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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1화 (1/328)

Prologue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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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어느 빌딩의 꼭대기.

그곳에선 두 명의 인물이 대치하고 있었다.

저 허공 위, 긴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나를 노려보는 여자는 히어로, 스타더스.

그리고 그녀와 대치하는 나는, 분명한 악당이었다.

"자, 너의 장난질은 이대로 끝이다. 이제는 뭘 더할 셈이지?"

나를 째려보며 차갑게 쏘아붙이는 그녀.

인질 몇명 잡고 테러를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히어로에게 매도를 당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뭐, 당연한건가...?

나에게 맞서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스타더스.

본명 신하루.

정의롭고, 불의를 지나치지 않으며, 착하고, 강단 있는.

내가 빙의한 이 만화의 주인공.

지난 세월 동안, 나는 그녀의 숙적이 되어 지냈다.

왜냐고? 음, 사실 다 그녀를 위해서다.

뭐 그녀가 알 리는 없겠지만.

난 그런 속마음을 숨긴 채, 후흐흐-라고 웃으며 악당같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건냈다.

"그래요. 이번에도 아주 잘하셨습니다. 아주 잘했어요. 역시 제가 인정한 제 숙적 답군요."

내가 허공 위에서 과장되게 박수를 치며 말하자, 구겨지는 그녀의 인상.

"너의 인정 따위는 필요 없다, 이 쓰레기 같은 놈아."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근데 나 지금 염동력 사용 가능 시간이 얼마 안 남았거든?

이러다가 잘못하면 저 대지로 추락하게 생겼다고.

그러니, 빠르게 끝내자.

내 마지막 작별을.

"그래요, 스타더스. 그래요! 당신은 늘 그래왔죠. 제 '놀이'를 늘 제일 먼저 간파하고, 맞서왔으며, 저를 늘 추적해왔었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양 나를 쏘아봤다. 어, 방금 이쪽으로 날아오려고 움찔한 거 같은데. 야, 아직도 이 건물 기폭장치 나한테 있다니까? 오지 마 임마.

"어쨌든, 오늘의 이게 제 마지막 유희가 될 거 같네요. 당신은 이미 다 컸어요. 더 이상 저랑 놀 필요가 없죠. 아마 앞으로 제가 당신을 지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잘 있어요, 스타더스."

"잠깐..!"

마지막까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나는, 망토를 내 앞으로 돌려 빠르게 순간이동을 해 버렸다.

그리고 떠나간 나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스타더스는...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뭐야. 왜 저런대.

EP.1 나 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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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낮.

다른 사람들은 전부 일을 하거나 자신만의 할 일을 하고 있을 무렵.

나는 혼자, 건물의 옥상 위에 서서 남의 집을 창문으로 염탐하고 있었다.

"시발...."

건물 위에서 혼잣말하고 있으니 담배가 땡기네.

그러나 이 세계에 빙의한 이후에 끊어버려서 현재 가지고 있지는 않다.

쓰읍, 그냥 다시 피울까.

아니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참아야지.

검은 머리에 검은 로브, 거기에 검은 망토까지.

올 블랙 패션에, 얼굴은 회색으로 이루어진 반쪽의 가면을 쓴 사람.

이게 바로 나의 현재 모습이다.

그래, 심각하게 중2병스러운 모습이기는 하다.

현실에서 이런 모습으로 지하철을 타면 '3호선 근황….'이라면서 인터넷에 박제될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이 모습이 정상이다.

그러니까, 악당 평균 복장이 이 정도는 되는 거라는 거지.

이 세계는 슈퍼 히어로 만화, [스타더스트!]의 세계니까.

분명 만화를 완결까지 봤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이 세계에서 깨어났다.

영문도 모르고 있던 나에게 생긴 거는 약간의 염동력 능력과 순간이동 능력뿐.

그래, 그래도 능력이라도 준 것은 감사하다.

아예 무능력자 일반인으로 빙의 된 것보다는 훨씬 낫지.

...그래도, 이게 다야? 염동력과 순간 이동?

내 능력을 테스트 해 본 직후 상당히 좌절했다는 것은 당연.

물론 어떤 이들은 나에게 물을 수도 있다.

초능력 두개면 충분히 좋은거 아니냐? 라고.

배가 불렀다고 질책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이거 원작 만화에서 후반부 가면 주인공을 포함한 대부분이 사기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이런 허접한 능력들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거 아닌가.

뭐, 먼 미래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뭐?

일단, 악당 죽이기.

현재 S급이거나 미래에 S급이 돼서 주인공을 위협할 빌런들 죽이기.

사실 나 같은 잡졸이 걔들을 죽이는 거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상식을 벗어난 존재.

