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3화 (23/328)

EP.23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나에게로 무너져 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보며,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했다고 이런 시련을 주는 거지?

...물론 많은 잘못을 하기는 했다. 잘못을 하기는 했는데.

이거는 거의 세계가 나를 억까 하는 수준이 아닌가?

축제에 갔는데 나를 잡아들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과 우연히 만날 확률은?

그리고 그 사람의 일행이 나와 엮이게 될 확률은?

이건 말도 안 된다. 무언가 음해세력이 있는 게 틀림없다.

아주 짧은 시간.

위태로운 아이스크림 탑이 나에게로 무너지는 이 짧은 시간, 나는 이미 미래를 완벽하게 그렸다.

저 아이스크림들이 내 몸에 덕지덕지 묻는다.

그럼 당연히 저 채현이라는 여자는 성격상 나한테 배상을 하기 위해 전화번호나 계좌를 달라고 할 거다.

둘 다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이다. 이렇게 넘긴 정보는 언젠가 시간이 지나게 되면 스타더스에게 흘러갈 확률이 큰다.

그럼 꼼짝할 수도 없이, 체크메이트.

그리고 여기서 그런 것들을 하나도 안 주고 튀어도 문제다.

굉장히 수상하지 않나? 온몸이 남에 의해 아이스크림 범벅이 됐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망가면?

결국 문제는 스타더스가 나에 대해 뭔가를 느꼈냐는 거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 짧은 사이에 뭐 나를 얼마나 봤겠는가, 또는 뜬금없이 의심하겠느냐 할 수도 있지만.

원작을 읽은 처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신하루의 육감, 초감각이 지금은 어느 정도 발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느 정도는 발달했을 것. 원작을 몇십회독한 내가 확신하건대 분명 날 보고 뭔가 갸우뚱했을 거다. 확신해.

생각은 끝났다.

이제 막 내 몸에 닿기 직전인 아이스크림 타워.

저걸 닿는 순간, 내 인생이 끔찍한 방향으로 뒤틀릴 수 있다.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젖먹던 힘까지 나는걸 아는가?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움직여야 해.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흐아앗!"

"어어!!"

나는 굴렀다.

에고스틱 필살 오의(奧義) 앞-구르기.

데굴데굴.

코트와 얼굴에 먼지가 묻는다.

하지만 남자는, 가끔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때도 있는 법.

내 미래를 위해, 이세계의 행복을 위해.

나는 구른 것이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진짜 안부끄럽다고!

"오빠!"

"다인씨!"

내가 갑자기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자 화들짝 놀란 서은이와 수빈씨가 달려왔다.

"아, 괜찮아. 괜찮아."

나는 옷을 탁탁 털면서 일어났다.

...사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먼지 투성이라 터는 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형식상 털었다. 난 도망가고 싶어.

"아이고... 괜찮으세요? 너무 죄송해요. 제가, 제가. 덜렁여서...흑."

김채현이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다가왔다.

10층 아이스크림은 내 슈퍼-닷지(Dodge [dɑːdʒ]/회피하다)로 피한 덕분에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일자로 땅에 눌러붙은 모습이 마치 커다란 무지개 지렁이 같은 느낌. 볼 수록 나에게 안달라붙어서 다행이란 느낌 뿐이었다.

일단 다 필요 없고 눈물을 흘리는 이 김채현부터 때내야 했다. 아니 왜 갑자기 선즙필승을 시행하고 난리야. 울고 싶은 건 나야.

뒤에서 신하루가 당황한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 돼! 다가오지 마! 내 얼굴 기억하지 마!

원래는 선즙필승을 하는 자들에게는 세상에 운다고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걸 알려주는 나였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다. 여기 오래 있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건 자명. 지금은 크레이지 싸이코 에고스틱이 아닌 스윗 다인이 나설 차례다.

"괜찮습니다. 사람이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죠. 제가 좀 유난을 떨었네요. 하하, 살짝만 피할걸."

