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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35화 (735/741)

735화

도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 번 가소천에게로 모인다.

세계를 집어삼키려 했던 절대악이자 그것을 시도할 능력이 있었던 절대고수 가소천.

그런 가소천을 '용도 폐기'한 세상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도진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러나 카자카미 노보루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가소천은 도래할 이 세계를 믿고 있었다. 단전이 부서지고 폐인이 되었지만, 이 세계에게 받은 가장 큰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

기(氣)와 체(體)가 망가졌다.

그러나 그것을 만회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이 심(心), 정신이 무너지지 않게 그를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무인도에 폐인이 되어 유폐되었음에도 가지고 있던 여유는 거기에 근원을 두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상리를 넘어선 방법으로 무인도를 탈출하였고 바로 이곳.

마나의 세계가 잠식한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릴 공격했지."

카자카미 노보루의 말에 다수의 눈이 슬쩍 커졌다.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가소천. 그놈에겐 다른 이의 재능을 강탈하는 능력이 있었지. 그것으로 우리가 세계에게 받은 능력을 욕심냈던 거야."

조바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소천은 천마 김도진에게 패배하였고 그 패배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짓눌렸다.

그때의 결코 지울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반신(半神)이라고까지 불리었던 그에게 조바심을 느끼게 만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카자카미 노보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계가 우리에게 준 힘은 세계에 공헌하는 대가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가소천은 그것을 제 욕심만을 위해서, 세계에게 해가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였고 그랬기에. 저런 꼴이 된 것이다. 어떤가. 납득했나?"

충분히 논리적이었다.

납득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해명이었다.

카자카미 노보루가 말했다.

"납득했다면, 다시 제안하지. 갈등과 충돌, 전쟁 대신 평화를 택하지 않겠나?"

그 말에 도진은 후,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멍청해서야 사기꾼 노릇도 못 해먹겠는데?"

"…뭐라?"

카자카미 노보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단순하지만 노골적인 조롱에 쉽게 반응하는 것이 그에 대한 내성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그런 카자카미 노보루를 마주하여 비웃던 도진의 얼굴이.

"그런 소릴 할 거라면."

쿠웅!

지르밟은 진각과 함께 싸늘하고도 날카롭게 굳었다.

"처음부터 했어야지."

"가소천 같은 괴물을 만들지 말고. 재앙에 휩쓸린 이들을 이렇게나 역겹게 이용하지 말고. 실종자를, 그들로 인해 슬프게 될 사람들을 만들지 말고!"

쿠우우웅-!

"네놈 같은 대리인을 내세울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비극이란 것이 없던 처음부터 대리인을 통해서 대화를 바랐어야지."

"그러지 않고, 이렇게나 많은 비극을 이미 만들어 놓고. 대화를 하자고? 그런 개소리를 들어줄 리가, 없잖아?"

카자카미 노보루의 말을 믿고 말고 이전에, 이미 대화를 할 수 없는 영역에 치달았다는 말이다.

꽈아아아앙!

천마신검이 휘둘러졌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휘오오오오오-

마나가 돌풍처럼 일어나 여파를 흩고 어느새 구축된 반투명한 방벽 너머 카자카미 노보루와 우에토, 한유성과 레너 집스가 보였다.

카자카미 노보루는 여유를 덮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간 낭비였던 모양이군. 그래, 그렇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어리석은 놈들. 가진 능력보다 큰 자존심으로 움직이는 놈들. 그런 놈들과 대화부터 하려 했던 건 시간 낭비였어. 좋아. 그렇다면."

따악!

카자카미 노보루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쿵-!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울림이 일어났고.

키이아아아아아-

수백 개나 되는 기괴한 소리를 동시에 흘려 기괴하게 겹쳐 울리도록 하며.

"……!"

"으음!"

수백 명의 가소천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토벌대를 둘러쌌다.

"나는 내가 지배하는 것의 재능을 마나로 형상화해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지. 그리고 가소천은 알다시피 수백 개나 되는 재능을 가지고 있고 말이야. 그것들은 가소천의 재능들을 각각 구현한 것이지."

어떤 것은 칼을 들고 또 어떤 것은 창을 들고 또 어떤 것은 부적을 쥐고 있다.

