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2화 (2/328)

EP.2 악역 데뷔

강에도 파도가 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안치겠지. 내지니까.

하지만 지금의 강은, 마치 파도가 치는 것 같다고 표현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날은 화창하고 밝았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날 것만 같은 좋은 날.

그럼에도 이 강은 무척이나 잔혹해 보였다.

두 배 모두 유람선.

즐거움을 느끼러 온 손님들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질려 하고 있으니까.

["네, 지금 저 두 배에는 폭탄이 붙어져 있습니다. 쾅-! 하면 저 두 배에 탄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도 없이 떠나게 되겠죠."]

전국민이 보는 지상파 티비 앞에서 나오는 범인의 목소리.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최초의 빌런발 전파납치 사건이었다.

["이런 짓을 한 제가 누구냐고요? 소개합니다. 제 이름은 에고스틱. 그냥 편하게 에고로 불러 주시길 바랍니다. 제 이력도 소개해야 할까요? S급 빌런 엔조디악. A급 빌런 라이노. 네, 제가 죽였습니다. 왜냐고요? 그야, 재밌으니까?]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는 윙크했다.

비록 나머지 눈은 반쪽 가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마는.

["네, 근데 제가 뭐 살인마?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죠.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로, 일단 전 10분 이내에 이곳에 A급 히어로 스타더스가 오는 걸 바랍니다. 왜냐고요? 그녀가 오지 않으면.... 아이고! 슬프게도 오늘 타이타닉이 2대나 더 생길 거 같네요."]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가 옥상쪽 문부터 열어주세요."

"예, 엽!"

사원이 문을 닫고 부리나케 나간 뒤.

신하루는 빠르게 옷을 슈트로 갈아입었다.

붉은 라텍스 슈트를 입고, 귀에 인이어 이어폰을 연결하고.

그녀는 창문을 향해 뛰어가, 몸을 날렸다.

[스타더스. 여기는 작전통제실입니다. A급 빌런 에고스틱이 준 좌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서대….]

빌런이 준 시각은 10분.

그리고 현재 빌런이 있는 위치를 생각해 봤을 때.

그녀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

"휴... 시발."

방송을 찍던 카메라는, 끄고 주머니에 처박아 놓은 상태.

아마 이제쯤이면 방송에는 두 배의 상황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사전에 설치한 카메라가, 패닉에 빠진 두 상황을 그대로 방송에 송출하고 있겠지.

"아, 진짜 진심으로 담배 마렵네."

아마 이제 곧 스타더스가 이곳으로 날아 올 것이다.

내 최애캐였던 그녀를 볼 거라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그녀가 살의에 찬 모습으로 나를 내다볼 생각 하니...

음.

더 두근거리는데?

하여튼, 내가 세팅해 놓은 걸 그녀가 만족해줬으면 좋겠다.

그냥 테러가 아니야. 죄수의 딜레마를 섞은 테러라고.

이거 할려고 지난 시간동안 배에다가 폭탄달고...

폭탄 사랴, 사람 고용하랴, 일정 조율하랴, 방송전파 납치하랴...

지금까지 쭉 소시민으로 살아왔던 내가 테러 하려고 드니, 참 쉽지가 않았다.

돈이라도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뭐, 그래도 어떻게든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놀란 형님, 보고 계십니까?

당신이 그려 낸 이야기, 제가 이 세계에서 직접 구현해 보겠습니다.

약간의 조작과 변형이 있겠지마는...

나는 다시 한번 내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검은 로브, 검은 바지, 검은망토, 검은 머리.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얼굴의 반만 가리는 회색 마스크.

완벽하다.

지금 내가 서있는, 강이 한눈에 보이는 옥상의 한 건물.

그렇게 난간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이쪽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허공을 가르며,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누군가.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날아온 이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자 히어로 스타더스였다.

쾅- 하고 옥상에 착지한 그녀.

와! 히어로랜딩!

그녀가 멋있게 착지하는 모습을 실제로보니, 원작의 팬으로써 가슴이 뛴다.

그런데, 어, 왜 내쪽으로 다가오는거냐?

"아이고! 제 손에 기폭장치가 있습니다! 멈춰주시죠!"

내가 오른손에 든 기폭장치를 흔들자, 성큼성큼 다가오던 발걸음을 늦추는 그녀.

그렇게 이윽고 완전히 멈춘 그녀는, 팔짱을 끼고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에고스틱."

"네. 그게 제 이름이랍니다. 기억해 주셨군요?"

"지금 당장 폭탄을 해제해라. 그러면 몇 대 맞고 구속되는걸로 걸로 끝내주지."

"하하,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일그러져도 진짜 눈부시게 이쁘기는 하다만.

"자자, 너무 인상 구기시지 마시고. 제가 분명 방송에서 말했잖아요? 모두가 살아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찡긋했다. 그녀가 도착하기 직전에 다시 이쪽의 모습이 방송에 나가게 했지.