"흑, 그, 그래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이제는 하다 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그녀. 진정해 제발. 너가 이렇게 시간 끌수록 나만 망한다고. 벌써 뒤에 신하루가 나를 보고 있잖아!

"자, 서은아. 이만 갈까...?"

라고 말하며 황급히 자리를 이탈하려는 나.

근데, 서은이는 울고 있는 김채현을 째려보고 있었다. 뭔가 몹시 마음에 안 들어하는 얼굴. 수빈씨도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애들아 왜 이래...

이럴 때가 아니야, 우리 이러다가 다 죽어!

그렇게 다시 한번 가자라고 말하려는 그때.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쾅-. 쾅-.

천지를 휘두르는 소리.

갑자기 평화롭던 축제가 전쟁통이 된 듯 비명이 나기 시작했다.

뭐야 또 뭐야 시발.

"크-하하하하하하하!!!!!!"

무슨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들을수 있는 엄청난 굉음.

마치 실수로 블루투스 이어폰 음량을 풀파워로 올리고 틀었을 때에나 느낄 수 있는 두 개골안의 뇌부터 흔드는 보이스.

"스타더스!!!!! 스타더스 나와라!!!!!!!!"

쾅-. 또다시 들리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사람들이 다들 꺄아악 거리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도 일단 바로 서은이와 수빈씨부터 챙겼다. 둘 다 깜짝 놀란 모습. 둘은 무력이 일천해서 무조건 내가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

"일로 붙어!"

나는 일단 둘을 한 손에 꼭쥐고 말했다. 여차하면 순간 이동을 할 수 있기에, 일단 서로 신체적 접촉만 있으면 어느 정도 안심이다.

서은이와 수빈씨 모두 다 한 쪽씩 내 손을 꼬옥 잡았다. 특히 서은이는 벌벌 떨고 있다. 늘 집에만 있었으니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놀랐겠지 애가. 아니면 어릴 적 트라우마가 떠올르는 걸 수도 있고. 뭐든 좋지 않다.

그나마 수빈씨는 조금 더 침착해 보였다. 아무래도 직접 테러까지 일으켜본 사람이니 훨씬 더 이런 경험이 많겠지. 늘 헤헤 거리던 착한 모습은 어디 가고, 표정이 굳고 냉철해 보이는 표정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 이런 거보면 평소에 소심해 보이는 척은 연기가 아니었나 합리적 의심이 든다.

신하루를 보니 얼른 선배 김채현을 끌고 소리가 난 곳의 반대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일단 선배를 안전한 곳에 먼저 놓는다는 생각이겠지. 사람을 제일 중요시하는 스타더스다운 생각이다.

"오, 오빠. 우리도 빨리 도망쳐요. 그, 워프. 빨리."

"그래, 할게. 근데 잠깐만 누군지만 보고."

내 손을 꼭 쥐는 서은이.

미안 해, 조금만 기다려 줘.

내가 원작을 몆번이나 정주행 했더라.

확실한 건 세세한 타임라인마저 거의 정확히 알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분명, 이 시기에 대규모 테러를 저지르는 빌런은 없었다.

원래 지금, 이시기에 나올 빌런이 엔조딕악이랑 라이노인데, 얘네 둘은 이미 옛적에 제거했다고.

나는 살금살금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으악-!'이러면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거슬러 올라가니 마치 연어가 된 듯한 기분.

서은이가 너무 심하게 떨길레 안심하라고 거의 안듯이 하고 갔다. 사실 순간 이동으로 내려다 주고 가면 좋기는 한데, 그러면 너무 힘이 든다. 지금 어떤 걸 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힘을 빼놔서 좋을 게 없다. 서은아 미안 해, 좀만 참아라.

그렇게 코너를 돌아 얼굴만 빼꼼 내밀어 뭔 일인가 봐보니.

초록색 괴수가 온 부스를 부서트리고 있었다.

