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이게 아닌데
[글쓴이]익명
[제목]A급 빌런 에고스틱에 대해 팩트만 정리해보자...real
1. S급 빌런 엔조딕악 제거
2. A급 빌런 라이노 제거
3. 지루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긴장감을 던져 주는 특집 유람선의 딜레마 방영(사상자 0명)
4. 자기 추종자들 테러 벌이는거 진압하고 인질들한테 보상금까지 지급함
5. A급 빌런 텔레포터 제거. 참고로 얘는 히어로 협회에서 잡기 매우 힘들 거 같다고 공인한 애임.
에고스틱 솔직히 빌런 아닌 것 같은데ㅋㅋㅋㅋㅋ
[익명1]빌런ㅇㄷ? 진정한 "히어로"밖에 보이지 않는걸?
ㄴ[익명2]ㄹㅇㅋㅋ
[익명4]솔직히 스타더스보다 에고스틱이 나은 듯 ㄹㅇㅋㅋ
ㄴ[익명5]ㄹㅇ스타더스가 지금까지 한 게 솔직히 뭐있음? 지금까지 A급 빌런 한두 명 잡지 않음? 우리 킹갓에고좌는 이미 S급도 잡았는데ㅋㅋㅋ
ㄴ[익명6]이건 좀;; 아무리 요즘 에고스틱 띄워준다해도 히어로에 비비는 건 좀 에바지. 선넘네...
ㄴ[익명7]스타더스 팬클럽 검거
ㄴ[익명15]히첩 검거
ㄴ[익명16]히첩이 뭐임?
ㄴ[익명17]히어로협회 첩자
ㄴ[익명6];;;;
[익명8]빌런도 제거해 줘~ 엔터테인먼트도 제공해 줘~ 솔직히 호감가는데ㅋㅋㅋㅋㅋ
ㄴ[익명9]테러범한테 호감ㅇㅈㄹ
ㄴ[익명8]아 그래서 사상자 있냐고ㅋㅋㅋㅋ
[익명10]그래서 스타더스는 왜 욕먹는 거임? 진짜 모름.
ㄴ[익명11]걍 에고스틱이랑 비교돼서 까이는 거 아님?
ㄴ[익명12]A급 히어로 3명중에서 제일 활약 없어서 그런 것도 있는 듯ㅋㅋㅋㅋ 솔직히 섀도우워커나 아이시클 둘은 혼자서 몇십 몇백명 구하는데 스타더스는 지금까지 한 게 별로 없음.
ㄴ[익명13]솔직히 스타더스는 그냥 얼굴원툴이지ㅋㅋㅋㅋ 걍 B급으로 낮추고 에고스틱 A급 히어로로 넣자
ㄴ[익명14]히어로협회는 당장 새로운 히어로로 우리 망고틱을 지정해라!
***
"쓰읍...."
나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일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
일단 텔레포터 그놈이 튀는 바람에 그놈 쫓는다고 시내로 간게 문제였을까?
사람들 눈에는 빌런을 해치우는 내가 히어로로 보였나보다.
어이가 없네...
"휴우..."
나는 착찹한 표정으로 네이X 카페에 들어갔다.
[에고스틱 공식 팬카페]라고 적혀 있는 이곳.
벌써 가입자가 와... 이렇게 많다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구나!"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탄식을 흘렸다.
빌런을 지지하는 국민들이라니, 어떻게 이런 이들로 이루어진 국가가 있을 수 있는가?
물론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스타더스였다.
수상할 정도로 많아진 나의 팬클럽(?)이 스타더스에 대한 비난 여론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아무래도 나의 사실상 전담 히어로가 된 스타더스를 뭐랄까... 굉장히 싫어하는 느낌인데.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결코 이렇게 되는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나를 빨아줄 생각하지?
나의 유람선 폭파 이벤트는 벌써 잊은 건가?
...하긴. 그 유람선을 탄 한 사람이 유튜브에서 인터뷰로 '사실 지나고 보니 좀 재밌었다.'라고 말하는 걸 보고 머리가 띵했었지.
아무래도 이 세상에 대한민국은 좀 맛이 간 거 같다.
내가 대중의 스타더스 호감도를 올리려고 그 지랄을 했는데, 오히려 호감도를 떨어트리다니.
나는 얼마나 죄 많은 팬이란 말인가.
"안 되겠다. 바로 두 번째 테러로 간다!"
나는 다짐했다.
저 우매한 민중들에게 빌런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보여주겠다.
그리고 스타더스가 얼마나 이쁘고 정의감 넘치고 성실하고 귀엽고 멋진 존재인지도 다시금 사람들 뇌리에 박겠다!
"서은아, 작전 시작이다!"
나는 성큼성큼 거실로 나갔다.
거기에는 때마침 서은이와 수빈씨가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에휴. 누워서 골골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힘이 넘쳐요..."
서은이가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몸은 며칠 쉬었더니 바로 나은지 오래. 피로회복기 성능이 좋다니까?
나는 서은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나처럼 서은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수빈씨는, 사과를 깎으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다인씨, 다인씨가 또 티비에 나오고 있어요!"
수빈씨는 눈을 반짝거리며 티비를 향해 손을 가리켰다.
같이 산지 한 2주쯤 지났더니, 이제는 나와 꽤 친해진 수빈씨.
그래! 그녀도 깨닫고 만거다. 내가 얼마나 무해한 인간인지.