이 세계를 이미 만화로 탐독하여 미래를 알고있는 자.

그러니까, 메인빌런들의 실명, 사는 곳, 얼굴 정도는 대충 다 알고 있다는 사실.

"휴우..."

그래, 이제 슬슬 움직일 차례다.

나는 창문으로 보이는 남자를 한번 더 힐끔 본뒤, 손을 풀었다.

빌런 암살의 시간이 왔다.

***

조용한 가정집.

햇볕이 나른하게 깔린 이곳에서.

한 남성이 세상 귀찮아보이는 얼굴로 빵을 뜯고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 선 정체불명의 괴한.

"?!"

뒤늦게 이변을 눈치챈 남자가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잘가세요, 라이노."

괴한이 중얼거린 한마디에 갑자기 그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끄으윽, 끄윽?"

갑자기 남자는 밥을 먹다 말고 숨이 막힌다는 듯 끅끅거리더니.

펑.

어우.

그로테스크해.

나는 내가 만들어 낸 참상에 혀를 내둘렀다.

처음하는건 아니라 거부감이 덜하긴 한데... 으.

저 남자를 방금 살해한 괴한.

그래, 그 괴한이 나다.

내가 죽인 이놈은, 죽일만한 놈이었다.

A급 빌런인 라이노.

자신의 가진 뿔을 이용해 멋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미친놈.

사실, 어쩌면 이 도시에 널리다 널린 빌런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놈을 콕 찝어 먼저 죽이기로 결정했다.

왜냐? 얘가 나중가면 S급으로 진화해서 미친 학살범이 되거든...

물론 지금도 강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내가 이놈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몰래 뒤로 순간이동해서 기습쳐서 죽인거지. 약자에게는 약자의 싸움 방식이 있는법.

내 약한 염동력으로는 공격 한 방이 한계니까.

잘 가라, 라이노. 그래도 만화로 볼 때는 재밌었다.

근데 너가 그렇게 사람 갈아버리는게 현실이 될거라고 생각하니 이럴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이게 두번째 살인이라 그런지, 전보다 훨씬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좀 적응력이 빠른가?

...그래도, 앞으로는 그냥 총으로 깔끔하게 보내주자.

머리 터트리는건 이번이 마지막!

짧은 감상을 마친 나는 피바다가 된 거실을 지나쳤다.

그리고 뒤적뒤적, 이놈의 옷장을 훑어보니.

역시.

라이노의 가면이 나왔다.

코뿔소를 닮은 가면. 그래, 이걸 이놈 시체 앞에 둘까.

이러면 나중에 누가 발견했을 때 이놈의 라이노인 줄 알겠지.

됐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갈까.

아니야, 무언가 기념으로 해 둬야지.

뭘 할까.

짧게 고민한 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이렇게 하면 어그로가 확 끌리겠다.

결심이 선 나는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슥 슥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 앞으로는 이런 짓 안하고만다 진짜.

***

대한민국 초상 능력자 협회.

일명 히어로 협회.

협회 소속 A급 히어로 신하루.

이명 스타더스.

그녀는 현재, 한 가정집에서 이루어진 끔찍한 참상을 보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이게 라이노의 흔적이라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옆에서 서 있던, 얼굴이 파래진 경관이 말을 이었다.

"주민의 신고받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습니다. 살해범은 이미 도주한 것 같고, 높은 확률로 저번 인물과 동일한 거로 추정됩니다."

경관의 말이 이어질 무렵, 집에서 수색을 하던 다른 경관이 말을 이었다.

"네. 그리고 이번 피해자도 역시나 빌런인 점을 고려하면 맞는 거 같군요. 그리고 저 흔적 역시나...."

거기까지 말한 경관은 말을 줄였다.

끔찍한 광경에 할 말을 잃었기에.

폭발한 머리를 뒤로한 사체.

그곳에는 빨간 피로.

나보다 악한 이에게 죽음을.

나보다 약한 이에게 죽음을.

To you, Stardus.

마치 중학생이 적은 것처럼 오글거리고 삐뚤빼뚤한 글씨.

그러나 그것이 피로 적었기 때문일까.

어째서인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그런 문구였다.

"미친놈..."

그것을 본 신하루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어떤 악인이라도, 이러한 방식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

법정에 서서 공정한 재판을 통해 처벌받아야 하는 법.

"...스타더스에게라. 하."

그놈이 어째서 자신을 저격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만약 이놈이 자신을 도발할 생각이었다면, 썩 훌륭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자기 멋대로 살인을 저지른 빌런.

이놈은.

자신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여전히 굳은 얼굴로 신하루는 사건현장을 떠났다..

