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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34화 (734/741)

734화

지직-

꽈아아아앙!

노이즈가 일렁이던 감염자의 명치에 천마기로 이루어진 기탄(氣彈)이 박히고 폭발이 일어나 몰려들던 감염자들의 파도에 구멍이 났다.

그리고 그 폭발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선명한 도진의 목소리가 토벌대 내에 퍼진다.

"더 큰 힘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것이 우리에게는 유리합니다."

많은 것이 함축된 말이었지만 무얼 의도해야 하는지 모두가 단번에 이해했다.

그들 또한 고수. 마나와 내공이 임계점 이상으로 반발하여 폭발하도록 유도하고 그 폭발에 상대만 휩쓸리도록 하라는 거다.

이곳이 마나가 지배하는 세계인 만큼 내공을 다루는 입장에서 그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꽈아아앙-!

쉽지 않은 일을 할 수 있으니 고수라 불리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특출난 고수들이 마치 자연재해와 같은 신위를 뽐냈으니 천마신교의 무인들과.

꽈아아아앙-!

소거인 강거혁, 사자군 오군성, 호군자 주대운, 화산과 무당의 제일검 등 경계를 넘어선 고수들이었다.

화경에 이른 고수들을 중심으로 하여 무인들이 몰아치니 끝이 없는 것처럼 쏟아지는 감염자들의 공세에도 토벌대는 밀리지 않았다.

세계의 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자연재해라 하여도 한 발자국도 밀리지 않고 막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기분과 달리 계속 이렇게 감염자들을 막아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었다.

꽈아아아아앙!

"이대로는 끝이 없겠지?"

호쾌하게 주먹을 내뻗어 덮쳐 오던 군세를 무너뜨린 오군성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잠식된 세계 안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최소한, 무림의 붕괴에 휩쓸린 이들의 일부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수일 것이며 지금 토벌대를 공격하는 건 그렇게 항거할 수 없는 재앙에 휩쓸린 걸로도 모자라 원치않게 이용당하는 무고한 사람들이다.

까드득-

그것에 도진은 화가 났다.

그래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중에.

파악-!

카아앙!

평범한 공격 사이에 섞여 아득히 뛰어난 검격이 도진을 노리고 쏘아졌다.

펄럭-

뒤늦게 무복이 펄럭이고 그 펄럭임마저 이용하여 검격을 쏟아내는 건 무인이었다.

천마신교의.

그러나 이제는 천마신교의 교도도, 사람도 아니게 된 존재.

마치 조롱하듯.

무수한 습격자들의 방해에도 물러서지 않고 나아가던 도진의 앞을 천마신교의 표식을 새긴 무복을 걸친 이들이 막아선 것이었다.

쿠웅-!

도진의 안에서 낮고 깊은 파문이 퍼져 나간다.

심상세계. 위지혁의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도진은 그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였다.

사부일체(師父一體)라 했던가.

도진에게 있어 스승들은 그 말처럼 부모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삶을 되돌려 주었다.

다시 살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다시 사는 삶을 원하는 형태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러니까 스승의. 전대 천마의 슬픔과 분노를 오롯이 받아들여 천마신검에 담았다.

차오른다.

천마신검에 천마의 분노가.

층층이.

그것은 지극히 거대하고 흉포하였으나 추모의 뜻을 담아 결코 어그러지지 않았다.

콰아아아아-!!

앞서와 달리 마나를 다루어 상대를 해치기 위한 형태로 가공할 수 있는 자들이, 마나에 잠식당해 버린 한때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도진을 집어삼키기 위해 덤벼들었으나 굳이 칼을 내뻗지 않았다.

우우웅-

그러지 않아도, 이치의 극한까지 결집된 기운이 그들을 밀어냈으니까.

천마신검에 담긴 이치과 기운이 그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이내 휘둘러져.

파아앗!

그들에게 안식을 선사하였다.

이치가 깃든 기운이 그들을 감싸고 마나의 속박에서 해방하였다.

