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사상초유
300명.
300명이면, 어지간한 고등학교 전교생의 인원수.
그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뜻은, 많은 걸 의미한다.
그만큼 그들이 있는 공간이 넓다거나, 그만큼 그들이 좁게 붙어 있다던가.
지금 같은 경우는, 아마 둘 다이겠지.
300명이라는 이 많은 인원이 넓은 공간에 좁게 있는 거다.
근데 그렇게 많은 인원이 동시에 있는데, 입을 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면 조용하냐고? 아니, 그건 아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세상 서럽게 우는 한 여자 때문에.
"흐어어어어어엉. 흐아아아아아앙. 흐, 흐어어어어어엉."
그만 울어 제발.
[진짜 세상 서럽게 우네ㄷㄷㄷㄷ]
[자기편 7명이 끔살당했는데 울만하지ㅋㅋㅋ]
[얘도 이제 곧 가는 거임? 예쁜데 안타깝네]
[미친, 놈들아. 떨고, 있는 인질들이, 안 보이더냐,,,, 이건, 영화가, 아니다.]
[응 나만 아니면 돼~~~~]
[지금 딱보니 인질들 다 죽이지는 않을 듯?]
[여자분 너무 서럽게 우시는 게 걱정된다ㅜㅜ]
[아니 저 여자도 테러범이야 미친놈들아ㅋㅋㅋㅋ]
[지상파보다 이게 훨씬 재밌네. 직관 꿀잼ㄹㅇㅋㅋ]
슬쩍 분위기가 어떤지 보려고 채팅창을 다시 한번 봤는데.
이젠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것만 깨달았다. 어질어질하네....
"흐어어어어어엉."
일단 이 여자가 더 곤란하다.
어떻게 하지, 시끄러운데.
그냥 죽일까?
아니, 그래도 경고는 해주자. 나는 신사니까.
자리에 쪼그려 앉아 여자가 떨어트린 권총을 주웠다.
자세를 낮춘 채로 있자, 여자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딸꾹질을 하는 그녀를 향해, 자상하게 웃으면 한마디 해줬다.
"자꾸 우시면, 쏩니다?"
그렇게 말하며 권총으로 장난삼아 빵!하며 쏘는 시늉을 했더니, 기겁하며 눈물을 멈추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입에 주먹을 넣는다고 울음이 참아지나? 잘은 모르겠다만.
어쨌든, 전보다는 조용해졌다.
뒤편에서 그녀가 히끅거리는걸 들으며, 나는 인질들의 앞에 섰다.
300명이나 되는 인원이 쪼그려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은 장관.
그들은 대체적으로 공포에 질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왜 이러나... 했는데 생각해 보니 방금 내가 눈앞에서 7명을 죽였구나?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이 총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을 얼마나 많이 직관해 봤겠는가.
아, 이 세계 사람들이면 좀 많이 봐봤으려나?
이곳은 서울.
아시아 제3위의 경제도시이자, 제3위의 테러빈출도시.
이상할 정도로 초능력자가 많아 히어로도, 빌런도 많은 대한민국의 수도답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잔뜩 긴장한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 나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A급 빌런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염동력을 이용해 소리를 증폭시켜서,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나는 말했다.
내 말이 끝나자 더욱 냉랭해지는 분위기. 다들 불안해하는 게 보인다. 왜 이래. 해치지 않아요.
[이제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가는 거임? ㅎㄷㄷㄷㄷ]
채팅창을 보니 왜 그러는 줄 알겠네.
아니, 나를 뭐로 보는 거야. 나 그런 사이코패스 아니거든?
...생각해 보니 전에 배 두 개에 먼저 죽이는 사람만이 살 수 있다. 이러긴 했구나. 에휴 그래, 다 내 죄지 내 죄야.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
"일단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진짜로. 염동력까지 사용해서 직각으로 숙였다. 이런 디테일이 중요한 거거든.
내가 갑작스럽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자, 사람들이 숨을 참는 게 느껴졌다.
다시 허리를 핀 나는, 말을 이었다.
"비록 제가 한 일은 아니지만은, 저의 선례로 인해 벌어진 이러한 모방범죄에 대하여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입이 떡 벌어진 인질들.
갑자기 분위기가 술렁술렁해진다.
[?????????]
[점마 뭐라는 거니?]
[이게...빌런? 내가 지금까지 본 빌런은 대체?]
채팅창 또한 당혹 그 자체.
맨날 사고만 치고 돌아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수능 공부를 50일 열심히 하더니 서울대 합격증을 들고 오는 모습을 본 부모와도 같은 반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말했다.
"인질 여러분은 딱히 제가 터치할 부분이 아니니, 그대로 집에 돌아가 주시면 됩니다. 저때문에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 소소하게 계좌로 100만원씩 보낼 예정이니, 확인 바랍니다."
[???이게 뭔 개소리임???]
[피해 보상 뭔데 ㅅㅂㅋㅋㅋㅋㅋㅋㅋ]
[엄마 난 커서 인질이 될레요! 엄마 난 커서 인질이 될레요! 엄마 난 커서 인질이 될레요! 엄마 난 커서 인질이 될레요! 엄마 난 커서 인질이 될레요! 엄마 난 커서 인질이 될레요!]
[이게...테러? 지금까지 내가 당했던 테러는 도대체?]
"안타깝게도 숨진 세분께는 1000만원씩 보내드리겠습니다. 계좌는 제가 전부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말했었지.