비록 그녀와 나의 첫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나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나의 지속적인 그 친절. 친절로 그녀는 나를 향해 마음을 연 것이다.
그녀가 나를 이름으로 편하게 부르는 것도 같은 이치다. 다인씨라고. 같은 집에서 사는데 에고스틱씨라고 하면 웃기자너.
다인. 그게 내 이름이다. 에고스틱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 이름. 이제는 아는 사람이 이 세계에선 서은이와 수빈씨밖에 없는 이름이다. 물론 이제는 다인이라는 이름보다 에고스틱으로 더 유명해졌다.
수빈씨와 서로 이름을 튼 이후, 그녀는 매우 씩씩해졌다. 요리도, 빨래도, 설거지도 다 그녀가 하고 있다! 그렇게 나랑 서은이는 딱히 손가락 까딱 안 하고 편하게 살고 있다. 우리가 나쁜 게 아니야. 그녀가 '제가 이런 거라도 해야죠...'라면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했기게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시키는 거다. 정말이다.
결론은 이제 수빈씨가 나를 겁내지 않는다는 거. 좋은 일이다. 이제 같은 한집에 사는데 나를 무서워하면 좀 어색하고 그러자너.
어쨌든, 나는 그녀가 가리킨 티비를 봐보았다.
거기에는 약간 뉴스 끝자락에 나오는 시사 토론같은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밑에 나오는 주제는.
[에고스틱, MZ세대에 새로운 아이콘이 되나.]
"....."
세상에.
내가 이 세계에서도 MZ세대라는 용어를 볼 줄이야.
나는 이마를 탁 치며 침음을 흘렸다.
MZ세대, 20-30대를 지칭하는 용어다.
그러니까 저기서 하는 말은, 이제는 내가 젊은 애들의 아이콘이 됐다는 소리.
"야, 오빠. 인기 많아졌다?"
서은이가 놀리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인기가 많아지기는 했네. 심지어 좋은 쪽으로.
나는 수빈씨가 깎아 놓은 사과를 먹으며 티비를 지켜봤다. 대체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나 보자.
수빈씨도 나처럼 티비를 집중해서 보았다. 아니, 나보다 더 집중해서 보는 거 같은데. 왜 그러세요, 민망하게... 차라리 옆에 있는 서은이처럼 스마트폰을 해주셨으면 한다.
[MZ세대가 빌런을 이렇게 광신적으로 따르는 건 살짝 문제가 되긴 합니다. 지금, 이게 포탈 메인 뉴스인데요, 댓글을 보면 전체적으로 다 에고스틱을 옹호하는 분위기입니다. 이게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사실 MZ세대가 기존 히어로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죠. 운 좋게 능력을 얻었는데 그걸로 출세했다는 이미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히어로가 일을 안 한다, 사고가 일어나도 대처가 늦다 이런 이야기가 많았죠.]
패널로 보이는 한 중년남성이 거기까지 말하더니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양해를 구하고 나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옆에 수빈씨는 그걸 들으면서 필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수빈씨... 뭐 하세요...
티비에서는 그 패널이 다시 입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에고스틱이라는 이 빌런이 시민들의 가려운데를 딱 긁어줬다 이겁니다. 히어로가 빌런을 사살하지 않고 제압만 하는 거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사형당해도 남을 놈들을 단순히 감옥에 가둬둔다... 형이 너무 적다 이런 말들이 많았죠. 근데 에고스틱이라는 이 빌런이 딱 즉시사살을 하니? 시민들이 통쾌해하는 면이 있죠.]
[그래도 이 빌런도 유람선에서 테러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사회자의 말에 패널은 답했다.
[이제 그거는 저번에 그가 한 추종자들의 테러를 막은 걸로 상당히 희석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테러도 사상자가 안 나오기는 했고요.]
"그래!"
내가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치자, 옆에 있던 서은이와 수빈씨가 화들짝 놀랐다.
"깜짝이야! 왜 그래요?"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새로운 테러를 바로 실행해야겠어!"
"응? 새로운 테러는 빌런 한 명 정도 제거하고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서은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나는 고개를 가로질렀다.
"안돼. 지금 내 이미지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나는 스타더스에 대적하는 악당이 되고 싶었지, 갑자기 졸지에 히어로 취급받고 싶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께 '진짜 악당'이 무엇인지 한번 보여줘야겠다. 지금 당장!"
내가 열의에 불타 소리치자 서은이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그래... 알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뭐 하게요? 저번에 그 무슨 선한 사마리안 그걸로 가요?"
"아니, 다른 거로 간다. 좀 더 사악한 거로 가야겠어."
"하아... 알았어요. 새로 준비해야겠네. 일단 말해 봐요."
"그래... 계획이 뭐냐면..."
기다려 스타더스.
내가 꼭 다시 떡상시켜 줄게.
***
[속보) 에고스틱 방송켰다ㅋㅋㅋㅋ]
지금 당장 티비 켜보삼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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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이왜진?]
ㄴ[??? 왜 진짜임?]
ㄴ[큰거왔다ㅋㅋㅋㅋㅋㅋ]
ㄴ[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자 드가자~ 자 드가자~자 드가자~ 자 드가자~자 드가자~ 자 드가자~]
***
바람이 휘몰아치는 다리 위.
그곳에 홀로 선 나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었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겠지.
그들을 향해,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오랜만입니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호감 빌런, 에고스틱입니다!"
자, 다시 한번 쇼를 해보자.
이렇게 해도 과연 나를 좋아할 수 있을지, 한번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