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3화
도진의 의견에 따라 세계는, 아오키가하라를 발판으로 한 침략을 힘을 합쳐 물리치기로 하였다.
그를 위한 조사가 몇 번 더 있었고 그러는 동안 레너 공방의 대표였던 레너 집스와 그 측근들이 카자카미와 한통속, 무형독이라는 게 드러났다.
카자카미는 공중분해 되었다.
일본 내에서, 그리고 세계의 온갖 매체에서 떠들썩하게 다뤘지만 그것은 결코 드라마틱하지 않았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의미로서 성립되지 못했다.
나지윤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악(惡)의 몰락이란 그래야만 했으니까.
멋져서도 안 되고 서정적이어서도 안 된다.
분노 이외에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어떤 '서사'도 존재해서는 안 되니 그저.
철저하게 몰락하고 또 그 몰락 속에서 철퇴를 맞아야만 하는 것이다.
나지윤은 몇 번이고 철퇴를 내리치며 카자카미 가문의 몰락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윽고 레너 집스와 측근들 또한 무형독임을 증명해냈다.
레너 공방의 일은 카자카미와 달리 어렵지 않았다.
스스로를 변호해야 할 레너 집스와 그 일당이 이미, 증발해 있었으니까.
카자카미 노보루가 잠적할 때 레너 집스 또한 함께였다는 게 드러났다.
그 도주 루트가 비현실적일 만큼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 또한 마나로 사라졌다고 추측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걸 버리고 걸 만큼, 아오키가하라 안에 대단한 것을 준비해 두었을 거라고.
카자카미 노보루와 한유성.
이미 경계를 넘어선 고수였던 그들이 얼마나 더 대단한 것을 준비하고 있을까.
카자카미 우에토 또한 범상치 않은 고수였으며 무형독의 간부였던 만큼, 그리고 지금껏 정체를 숨겨왔을 만큼의 역량이 있던 레너 집스는 또 얼마나 큰 것을 드러낼까.
하물며 전장은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침식하는, 침식당한 세계의 내부.
지켜보는 이들보다 그곳을 공략해야만 하는 이들의 걱정과 두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도진이, 천마가 말했다.
"우리 천마신교가, 제가 가장 앞에 설 겁니다."
냉정하게 따져서. 그리고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득이 되는 선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천마의 선언에 천마신교의 모두가 동의해 주었다.
"스승님의 시대에서. 붕괴에 휩쓸린, 스승님을 따르던 교도들이었어요."
상징이란 집단의 결속을 도모하는 좋은 수단이다.
천마신교 또한 상징이 있었고 그 상징이, 마나에 완전히 잠식당한 이들의 옷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위지혁이 천마이자 교주로서 살던 시대를 함께 살았던 교도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붕괴에 휩쓸렸음에도 죽지 못하고, 윤회하여 새로운 삶을 살지도 못하고 그렇게 참혹하게.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위지혁은 분노하였다.
천마(天魔)란 가장 앞에서 이끄는 자이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천마신교의 교도라 함은 가장 앞에서 나아가는 천마의 뒤를 받쳐주는, 밀어주는, 함께 걷는 동반자였다.
그 동반자를 모욕하는 것을, 위지혁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고 해요. 천마의 이름을 이은 천마로서. 또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도진의 선언에 소담이 한 걸음 다가왔다.
"옆에 서도, 되지?"
도진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함께."
상미 또한 가족으로서 힘을 보태기를 바랐다.
성민혁도 성지인도, 위서린도 장소유도.
그리고 천마신교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도진의 뒤를 받쳐 주었다.
그리하여 토벌의 날.
스으으으으으-
채 15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오키가하라는 이제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기괴하게 변해 버렸다.
이지러지고, 꺾이고, 뒤틀리고, 어긋났다.
나무이지만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형태가 되었고 그것들이 어떤 것은 너무 작고 또 어떤 것은 너무 커져서는 풀 수 없는 형태로 뒤섞였다.
그리고 보고 있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가 '나'라는 존재가 없어져 버릴 것만 같은 본능적인 거부감이 땅에서 도저히 발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경지에 올라 육감(六感)에 닿은 자들은 그 거부감을 평범한 이들의 수십 수백 배로 느낀다.
침식한 세계와 그 세계의 작용을 볼 수는 없어도, 그 작용을 어렴풋이나마 육감으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오키가하라에 모인 이들이 기세를 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
저벅.
멈추어 버린 이들을 가르며 나아가는 천마가 있었다.
세상을 가득 채우는, 아니 마치 세상 그 자체인 것만 같은 압도적인 존재감이 일대를 지배한다.
오오오오오-
한 걸음마다.
부지역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세계와 동화하였던 기세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낮게 포효하고 그것이 스멀거리고 있던 불길한 기운을 찢어발기며 천마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리고.
저벅.
천마를 뒤따르는 이들이, 같은 방향을 나아가는 이들이 그 세상을 채움으로써 완벽을 완성했다.
천마신교(天魔神敎).
그 가장 앞에 선 천마 김도진이 스르릉, 검을 뽑아 들었다.
아득한 세월에 걸쳐 쌓인 지층을 연상케하는 천마기로 가득 채워진 이 검은 천마신검이다.
도진의 스승 위지혁이, 그리고 역대 천마들이 휘둘렀고 역대의 명장들이 두드려 완성하였던.
무림의 붕괴와 함께 소실되었으나 이내 필연처럼 천마의 이름을 이은 도진에게로 이어졌다.
-늦지 않았군.
그리하여 우벽진이 다시 완성한 필생의 역작.
천마에게로 돌아온 검이 다시 한 번 포효한다.
오오오오오오오-!!
