기로 결정했다.
"헉... 헉..."
그렇게 둘은, 어느덧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착했다.
주위에는 자신들처럼 같이 대피한 사람들이 모여, 숨을 고르고 있었다.
축제 현장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이 정도면 충분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거리.
"아이고...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눈도 풀리고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던 김채현은, 가만히 서서 진정한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하루야, 너 진짜 빠르네. 하루... 하루야?"
그러나 채현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하루의 표정이, 놀랍도록 굳어 있었기에.
"....."
입을 다문채, 자신들이 도망쳐 온 곳을 노려보고 있는 그녀.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터질 듯이 복잡했다.
히어로에게는 불문율이 있었다.
'절대로 인식저해를 받지 않고 현장에 나서지 말아라.'
이는 인식저해 기술이 없었던 과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얘기였다.
절대로, 마스크를 벗지 말라.
지금처럼 히어로들이 얼굴을 내놓고 다니기 전, 과거의 히어로. 그러니까 '영웅'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다녔었다.
정체를 들킨 순간, 끔찍한 삶이 시작된다.
전 세계 모든 히어로 협회가 공통적으로 채택한 하나의 원칙.
어떤 끔찍한 테러가 일어나도, 얼굴이 노출된 상태라면 나서지 말아라.
히어로는 굉장히 귀하다.
특히 강력한 히어로는.
수십년 전 몇몆 사람들에게 갑자기 생긴 능력.
일명 초능력, 다른 의미로 초상 능력.
어째서 갑자기 이러한 능력이 인류에게 나타났는 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쟁이 일어났었지만,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원래 유전자에 있던 건데 특정 인물들에게만 형질이 발현될 뿐이라는 가설, 우주 자기장 같은 거 때문에 나타났다는 가설, 아니면 아예 신이 부여한 것이라는 가설...
태어날 때부터, 아니면 커서 능력이 생긴 사람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뉜다.
첫 번째, 그냥 그런대로 평범히 살아가는 타입.
사실 대다수의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소시민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도하고, 애초에 초상 능력자들 중 대다수가 별로 쓸모가 없는 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식물의 생장을 반대로 할 수 있는 능력. 식목원을 폐업하게 할 수 있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튼튼한 위장. 뭐든지 소화시킬 수 있으나, 그래서 뭐 어찌하는가? 이 능력을 갖춘 사람도 돌을 먹는 것보다는 치킨을 더 좋아한다.
즉, 사실 대다수는 사회에 섞여 그냥 살아간다.
그들에게 초능력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야 나 이런 능력 있다?' 하고 이벤트로 보여주는 거 말고는 딱히 쓸데가 없다.
그리고 사실 강한 능력을 갖춘 자들도, 그냥 평범하게 살아간다. 괴력 능력이 있다. 힘이 세다고 꼭 히어로가 되어야 하는가? 나라가 이를 딱히 강제하지는 않는다. 괴력 능력이 있어도 미술가가, 사진사가, 회사원이, 디자이너가 되고 싶을 수도 있다. 이들도 그냥 평범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능력이 좀 강하고 정의감도 있는 사람은 히어로를 선택한다. 히어로 협회에 가서, 능력 테스트 받고 등록 하면 된다.
그러나 히어로는 굉장히 적다. 큰 꿈을 갖고 능력을 테스트 받는 이들은 자신들이 고작 B, C급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자신과 똑같은 능력을 갖춘 빌런은 A급인데 자신은 B급이냐고 따져도, 히어로 등급 방식이 빌런에 등급을 매기는 방식보다 깐깐하다는 원론적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기준 자체가 A급은 제일 희귀한 이중능력을 가진 자들이나 막강한 능력을 가진 이들만 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있다. S급은 시간을 멈추는 정도는 되야 하고. 어중간하게 강해봤자 B급이 최대라는 것.
거기에 말이 히어로지 매번 사지를 오가는 전투를 하는 사실상 군인과도 다름없는 혹독한 일 때문에, 대다수는 중간에 포기한다. 아무리 돈을 많이 주더라도.
거기에 대중들이 히어로의 도덕적 완결함에 굉장히 깐깐하고, 조금이라도 흠결이 있으면 악플이 달리는 대한민국의 히어로 비율은 타 국가 대비 훨씬 낮기도하고.
그런데 히어로는 적음에도 불구하고 빌런은 무수히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강한 능력을 갖춘 자들은 웬만해서는 빌런의 길로 가기 때문.
사실, 대중을 상대로 테러를 일으키는 빌런의 비율은 굉장히 적은 편이다. 그렇기에 에고스틱이 화제가 되는 면도 있고.
많은 빌런은, 조용히 그림자에 숨어 자신만의 이득을 취한다.
그리고 그들은, 평상시에는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뒤에서 암약하며,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채 살기에.
그러나 히어로의 신상이 노출된다?
그들은 바로 그를 제거하기 위해 전면에 나선다. 히어로는 잠재적 위협이기에, 빠르게 해치우고 싶어 하기에.
그러니까, 히어로는 절대로 자기의 얼굴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상식이다.
상식이지만.
그래서, 지금 이 고통받는 시민들을 내버려 둬야 한다는 말인가?
"스타더스!!!!!!!"
쾅-. 쾅-.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
이 모든 걸 버려야 한다는 건가?
지금 히어로 협회에 가서 인식저해 처리를 받고 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아마 자신이 돌아올 때쯤이면 상황이 이미 종료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도망갈려고 그녀 자신이 히어로가 되기를 선택했는가?
"하루야...?"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발을 디뎠다. 그래, 어쩔 수 없다.
자기의 안위보다는, 시민들을 위해서.
그렇게 그녀가 자리를 박차려던 순간, 옆에서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에고스틱이다!! 에고스틱이 왔드아!!!"
순간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 뻔했다.
아니, 그놈이 갑자기 여기서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