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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38화 (738/741)

738화

-이번을 넘기면,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도진은 세 번째 감염자의 대군을 상대하기 전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으니 완숙의 경지에 달한 도진의 신안(神眼)은 이미 처음부터 이 잠식당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작용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자카미 노보루가 가소천의 무리를 만들 때. 그리고 헤아리기 힘든 많은 수의 감염자를 만들어 낼 때 이 세계의 마나가 크게 소모되는 것을 느끼고 또 보았다.

이 세계는 물이 아닌 기름으로 이루어진 깊은 바다의 밑바닥 같아 평범한 무인들의 감각으로는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진은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고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백화를 통하여 마나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통찰을 하고 왔다.

그래서 이 세계의 마나의 작용을 꿰뚫어 볼 수 있었고 카자카미 노보루를 지키는 방어막이 세계의 마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까지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승산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도진을 포함한 토벌대라면 이 세계가 품은 마나보다 토벌대의 내공이 우위에 설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저 방어막을 깨고 이 세계의 쐐기 역할을 하는, 침식이 유지되고 또 번질 수 있게 하는 카자카미 노보루를 칠 수 있을 거라고.

계산을 마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계산을 한 건 도진만이 아니었으니 카자카미 노보루 또한.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네놈이 세계의 기운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어디서 드러난 걸까.

아직. 이 세계에서 도진은 천마군림의 묘리에 따라 자연지기를 끌어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전에 있었던, 자연지기를 끌어 썼던 때의 일을 카자카미 노보루가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하는데…….

'가소천인가.'

도진은 그 사례들을 되짚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가소천을 꼽았다.

가소천이 지배하던 무형독의 정보력으로. 혹은 놈이 말했던 대로 가소천을 집어삼켰다면.

가소천의 기억 속에 있던,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발휘하여 자연지기를 다루는 도진을 알게 되었을 거다.

그리고 도진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네놈은 가소천만큼이나 괴물이지.'

카자카미 노보루는 가소천의 기억을 통하여 '천마(天魔)'가 말도 안 되는, 규격 외의 괴물이라고 판단했다.

가소천도 그랬지만 이놈은 더했다.

가소천이 다방면에서 만능이었다면 이놈은 싸움에서는 그런 가소천마저 압도하는 괴물이다.

정면에서 싸워서는 '아직은' 승산이 없다.

그러니까 함정을 파자.

가소천을 잡아먹었던 것처럼, 함정을 파서 천마를 잡자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 함정을 판 것이 바로 이 자리였다.

따악-!

핑거 스냅과 함께 네 번째로 감염자의 대군이 밀려든다.

기름으로 이루어진 바다의 깊디 깊은 밑바닥에, 해조차 들지 않아 어두운 세계에 발을 딛은 토벌대를 잡아먹기 위해 나타난 괴물들이었다.

"그래. 누가 먼저 바닥을 보이는지 해 보자고? 나쁠 것 없지."

카자카미 노보루가 두 눈을 일렁이며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다섯 번째 감염자의 대군이 네 번째의 뒤로 끝없이 이어졌다.

카자카미 노보루를 지키고 있는 방어막은.

대규모로 소모된 마나로 인해 조금 더 약해졌으나 여전히 굳건했다.

그에 비해 토벌대는 단번에, 절망적일 정도로 승기가 저쪽으로 기울어 버렸다.

마치 기름 속에 남아 있던 공기 방울이 모조리 터져 버린 것만 같다.

자연지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마나로만 세계가 가득 차 버렸다.

안 그래도 세계에 저항하여 움직이던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미약하게나마 내공을 보충할 수단마저 완전히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전쟁터에 고립무원으로 포위 되어 보급마저 완전히 끊긴 병사의 처지다.

'…물러나야 하나.'

에번드윅 공작은 냉정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지지직-!

그들이 뚫고 들어왔던, 지금까지 남아 있던 천마가 갈라 놓았던 본래의 세계와 이어지는 균열이 극심한 노이즈와 함께 달라붙어 버렸다.

마치 에번드윅 공작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자, 이제 어쩔 텐가? 대답은…… 자네들의 '이성'이 온전할 때 듣도록 하지."

