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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39화 (739/741)

739화

오오오오오오오-!

천마기가 포효한다.

도진을 중심으로 하여 마치 승천하듯 포효하며 퍼져 나가는 천마기가 이 기름으로 이루어진 바다의 밑바닥을 지배하고 있던 '마나의 법칙'을 거칠게 난도질하며 밀어내고 있었다.

'이런 미, 친……!'

카자카미 노보루는 자신의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잠시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오로지 경악했다.

일개 인간이.

제아무리 괴물이라 하나 일개 인간이 세계의 법칙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가호를 받아 그것이 얼마나 아득한 것인지 아는 카자카미 노보루의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인간의 의지가 세계를 밀어내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다.

그 영역 안에서 마나의 세계가 구축(驅逐)하여 사라졌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운, 자연지기(自然之氣)가 솟아나 빈 공간을 메꾸었다.

드드드드드……!

어둡고 끈적하고 또 무거웠던 세계가 흔들린다.

자신의 안에 감히 영역을 이룬 인간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가 힘을 행사하여 그것을 짓누르고 부수려 드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또 느낀 카자카미 노보루가 그제서야 미친듯이 끓어오르던 질투를 억누르고, 정신을 차리고 억지로 여유를 가장하였다.

"과연. 괴물이로구나. 그만큼이나 되는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카자카미 노보루는 분명히 보고 또 느꼈다.

자연지기를 제거하고 마나로만 가득 채운 세계에서 천마 김도진이 얼마나 고군분투하였는지를.

토벌대를 지키기 위해 쉼없이 뛰어다니고 또 내공이 담긴 검을 휘둘렀다.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더 나아가 '평범한 화경'이었다면 극심한 소모가 겉으로 티가 날 수밖에 없을 정도였고 실제로 천마 또한 지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지금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천마는 전혀 지치지 않았고 상상도 못할 양의 내공을 기세에 담아 폭발적으로 뿌리고 있었다.

세계를 밀어날 정도로.

하지만, 이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야. 너는 결코, 나에게 닿지 못할 것이다."

저벅.

드드드드드-!

한 걸음. 도진이 내딛은 그 평범한 한 걸음에 세계가 미친듯이 요동친다.

그것은 도진의 걸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도진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의 작용이었다.

저벅.

드드드드드드-!

'세계'가 도진의 존재를 말소하려 든다.

이 세계를 이룬 마나의 세계가 세계의 법칙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도진을 용납하지 않았고 존재 자체를 말소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지지직-!

규격을 벗어난 아득한 이치의 충돌에 이윽고 공간이 일그러지며 노이즈를 튀겼다.

그것을 보고 또 느낄 수 있는 모두가 전율하였고 도진을 마주한 카자카미 노보루가.

"흐으."

이겼다는 얼굴로 득의양양하게, 흉하게 일그러진 모양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지지지지직-!

이치와 이치가 부딪치며 격렬하게 반발한다.

이것은 마나와 내공이 서로 부딪쳐 소멸하는 현상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규모와 총량의 싸움인 것이다.

그리고 규모와 총량의 싸움이 된다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지지지직-!!

일개 인간이 세계와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쿠웅-!

결국 힘겹게 내딛은 세 번째 걸음으로 도진이 멈추어 섰다.

처음 경악했으나 마나의 세계가 총량에서 이긴다는 것을 안 카자카미 노보루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저것은 그러니까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잠시야 평소 이상으로 찬란하게 타오르겠지만 그만큼 빨리 꺼져 버리고 마는, 찰나의 기세.

"우오오오오오!!"

꽈아아아앙-!

뒤에서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토벌대도 다르지 않았다.

천마의 영역 안에서 숨통이 트인 버러지들이 아껴두었던 내공을 다 터뜨려 폭풍 같은 기세로 감염자들을 휩쓸며 날뛰지만 그래. 저것도 회광반조다.

"그야말로 불에 뛰어드는 하찮은 미물과 같구나."

카자카미 노보루는 킬킬 웃으며 천마를 조롱했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어. 그래.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판단조차 하지 못하고 그렇게 스러지는 것이, 이 세계 천하제일인의 모습이요 그 천하제일인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이로구나."

"그러니 이성을 따르라 하지 않았나. 제 잘낫 맛에 취해 날뛰지 말고. 저 하찮은 자들의 떠받듦을 맹신하지 말고. 이 세계의 은총을 받아들였으면 이렇게 비참한 끝을 마주하지는 않았을 것을."