죽은 사람이 악인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해치는 빌런이 있다는 것이고

그녀는 그게 누구든, 그를 막을 것이라는 것이다.

***

[오늘 오후 7시. A급 빌런 라이노가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머리가 폭발한 것으로 보이고, 현재 범인의 신원은 미상입니다. 히어로 협회는 라이노를 제거한 자를 '끔찍하고 잔인한 사적 제재를 가한, 명실상부한 빌런'으로 규정하며, A급 빌런으로 지정했습니다. 범인은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걸로 보이며….]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어라, 저거 내 얘기잖아.

소파에 누워서 게임이나 하던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티비를 바라보았다.

나오는 것은 신하루의 얼굴.

[…A급 능력자 스타더스는, 자신을 지목한 빌런에 대하여 용서할 수 없는 무도한 자라며 그를 검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범인이 왜 스타더스를 지목했는지는 불명이며….]

아, 이제야 밝혀졌구나.

며칠 전에 내가 벌인 한바탕 소동이.

나는 휴대폰을 켜 인터넷 뉴스를 봐봤다.

본문, 본문, 본문. 그리고... 댓글.

[아니 근데 솔직히 빌런만 죽이는 거면 히어로 아니냐? 왜 빌런으로 규정함?]

[비질란테 형님 쌉호감인데ㅋㅋㅋ 그래 빌런들 감옥에 박으면 맨날 탈출하기만 하는데 아예 죽이는 거 응원합니다ㅇㅇ]

[난 저 빌런 응원함. 스타더스야 걍 잡지 마라.]

"어....."

나는 침음을 흘렸다.

어째, 인터넷에서는 나에 대해 우호적인 것 같다.

여러 뉴스와 커뮤니티를 훑어본 결과, 진짜인 것 같네.

"...."

역시 빌런들만 제거해서 그런가.

그래, 이런 식이면 안티히어로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안티히어로 맞나? 나쁜히어로? 하여튼.

"....곤란한데."

그래, 곤란하다.

내가 자꾸만 이렇게 여론이 좋아진다면, 나를 추적하는 스타더스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수도 있다.

그건 안 되지.

스타더스. 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공이자, 나의 최애캐.

내가 이렇게 빌런들을 사냥하는 건 전부 그녀를 위함이다.

그녀는 영원히 모르겠지만.

내 목표는 그녀가 꽃길만 걷게 해주는 것.

굳이 그녀가 목숨을 넘나드는 전투를 하거나 인격을 마모해가지 않은 채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그녀는 주인공.

약간의 시련이 있어야 강해지는 존재다.

"흐음..."

어떻게 할까나.

나에 대한 여론을 뒤집으며 그녀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나의 빌런 정식데뷔.

"....흐으음."

내가 본 히어로 만화는 [스타더스트!]만 있는 게 아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다를 슈퍼히어로 만화나 영화도 많이 봤었다.

그렇게 성공한 만화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역시 '인상 깊은 빌런'을 꼽을 수 있을 거다.

그래, 그리고 이 만화의 인상 깊은 빌런은 내가 다 제거할 것이다.

음.

이게 진짜 만화였다면 욕 무지하게 먹을걸.

메인 빌런 한명에게 비중을 몰아준다고.

다른 만화들과 다르게 [스타더스트!]는 내가 제일 재밌게 읽은 만화.

사실 재밌게 읽은 정도가 아니라 매니악하게 읽고 씹고 맛보고 즐긴 고인물이다.

그러니, 이왕 이런 세계에 살게된 만큼.

내가 직접, 더 높은 곳으로 도약시켜야 하는 거 아니겠어?

나는 이 세계를 누구보다 사랑한 자.

나는 주인공을 가슴속 깊이 동경한 자로서.

내가 이 세계의 빌런이 되겠다.

그러니까, 진짜 빌런. 나쁜 놈.

솔직히 소시민으로 살아온 내가 뭘 하겠냐마는.

나한테는 빙의 전에 읽은 수많은 슈퍼히어로물들이 있다.

아마 다음에 벌일 사건이 나의 데뷔일 건데.

인상 깊게 가야지.

"...폭탄 구하고, 사람 구하고…."

바쁘겠구만.

***

한국 히어로 협회 사무실.

"스타더스씨! 지금 방송 틀어보세요!"

사무실에서 자료를 조사하던 신하루에게 누가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그 빌런, 그 빌런이 지금 전파납치해서 방송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네?"

그녀가 서둘러 사무실 벽에 있는 티비를 틀자.

검은 배경에 한 남성이 화면에 등장했다.

그의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회색 가면.

그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도시의 주민 여러분."]

베일에 쌓인 빌런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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