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플래시몹
***
[실시간 에고스틱 길거리에 등장함ㅋㅋㅋㅋㅋ]
(사진)
이거 뭐냐ㅋㅋㅋㅋㅋ
ㄴ[오 뭐임?ㅋㅋㅋㅋㅋ]
ㄴ[라이브 이벤트 ONㅋㅋㅋㅋㅋㅋ]
ㄴ[이거 위험한 거 아니냐? 진짜 모름]
ㄴ[아ㅋㅋㅋ 영화 찍냐고ㅋㅋㅋㅋ]
ㄴ[게이야 그거 찍다가 죽는다ㄷㄷ도망쳐라]
ㄴ[상남자특) 범죄 현장 찍음]
***
[헐헐헐 애들아 지금 망고스틱 길거리에 등장했데!]
(동영상)
ㄴ[오 뭐야? 또 테러야? 무섭다...]
ㄴ[아니! 이번엔 그냥 누구 추격하는 거 같데!]
ㄴ[헉 영상보니 누구 피흘리며 번쩍번쩍 하는데 살인 아니야?ㅜㅜ]
ㄴ[아니 그거 딱 봐도 빌런 쫓는 거 아니야?]
ㄴ[어둠의 다크 히어로 망고스틱! 어둠의 다크 히어로 망고스틱! 날 가져요!!!]
ㄴ[망고단 뭔뎈ㅋㅋㅋㅋㅋㅋ]
***
실시간 트레드 1위
#에고스틱
***
"헉...헉..."
텔레포터, 김학철은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몸을 움직였다.
원래라면 순간이동 따위는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그지만, 지금 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손으로 상처를 잡은 체, 계속. 계속.
앞으로만, 그저 앞으로만 이동했다.
그의 눈앞은 벌써 흐려지고 있었다. 몸이 무겁다. 죽을 거 같다.
문득 그는 분노가 치솟는 걸 느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자신은 그저 은행 몇 개를 턴 거밖에 잘못한 게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몇 명을 죽이기는 했지만, 그건 전부 그놈들이 잘못한 거였다. 왜 잘 가고 있던 자신을 막고 난리인가.
그는 계속 앞으로 순간이동 했다. 하지만 몸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워서일까. 이동이 쉽지가 않았다.
원래 순간 이동은 머릿속으로 원하는 위치나 좌표를 명확하게 인지해야 가능한 거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총을 맞아본 김학철의 정신은 이미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그저, 자기 눈앞에 보이는 가장 멀리 있는 곳으로 가고, 또 갈 뿐이었다. 사실 그마저도 점점 눈앞이 흐려져 쉽지 않았다.
"까약!"
"뭐, 뭐야!"
"으악!"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시내 한복판.
유동 인구가 많은 이곳에서, 피를 한 바가지 흘리고 있는 남자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사람들 틈 사이에서 나타나니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계속 앞으로, 앞으로 가야 했다.
왜냐면 뒤에서, 뒤에서 그놈이 쫓아오고 있었거든.
"예, 예 안녕하세요! 접니다, 에고스틱!"
"네 네. 지금 잠시 제가 업무중이라 바빠서요. 아이고!"
"어허. 놀라지 마세요. 해치지 않습니다!"
"시민 여러분을 위해 쓰레기를 청소하고 있을 뿐이니, 여러분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주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
가증스러운 그놈, 에고스틱.
텔레포터인 김학철은 당연히 그를 알고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은 에고스틱을 모르면 간첩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를 모르는 자가 없었다.
저번 주만 해도 온종일 티비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심지어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에고스틱 얘기를 했었으니.
김학철은 에고스틱이 일으킨 일을 알고 있었다.
빌런 2명을 암살했다는 거.
그러나 그는 딱히 에고스틱을 경계하지 않았다.
벼락에 맞을까 무서워 밖에 안나가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그는 뭐... 에고스틱이 지금까지 살해한 빌런들이 아마 그와 개인적으로 엮인 일이 있었을 거로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놈들을 죽이지는 않았겠지 말인가.
그래서 김학철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에고스틱이 자신을 죽이려들지 않을 거라는 확신.
에고스틱이 자기 정체를 모를 거라는 확신.
그리고 에고스틱이 자신을 죽이려 들어도, 자신은 능력을 사용해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그 확신은, 실시간으로 김학철을 배신하는 중이었다.
세상 어느 사람이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총든 놈이 튀어나와 자신을 쏠꺼라고 예상했겠는가.
그리고 그 예상을 못한 결과는, 그에게 처절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자 나와요! 쓰레기 하나 오늘 잡습니다!"
"A급 빌런 텔레포터! 그만 이제 지옥가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쓰레기 빌런은 주님곁에!"
정신병자처럼 헛소리를 하는 에고스틱.
마치 사람들한테 들으라는 듯이 말을 미친놈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그놈.
그런 그놈이, 김학철에게는 그 무엇보다 두려웠다.
