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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37화 (737/741)
  • 737화

    세 번째 감염자의 쓰나미.

    여전히 대군(大軍)이라 해야 할 만큼 압도적인 수였으나 그 규모가 조금 줄어든 것 같다.

    확신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고수라 해도 여전히 쓰나미, 한 눈에 다 세기엔 너무 많은 수였으니까.

    그러나 고수의 느낌이라는 건 실증된 데이터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실제로 감염자들의 규모는 줄어든 게 맞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이겠지만…… 그것을 이점으로 활용할 만한 여유가 지금의 토벌대에겐 없었다.

    "후욱!"

    토벌대는 이미 지쳐 있었다.

    감염자들의 규모가 줄어든 것 같다는 '느낌'보다 더.

    그들은 확연히 지쳐 있었고 그것이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날 정도였던 것이다.

    이대로는 힘 싸움에서 밀릴 것이고 그렇게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쓰나미에 휩쓸려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었다.

    그래서 도진이 제안했다.

    -차륜전을 하죠.

    -차륜전?

    -예. 쉬어야만 합니다.

    차륜전(車輪戰).

    본래는 다수의 병력이 강한 소수를 상대로 하여 교대로 힘을 빼는 전법이다.

    하지만 지금 도진이 제안한 것은 완전히 그 반대로, 강한 소수로 압도적인 다수를 교대로 상대하며 힘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

    오군성을 포함한 토벌대의 수뇌부는 생각했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고.

    상대가 대군이라지만 결국 상대해야 할 수와 방위는 정해져 있고 그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고수들로만 토벌대는 이뤄져 있다.

    손발이야 놈들을 이미 세 번이나 상대하며 필요한 만큼은 맞췄으니 파탄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밑돌을 빼어 위에 괴는 격이 아닌가?

    무당제일검의 말대로였다.

    당장이야 중앙에서 쉬는 이들이 체력과 내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회복한 체력과 내공으로 교대하여 감염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과중한 부담으로 결국 더한 소모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앞서 감염자들을 상대한 이들 또한 과하게 지쳐 쉬어도 의미있을 만큼의 회복을 할 수가 없게 되지 않을까.

    타당한 그 지적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담담하게 제시했다.

    -그만큼, 제가 더 움직이겠습니다.

    -허어?

    * * * *

    시작은 천마신교였다.

    그들은 위풍당당하게 토벌대의 외곽을 둘러쌌고 단 한 명의 감염자도 안으로 들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순간에, 천마가 있었다.

    지직-

    그 아름다운 피부를 타고 흐르는 뇌전을 극한까지 제어하여 검에 집중한 소담이 감염자들을 벤다.

    머리 위와 정면, 그리고 좌와 우에서까지 감염자들이 몰려들지만 양옆의 동료들을 신뢰하여 오로지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 베었다.

    꽈아아아앙!

    검에 베이고 또 뇌전에 꿰뚫린 감염자들이 폭발한다.

    그리고 그 폭발을 뚫고 양옆에서 감염자들이 몰려들지만.

    쩌저저저적!

    상미의 한천검공이 그것들을 얼려 공격을 무위로 만든다.

    쿠웅!

    이어서 벽태웅의 주먹이 얼어붙은 감염자를 쳐 날리고.

    꽈과과과과광!

    감염자들의 사이에서 폭발을 일으켜 최대의 효과를 얻었다.

    그렇게 한 번의 연계가 끝난 찰나의 틈.

    캬악!

    총알처럼 쏘아지는, 특출난 실력의 감염자의 기습이 있었지만 소담은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으려 하지 않았다.

    그대로 있으면 심장이 꿰뚫릴 순간이었으나 절대적인 믿음으로 그런 미래가 결코 없다는 걸 확신하였고.

    투웅-

    도진이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곳에 있는 것이 당연했던 것처럼.

    분명히 없었던 도진이 소담의 곁에서 감염자를 가볍게 두드려 날려 보냈고.

    꽈과과광!

    그 가벼운 손짓에 깃들었던 막대한 천마기가 감염자들 사이에서 터지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오오오오오오!

    그리고 다음 순간엔 성지인의 곁에.

    그리고 또 다음 순간엔 장소유와 함께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죽음을 선고하기도 했다.

