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6화 (16/328)

EP.16 큰거 온다

스타더스. 신하루.

새로운 하루라는 의미로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그러나 요즘 그녀는, 새로운 하루를 맞기가 매우 힘들었다.

"하아..."

스마트폰을 보던 그녀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내렸다.

[스타더스 솔직히 하는 게 뭐가 있냐?]

그런 말이, 그녀의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펼쳐진 여론.

A급 히어로 스타더스에 대한 자질 의심.

솔직히 그녀는 매우 억울했다.

자신이 잘못한 게 뭐가 있는가?

그녀의 죄라고는 대학 생활하면서도 틈틈이 사람들을 구하러 다닌 죄밖에 없다.

그러나 여론은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싸늘해졌다.

다 에고스틱, 그놈이 등장한 이후로.

여느 때와 같이 있다가 에고스틱이 시내에 등장했다는 말을 듣고 달려 나갔을 뿐인데 왜 그녀가 욕을 먹어야 하는가?

심지어 시민들이 위험할까 봐 놈을 잡으려는 시도도 제대로 못 해준 체 그냥 보내줬는데.

그녀는 잘 몰랐었다.

시민들이 다른 빌런들을 시원시원하게 제거하는 에고스틱의 모습에 얼마나 큰 호감을 느끼는지를.

매번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히어로들이 잡아봤자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끝나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의 불만이 쌓여 왔던 거다.

판사들로 향했던 그 분노는 어느새 히어로들한테까지 옮겨붙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즉시사살하면 될껄, 왜 굳이 생포하는 데 목적을 두나.

너희가 그냥 생포하는 바람에 저놈들이 저렇게 감옥에서 안락하게 사는 거 아니냐 등...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이미 시민들 사이에서 불만은 조용히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모두가 기다리던.

빌런을 속 시원하게 사냥하는 사람이 등장한 거다.

그게 바로 에고스틱.

대한민국 국민들 가슴속 깊숙이 꿈꾸고 있던 인물이었다.

....물론 유람선 테러 사건이 있기는 하다. 아니지, 정확히는 테러 '미수'사건이라고 봐야 하는 그 사건.

그는 결국 테러를 일으키지 않았다. 시민들이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자, 빠르게 납득하고 시원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그 사건을 묻혀 버릴 정도로 컸던, 대현타워 테러 인질극을 홀로 격파한 사건.

다른 히어로들이 인질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홀로 적진에 당당히 진입, 사살자 한 명 없이 모두를 구해 내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돈도 줬다.

그리고 도주의 위험성 때문에 A급을 받은 텔레포터 또한 어떻게 알았는지 홀로 없애버린 모습까지.

그야말로 대중들이 열광할 모습을 여러모로 보여줬다. 거의 모든 커뮤니티가 그를 좋아하고 팬카페까지 개설된 건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거지.

그리고 그런 그와 맞서는 자는 당연하게도 욕을 먹게 되는 거다.

그리고 그게 하필 자신일뿐.

"하아..."

신하루는 다시 한번 자기 손에 있던 망고프라페를 빨아 마셨다.

이러려고 히어로 됐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심지어 자기 친한 선배마저 에고스틱이 요즘 좋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충격에 빠졌다.

카페에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는 밖을 내다보았다.

봄이 오며 길에는 벚꽃이 저렇게 이쁘게 폈는데.

자기는 대학 생활에 히어로까지 하느라 보러 갈 시간도 없다.

근데 그러면서도 욕은 욕대로 먹고 있고.

심지어는 저번에 열린 히어로 협회 정기 회의.

거기에서 국장마저 '요즘 에고스틱 덕분에 좀 편해진 거 같다.'라고 허허 웃으며 말했을 때 그녀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이건 정상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다 나 빼고 미쳤다.

"하아... 아니지. 정신 차리자."

그녀는 고개를 털고 과제나 마저 하기로 결심했다.

계속 이렇게 땅만 파고 있는 건 생산적이지 못하다.

과제나 해야지.

그렇게 그녀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과제를 마저 하려고 했다.

딱 이 타이밍에 연락이 오기 전까진.

[스타더스, 당장 티비 틀어보게! 에고스틱이 다시 나타났어! 또 자네를 지목했네!]

그녀는 얼굴을 굳혔다.

아무래도, 또 일해야 할 시간인가 보다.

신하루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누가 뭐래도 그녀는 히어로이기에.

그녀는, 해야 할 일 하러 나갔다.

***

"오랜만입니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호감 빌런, 에고스틱입니다!"

철도가 한눈에 보이는 절벽 위.

그곳에서 나는 카메라에 인사를 던졌다.

또다시 모든 티비에 생중계되고 있을 내 모습.

사실 이제는 그냥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만 해도, 지상파에서 알아서 중계해 줄거 같기는 한데.

그냥 이번에도 전파납치 했다.

왜냐고? 그게 내 저력을 보여 줄 수 있으니까.

저번에 전파납치 사건이 후로 방송사들이 보안에 아무래도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인데, 그런 건 나한테 아무 의미 없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사실 내가 한 건 아니고 서은이가 다 한 거긴 하지만... 그걸 누가 알겠어?

고개를 꾸벅 숙인 나는 오른쪽 가면에 숨겨진 눈으로 홀로그램을 봤다.