지옥과도 같은 감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윤회의 이치에 스며드는 영혼들을 보며 도진은 잠시, 스승과 함께 옅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지직- 지지지지직-

감염자들의 파도에 휩쓸리는 사이 앞뒤도 위아래도 구분할 수 없던 공간에 뻥하니, 천마의 분노에 의한 구멍이 뚫리고 나아가야 할 길이 되었다.

감염자들을 막아내는 사이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앞뒤도 위아래도 구분할 수 없었던 공간에 길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토벌대는 걸음을 내딛는 대신 우뚝 멈추어 섰으니.

"……!!"

"가소, 천!"

구멍 너머에, 그 가운데 우두커니 선 가소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무인들은 익히 들었던 가소천의 신위를 떠올렸기에 우선 멈추어 섰다.

그러나 경계를 넘어선 화경의 무인들은 다른 이유로 가소천을 경계하였다.

오군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텅 비었군. 내 감각이 무뎌진 것인가?'

가소천은 이 시대의 천마와 마찬가지로 도저히 끝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경지의 무인이라고 했다.

허나 단전이 부서지고 폐인이 된 채로 유폐되면서 체(體)가 무너졌고 기(氣)가 흩어져 더 이상 무인이라 불릴 수 없게 되었다.

간단히 따지고 보면 이게 맞다.

내공은 물론이요 기세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

하지만 그런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무언가가 다르다.

텅 비어 버린 그 안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담겨 있다.

오군성은 주변의 화경에 오른 다른 고수들의 기색을 통하여 자신이 느낀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도진의 시선이 가소천이 아닌 그 너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그 뒤에 깨달았다.

"크흐흐. 명불허전이로구나, 천마 김도진."

"……!!"

토벌대 내에 다시 한 번 파문이 퍼져 나간다.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알았다.

가소천 너머. 카자카미 노보루, 한유성. 그리고 레너 집스와 카자카미 우에토까지 도주하였던 무형독의 잔당이 모두 모여 있었다는 것을.

이 일그러진 세계의 보이지 않는 장막에 가려져 있어 감지하지 못했던 그들을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도진만이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도진은 그 범죄자들을 마주하여 담담하게 물었다.

"가소천은 팽당한 모양이야?"

카자카미 노보루가 비죽 웃었다.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고 경쟁에서 도태되었으니 용도 폐기당한 것이다."

용도 폐기.

그 뜻을 짚어 보면 의미심장한 단어 선택이다.

카자카미 노보루는 그렇게 뜻을 되짚은 도진을, 그리고 그 너머의 토벌대와 마주하며 말했다.

"잠시 이야기를 하지."

"자네들은 이 세계가 침식당해 멸망하기 전에 이곳을 없애러 왔지. 하지만, 알고 보면 사정이 조금 달라져."

"충돌, 갈등, 싸움이라는 건 서로가 부딪치려 하기에 발생하는 일이야. 즉, 서로가 이해하고 손을 잡으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 이걸 보게."

카자카미 노보루가 손을 들었다.

그 행동과 함께 마나가 움직여 토벌대가 경계하였으나 그것은 공격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화륵-

손 위로 불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내공을 이용한 삼매진화가 아니었으며 기름 등을 이용한 트릭이나 마술도 아니었다.

그저 마나를 이용한.

"마법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편하겠지."

마법(魔法)이었다.

"그래, 이것은 마법이야. 이쪽 세계를 받아들인다면 이쪽 세계의 법칙에 따라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 힘이지. 그래. 누구든, 이다."

무공(武功)이란 것은 철저하게 재능을 발판으로 하여 올라가야 하는 힘이다.

하지만 마법은, 그리고 이 세계는 다르다고. 카자카미 노보루는 힘주어 말했다.

"삼매진화 같은 닿지 못할 재주에 기대지 않아도, 과학의 힘을 빌리거나 원시적인 방법으로 힘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마나를 이용하여 불을 피울 수 있게 된다."

