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우연
"아아아아아악!!"
신하루는 리모컨을 티비쪽으로 던져 버렸다.
물론 너무 세게 던지면 새로 산 UHD 티비가 박살이 나버릴 수 있으므로, 의식적으로 최대한 살살 던지기는 했다.
물론 그것도 벽에 굉음을 내며 부딪쳤지만.
"하아.. 하아..."
그녀는 숨을 쌕쌕댔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소파에 앉은 뒤, 천천히 생각이나 해봤다.
자신이 스타더스란 이름으로 히어로 활동을 한지 어언 몇 년.
처음으로 각성한 게 중고등학생 때니까, 그때부터 했으니 꽤 오래 했다고 볼 수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복수하기위해 빌런들을 감방에 처넣는 히어로 생활을 하기로 다짐했었지.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빌런이랑 열애설이 나다니?
"하아..."
신하루는 한숨을 쉬며 냉장고로 향했다.
너무 골때려서 단게 좀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시원한 주스팩을 꺼내 마시던 그녀는, 자기 마시는 주스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구겼다.
[미닛 메이드 망고]
망고. 이제는 망고만 보면 에고스틱 그놈이 떠오르게 생겼다.
에고스틱 그놈을 추종하는 놈들이 에고스틱을 망고스틱이라고 부른대지?
아. 그녀는 자기 뇌가 오염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게 망고다.
사실 망고 그자체는 싫어하는데, 망고주스 망고 프라페 망고빙수등 망고-라이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근데 이제는 다시는 망고를 볼 때 예전과도 같이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망고를 볼 때마다 망고스틱이 떠오를 것임으로.
"내 뇌... 내 뇌가 오염당했어..."
그녀는 살짝 침울해졌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인식이라는 게 때때로 변하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변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
"휴..."
그녀는 창밖으로 나가 바람이나 쐬기로 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빼냈다.
시원한 봄바람이 그녀에게 불어닥친다.
옅은 햇볕이 그녀의 금발에 반사돼, 마치 반짝반짝 거리는 것처럼 몽환적인 연출을 주었다.
그 결과 길거리를 걷다 무심코 위를 올려다본 남자들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중심에는 당연히 에고스틱 그놈이 있었다.
에고스틱. 그녀는 참 그게 웃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에고-스틱이라니. 약한 할아버지가 에고-에고- 거리면서 스틱을 쥐고 걷는 게 연상되지 않는가? 물론 그 이야기를 자기 친한 언니에게 슬쩍 했다가 언니의 측은한 시선을 보고 앞으로는 혼자서만 생각하기로 했지만.
차라리 에고스틱보다는 에고이스틱이 더 멋지지 않을까-라는 생각한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내가 왜 저 빌런놈의 이름을 생각해주고 있단 말인가. 그녀는 고개를 털며 그 생각을 덜어냈다.
그래도, 그녀는 에고스틱을 생각할 때면 심란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뭔가는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된다.
복합적인 감정이 그녀를 체워, 채 토해내지 못할 생각뭉치가 되어 그녀의 뇌에서 피어올랐다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는 그게 이상했다.
분명 사악한 빌런놈을 떠올리면 증오, 혐오가 떠올라야 하는데.
어째서 복합적인 감정이 떠오르는가?
그 수많은 감정중에서는 분명 증오나 혐오가 아닌 다른 것들도 있는 것이었다.
에고스틱. 그놈은 지금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니, 비단 인터넷뿐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인기가 엄청나다.
그녀의 친한 언니 채현만 하더라도 저번에 자신이 망고단에 가입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학과 톡방에서도 가끔 망고스틱 하면서 언급되는데 다 좋은 이야기뿐이었다.
기차테러를 저지르는걸 모두가 실시간으로 보고도 어떻게 저러나... 했는데.
처음에는 이번에도 사상자 0명이라면서 에고스틱을 커버쳐주다가.
나중에는 그 기차에 묶인 사람들이 전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난 놈들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또 무지성 에고스틱 찬양이 시작됐다.
아싸리 스타더스가 기차를 안 막았어도 좋았다는 우스개소리가 들릴 정도니.
사실, 이미 에고스틱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열광은 거의 광신 수준에 도달했다.
지금까지 고구마만 퍼먹던 국민들에게, 사이다를 넘어선 염산을 들이부어 주는 에고스틱은 '제발 한국인이라면 에고스틱 지지합시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할 정도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아까 본 그 열애설.
"윽."
그녀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그 피로쓴 글자, 그의 테러등 지금까지의 행보들이
그게 다 자신을 좋,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대체 그가 왜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인가.
자기의 얼굴때문에? 그래, 그거겠지. 그거 말고는 좋아할 이유가 없으니!
역시 에고스틱 그놈또한 자기의 얼굴만 보고 껄떡이는 그런 놈일게 틀림없다....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거는 있다.
그녀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전보다 확실히 늘어난 근력.
저번에 기차를 막은 이후, 그녀는 확실히 강해졌다.
강해진 거는 좋은 일이지, 그녀가 늘 추구해 온것이기도 하고.
"모르겠다..."