집 한 채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괴수.

무지막지한 덩치의 사람처럼 보이나, 몸이 초록색이고 얼굴이 악어처럼 생긴 데다가 꼬리까지 붕붕 휘둘르고 있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놈이다.

A급 빌런, 크로코다일맨.

근데 저놈 저거 지금 등장할 타이밍이 아닌데.

어째서 지금 갑자기 활동을 시작한 거지?

"스타더스!!!!!! 나와라!!!!!!"

여전히 고막파열을 일으키는 소음충격파를 발생 시키고 있는 놈.

서은이와 수빈씨는 이미 손으로 귀를 가린 지 오래다. 나도 귀에서 피가날꺼 같은데 이 둘이 귀막는다고 내 손을 떼는 바람에 내 손은 둘의 허리를 감싸느라 귀를 막을 수가 없다. 아악.

"....."

어쨌든, 저놈을 처리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모자란 머리를 폭발적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내 혈액형은 A형이다.

그리고 A형은 어디서 봤는데 위기 상황에서 두뇌 회전이 빠르다고 들었다. 아닌가? 아님말고.

어쨌든 중요한 거는 예상 시나리오다.

저놈은 스타더스를 부르고 있다.

스타더스에게 평소 원한이 있던 놈인 만큼, 스타더스를 부르는 거는 어색하지 않다.

근데 중요한 거는 지금 스타더스가 올 만한 상태가 아닐 거 같다는 것.

히어로로 활동하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일단 얼굴이 팔리면 사돈에 팔촌까지 빌런들의 표적이 될 수 있기에, 인식저하 장치를 얼굴에 바르고 나와야 하는건 당연.

그리고 특히 스타더스같은 경우 그냥 옷 입고 공중에서 날면 마찰력때문에 몸이 다쳐서, 특수 제작된 라텍스옷을 입어야 한다.

근데 중요한 건 지금 스타더스는 아무것도 없이 여기 있다는 것.

다시 협회로 돌아가서 장비 챙기고 와야 하는데, 여기서 협회와 거리가 또 하필 멀다.

그리고 저놈이 깽판을 치고 다녀서 인명피해는 계속되는 상황.

그래.

내가 아는 스타더스, 신하루의 성격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냥 자기 얼굴이 팔리는걸 각오하고 뛰어든다.

"안 돼."

"오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

최 후반부 이슈에서 지금과 비슷한 상황으로 인해 결국 얼굴을 깐 그녀가 얼마나 불행해졌는가.

지금까지 내가 한 게 우리 신하루좀 행복하게 해 줄려고 했던 건데 이게 이렇게 꼬인다고?

내 눈에 흙들어가도 그런 일은 없다!!!

"으아아아아!!"

"으악, 오빠!"

픽.

나는 모두를 데리고 지하 기지까지 워프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2명을 더 데리고 오니 힘들구나.

"헉, 헉."

"아, 왔네. 휴우... 어? 오빠 뭐 해?"

"뭐 하냐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코트를 벗고 로브를 입었다.

그리고 에고스틱의 상징,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챙겼다.

"서은아, 오빠 일 좀 하고 온다."

무기류가 가득히 담긴 검은색의 특제 에고-보따리까지 챙기고 다시, 중장거리 워프를 했다.

자, 한 주 푹 쉬었으니 한 번 더 놀아볼까.

***

[속보)아이스크림 축제 한복판에서 괴한 난동중ㄷㄷ]

[스타더스 아직 안 가네 어디 갔냐?]

[ㄹㅇ오랜만에 대규모 테러네 무섭다]

[와 ㅅㅂ무슨 사람이 저렇게 크냐]

[속보)))))에고스틱 방송킴]

[야 지금 유튜브에 에고스틱 방송뜸ㄱㄱ]

[망고스틱 LIVE ONㅋㅋㅋㅋㅋ]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아니 쟤는 갑자기 방송 왜 키는 건데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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