서은이가 만들어 준 최첨단 기술로, 마치 원래 세계의 아이X맨 슈트처럼 홀로그램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능이다. 근데 중요한 건 이 기능에 넣을 소프트웨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유튜브 생중계 채팅창을 띄어 놨다. 띄어 놨는데...

[큰거왔다 큰거왔다 큰거왔다 큰거왔다 큰거왔다 큰거왔다 큰거왔다 큰거왔다 큰거왔다 큰거왔다]

[에고스틱 라이브 ONㅋㅋㅋㅋㅋㅋ]

[심심하던 찰나 개꿀잼 이벤트 왔다ㅋㅋㅋㅋ]

[오늘은 또 얼마나 미친 짓을 하려고ㅋㅋㅋㅋ]

[에-하(에고스틱 하이라는 뜻)]

[자 드가자~ 자 드가자~ ]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벌써 후회가 되고 있다. 아니, 얘들은 이게 무슨 깜짝 이벤트인 줄 알고 있는 건가?

나는 카메라에 비치는 내 모습을 점검했다. 늘 그랬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통일된 로브를 입은 내 모습. 얼굴에도 내 상징적인 모습인 회색의 반쪽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실 여기에 검은색 마법사 모자까지 쓰고 싶었는데, 제발 그것만은 자제해 달라는 서은이의 부탁에 못썼다. 다음에는 꼭 몰래 써봐야지...

어쨌든, 계속 말을 이어가 볼까.

"요즘 저한테 이런저런 소식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예! 참 많이 들어오고 있죠.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참 많더라구요? 제 팬카페도 봤습니다! 아이고, 신기하더라구요. 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머리를 긁으며 허술하게 웃다가,

갑자기 여기서 정색.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좀 오해하는거 같은데."

나는 목소리를 깔고 말하며 절벽의 끝으로 걸어갔다. 카메라도 그런 나를 따라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 내가 염동력으로 조종하는 거다. 휴, 정말 염동력이 있으니까 망정이지. 아니면 카메라맨을 따로 고용할 뻔했다. 이 절벽 위에 카메라맨을 보면서 떠벌떠벌 말하면 얼마나 어색하겠어?

아직도 목소리를 깐 채로, 나는 절벽 끝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악당입니다 여러분. 요즘 말로는 빌런이라고 하나요? 하여간, 그게 접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빌런인 걸 잊으신 분들이 좀 많은 거 같더라고요? 제가 다른 빌런들을 제거한 건 제 저열한 만족감을 위해서지, 딱히 여러분을 위한 건 아닌데 말이죠!"

[이 녀석, 완전 츤데레인wwwwwww]

채팅창을 보고 순간 절벽에서 넘어질뻔했다. 이거 중간에 못 끄나? 이 일이 끝나면 서은이에게 꼭 OFF기능 만들어달라고 얘기해야겠다.

순간 정신을 놓을뻔했으나 나는 프로. 표정의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로, 또 다른 멋진 기획 하나를 준비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무서움을 여러분이 아직 못 깨달은 것 같더군요. 자! 여러분, 저 멀리 철도가 보이십니까?"

나는 염동력으로 카메라가 열차의 선로쪽을 보도록 고정했다.

선로는 쭉 일직선이었으나, 중간에 다른 쪽으로 뻗어나가는 갈림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카메라가 보여주는 선로의 끝에는 사람들이 묶여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여러분, 보이십니까?"

순식간에 들썩이는 채팅창.

그래, 이거지. 이거야! 좀 더 두려워하라고!

"제가 묶어 놨습니다. 선로에 사람들을 말이죠. 열차가 직진으로 달리는 이곳! 이곳에 5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열차가 빠지는 저곳! 저 갈림길 쪽에는 한 명만 묶어 놨습니다. 이 열차가 이대로 달린다면 5명을 치어버릴 겁니다. 그런데 저기 레버 보이시나요? 저 레버를 당기면 선로가 바뀝니다. 그래서 그쪽에 묶여 있는 한 명만 치게 됩니다."

[나 이거 어디서 본거 같은데?]

[이거 트롤리 딜레마 아님?]

[트롤리 딜레마 실사화ㄷㄷㄷ]

나는 채팅창을 보고서야 아차 했다.

아, 다크나X트와 다르게 트롤리 딜레마는 이 세계에도 알려져 있구나?

그래도 아직 이짓거리를 한 빌런은 한 명도 없나 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레버를 돌릴 건가요? 안 돌릴 건가요. 참고로 열차를 멈추는 선택지는 없답니다."

나는 카메라가 보여주는 화면을 전환시켰다.

그곳에는 지금 열심히 달려오는 열차의 기관실이 보였다. 그곳에 원래 있던 기관사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가면을 쓴 여자가 기차를 몰고 있었다. 그래, 저건 수빈씨다. 고마워요 수빈씨!

"허튼짓하면 열차를 확 전복시킬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레버를 돌리는 선택지밖에 없습니다. 자, 여기서 말하겠습니다. 스타더스씨, 와주시죠. 당신의 도덕적 판단을 제가 지켜봐 드리겠습니다."

자, 판은 다 깔아놨다.

이제 신하루. 너만 오면 된다.

[또 스타더스ㄷㄷ 이 정도면 찐사랑인듯?]

채팅창은 말끔히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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