그녀 자신도 왜 혼란스러운지 모르겠는 만큼, 한숨만 늘어갔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일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기 안티팬들이 좀 사라졌다는 말.
사실 여론의 반응 그런 거 신경 안쓰는척하면서 누구보다 신경을 쓰는 그녀였기에, 자신에 대해 호의적으로 변한 여론에 상당히 안심했다.
사실 호감도가 내려간 것도 에고스틱 때문이고, 다시 올라간 것도 에고스틱 때문이라는걸 생각하면 참 묘한 기분이 되었다.
마치 자기 인생을 에고스틱이 쥐고 흔드는 기분.
실제로 상부에서 자신을 에고스틱 담당으로 공식 임명했으니, 틀린 말도 아닐꺼다.
"에휴..."
심란하던 그때 때마침, 걸려 오는 전화소리.
발신자는 김채현.
그녀의 제일 친한 대학 선배였다.
"여보세요?"
[어 하루야! 우리 날도 좋은데 놀러 갈래?]
"놀러요?"
놀러간다라.
생각해 보면, 그녀가 놀러가 본적은 몇 번 없다.
공부하랴, 히어로 활동하랴. 이 2개만해도 계속 부족한 게 시간이었으니.
근데 놀러라.
흠.
원래라면 거절했을 제안이다.
학업과 영웅일을 병행하기도 벅찬만큼, 한가롭게 놀러 다닐 만한 시간이 없었으니.
애초에 요즘 너무 바빠서 자기 협회 사무실에도 오래 못 앉아 있었다. 거기 볕이 잘 들어서 좋은데.
근데, 안 그래도 에고스틱때문에 심란한 요즘.
놀러 가자는 제안은 꽤 솔깃한 것이었다.
"어... 좋아요! 언제갈까요?"
[바로 오늘! 어때? 축제가 열린데! 나 예전부터 늘 가고 싶었거든!]
"오 축제 좋죠. 오늘 시간이... 될 거 같네요. 그럼 좀 있다가 만나요. 근데 무슨 축제예요?"
[아이스크림 축제! 재밌겠지?]
"어, 네."
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아이스크림 축제라는 것도 있었나?
***
건물이 빼곡히 깔리고, 차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서울.
의 지하 깊은 곳 저어멀리에, 우리의 지하 기지가 있었다.
대한민국 모두를 공포에 빠트리게 하는 빌런, 에고스틱.
손가락 하나만으로 대한민국의 전산망을 무너트릴수 있는 천재 해커, 한서은.
해킹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운전도 잘하는 만능조수, 이수빈.
이 셋이 모두 모인 이곳, 일명 에고-베이스.
비록 지하 깊은 곳에 있어 볕은 잘 안 들지만, 햇볕을 대체할 수 있는 LED빛이 있는 아늑한 곳이다.
가끔은 집에서 쉬는 것도 좋은 거다.
요즘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았나?
평범한 소시민이던 내가 악당 연기를 하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저번 방송때 수만 명이 나를 보고 있다고 하니까 좀 쫄리더라. 말 한마디 한마디가 뉴스로 박제될 걸 아니... 이미 저번에 내가 스타더스가 기차 멈춰 세운거 보고 '예쓰!'라고 말한 건 박제돼서 이리저리 쓰이고 있다. 주로 열애설의 근거로...
기레기놈들.
눈치만 빨라가지군...
하여튼, 또 너무 자주 어그로를 끌어도 좋을 게 없으니.
요즘은 집에서 빈둥빈둥 쉬고 있다.
주로 하는 일은 서은이랑 놀아주기.
얘도 중3인데 친구 한 명 없으니 얼마나 심심하겠어...
수빈씨까지 껴서 같이 보드게임 하거나 스위치하면서 놀며 지냈다.
말로는 이건 애기들이나 하는 거라며 툴툴거리면서도 거실에 펼쳐 놓으면 재밌게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 애들은 애들답게 놀아야지! 맨날 컴퓨터만 보고 그러면 좋지 않을 거다.
어쨌든 여전히 빈둥빈둥 놀며 지내는 하루.
티비나 보면서 수빈씨가 깎아 놓은 사과를 먹는데, 자기 방에서 뭔가하고있던 서은이가 나한테 쪼르르 달려왔다.
그러더니 여기 가자면서 뭔가를 보여줬는데.
"아이스크림 축제?"
"그래, 저번에 말했잖아요. 그게 오늘이래! 이건 꼭 가야돼요!"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말을 하는 서은이.
옆에 있는 수빈씨도 가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래, 생각해 보니 들어 본거 같기도 하다.
국제 제 13회 아이스크림 축제라... 원작에서도 이런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
옆에서 서은이가 뭐 이게 한국에는 처음 온 거고 볼 것도 엄청 많고 설명을 하고있다.
태어나서 아이스크림 축제라는 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좀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서은이도 나처럼 집순이라 집에만 있는걸 제일 좋아하는데, 먼저 나가자고 하는 거 보면 그리 보고 싶은 건지... 아이스크림이 그리 좋더냐?
"그래, 가자! 옷 갈아입어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외쳤다.
뭐, 별일 있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