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9화 (9/328)

EP.9 그녀의 일상

신하루.

연희대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학생.

금발 머리에, 누구나 돌아볼 만한 외모를 가진 걸 제외하고는 평범해 보이는 그녀. 사실 예쁜 거 자체가 평범한 거는 아니지마는....

하여간, 그런 그녀가 히어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히어로 협회의 일부 요원들과 동료 히어로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그렇기에 그녀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대학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수상할 정도로 결석하는 날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기는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개강총회도 빠져, 오티도 빠져, MT도 빠져, 뒤풀이도 빠져, 축제도 빠져...

뭐 하나 학교행사에 참여한 게 없기에, 그녀와 친한 사람은 굉장히 드문 편이었다.

물론 그녀가 일부러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에 그런 것이겠지만은.

물론 그래도 친한 동기나 선배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나름 대학생과 히어로의 이중생활을 잘 해내고 있었다.

서울에서 테러가 자주 있는 건 아니다.

뭐 이주에 한 번 정도?

사실 그것만 해도 자주 있는 거지만, 이 세계는 원체 혼란스럽기에 그 정도만 해도 버틸만했다.

아직은, 한국에서 그렇게 강한 빌런이 나온 적이 많지도 않고.

물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그 인구수에 걸맞게 매일 테러가 난무한다고는 들었지만.

대신 그만큼 S, A급 히어로가 많아서 나름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미국가면 도시에 널린 게 A급 히어로라는 말이 있으니까.

대한민국은 전체로 따져도 A급이 몇 명 없다는 걸 생각하면, 미국이 대단하기는 하다.

그래서 그녀는 A급임에도 딱히 자기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녀의 능력이 무엇인가. 힘이 아주 센것과 날아다니는 것 말고는 더 없다.

그것밖에 안 되니, 저번에 에고스틱이 그럴 때도 아무것도 못 하고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지.

"....."

톡. 톡.

그녀는 자신이 마시던 망고스무디가 담긴 유리잔을 손가락으로 쳤다.

에고스틱.

처음에는 빌런을 죽이고 다니는 걸 보고는, 분노에 찼었다.

사실 그때 그녀는 에고스틱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철모르는 꼬맹이가 힘을 얻고 날뛴다.

그녀의 추측은 이랬다.

그냥 관종 하나가 힘을 얻으니까

'어, 이걸로 다 악당 해치우면 되는 거 아닌가?'이러면서 신나서 막 다른 빌런들을 죽이고 다니는 거라고.

정식으로 히어로 신청을 해, 사법부의 소속이 되는 대신.

자기 멋대로 과분한 힘을 써가며 자신이 정의인양 행동하는 애새끼.

힘을 얻고나니 사적제제에 열을 올리며, 그에 따른 대중의 관심에 희열을 느끼는 놈들이 있다.

자신이 소위 '고지식한 히어로'들과는 다르게 '영웅'이라는 착각에 빠진 놈들.

그녀가 제일 혐오하는 부류였다.

관종들.

그런 생각은 그놈이 살인 현장에 신하루 자기 이름을 피로 써둔 것을 보고 확신으로 바뀌었다.

역겨운놈.

대충 내 얼굴만 보고 껄떡거리는 놈이겠지.

그것도 야만적이게 피로 뭐 하는 거야?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를 감옥에 박아넣을 생각이 가득했다.

...물론 그때도 어떻게 정체를 숨긴 A급 빌런이 사는 곳을 알았는지는 몰랐지만.

그래, 그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이 자식이 이렇게 미친놈일지는.

[네, 지금 저 두 배에는 폭탄이 붙어져 있습니다. 쾅-! 하면 저 두 배에 탄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도 없이 떠나게 되겠죠.]

[제한 시각은 30분. 딱 그 시간만 두 배 모두 기폭 버튼을 안 누르면 됩니다.]

단순히 능력에 취한 애새끼가 아니었다.

대규모 테러를 기획하는, 확실한 빌런이었다.

거기에, 사람의 마음을 갖고 노는 일종의 사이코패스.

내색은 안 했지만, 그녀는 속으로 경악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반인륜적인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에고스틱은 자기 아이디어가 아닌 전생의 영화의 오마쥬라며 억울해하겠지만, 그녀가 이를 알리는 없었다.

자기 이름을 에고스틱이라고 밝힌 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분석하기를, 이기적인을 뜻하는 영단어 Egistic(에고이스틱)에서 이름을 따온 것 같다고들 한다.

그의 이름과, 그가 말한 인간은 이기적이다-의 연관성.

이걸 보더라도, 그가 정상적이지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망의 저번 주.

처음에 에고스틱의 지지자들이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있다는 말에, 그녀는 한숨만 쉬었다.

미친놈이 한 명 나오자, 낙수효과처럼 다른 빌런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심지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킨 바로 이튿날 거사를 진행했다.

사전에 준비된 계획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히 이루어진 테러.

그러나 그 방식이 에고스틱이 한 행동을 모방한 것 자체였기에,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에고스틱을 추종하는 광신도가 하루 만에 생겼고, 그들이 바로 이튿날 테러를 일으킬 정도로 적극적이라는 것.

아직 에고스틱이 한 폭탄테러의 모방범죄에 대한 방지책이 협회에서 논의되기도 전에.

