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 만남
"하루야, 여기야 여기!"
아이스크림 축제 행사장 앞.
버스를 타고 내린 신하루는 선배와 만났다.
"어, 언니. 먼저왔네요?"
"나도 방금 막 온 거야! 슬슬 봐보자!"
"그래요."
둘은 함께 축제를 둘러보기로 했다.
밝게 웃으며 재잘재잘 떠드는 선배를 하루는 귀엽게 바라보았다.
채현 언니는 비록 나이는 자신보다 한 살 많지만, 키도 작고 밝아서 그런지 왠지 동생 같은 느낌이 든다.
"선배, 이거 한번 먹어볼래요? 쌀맛 아이스크림이라는데."
"그래!"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선배를 보니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사실 아이스크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여유롭게 친한 언니와 나들이를 하니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사실 신하루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공부와 히어로생활에 치여 사람들과 담을 쌓고 살았으니. 대학와서도 채현선배가 적극적으로 앵기지 않았으면 친한 사람 아무도 없이 살뻔했다.
물론 히어로 신분으로 사귄 친구들이 있기는 하다. 같은 A급 히어로인 섀도우워커랑 북해빙녀가 대표적. 그러나 이 둘이랑은 연락이 뜸한 상황이다.
사실 섀도우워커는 밤에만 활동하는 바람에 낮에는 자고 밤에 깨어 있는 생활을 유지해 만나기 힘들고, 북해빙녀는 혼자 한반도 아래를 커버하느라 늘 바쁘다. 그 결과 셋이 모인 채팅방은 늘 아무 말 없기가 부지기수. 사실 스타더스 본인도 에고스틱 때문에 바쁘긴 한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선배와 함께 길을 걸었다.
물론 걷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참 많이 받게 되었다. 선배 김채현도 귀염상의 외모로 한 미모 했으나, 여자치고 큰 키에 금발을 흩날리며 다니는 신하루의 모습이 굉장히 눈에 띄는 것이었으니. 그것도 남들이 보기에는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그녀였으나, 선배와 가끔 대화를 나누며 웃는 모습은 많은 남자들의 심장을 콩닥이게 했다.
물론 그런 남자들 중에는 여자 친구랑 걷다가 바라보던 놈들도 있어서, 의도치 않게 그녀들은 여러 커플의 분란을 조장하고 있었다. 본인들은 그걸 잘 모르는 눈치긴 하지만.
그렇게 이곳저곳 덜아다니던 신하루와 김채현은, 슬슬 먹을 거 다 먹고 행사장으로 걸어갔다.
"와! 저기 에고스틱맛 아이스크림도 있어!"
밝게 웃으며 저기로 가 보자는 선배.
에고스틱을 잊으러 나온 건데도 또 에고스틱을 마주한 하루의 얼굴이 굳었지만, 이미 망고단에 빠진 선배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줄을 서서 아이스크림을 사게 된 둘.
하루는 그저 한숨을 쉬며 행복하게 웃으며 먹는 선배를 카메라로 찍어 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배를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그녀가 자신한테 스타더스를 욕하는 모습은 보여 주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악질 망고단들 중에는 스타더스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구글에 스타더스를 검색해 보고 직접 읽은 거라 충격이 컸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남은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꽤 많은 시간이 지나게 됐다.
오랜만에 채현언니랑도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꽤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었지.
에고스틱을 생각하면 느껴지는 심란함은 여전했지만...
"마지막으로 저것만 하고 가자!"
채현언니가 가리킨 곳에는 다트를 던져 풍선을 맞추는 게임을 하는 곳이 있었다.
일정개수 이상 맞추면 선물로 10단 아이스크림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 10단 아이스크림은 대체 뭐지..?
"좋아요."
그렇게 그들은 그쪽으로 슬슬 걸어갔다.
동시에 2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된 부스.
이미 다른 손님이 한쪽은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일가족이 놀러 나온 건줄 알았다.
엄마, 아빠, 딸이 놀러 나온건가.
근데 엄마 아빠는 머리카락이 검은색인데 딸은 하얀색이네? 염색인가?
은발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녀였기에 호기심이 앞섰다. 가까이 가서 좀 자세히 보니 딸은 중학생인 거 같은데 엄마 아빠가 너무 젊었다. 일가족은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사이일까?
그런 생각하던 도중, 그녀는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이 언제부터 저렇게 남을 살피는 타입이었지?
은발이 신기해서 그런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녀는 옆에서 초록 아폴로 머리를 한 흑인 남성이 있어도 그냥 한번 슥 보고 지나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 유사 일가족은 관심이 간다.
특히 저 검은 머리 남자.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뭐, 그냥 괜한 생각이겠지.
잡념을 털어낸 그녀는 채현언니가 다트 던지는 거나 구경하기로 했다.
어느새 부스 코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직원을 불렀다.
"여기요."
***
이런 시발.
"여기요."
"네 손님!"
"다트 10발만 주세요."
"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왜 그냥 평범하게 축제를 즐기러 왔을 뿐인데,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냐고.
나는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는걸 느꼈다.
등에서 벌써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하염없이 흔들리는 나의 눈동자.
옆을 보니 서은이와 수빈씨도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다들 스타더스의 맨얼굴 정도는 안다.
즉, 그만큼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나는 침을 삼켰다.
대체 왜 스타더스가 하필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도망쳐야 한다.