"화석이나 원자력에 기대지 않아도 부작용이라고는 없는 마나로 발전할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을 것 없이 마나로 하늘을 날 수도 있지. 그것마저 싫다면, 공간 이동이라는 방법도 있다. 이미 자네들은 보지 않았나."

"그리고 이 은혜를 누린 아주 유명한 자가, 또 자네들의 눈앞에 있지."

그리 말하는 카자카미 노보루의 시선이 자연스레 앞으로 이동한다.

그들과 토벌대의 사이. 거기에는.

"가소, 천."

"그래. 가소천이다."

"자네들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나? 아무리 그래도, 제아무리 그래도 사람인데 가소천은 사람이라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고."

토벌대의 다수는 그 말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가소천은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뛰어났다.

이쪽 세계의 무형독. 그리고 저쪽 세계의 교나라를 너무 '완벽하게' 이끌었다.

교나라야 그렇다 쳐도 최소한 이쪽 세계의, 현대의 그 거대한 무형독을 그렇게나 완벽하게 은폐한 채로 나라 단위의 활동을 가능케 한 것은 현실이었음에도 믿기가 힘들었다.

당장 교나라가 토벌되고 무형독의 잔당만이 남았을 때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작아졌음에도 그들이 여기저기 행적을 드러냈음을 떠올리면 더욱 대비가 되고 만다.

그뿐인가.

무공은 물론이요 '주술'로 다른 인간의 능력을 빨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건 아예 상리마저 벗어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이 세계가 준 힘이란 것이다."

"……!!"

토벌대의 많은 이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카자카미 노보루의 목소리에 마력에 가까운 힘이 실린다.

"이 세계는 세계가 직접 인간에게 힘을 준다. 세계에 공헌만 한다면 그 불합리하게 주어지는 재능에 기대지 않더라도 세계가 힘을 준다는 말이다. 이런 세계를, 거절할 이유가 있나?"

독처럼. 그야말로 형체도 냄새도 없는 독처럼 카자카미 노보루의 목소리가 토벌대에 파고든다.

"이대로 세계와 세계가 부딪치면, 그래. 한쪽은 부서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방법이 있다고?"

누군가가 물었고 카자카미 노보루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 말하지 않았나. 갈등, 싸움, 충돌이라는 건 서로가 부딪치기에 성립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간단하지 않은가. 부딪치지 않으면 그런 비극 또한 회피할 수 있다."

"세계의 인간들이 이 세계를 받아들이면 된다. 다수가 이 세계를 받아들이기로 하면 세계와 세계는 충돌하지 않고 융합하여 평화롭게 이치가 섞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너희들 또한, 마나라는 새로운 힘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좋은 이야기였다.

나쁠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싸움없이 비극을 막을 수 있고 심지어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고 한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좋은 이야기였다.

쿠웅!

그래서 도진은 진각을 밟고서.

"역시 사기꾼이야. 개소리를 참 그럴싸하게 한단 말이야?"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낯짝이 두꺼운 카자카미 노보루는 그런 도진의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반격했다.

"고민하지도 않고 그저 나를 비난하는 건, 모든 걸 덮어두고 그저 나를 비난하고 싶기 때문은 아닌가?"

"싸울 필요가 없는 일이다. 평화롭게, 가장 좋은 형태로 일을 해결할 수 있음에도 왜 부정적인 태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 거지?"

"원래 사기꾼들이 그렇거든."

"사기꾼들은 그렇잖아? 교묘하게,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나쁜 것은 절대로 말하지 않고 그럴싸한, 좋은 것만 늘어놓곤 하지."

"내가 무얼 잘못했다는 것이지?"

도진의 입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그리고 그 형상을 닮은 말이 칼처럼 날카롭게 카자카미 노보루를 겨누었다.

"가소천."

"……."

"그 유토피아 같은 세상에게 왜, 가소천은 용도 폐기를 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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