조롱하고 또 조롱했다.

그 조롱에 멈추어 섰던 천마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고, 도진은.

피식-

다시 한 번 더 카자카미 노보루를 비웃었다.

"……."

빠득-!

반사적으로 이를 악무는 카자카미 노보루를 마주하여 도진은 푸후후 웃고선 말했다.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천마는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해."

"교만하지 말라. 자만하지 말고, 가장 앞에 서야 하지만 위에 서서는 안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등을 바라보는 이들을 가장 앞에서 이끌지만, 그 등을 믿고 신뢰해 주는 이들이 등을 밀어 주고 있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돼."

"…무슨 개소리냐."

"그러니까, 니가 한 소리가 개소리라는 거다."

쿠웅-!

"……!!"

세계가 흔들렸다.

짓눌리던 도진의 기세가 다시 한 번 폭발적으로, 불같이 일어난 것이었다.

카자카미 노보루는 두 눈을 치떴고 그 이유를 세계와 연결된 감각으로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이런!'

토벌대의 기운이었다.

도진의 영역 안에서 토벌대가 일으켰던 기세가.

오오오오오오오-!!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도진에게 더해지고 있었다.

기(氣). 그것은 본래 사용하고 나면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간 기운이, 오롯이 도진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도진의 법칙 안에 있었기에 자연지기는 마나에 의해 구축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오롯이 도진에게 모일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기운이.

도진 혼자선 부족하였던 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게, 너같은 삼류 악당은 모르는 세상의 이치라는 거다."

두웅-!

카자카미 노보루를 겨눈 천마신검을 중심으로 하여 거대한 힘이 태동하였다.

그것은 도진의 등을 믿고 또 밀어준 이들의 증명이요 그것을 결코 배신하지 않을 도진의 의지의 표명이다.

카자카미 노보루를 지키고 있는 방어막, 이 세계의 가호를 신안이 꿰뚫는다.

크게 소모한 가호는 그만큼 약해져 있다.

그럼에도 도진 혼자서는 꿰뚫지 못할 만큼 두텁지만.

지금 도진의 손에 들린 채 백열하는 천마신검에 담긴 기운은 도진 혼자의 것이 아니기에.

두웅-!

도진은 그것을 부순다.

부술 것이다가 아니라 부순다.

언제나 그렇듯, 도진에게는 그랬다.

그를 위해 구현하는 심상(心象)은.

천마검공(天魔劍功). 파계(破界).

세계를 부수는 것이다.

구우웅-

요란한 폭발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존재가 흔들리는 듯한 거대하고도 낮은 굉음이 한 번 크게 퍼져 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쩌저저저저저적-!

세계가 부서져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키이야아아아아아-

감염자들은 괴로워하며 비틀거리다 입자가 되어 흩어졌고.

쩌어어엉-!

카자카미 노보루를 지켜주던 세계의 가호 또한 유리처럼 부서졌다.

"이 새끼!"

옅은 존재감만을 가지고 침묵하던 한유성과 레너 집스가 양쪽에서 덤벼들었다.

스각-

그리고 너무나 허무하게도, 도진이 그린 하나의 궤적에 양단되어 입자가 되어 흩어졌다.

가소천이 그러했듯.

그 둘 또한 카자카미 노보루에게 이미 잡아먹힌 뒤였고 도진은 그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끈질겼던 한유성과 지금껏 정체를 감추고 암약했던 레너 집스를 생각하면 정말로 허무한 최후지만 당연하게도.

용서받지 못할 악당 따위의 최후가 허무하다고 하여 아쉬워할 도진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크흐윽!"

천마신검을 코앞에 두고 추하게 바닥에 나뒹군 카자카미 노보루를 상대로 '불살(不殺)'을 지킬 수 없다는 것만은 아쉬웠다.

놈이 이쪽 세계를 침식하는 세계를 붙들고 또 유지하는 쐐기라는 게 명확하게 보인다.

그러니까 카자카미 노보루를 죽여야만,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해야만 침식을 없앨 수 있었다.

"넌 참 운이 좋아. 죽음으로써 죄에서 도피할 수 있으니까."

도진은 담담히 그렇게 말하고서 천마신검을 휘둘렀다.