    휴식을 취하며, 내공을 회복하며 안에서 지켜보는 토벌대의 무인들은 그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천마라면.

    천마신교의 교주라면 전장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처럼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파악한 전장의 모든 곳에. 필요한 곳에.

    누구 한 명 '조금 더' 힘을 쓰는 일이 없도록 적재적소에 자신의 힘을 보태는 건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건 그러니까 싸우는 모든 이의 호흡과 흐름을 완벽하게 읽고, 그것을 전혀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흐름을 보태는 것이었다.

    게임으로 비교하자면.

    말도 안 되는 난이도라 0.1초 단위로 미세한 조작을 하여야 하는 캐릭터를 백 개 동시에 컨트롤한다 하여도 대기 힘든 신기(神技)였다.

    그리고 그 신기는, 보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욱 경이로운 것이었다.

    두웅-!

    무인이 절묘한 순간 절묘한 위치를 점하여 내지른 주먹이 발을 내뻗었던 감염자를 날려 보냈다.

    내공의 소모를 줄이기 위하여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의 묘리에 따라 닿은 부위에만 내공을 때려박았고.

    꽈아아앙!

    날려간 감염자가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이 휘말리게 만들었다.

    마나와 내공이 반발하여 폭발을 일으키는 건 토벌대에 압도적인 메리트를 부여했다.

    감염자의 수준에 맞추어서, 서로 반발하여 폭발을 일으킬 만큼만 내공을 때려박고 감염자들 사이로 보내 버리면 몇 배나 되는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수준을 단번에 파악하고 내공을 불어넣는 것과 감염자들 사이로 날려 보내는 게 말이 쉽지 반쯤은 상상의 영역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들은 모두가 그것이 가능한 고수였다.

    다만,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이들은 드물었고.

    캬아아아악!

    "……!"

    내가중수법을 구사한 이후 호흡과 내공의 운용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 않고 달려드는 감염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누군가는 그 틈을 커버해 줘야만 했다.

    하지만 그 틈을 커버해 주는 누군가는 두 배의 부담으로 네 배의 소모를 해야만 했고 그래서는 차륜전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까.

    스으-

    투웅-!

    도진이 그 틈을 메웠다.

    주먹을 내뻗었던 무인은 굳으려 했던 어깨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손길과 함께 묵직한 울림을 들었고 다음 순간.

    꽈아아아앙!

    자신을 위협했던 요소가 모조리 해소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만들어 주었던 도진이 이미 시라졌다는 건 그 다음에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꽈아아아앙!

    토벌대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도진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마지막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천마는 어디에나 있었다.

    어디에나 있었고, 필요한 모든 곳에 빠짐없이 자신의 힘을 보탰다.

    누군가는 '더' 해야 할 모든 일을 천마가 감당하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무인의 가슴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다.

    '아, 이건 안 되는데.'

    최대한 평소와 같이. 필요 이상으로 힘을 소모하지 말고. 모든 것이 평상시와 같아야 하는데.

    천마를 보고 있자면 그게 잘 되질 않는다.

    그것은 그러니까, 조금 부끄럽게 말하자면 빛이었고 또 바람이었다.

    그늘이 져 싸늘한 곳에 따스한 빛이 비치는 것과 같았고 반대로 또 무더운 뙤약볕에 땀을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부는 시원한 바람 같았다.

    분명히 존재함을 알고 그것이 일상에 속하기에 결코 기적이라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원한다고 하여 무조건 누릴 수 없고 그저 우연히 누리게 된다면 미소짓게 되는 그런 고마운 것.

    토벌대는 그런 일상의 평범한 기적과 같은, 자신들을 지탱해 주는 천마의 도움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건가 보다.

    천마신교가 그렇게나 천마를 신뢰하고 또 한 점의 의심없이 뒤따르는 이유는.

    그 어떤 것이 닥쳐와도 결코 흔들림없이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믿음을 주는 등이었다.

    그래서 웃으며.

    세 번째 감염자의 대군마저도 이겨냈고.

    후욱-!

    "……!!"

    길이 열린 순간 천마의 검이 거리를 뛰어넘어 카자카미 노보루를 베었다.

    꽈아아아아아앙!!

