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도주의 미학
"하하하... 이럴 리가 없는데."
찬 바람이 부는 옥상.
나는 그 위에서,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인간은, 인간은 저렇게 이타적인 생명체가 아니란 말입니다! 분명 버튼을 누를 줄 알았는데 어째서! 어째서 안 누른 거죠?"
미친놈처럼 큰 소리로 혼잣말하기 시작하는 나.
눈은 허공에, 손도 허공에 허우적 허우적.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을 멈추고 눈을 내 앞에 서 있던 스타더스에게 고정했다.
"아."
내 짧은 한마디.
스타더스를 바라보며, 여는 입.
"당신 때문이었군요."
당연히 스타더스 때문은 아니다.
내가 선장들한테 히어로의 연설이 방송에 나온 뒤에 바로 바다에 던지라고 명령했거든.
하지만 그것은 나와 선장 두 명밖에 모르는 비밀.
그러니 이 전국에 송출되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척.
마치 이 모든 테러가 스타더스의 연설 때문에 좌절된 듯.
입을 놀렸다.
"당신의 연설을 듣고 나서, 모두가 갑자기 연합되었었죠."
그리고 미친놈처럼 웃기.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진짜 너무 쪽팔린데.
나는 부끄러움을 꾹 참고 계속 미친놈처럼 웃었다.
슬쩍 보니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스타더스의 표정은... 미친놈을 보는듯 했다.
으, 최애의 경멸하는 표정을 보는 팬의 심정을 아는가?
나는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내가 그렇게 웃는동안 그녀가 나를 집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이유는, 당연히 내 손에 들린 기폭장치 때문.
배가 항구에 완전히 정박해 사람들이 내리기 전까지는, 그녀는 긴장의 끈을 풀 수 없겠지.
다 웃은 나는, 다시 입을 털었다.
"그래요. 그래. 제가 아무래도 당신을 과소평가했던 모양입니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일. 당신이라면, 말 한마디로 대중을 계몽시키는 건 일도 아니겠죠."
음.
큰일 났다.
나도 슬슬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어.
전생의 나는 어떤 인물이었나.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성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나를 5초 안에 손짓만으로 죽일 수 있는 괴물 앞에서, 전국의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청산유수처럼 말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아까까지는 어떻게든 준비한 대로 말했는데.
슬슬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바람이 차다. 나 추워.
로브 안에 핫택스라도 입었어야 하나?
아니, 이런 고민은 왜 하고있는거지...
좇됐다. 슬슬 멘탈이 나간다.
이제 준비해야겠다.
무슨 준비? 튈 준비.
"큼, 큼. 제 실수였군요. 스타더스, 당신을 너무 과소평가했나 봅니다."
"...."
"다음번에는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다음에 보죠 여러분!"
카메라를 보면서 싱긋, 한번 웃어 주고.
카메라랑 함께 사라졌다.
망토를 몸 앞으로 두르고 순간 이동을 했다는 소리.
여기 근처에는 경찰들이 쫙 깔려 있을 테니 저 멀리 내 집까지 순간 이동해야겠지.
아, 거기까지 순간 이동하면 힘 딸려서 앞으로 3일은 몸져누워야 할 텐데.
에휴, 인생이 쉽지 않다.
"네 녀석!"
나의 도주를 눈치챈 그녀가 순식간에 내 곁으로 달려왔으나.
어림도 없지, 잘 있어라.
"그럼, 안녕히."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사라졌다.
****
[[단독]한낮의 테러, 사상자는 없었다.]
[A급 빌런 '에고스틱'은 누구인가? 집중취재.]
[[속보]히어로협회, 성명 발표. '빌런의 능력은 염동력, 순간 이동으로 보여.]
[이 시국에 전파납치…. 한국 방송 보안, 이대로 괜찮은가.]
[전국민이 본 전파납치 빌런이 지목한 히어로 ‘스타더스’는 누구인가? 그녀의 업적을 살펴보자.]
[승객 및 승무원들, 불안 및 공황장애 호소. 인터뷰 거절 의사 밝혀.]
그날, 전국에 기사가 우후죽순 쏟아져 내렸다.
일상 속에 나타난 비일상.
특정 구역, 특정 인물들을 상대로 벌어졌던 다른 테러들과 다르게, 이번 테러는 테러의 현장을 방송으로 전국민에게 송출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테러들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어그로가 엄청나게 끌렸다는 듯.
하루 만에 전국민이 전부 이 사건을 알게 되었고, 이 사건의 주도자 빌런 '에고스틱'과 그를 맞선 히어로 '스타더스'가 단숨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외신들도 주목할 만큼 대규모 사건이었다는 것.
한국 히어로 협회는 'A급 영웅 스타더스의 활약으로 테러를 사상자 0명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라고 밝히며 치하했고, 보도자료들도 다 그렇게 나갔다.
테러 풀영상이 유튜브 실시간 조회 수 1위에 오르는 등, 센세이션했던 사건.