스타더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괴력과 비행 능력.
그런데 이 괴력이, 단순 괴력이 아니다.
정확히는 신체의 힘이 엄청나다고 해야 하나.
아직은 뭐 단순히 원할 때 힘이 무식하게 강해지는 게 다지만, 나중에 가면 점점 인간의 몸을 넘어선 초인이 된다.
남들보다 멀리보고, 남들보다 잘 듣는 등 오감이 발달하는 것.
즉, 아직 잘 모르는 협회는 이 능력을 괴력으로 명명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냥 스타더스를 초인으로 보는 게 옳다.
오감뿐만이 아니라, 육감까지 발달하거든.
즉, 무언가 쎄한걸 본능적으로 눈치챈다는 말이다. 사실상 초감각?
물론 아직은 원작 시간대로 따지면 초기. 벌써 날 보자마자 '저거 저놈 에고스틱이다!' 할 정도는 아니다. 근데 물론 그래도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낄 정도는 된다.
결론은, 큰일 났다는 소리.
도망쳐야돼.
근데 이미 다트를 받았다.
갑자기 여기서 다트를 받았는데도 안 하고 도망치면 더욱 수상해 보이지 않을까?
"얍!"
"오, 언니 잘하네요?"
"그럼! 내가 원래 좀 잘해!"
옆에서 웃으며 다트를 던지는 여자.
김채현, 하루의 친한 언니다.
원작에서 그녀가 히어로가 아닌 일상모드라 해야 하나? 하여튼 일반인으로 살 때 가장 친하게 지내는 선배다. 굉장히 밝고 귀여운 성격으로 나름 인기가 많았던 캐릭터다. 물론 후반부에 그렇게 되기는 했으나...
"다트를 던지고 던지고~"
옆에서 미친 듯이 다트를 던져가며 풍선을 터트리는 모습. 아니, 너무 잘 던져서 순간 신하루가 던지고 있는 줄 알았다.
"손님, 안던지세요?"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 점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차, 그래. 빨리 던져야지.
아직는 하루가 채현의 다트던지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나도 후딱 던지고 가야겠다.
"아이고, 옆에 분이 너무 잘하셔서 저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네요. 지금 던지겠습니다."
점원에게 조용히 빠르게 말한 나는, 얼른 다트를 들어 던지기 시작했다.
"하하, 서, 서은아. 자 봐라. 오빠의 다트 던지기 실력을...!"
"으, 응. 빠, 빨리 던져 봐아."
파르르 떨며 내 말에 대답한 서은이. 야! 연기좀 잘해 봐! 말을 떨면 어떻게... 근데 나도 떨었으니 피차일반인가.
나도 일단 막 던지기 시작했다. 뭐 막던지니 당연히 명중률은 별로. 이 와중에 옆에 신하루네는 벌써 끝난 거 같다. 우리보다 늦게 왔는데...
"와! 다 맞췄다!"
"오 언니, 어떻게 한거예요?"
"상품주세요 상품!"
아니, 이 와중에 10발을 다맞췄어?
점원이 10발 다 맞춘 사람은 오늘 처음라고 웃으며 말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뒤에서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 가져오는 점원.. 가져고오 나서는 냉장고에 있는 통에서 아이스크림을 퍼내서 콘에 올리기 시작했다.
저게 그 상품인 10단 아이스크림 콘인가.
한 스푼 떠서 콘에 올리고, 두스푼 떠서 콘에 올리고, 세스푼 떠서 콘에 올리고, 네스푼떠서 콘에 올리고, 다섯스푼 떠서 콘에 올리고, 여섯스푼떠서 콘에 올리고...
어어 뭐야 어디까지 푸는 거냐?
그러더니 결국 열 번을 퍼서 담았다.
나중 가면 아이스크림이 점원의 키를 넘는 바람에, 손을 위로 뻗어서 올려 쌓더라.
결국 완성된 10단 아이스크림콘.
이게... 이게 대체 뭐지?
콘을 허리에 들었을 때, 아이스크림의 끝은 머리를 훌쩍 넘는다. 아니 진짜 저거 1m 되는 거 같은데?
나는 다트를 던지면서도 옆을 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저게 뭐야.
너무 긴 바람에 이게 넘어질 듯 위태위태하다.
점원도 무슨 밸런스게임하듯 계속 손을 돌려가며 서 있다. 뭐하는 거지...
"아이고, 이게 생각보다 중심집기가 힘드네요 손님. 조심해서 드세요."
"네, 넷!"
"언니... 그냥 내가 들까?"
"아니! 내가 딴 건데 내가 들어야지, 할 수 있어."
그렇게 주장하던 김채원은 겨우겨우 점원으로부터 콘을 받아들였다.
"어어..."
벌써 그녀의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아이스크림탑.
이거, 조금만 더 있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마침 나도 다트를 다 던졌다. 풍선 한 4개 맞췄나? 당연히 상품은 없다.
"아이고, 아쉬워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몸을 돌려 빠르게 빠져나올려 했다. 빨리 도망가야돼.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김채현의 새된 비명.
"어어어... 안 돼!!"
뭐지 하고 옆을 돌아보니 무게중심이 안 잡혀진 10층 아이스크림이 기울어지다 결국 옆쪽으로 넘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나치기 위해 가까운 옆으로 그녀를 지나치던 내 쪽으로.
뭐야 시발 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