    공간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만 같은 굉음이었다.

    '아니.'

    실제로 흔들렸다.

    토벌대의 무인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가장 많은 소모를 했을 도진이 이만큼이나 되는 힘을 찰나의 틈도 두지 않고 휘둘렀다는 데에 또 한 번 놀랐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런 천마의 검격에도 전혀 훼손되지 않은 반투명한 막에 경악했다.

    꽈앙! 꽈아아아아앙!!

    천마의 검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천마.

    그 천마의 검격이 몇 번이나 이어졌음에도 반투명한 막은 흔들릴지언정 실금조차 가지 않았다.

    그래서 카자카미 노보루는 천마의 공격을 마주하였음에도 비죽, 입꼬리를 올릴 수 있었다.

    "그래. 나를 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나?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라 하지 않았나. 무의미한 발악이다."

    그 여유가 넘치는 얼굴에 도진은.

    피식-

    비웃음을 날려 주었다.

    "……."

    눈꼬리가 꿈틀, 어그러지는 모습에 도진이 말했다.

    "무의미해? 그런데 왜…… 널 지켜주는 이 방어막은 처음보다 약해져 있는 걸까?"

    "……!!"

    카자카미 노보루는 이번에도, 앞서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평정을 가장하지 못했다.

    도진의 말이 검격보다 예리하게 카자카미 노보루를 계속 때렸다.

    "직접 나서지 않는 건 여유가 아니라 겁이겠지. 무인이라 부를 수도 없는, 겁쟁이 삼류 악당 나부랭이는 이렇게 숨어서 지켜보지 않으면 여유로운 척조차 하지 못할 거잖아?"

    뿌득-!

    "……네놈."

    "넌 뭔가 대단한 힘을 손에 넣은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도 아냐. 우에토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힘을 손에 넣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다루지도 못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나 대규모의 감염자를 다룰 수 있는 건.

    "여기에서만큼은, 세계의 백업을 받거나 예외적으로 더 큰 힘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일 거야."

    "……!"

    도진은 이미 본 것이다. 계속, 놓치지 않고 보았다.

    "침식한 이 세계가 널 돕고 있는 거잖아. 그 힘이 너에게 과분할 만큼의 병력을 부를 수 있게 해 줬겠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를 수만 있을 뿐 정교하게 다루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그 수많은 감염자들을 몇 번이고 토벌대는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계속할 순 없을 거야. 그만큼이나 되는 병력을 부를 때마다, 이곳의 마나는 감소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감소하는 만큼."

    꽈아아아앙!

    "……!!"

    "널 지켜주는 이 힘도 약해지는 거지."

    카자카미 노보루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절대적이어야 할 방벽이 순간, 그럴 리가 없는데 부서지는 착각을 하고 말았기 때문에.

    "삼류 무인도 되지 못하는 삼류 악당. 카자카미 노보루. 누가 먼저 바닥을 보이는지, 한 번 해볼까?"

    천마는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눈부시게.

    자신만만하게 악당에게 선언하였다.

    마나가 지배하는 세계라고 하지만 도진은 지치지 않았다.

    연신극기공으로 매일 한계를 넘어서며 단련한 육체는 그 정도로는 결코 피로를 호소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누구보다, 그 누구보다 큰 부담을 짊어졌음에도 도진은 얼마든지 더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당당한 모습이 스스로와 비참할 정도로 비교되어 카자카미 노보루는.

    "……크흐. 크흐흐."

    "크하하하하하하하!!"

    미친듯이 웃었다.

    화를 담아서. 스스로의 추태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화가 되어 미친듯이 웃는 온몸을 통해 타올랐다.

    그리고 뚝.

    칼로 자르듯 웃음을 멈추고서는 천마를 노려보았다.

    "그래. 누가 먼저 바닥을 보이는지 해보자고? 아주, 아주 자신만만하구나. 그래. 그렇게나 자신만만한 건, 그 끝없이 끌어쓸 수 있는 내공을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천마."

    카자카미 노보루가 입을 쩌억 벌려 그대로 물어뜯을 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 세계에서 내공이 사라지고서도, 그렇게나 자신만만한지 한 번. 보고 싶구나."

    따악-!

    카자카미 노보루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

    세계에서, 자연지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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