포효하는 천마신검을 도진은 깃발처럼 드높였고.
꽈아아아아앙-!!
이치와 함께 분노를 담아 휘두름으로써 뒤틀려 노이즈가 잔뜩 끼어 있던, 출입을 허락지 않던 침식하는 세계의 입구를 쳐부수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 * *
와아아아아-!!
천마신교를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에서 모인 사백여 명의 무인들이 함성으로 기세를 드높이며 아오키가하라에 진입하였다.
정확히 사백삼십오 명.
전 세계에서 모였다고 하기엔 작디 작은 수이지만 그들 모두가 A-1, 초절정 이상에 화경이 두 자릿수에 달한다는 걸 알게 되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강력한 소수 정예의 토벌대가 된 것은 이 정도가 아니고서는 이곳에 진입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오키가하라는 이미 전체가 다른 세계에 침식되었다.
경계였던 입구부터가 지독한 노이즈와 충돌한 이치에 의해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로 가려진 데에서 본능적인 거리낌을 느끼고 그 정신적인 압박감을 평범한 수준으로는 버틸 수조차 없다.
접근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존재의 근간부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존재에 대한 위협.
그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선 초절정, 최소한 정신력만큼은 그에 준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조차도.
'빌어먹을…….'
'엿같아.'
안에 들어선 순간 욕지기를 참기가 힘들었다.
이산화탄소가 가득하여 숨쉬기가 버거운 공간에 들어온 것만 같다.
아니, 그건 너무 일차원적이고 한참이나 모자란 비유다.
그래. 차라리 물이 아닌 기름, 그것도 극한까지 썩어 버린 기름으로 이루어진 호수에 던져진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이치, 이치, 이치. 솔직히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다.
당연해야 할 것이 당연하지 않은, 완전히 뒤틀린 세계.
그러니까 '이치'가 어긋난 세계에 던져지면 이런 기분이구나.
알게 되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군.
-맞지 않는 옷이라는 말이 딱이야.
토벌대의 선봉에 섰던 이들 중 도복(道服)을 입은 두 무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전음으로 말했다.
토벌대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굳이 전음을 쓰는 두 무인이자 도인은 다름 아닌 무당제일검과 화산제일검이다.
경계를 넘어선 두 사람 또한 대문파를 대표하여 토벌대에 합류한 것이다.
그들 말고도 사자군 오군성과 호군자 주대운, 소거인 강거혁에 유럽의 가장 명예로운 공작인 에번드윅까지도 이 토벌대에 속해 있다.
경계를 넘어선 강력한 무인들.
허나 그들조차 이 불쾌한 공간에서 오랜 세월 잊고 있던, 완벽하게 통제하던 신체의 부자유를 느끼고 있었으니 차라리 이곳에서는 그들이 '불순물'이었다.
그리고 그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어긋난 이치가 '물'이 되는 자들이 몰려들었다.
스으으-
'이쪽'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들.
쿵-!
그들은 일말의 대화나 교감조차 없이 토벌대에게 덤벼들었다.
지지지직-!
'…….'
그리 힘겹지 않게 '감염자'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화산제일검의 인상이 그러나 찌푸려졌다.
맞댄 칼날에서 노이즈가 미친듯이 일렁인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그들은 '마나 생명체'다.
전혀 다른 이치에 속해 있으며 그렇기에 내공을 활용하는 무인과는 상극이었고 서로의 기운이 반발하여 상쇄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문제는 교환비에서 화산제일검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거다.
아오키가하라는 이미 침략한 세계의 이치가 잠식해 버렸으니까.
이물질은 그들이었고 토벌대는 눈앞의 상대만이 아닌 '세계'를 상대로 저항해야만 했다.
때문에 몇 배나 되는 힘이 들어가는데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세계를 형상화한 듯한 노이즈를 봄으로써 정신마저도 깎여 나간다.
화경에 오른 화산제일검도 이러한데 평범한 무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이물질이 되어 세계를 상대하는 듯한 감각에 짓눌려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마음이 꺾여 단숨에 휩쓸려 버릴 것이다.
화산제일검은 그것을 대번에 파악했으나.
두웅-!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장 앞에 서는 이가 누구인지 잊지 않았으니까.
그들의 가장 앞에는, 세계에 맞설 수 있는 무인이 있었으니까.
오오오오오오오-!!
천마기가 포효하여 일대를 뒤덮고 있던, 무인들을 짓누르고 있던 '마나'를 휩쓸어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이곳을 잠식하고 있던 이치를 천마의 기세가 밀어낸 것이다.
퍽!
그리고 소리가 한 번.
꽈과과과광!!
이어서 몇 번이나 되는 폭발이 일어나며 감염자들을 집어삼켰다.
'탄지공.'
소수의 눈과 감각이 좋은 무인들만이 천마가 탄지공(彈指功)을 구사하였다는 걸 알았다.
내공을 손가락을 이용하여 총알처럼 쏘아내는 수법.
내공이란 것을 체외에서 형상화하는 것부터가 아득한 영역이며 그것이 거리가 떨어질수록 제곱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형상을 유지한 채 심지어 고속으로 쏘아내는 탄지공은 여전히 현실이지만 상상에 가까운 수법이었다.
그 수법을 연달아 구사하여 습격자들에게 때려박았고 내공과 마나가 반발하게 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천마가 가리킨 순간 폭발이 일어나고 감염자들이 휩쓸려 사라진다.
마치 권능의 행사와도 같은 광경에 무인들은 경외하였고 투지를 불태웠다.
등 뒤의 그 투지를 두르고 도진이 가장 앞에서 나아갔다.
시리게 빛나는 도진의 눈은, 어그러진 세계 너머를 꿰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