키이야아아아아아악-!!

* * * *

둑이 터져 버린 것처럼 감염자들이 토벌대를 휩쓸기 위하여 밀려들었다.

퇴로를 잃은 토벌대는 그 감염자들의 쓰나미를 피하지 못하고 감당해야만 했다.

꾸웅-!

무인의 주먹이 감염자의 명치를 꿰뚫을 듯 후려쳤다.

내가중수법이 아닌 평범한 주먹이었으나 그렇다 해도 초절정에 이르러 경계의 너머를 목표로 하는 무인의 주먹이었으니 평범한 이라면 즉시 내장이 가루가 되어 즉사했을 것이다.

캬아아아악!!

하지만 감염자는 평범하지 않았다.

애초에 카자카미 노보루가 '네크로맨시'로 일으킨 변질된 존재.

사람이 아닌 마나 생명체는 마나로 움직였으니 내부가 곤죽이 되었음에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까득-!

무인은 이를 악물고 발을 움직였다.

빠각!

자비없이 달려든 감염자의 두 무릎을 박살냈고 그가 바닥을 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콰직. 콰드득. 처벅.

다른 감염자들에 의해 짓밟혀 잔혹하게, 곤죽이 되도록 만들었다.

사아아아…….

그렇게 끔찍한 몰골이 되고서야, 입자가 되어 흩어졌다.

'빌어먹을!'

절로 이가 악물렸다.

전혀 다른, 좀비 같은 존재라지만 그래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광경에 정신적인 소모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를 제외한 토벌대의 무인들 모두가 그랬다.

더 이상 내공을 회복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 버린 지금 내가중수법이나 검기 등을 이용하여 유폭을 노리기가 어려워졌다.

그것이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었던 건 내공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럴 수 없게 된 지금 내공의 고갈은 절대로 뒤집을 수 없는 패배로 직결되고 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체력을 조금 더 써서, 보기에 좋지 않은 형태로 싸우게 되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뒤집을 방법을 찾을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

최후의 보루인 내공보다 체력을 더 소모하고 있었다.

흘끔.

방법의 첫 번째는 퇴각이다.

지독한 노이즈가 끼어 있는, 완전히 아물지는 못한 것처럼 보이는 균열을 뚫고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흘끔.

두 번째는 언제까지 보충될지 모를 감염자들을 무시하고 방어막에 보호받는 카자카미 노보루를 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장 토벌대의 무인들은 밀려드는 감염자들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유일하게 단 한 명.

예외가 되는 단 한 명만이 그것을 시도할 수 있었고 그 한 명은.

투웅-

꽈아아아앙-!

내공이 집중된 검끝으로 감염자를 날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킴으로써 위험했던 토벌대의 한 축을 지켰다.

"후욱."

토벌대를 위기에서 구해낸 그 한 명. 천마 김도진이 무거운 숨을 뱉어냈다.

어깨가 크게 올라갔다 내려가고 몸에서는 뜨거운 김이 나는 것만 같았다.

중과부적(衆寡不敵).

본래는 그 말처럼 감당하지 못했을 감염자들의 쓰나미를 토벌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모두 도진이 부족한 부분을 홀로 감당했던 덕분이었다.

경이로운 체력과 막대한 내공. 그리고 무공으로써.

하지만 그로 인해, 상황을 타개할 두 가지 가능성이 닫히고 말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카자카미 노보루가 손을 들었다.

따악!

손가락이 튕겨지고 끊임없이 몰아치던 감염자들의 파도가 잠시 멈추었다.

키이야아아아아아-

토벌대를 둘러싼 채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세상을 가득 채운 적의를 내비치면서.

그러나 카자카미 노보루의 명령에 따라 대기하는 감염자들의 사이에서 토벌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찰나일지라도 지극한 경지에 이른 무인은 그 찰나를 늘여 순식간에 많은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체력은 회복할 수 있어도 마나로 가득한 세계에서 내공을 채울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카자카미 노보루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고 비죽, 입꼬리를 올린 채 말하는 것이었다.