나 돈 많다고.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돈지랄이다.
[겨우... 천만원?]
[쓰읍 사람이 죽었는데 천만원은 에반데....]
[???사실 에고스틱 쟤가 죽인 것도 아닌데 천만원이면 많은거 아니냐?]
[그런?가? 그래도 사망보상금 천만원은 좀...]
[아니 애초에 쟤가 죽인게 아니라니까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을 보니 1억을 쏜다고 해야 했나 후회가 되긴 하는데....
이젠 어쩔 수 없다, 이미 계좌로 송금 대기 완료라고.
계좌는 어떻게 아냐고? 천재 헤커인 서은이가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 서은이만 믿으면 될 거야 아마.
[....하아...]
어째 인이어에서 한숨이 들린 거 같지만 기분 탓일 거다 아마. 그렇고말고.
할 말은 다 한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뒤편에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름도 모를 여자 추종자가 있었다.
얘는 여기다가 버려두면 맞아 죽을 수도 있거나 사고 칠 수도 있으니 묶어둬 볼까...
[형. 그 여자 그냥 데리고 와요.]
갑자기 인이어로 들리는 서은이에 목소리.
데리고 오라고? 얘를? 왜?
그러나 여기서 왜라고 육성으로 물을 수도 없었다.
지금 수백 명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혼잣말을 중얼중얼하고 있으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
[제가 아는 사람 같아서 그래요. 맞다면 아마 큰 도움이 될 거 같으니, 데리고 오는 게 좋을걸요.]
흠 그래.
서은이가 이 정도로 강력하게 말하면, 그런 이유가 있는 거겠지.
"아가씨? 아가씨는 저와 함께 갑시다."
"히에에에에엑?"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여자를 일으켜 내 품에 안았다.
당황한 듯 꿈틀거리는 그녀를 잡은 채 나는 사람들을 보며 인사했다.
"그럼, 안녕히."
말과 동시에 망토를 내 앞으로 펼치며
나는 그대로 사라졌다.
[뭐야 방종임?]
[마지막이 좀 루즈하게 끝났네요... 6/10드립니다]
[김선우님을 석방해라 김선우님을 석방해라 김선우님을 석방해라 김선우님을 석방해라 김선우님을 석방해라 김선우님을 석방해라김선우님을 석방해라 김선우님을 석방해라 ]
[저 도배 보고 김선우 사형시키기로 결정했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어질어질한 방송도 끄고 좀.
***
[빌런이 책임지고 돈으로 배상? 실제 인질들의 계좌 인증 속속. 에고스틱, 그는 뭐 하는 인물인가. 집중취재.]
[[사설]자신을 추종하는 테러리스트를 살해한 빌런,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9시 뉴스 메인으로 나온 에고스틱 근황....NEWSTREE]
***
[글쓴이]익명
[제목]그러니까 이게 사실이라고?
A급 빌런 모가지를 딴 놈이 갑자기 배 두 개 납치해서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이러다가 안죽이니까 빤쓰런하더니 이튿날 자기 추종자들이 테러 일으키니까 직접 등판해서 다 죽이고 인질들 피해 보상금주고 풀어줬다는 거지?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라이브로 송출했고?
[익명1]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ㅎㅎ
ㄴ[익명2]ㄹㅇㅋㅋ
ㄴ[익명3]세상에 그런 놈이 어딨냐(진짜 있다)
ㄴ[익명4]그것도 공중파 전파납치? 뻥이겠지(아님)
[익명5]ㄹㅇ망고스틱같은 빌런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이틀 만에 머리에 각인이 되네
ㄴ[익명6]망고스틱은 또 누구냐?ㅋㅋㅋㅋ
ㄴ[익명7]망고스틱 ㅅㅂㅋㅋㅋㅋ
ㄴ[익명8]어떻게 빌런 이름이 망고스틱ㅋㅋㅋ
[익명9]아니 얘 솔직히 빌런도 죽여 테러도 막고 인질도 풀어 줘... 이거 완전 히어로 아님?
ㄴ[익명10]히어로(배납치해서 폭탄테러하려 함)
ㄴ[익명9]아 그래서 사람 죽었냐고ㅋㅋㅋㅋ
ㄴ[익명11]어둠의 다크히어로 망고스틱 지지합니다
***
이틀 연속으로 전국민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킨 빌런, 망고스틱.
...이 아니라 에고스틱.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속으로 정정했다. 여론을 살핀다고 커뮤니티를 너무 봤더니 머리가 약간 맛이 간 거 같다고 생각했다.
"하루야, 뭐 해?"
"아, 언니."
카페 안.
대학생인 신하루는 그녀의 선배와 함께 과제를 하고 있었다.
히어로로 활동할 때는 기본적으로 이름도 숨기고 인식저하 필터도 상시 착용하기에, 그녀가 히어로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누릴 수 있는 평범한 대학 생활.
그녀는 낮에는 평범한 대학생인 신하루, 밤에는 히어로인 스타더스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루야, 너무 집중을 못 하는 거 같은데. 뭔 일 있어?"
"아, 아니에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손을 내저으며 연신 괜찮다며 이제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선배를 안심시킨 그녀는, 다시 과제를 하기 위해 펜을 잡았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은 딴 데로 가 있었다.
대체 에고스틱, 이놈은 뭐 하는 놈일까-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