그야말로 가소천이 가지고 있던 재능을 나누어 분열시킨 듯한 모습이었고 토벌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쿠우웅-!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땅울림이 토벌대가 대지에 선 발에 힘을 주도록 만들었다.

이어서, 한눈에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감염자들이 가소천의 뒤에서 마치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아득히 멀어져 닿지 않는 곳에 선 카자카미 노보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선은 주제 파악들을 하도록. 제대로 된 대화는, 그 뒤에 하도록 하지."

키이야아아아아아-!!

* * * *

몰려드는 밀물.

너무나 거대하여 오히려 느린듯 착각하게 만드는, 그러나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피할 수 없는 재앙.

마나를 두른 무수한 감염자들. 거기에 빈틈은 없었고 요동치는 끝없는 적의가 넘실거려 그것은 차라리 쓰나미였다.

자연재해.

감당할 엄두도 낼 수 없어 그저 주저앉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하지만 토벌대는 굳게 주먹을 쥐었으니 그것에 항거하여 스스로가 쌓은 무(武)를 휘두르는 것이 바로 무인(武人)이었기 때문이다.

꽈아아아아앙-!!

가소천을 필두로 하여 밀려드는 쓰나미를 패권(覇拳)이 받아쳤다.

신마파산공(身磨破山功), 거신공(巨神功), 사자패권(獅子覇拳).

투마전(鬪魔殿)의 슈미트라와 성민혁, 소거인 강거혁과 벽태웅, 그리고 사자군 오군성의 패권었다.

그들의 패도(覇道)는 쓰나미에 휩쓸리기는커녕 오히려 정면에서 그것을 받아쳐 흐름을 뒤집어 버렸다.

그렇게 뒤집혀 갈라져 버린 흐름이 사방으로 튀는 것을.

쩌저저저적-!

윤상미의 한천검공(翰天劍功)이 얼어붙게 만들었다.

전체가 아닌 요소요소를 얼어붙게 만들어 흐름을 끊는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결빙은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였으니.

꽈과과과과광-!

소담이 자아낸 선로(仙路)를 따라 그녀를 따르는 번개가 휘몰아치고.

쿠오오오오오-!

용음(龍吟)과 함께 터져 나온 성지인의 격룡기, 그리고 위서린의 황룡무상신공이 저항하는 감염자들을 씹어삼켰다.

스으-

그리고 소리없이 다가와 죽음을 선고하는 장소유의 사신공.

"후대에 명예만을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

"오오오오오오!!"

가장 명예로운 공작 에번드윅을 따라 내달리는 기사들이 있었고.

"유구한 역사에 부끄러운 모습을 남기지 말라!"

무당과 화산의 제일검과 함께 내달리는 무인들도 있었다.

쓰나미와 정면으로 부딪쳐 그것을 부수어 버리고 마는 무인들.

그 무인들의 가장 앞에서 천마 김도진이 길을 열었다.

똑바로, 그저 앞으로.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캬아악!

키이아아아악!

말로서 성립되지 못하는 소리를 흘리며 감염자들이 사방에서 몰아치지만 도진의 걸음은 조금도 흩트러지거나 지체되지 않았다.

그저 나아갈 뿐인데.

그렇게 나아가며 깔끔한 궤적을 그릴 때마다 감염자들이 폭발하여 소멸한다.

무흔잠영(無痕潛泳).

행공(行功)이자 체술(體術)로 사신공의 기초가 되는 무공의 이치를 도진이 극한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그 눈이 자신을 포함한 무수한 점을 찰나에 선으로 잇는다.

이후 그 선이 자신과 이어지지 않는, 시간이 더해진 공간에서의 한 점을 밟음으로써 감염자들의 모든 행위가 닿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부터 이어지는, 일방적으로 이어지는 선을 천마신검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 어떤 감염자도 도진이 그리는 일방적인 선을 끊지 못했다.

심지어 가소천마저도.

쓰나미를 가르며 도진은 천천히, 그러나 단 한 번도 멈추거나 느려지지 않고 멀어졌던 카자카미 노보루를 향해 걸었고.

"건방진 놈."

그 앞을 카자카미 우에토가 막아섰다.

"어디까지 기고만장한……!"