"우습구나, 천마. 너 또한 결국. 신분을 속이지 못하는 소시민이었다는 거겠지."

도진이 후, 다시 한 번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훗 웃고선 말했다.

"소시민?"

"그래, 소시민이다. 지도자라 하면 희생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너는 가능성이 없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무의미한 선택을 하였다."

"몇 명이 희생되더라도 의미가 있는 시도를 하여야 했지. 이를테면 저기 저 균열을 찢어 더 많은 자들을 구할 시도를 하거나."

"혹은 모든 것을 걸고 나에게 검을 겨누었어야 했다."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다. 당장 한둘의 가벼운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 가능성을 내다 버렸지. 너는 결국 그 정도의 소시민이었다는 거다."

"너에겐 지도자의 자질이 없다. 그저 과분한 힘을 가진 운이 좋은 한낱 소시민일 뿐이지. 그러니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도록 하마."

"세계의 자비를 받아들여 사도가 되어라. 이제는 감정이 앞서는 어리석은 너희들도 깨달았겠지. 저항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그런 저항이 너희를 믿었던 자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행위인 것이다."

마지막.

그리 말하는 카자카미 노보루의 말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이길 수 없다면, 최선을 택할 수 없다면 차선을 택하는 게 맞다.

그들이 여기서 패배하여 죽는다면.

혹은 더 나쁜 경우 마나에 잠식당하여 오히려 세계의 적이 된다면.

그 이상으로 나쁜 것이 없다.

그런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세계를 받아들이도록, 차악을 택하는 게 맞는 것이다.

그 선택을 종용하는 카자카미 노보루에게.

피식-

도진은 웃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진실을 말하는구나. 카자카미 노보루."

"……뭐라?"

"너, 거짓말쟁이잖아. 지금까지 한 번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진실을 말했지. 나에게 사도의 자리를 받아들이라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처음부터 그랬지. 넌 나에게 세계를 받아들이라고 했어.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그랬지."

"…그것이 왜 거짓이라는 말이냐."

"뻔뻔하기는. 정말로 그럴 의도였다면."

도진의 입꼬리가 날카로운 곡선을 그리며 카자카미 노보루를 겨냥했다.

"우리 앞에 그 꼴이 된 가소천을 내세울 리가 없잖아."

"……."

정곡을 찔린, 의도를 폭로당한 카자카미 노보루는 대꾸하지 못했다.

도진의 말대로였으니까.

카자카미 노보루는. 정말로 그때 그런 의도를 가지고 가소천을 내세웠었다.

말로는 마나의 세계를 받아들이라 했지만 내심으로는 그 제안을 도진이, 토벌대가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겁쟁이이자 무인조차 아닌 삼류 악당. 카자카미 노보루의 입장에 손해가 되는 어떤 게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아닌 척 그런 뻔한 짓거릴 한 거고."

"……."

"하지만 이젠 아니게 된 모양이야. 이미 몇 번이나 거절했고 그 뒤에 받아들이는 건, 너에게 손해가 될 어떤 요소가 사라진 조건으로 내용이 바뀌었다는 거겠지. 사라진 요소는…… 삼류 악당의 자리를 위협할 어떤 게 아니었을까?"

"…감히."

"삼류 악당 입장에서는 한 번의 제안과 한 번의 거절로 끝내고 싶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건 역시나 마나의 세계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이겠지. 참 싫었겠어? 삼류 악당."

"닥쳐라!!"

터져 나온 카자카미 노보루의 분노가 스멀스멀, 마나에 스며든다.

이 세계에 가득한 그 마나가 도진을 압박하였으나 도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쿠우웅-!

강하게 진각을 밟아 마나를 떨쳐내고서.

오오오오오오오오-!!

분노하는 천마기의 기세로 오히려 방어막 너머 카자카미 노보루를 짓눌렀다.

"네, 놈……!"

"몇 명이 희생되더라도 의미 있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했던가? 틀렸어, 삼류 악당. 나는 말이야."

오오오오오오오-!!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고 이기는 것 이외엔 선택할 생각이 없었어. 처음부터."

마나가 차지하고 있던 세계가, 도진의 세계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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