스각-

아니, 부지역(不知域)에서의 한 걸음으로 정면에서 물러나며 카자카미 노보루에게서 튀어나온 시커먼 '쐐기'를 베었다.

쩌저저저적-!!

노이즈가 미친듯이 일어나며 기괴한 형태로 퍼졌다.

천마기와 격렬하게 반발하던 그 기운은 도진이 한 번 더 천마기를 일으키고서야 소멸하였고 도진은.

"과연. 태동하는 별의 기운을 품고 있구나."

어느새 터져 사라진 시커먼 눈구멍으로 피를 흘리는, 그 구멍 너머의 이질적인 시선을 마주하였다.

"……."

카자카미 노보루가 흘리던 피눈물이 한순간에 검게 물들었다.

그것은 곧 시커먼 마나에 잠식당하였고 역으로 거슬러, 카자카미 노보루의 눈구멍을 통하여 머리를 가득 채웠다.

기긱. 기기기긱!

뼈마디가 미친듯이 요동치며 서로 부딪쳐 갈려 나간다.

소름끼치는 소리에 피부에 오소소 닭살이 돋지만 그 이상으로.

퍼드드드드득!!!

뚝뚝 끊기며 발광하는 카자카미 노보루의 소리없는 절규에 토벌대는 그저 시선을 빼앗겼다.

뿌드득!

잡아먹히고 있었다.

몸이. 영혼이. 그리고, 존재가.

'카자카미 노보루'라는 존재 자체가 그 안에 깃든 어떤 것에 의해 통째로 씹어먹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것. 차라리 소멸이라 해야 할 것으로 존재 자체가 서서히 조각조각 씹어삼켜져 사라지는 그것은, 초절정 이상에 오르며 단련된 정신으로도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들 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어떤 포식자가 있어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생으로 살아 있는 걸 뜯어먹는 걸 보아도 이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것은.

기괴하면서도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진은 천마신검을 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니가, 이 세계구나."

"그래. 네 눈에는 나의 본질이 보이겠지. 하지만 세계라고 하는 건 멋이 없으니…… 그래. 재밌게도 이놈의 언어로 진명(眞名)을 마나(マナ)라고 부르는구나. 마나라고 부르면 되겠어."

우드득. 콰드득.

친한 척 말하지만 카자○미 노보○를 씹어먹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어 더욱 기괴하고 꺼려지는 모습이었다.

그 '마나'가 말했다.

"꽤나 재미있었어. 우주의 변방 중의 변방. 주류는커녕 지류에도 들지 못한 세계에서, 태동하는 별의 빛을 품은 자가 있을 줄이야. 하찮은 간식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보았단 말이야."

무슨 소릴 지껄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그것이 지금의 인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아득한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카자○미 노보○를 씹어먹는 '존재감'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인간으로선 짐작도 하기 힘든 행성의 질량이 오롯이 인간 단위로 압축된다면 저럴까 싶은.

보는 것만으로도 짓눌리고 질식할 것만 같은 존재감이다. 혹은 빨려들어가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존재를 흡수당할 것만 같은.

그 존재감이 말한다.

"재밌었으니까,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자비를 논했다.

"너희 세상을 놔두도록 하지. 이번만큼은, 말이야. 그러니까 기도하도록 해. 언젠가 합류할 주류의 흐름에서 나를 만나지 않도록."

우드득!

"의식해서 너희 세계를 방문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흐름 속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놓아주지 않을 거니까. 기도하도록 해."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자비다.

그러나 그것이 저 존재의 입에서 나왔기에 하찮은 인간은 그 관대한 자비에 감사해야만 했다.

그것이 세상의 섭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마신교는.

천마는.

"개소리를 당당하게 하지 마."

그 섭리를 인간의 의지로 거부하는 상징이다.

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호오?"

"가해자 따위가 당당한 척, 관대한 척 하지 말라는 소리다. 만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그건 오히려 이쪽이 해야 할 말이야."

"건방진 소리를."

스각-!

도진은 개소리를 더 들어주지 않고 천마신검으로 카○○미 ○보○의 잔해를 베어 버렸다.

그 안에 깃든 마나의 존재까지도.

그리하여 흩어지는 마나의 잔재에 선고했다.

"기도라도 하는 게 좋을 거야. 다음에 만나면."

쿠구구구궁-!

"이렇게 도망가지는 못할 테니까."

마나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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