정확히는, 줄어들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자신이 계속 순간이동하고 있음에도, 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들리는 그의 목소리.
김학철은, 계속해서 이동하며 신음했다.
"으윽..."
그는 슬슬 눈앞이 도는 게 느껴졌다.
애초에, 총에 맞은 몸으로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었다.
그가 순간 이동 능력이 없었다면, 그리고 죽음을 직감한 육체가 마지막 힘까지 짜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거다.
"그러나 오호통제라(Oh-hoh統制라)! 너의 목숨은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뒤에서 들려오는 헛소리를 들으며, 김학철은 결국 쓰러졌다.
그의 육신의 힘이, 결국 순간 이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인 그에게, 그림자가 졌다.
그림자를 확인하기 위해 올린 고개에는, 반쪽짜리 마스크를 쓴체 비열하게 웃고 있는 악당이 있었다.
"텔레포터! 니 죄를 니가 알렸다."
"헉.. 헉.. 살려, 살려 줘. 살려주세요..."
"아! 살려달라고?"
그는 그 말을 듣더니 주위를 빙 둘러봤다.
그들 주위에는 둘을 둘러싼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에워싼 시민들에게, 에고스틱은 연극조의 목소리로 큰 소리로 물었다.
"여러분! 여기 있는 이 쓰레기는 남의 재산 몇십억을 훔치고 선량한 사람 4명을 죽인 놈입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이놈을, 살려야 하겠습니까?"
"죽여라!"
"죽여 버려!"
잔뜩 흥분한 시민들의 죽이라는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개 중에는 에고스틱 저놈도 누군가의 죄 없는 아들 딸을 수백명 침수시키려 하지 않았나-라는 의문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총을 들고 있는 빌런 앞에서 그걸 대놓고 말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목숨은 소중한 법이지.
그렇게 죽여 버리라는 고함소리의 한복판에서, 에고스틱은 김학철을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이더니 씨익 웃었다.
"죽이라는데?"
"제, 제발. 한, 한 번만. 한 번만 살려 줘..."
"그래? 딱 한번? 그래. 딱 한번이니까... 살려줄까?"
에고스틱의 긍정적인 반응에 순간적으로 밝아지는 김학철의 표정.
그러나 김학철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에고스틱이 손이 이미 뻗어져 있었다.
"미안하지만 학철아, 그런건 없다!"
웃음기 섞여 있는 에고스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디선가 탕-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것이 A급 빌런 텔레포터, 김학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휴우..."
총 한 방 더 맞자 결국 죽어 버린 텔레포터.
끝내 그가 죽자, 주위에 몰린 사람들이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과장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더욱 크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
근데... 어...
그, 애들아. 내가 일단 형식적으로 빌런이거든?
그런데 말이야... 너희 내 주위에서 뭐 하니?
이 세계는 히어로와 빌런들을 비롯한 초능력자들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 놀랍도록 내 원래 세계랑 비슷하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나는 내가 다른 세계에 왔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어떨때? 바로 눈앞에서 사람이 총 맞아서 죽었는데 박수치며 사람들이 좋아할 때.
아니, 눈앞에서 총맞아 사람이 죽으면 막 무섭고, 소리지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피흘리며 죽어 가는 시체들 앞에서 웃음 지으며 박수 치는 사람들을 보니, 참 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중세 시대때 공개처형을 흥미진진하게 보는 사람들 같달까. 사실 다를 게 없으려나?
아마 이 세계에서는 히어로와 빌런의 대격돌로 인해 사람들이 죽음에 익숙해진 걸려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아니 잠깐. 일단 다 제쳐두고, 나 빌런이라니까? 내가 히어로가 아닌데 너희 뭐 하니.
나는 아직도 박수를 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번 씨익 웃어 보인 뒤 돌아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도 빌런이거든요. 갑자기 여기 계신 분들한테 제가 총 막 쏘면 어쩌려고 이러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흠칫하며 멈추는 사람들.
그래, 그래도 상식적인 판단이 되는 모양이다.
이제야?
어쨌든, 딱히 겁줄 생각은 없었기에 말을 덧붙였다.
"농담입니다 여러분! 제가 막 갑작스럽게 무고한 시민들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제가 뭔가를 벌일 때면, 다 사전에 공지하고 히어로를 부르고 일으키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그저 저보다 좀 더 '질 나쁜' 빌런을 청소하러 왔을 뿐이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사람들이 안심하는 게 보였다.
아니, 그렇게 쫄꺼면 처음부터 가까이 오지 말든가...
[형, 이제 다 처리됐으면 나와요. 히어로들 오기 전에.]
귀에서 들려오는 서은이의 목소리.
그래, 이제 슬슬 떠나야지.
아, 근데 지금까지 계속 순간이동해서 힘든데 또 원거리 가야돼. 죽겠네.
내가 한숨을 쉬며 일으키려는 찰나, 하늘 위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에고스틱!"
그 소리에 놀란 내가 위를 올려다보니 그곳에는.
"스타더스?"
아니 너가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