이미 수많은 곳에서는 빌런 에고스틱을 정리하고 분석한 게시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분석한 이들 중에는 한국 초상 능력자협회도 있었다.
***
"그래, 브리핑을 시작해 보게."
한국 히어로 협회.
그곳의 최상층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빌런, 자신이 밝힌 이름은 에고스틱입니다."
"성별은 남성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며, 대략 20대 초중반으로 보입니다."
"현재 신원과 거주지는 불명이나, 일으킨 사건사고들이 전부 서울에 집중된 걸 보면 서울에 거주중일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범인의 외형은 자료집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에게 배부된 자료에는 그의 정면샷과 측면샷이 찍혀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검은색으로 통일된 그의 외형.
마치 롱코트와도 같은 검은 로브에, 검은 망토를 입고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얼굴의 반을 가린 마스크. 반만을 가렸음에도, 얼굴을 확실시하기 힘든 것이 인식저해 기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사진 아래 각주에 적혀 있었다.
"그가 현재 직접 살해한 인물은 두 명. A급과 S급 빌런입니다. 둘 모두 머리를 염동력으로 압축, 또는 폭발시켜 죽인 것으로 보이며, 다른 곳에는 일체의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기습을 한 게 아닌가라는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빌런의 염동력의 세기는 어느 정도로 보이나."
"그것은…. 아직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두개골을 박살 낸 것은 가만히 있는 무방비 적을 상대로라면 C급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상대가 저항을 하고 있었다면 A급도 쉽지 않습니다만, 범행 상태를 보면 아무래도 무방비할 때 공격한 것 같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흠. 그러면 C급 정도 된다는 건가?"
"그건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범인이 일부러 힘을 빼고 공격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알았다. 계속해 보게."
"예. 에고스틱이 직접 살인한 사람은 빌런 둘이 유일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대규모 테러로 일반 시민도 학살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브리핑을 하는 자가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이들이 여기에 모인 이유도, 어제의 그 사건 때문이니.
"네. 어제의 사건, 통칭 '한강 유람선 폭탄테러 미수'사건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단 폭탄은 미리 부착해 놓은 것으로 보이며, 해체 결과 배를 반파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진 고성능 폭탄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어디서 이것들은 구한 건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연설자는 잠시 실례한다고 말한 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파납치. 최신식 보안기술을 뚫고 어떻게 전파납치를 해 방송을 송출했는지는 미정입니다. 로그도 남아 있지 않고, 카메라 또한 빌런이 이동시켜서 검증이 불가능합니다."
"일각에서는 전파 관련 능력도 있는 게 아니냐, 라는 말도 있지만. 아직 정보통신 기술 관련 능력을 갖춘 초상 능력자는 확인되지 않았고, 3개의 능력을 동시에 가진 초상 능력자도 없기에, 추측뿐입니다."
"일단 확실한 건, 에고스틱은 자유롭게 방송 3사의 전파를 탈취 할 정도의 능력은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파 자체도 저희 쪽이 막은 것이 아닌, 사건이 끝난 후 에고스틱이 방송송출을 관두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아…."
"그래, 알았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알 것 같군."
협회장이 연설가의 말을 잘랐다.
발표자는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긴 테이블에는, 협회장의 말만이 울려 퍼졌다.
"이 빌런은 계획적이며, 정보가 매우 많다. A, S급 빌런의 소재와 신원을 파악하고 있으며, 마음대로 방송국의 전파를 해킹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있나."
"네."
자리에 앉은, 아까 브리핑을 했던 남성이 입을 열었다.
"또한... 일단은, 자신이 뱉은 말은 지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배의 누구도 버튼을 누르지 않자 그대로 살려 보내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스타더스에게 집착한다는 점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테이블 끝 쪽에 앉아 있던 누군가에게 눈이 모두의 눈이 쏠렸다.
자리에 앉아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에게.
모두의 주목받은 스타더스가, 자신을 보는 청중을 향해 말을 이었다.
"네, 맞습니다. 범인은 어째서인지, 빌런을 살해한 현장에서도 저를 향해 메시지를 남겼고, 이번 사태에서도 저를 콕 찍어 불렀습니다."
"왜인 줄 자네는 알고 있나, 스타더스?"
협회장의 질문에, 하루 그녀는 그저 덤덤히 답할 뿐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 이상한 일일네 그려."
그녀의 답변을 들은 협회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른 주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랭크를 S급, 그러니까 최우수 수배 대상에 올리는 게 맞지 않겠냐. 그러자 아니다, 그가 아직 민간인 살인 미수만 있지 실제로 살인도 하지 않았고, 염동력의 강함도 모르는데 S급을 주는 건 시기상조다...
그렇게 밤새, 열띤 논의가 이루어졌다.
***
그시각.
테러 현장으로부터 몇키로 떨어진 곳의, 작은 원룸.
"아이고.... 시발 나 죽겠네."
나는,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을 뿐이었다.
빌런으로 살아가는게 쉬운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