기세등등하게 지껄이던 카자카미 우에토는 그러나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급하게 '사라져야' 했다.

휘두르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마치 그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이 나타난 것처럼 천마신검이 지껄이던 입을 베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근! 두근!

어느새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나타난 카자카미 우에토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고 식은땀이 났다.

조금만 늦었어도, 입이 두 배로 커질 뻔 했다.

볼이 찢어져 귀까지 닿을 뻔 했단 말이다!

저것이 바로 천마를 상대하며 감당해야만 하는 공포.

시작조차 알 수 없고 인식한 순간 이미 닿아 있는 공격.

그 공포가 분노로 치환되었고 굳이 카자카미 우에토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치게 만들었다.

"소용없다!!"

스각-

공간마저 벨 듯한 천마신검의 궤적이 카자카미 우에토가 있던 자리를 베었다.

허나 카자카미 우에토는 소리만을 남기고 다시 한 번 모습을 감추더니 또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도진은 굳이 그것을 추적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멈추어 서서 카자카미 우에토를 마주하였고 카자카미 우에토가 비죽, 일그러진 웃음을 띄웠다.

"알고 있다. 네놈이 기묘한 신법과 보법으로 기척을 감추고 이동하는 것을. 하지만 그건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도진은 그 말을 받아주지 않았다.

빠득, 카자카미 우에토가 이를 악물고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우리의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네놈이 그 어떤 방법으로 발버둥치든! 이물질에 불과한 네놈의 모든 행동과 기척은 눈에 띄고 만단 말이다! 그리고 나는, 네놈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권능을 손에 넣었지!"

그 커다란 목소리가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고서 도진이 말했다.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잠시 놔둔 거야."

"뭐야?"

"너. 그 더러운 손으로 소담이를 상상하며 더러운 짓거리를 했지."

소리조차 없이, 그래서 더욱 무서운 궤적을 그리며 천마신검이 우에토를 가로질렀다.

그 궤적을 피해 카자카미 우에토가 다급히 능력을 발휘했다.

"허억, 허억."

사라졌던 카자카미 우에토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나타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이려 하였으나.

"끄으아아아아악!!"

어깨에서부터 느껴지는 뇌를 태우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분명히 피했는데.

그 고통이 느껴지는 어깨 너머 팔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천마신검 아래,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감히 말이야, 소담이를 상대로 그런 더러운 짓거릴 했지."

"아아아아아악!!"

피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뇌를 그대로 지지는 듯한 고통에도, 그렇기에 그 고통을 더 느끼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능력을 발휘했는데.

털푸덕!

"끄으으으윽! 끄르륵!"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도 눈깔이 돌아가 흰자위가 드러난 채 게거품을 푸는, 사지가 잘린 카자카미 우에토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 더러운 눈으로, 소담이를 본 게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그래서 고마워."

푸슷-

"아아아아아악!!"

"그 눈깔을 거리낌없이 파 버릴 수 있는 짓거릴 해 줘서 말이야."

도진은 끝장을 내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천마 김도진의 '불살(不殺)'이다.

그리고 끝을 내지 않은 카자카미 우에토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저 멀리, 아직 닿지 않은 카자카미 노보루의 앞에 나타났다.

"과연. 천마야. 명불허전이군."

멀리 있는 카자카미 노보루의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여유롭다.

손자가 새로 얻은 능력이 아무런 가치조차 보이지 못하고 파훼당하고 또 그로 인해 병신이 되었음에도.

그리고 이윽고, 자연재해와 같았던 감염자들마저 토벌대가 모조리 물리쳤음에도.

그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토벌대의 무인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뭐가 그렇게 여유롭지? 비장의 수단은 통하지 않았고 넌 이제 뒈졌다고! 이 삼류 악당아!"

그림으로 그린 듯한 서양의 금발 남성 무인의 말에 카자카미 노보루가 피식 웃었다.

웃고서, 말했다.

"비장의 수단? 무엇이? 방금 그것이? 누가 그것이 비장의 수단이라고 말했지?"

"뭐?"

되묻는 무인의 말에 카자카미 노보루가 손을 들었다. 보란듯이.

그리고 그것을 튕겼다.

따악-!

"이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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