"스타더스씨.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꽤 많습니다. 네, 아주 많죠."

내가 말을 하든 말든 그녀는 입을 다문 채 나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들어 보겠다는 걸까.

그녀의 묵인 아래,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C급에서 A급으로 올라간 대기만성형 히어로. 자신만의 정의와 신념으로 어떤 악과도 타협하지 않는 인물. 인간찬가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생각하죠. 저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합니다."

나의 아부 섞인 얼굴의 금칠에 그녀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그래도 이쁘지만.

"헛소리만 할거면 그냥 닥쳐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어, 지금 전국에 송출되는 방송에 너 칭찬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렇게 하면 우리 신하루를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봐 줄 거 아니야...

하여튼, 팬으로써의 사족은 이만하면 됐다.

이제야말로 진짜 쇼를 시작할 때지.

"자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두 배 모두 선장실 오른쪽 아래 서랍을 열어 보면 기폭장치가 있을 거에요."

"그 기폭장치들은 각자 서로의 배를 터트리는 장치입니다. 자기 배가 아닌, 다른 배를요!"

내 말이 마치자 일그러지는 스타더스의 표정.

그래, 그녀라면 내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 줄 알겠지.

나는 찬찬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 모두가 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무도 기폭장치를 안 누르면 되죠."

"제한 시각은 30분. 딱 그 시간만 두 배 모두 기폭 버튼을 안 누르면 됩니다."

"대신, 한 배라도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다음 배는 쾅.... 이런."

"뭐, 먼저 버튼을 누른 배의 사람들은 '100프로' 살 수 있을 테니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죠."

여전히 이해를 못한 듯한 그녀의 얼굴.

그래, 사람들이 그걸 당연히 누르지 않을꺼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향해 말할 뿐이었다.

"우리 정의를 사랑하고 인간을 예찬하는 스타더스씨."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이기적인지, 이번에 깨달으셨으면 좋겠네요."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박수를 짝 치며 소리쳤다.

"앞서 말했듯이 제한 시각은 30분. 그럼, 건투를 빌어요 여러분!"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를 비추던 카메라가 꺼졌다.

그리고 두 배의 선실을 교차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 이제 여기 특등석에서, 우리는 함께 보도록 할까요."

그녀가 나를  째려봤으나, 나는 그런 그녀에게 내 손에 들린 기폭장치 두 개를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처신 잘하라고!

그렇게 나는 옥상 벽쪽에 설치한 빔 프로젝터로, 선실의 화면을 띄어주었다.

무심한 얼굴로 그쪽을 응시하는 스타더스.

"사람들이, 너가 의도한대로 움직일 것 같으냐?"

그렇게 나한테 한마디 쏘아주는 그녀.

아, 아마 사람들이 다들 조용하고 차분하게, 버튼은 누를 생각도 않고 있을 줄 아는 모양이지?

"뭐, 보시면 알겠죠."

나는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그렇게 벽에 영상이 틀어지기 시작하고.

선내의 상황을 파악한 그녀의 얼굴은, 이내 굳어지기 시작했다.

[버튼을 눌러!!!! 저놈들이 우리를 모두 죽일거라고!!!! 우리가 먼저 눌러야 살 수 있다!!!]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모습.

왜, 기대했던건과 정 반대지?

당연하다.

저기에 내가 선동꾼들 풀어 놓았거든.

옆에서 눌러야된다고 소리지르면, 옆사람도 동조효과로 '눌러야하나?'라고 생각하는 법이다.

안누르면 죽는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게 해서,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하려는 내 계획.

하하하.

[버튼!! 버튼!! 버튼!! 버튼!! 버튼!!]

예상치 못한 상황을 보고 굳어있는 그녀를 지켜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프로 악당이란 말이다.

모든 상황을 자기가 의도한 대로 흘러갈 수 있게, 미리미리 판을 다 깔아두는 법이라고, 어?

자, 어떤 혼돈이 일어나는지 같이 봐볼까?

"스타더스.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큭.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습니까?"

아, 웃으면 안되는데

왜 놀리는게 재밌지?

***

"헬기! 헬기는 준비했나?"

"네! 배가 폭파되는 즉시 이동할 수 있도록 미리 세팅했습니다!"

"휴, 그거 말고는 더 없지?"

"다른 B급 이하의 히어로들도 한강 인근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걔네들은 별 도움도 안될거 같은데... 하, 스타더스가 저기 잡혀있는 바람에 답이 없구만."

한국 히어로 협회 컨트롤 센터.

수많은 요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그곳에서, 50의 협회장은 자신의 대머리에서 나는 땀을 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요즘 좀 오랜만에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나 했더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여전히 땀을 닦고 있는 그는, 화면에 비추어지는 선실에 상황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근데. 저들은 왜 버튼을 누르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건가? 그냥 안 누르면 다 사는거 아니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협회장님."

"허 참..."

[버튼 안눌러!!!!!]

선실의 상황은 여전히 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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