너무 빠르게 일어난 테러라, 그녀 또한 아무런 대비책 없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 한 체 자책만을 하며 초조히 상황을 지켜보기도 잠시.

에고스틱 그가 직접 등판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굉장히 긴장했다.

겁먹었다? 그래, 그녀는 쿨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조금 겁먹었다. 조금. 많이 겁먹은 거는 절대 아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또라이놈이, 직접 그곳으로 왔다? 그것도 인질 수백명이 있는 곳에?

걱정을 안 하면 그게 이상했을 상황이다.

그렇게 협회의 모두와 자신을 포함해 대기하던 히어로들이 숨죽인체 지켜보았다.

...물론 그의 방송을 통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서 촬영되는 그의 낯짝이 가려져 있음에도 참으로 뻔뻔해 보여 당장 달려가 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참아가며. 계속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는, 역시 자신이 또라이라는걸 증명했다.

자기 추종자들을 보고, 지랄하지 말라며 일제히 쏴죽여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인질들을 풀어줬다. 심지어 돈까지 쥐어준다는 약속과 함께. 들어 보니 실제로 피해자들의 계좌에 돈이 입금되었다고 한다. 대포통장인가 뭔가로 보내서 추적할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돈만 줬냐? 사과까지 했다. 추종자들이 지랄해서 죄송하다고. 그것도 스스로가 틀어놓은 방송 앞에서.

그쯤 되자, 그녀는 정말로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뭐 하는 놈인가? 빌런이면 빌런다워야지.

그리고 터놓고 말해서, 그날 그의 행보만 때놓고 보면 사실은 영웅다웠다.

....물론 사적제제를 허용하는 거는 결단코 아니다. 다만 이미 협회에서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하기 위해 사살을 허용했기에,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그녀는 이상하다는 거다.

지금까지의 빌런들 중 이 에고스틱 같은 놈은 없었다.

무차별 살인, 폭격, 방화, 납치, 테러.

이런 짓을 일으키는 빌런은 매우 흔했다.

하지만 에고스틱 이놈처럼 무언가 '신념'이 있어 보이는 빌런?

그녀에게는 처음 보는 사례였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면 어딘가 비슷한 케이스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이었다.

-따랑.

과제를 다 마친 그녀는 카페의 밖으로 나왔다.

따사로운 햇볕이 몸을 감싸는, 좋은 날.

그녀는 습관적으로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흐응-."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펴는 그녀의 모습에 길을 걸어가던 남성들이 고개를 힐끔거리는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모를 일이었다.

"에고스틱..."

'....빌런들의 위치도 알고, 전파납치도 할 수 있고, 처음 본 인질들의 계좌도 알 수 있고, 돈도 많다.'

대체 뭐 하는 놈일까 이놈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미 에고스틱은 최우수 경계대상 1위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그녀의 머릿속에 에고스틱이라는 남자가 좋은쪽이던 나쁜쪽이던, 큰 지분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꼭, 너의 정체를 밝혀주마.'

***

"쓰읍. 어디서 누가 내 얘기를 하나."

"형 요즘 안 씻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서은아. 내가 너 여자인 걸 뻔히 아는데 자꾸 형 거릴..."

"형. 조용히. 하세요."

"그래..."

".... 물, 받아. 놓을까요?"

"아니 수빈씨는 또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계셔도 돼요. 그리고 저 매일 깨끗이 씻습니다. 음해에요, 음해."

"....네."

"아니, 왜 안믿는 눈치지? 진짜 음해라니까!"

서울의 한복판.

평범해 보이는 주택이 있는 곳에서 몇십층 깊이에 있는 비밀기지.

바로 에고스틱의 기지. 줄여서 에고-베이스다.

"형. 왜 맘대로 남의 집에 이름을 짓고 그래요."

"씁. 서은아, 너와 나 사이에 너집 내집이 어딨니? 너집이 내집이고 내집이 너집이지."

"형 집 팔아서 이제 집도 없잖아요."

"......"

그래, 나는 집을 옮겼다.

서은이네 지하 비밀기지로.

이제부터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기에, 모든 장비가 다 모여 있는 여기서 숙식을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저 수빈씨도 문제고.

서은이도 흔쾌히 동의했다.

비록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는 지하지만 LED로 떡칠되어 밝고 좋다. 거기에 이곳이 엄청 넓고 방도 많아서, 큰 무리는 없었다.

서은아 고마워.

내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서은이를 바라보자, 서은이는 뭘 보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저 저 싸가지없는.

나의 일등 최측근이자 천재해커, 한서은.

은색 단발을 한 몹시 작은 아이다. 애초에 중3밖에 안 되니까. 처음에는 중1인 줄 알았다.

자꾸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남자라고 주장하기는 하는데...

서은아, 사실 나 원작 읽어서 너 여자인 거 알어...

내가 살면서 여중생한테 형소리 들을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그렇다고 여기에 나와 서은이만 사는 건 아니다.

자칭 나의 추종자였던, 내가 유사 납치?를 한 여자.

"...?"

겁먹은 듯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수빈씨도 함께 살고 있다.

....어쩌다 그녀를 줍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자면 길다.

"하아..."

어째 같이 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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