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화
그 현상을 볼 수 있는 건 현장에서 오직 도진뿐이었다.
너무나 거대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평범한 인간은 볼 수가 없을 만큼 아득한 차원의 현상이었다.
때문에 우주의 이치에 닿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자만이 '보는' 행위가 가능했고 이 자리에선 그것이 도진뿐이었던 것이다.
이치가 이치를 잠식해 들어간다.
그것이 마치 시커먼 알 수 없고 또 불길한 미지가 세상을 조금씩 삼키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볼 수 없는 게 다행이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저런 것'을 보고서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을 테니까.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화로운 숲인 아오키가하라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미지에 천천히, 잠식당하고 있었다.
주변을 확인했다.
도진의 곁에는 위연서가 있었고 함께 온 일본 무림의 무인들이 스물 남짓.
그 외엔 무인보다는 공무원에 가까운 이들이다.
"…조금만, 정찰을 하고 오겠습니다. 저와 여기 독마 부전주만이 들어갈 겁니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함께 온 일본 쪽 담당자가 망설이다 물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천마를 걱정하는 것이 머쓱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길함이 말을 꺼내게 만든 것이었다.
도진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당장 토벌하거나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정찰만 할 생각이니 주변의 통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가자, 연서야."
"존명!"
주변의 통제를 맡기고 도진은 위연서와 함께 아오키가하라, 불길한 검은 숲의 바다에 들어섰다.
위연서는 평소보다 깊이 가라앉은 기색이었으니 도진과 같은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경지에 오른 무인답게 본능이 주는 경고로 팽팽하게 당겨진 것이었다.
사박.
초입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농밀한 마나를.
이미 민간에도 그 이름이 퍼졌을 만큼 마나는 기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에 관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건 이제서야 마나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뜻일 거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어두워졌네."
"예."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숲에 달조차 모습을 감춘 듯 짙은 어둠이 내렸다.
오전이었고, 숲이 울창하여 평소에도 어두운 곳이라지만 결코 이 정도까지 어두울 수는 없었으니 무언가 다른 것이 작용한 것이다.
진법, 은 아니다.
그 외 다른 수단으로 인간이 수작을 부린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세계의 작용, 이라고 해야 하나.'
침식당한 세계의 이치가 꼬인 것이다.
낮과 밤의 구분이 엉망이었고 '공간' 자체도 상리를 벗어났다.
무인의 눈으로도 구분이 힘든 짙은 어둠이 내린 가운데 숲이 미로가 되었다.
여기에 본능을 갉아먹는 지독한 불길함까지.
심약한 이들이라면 벌써 주저앉을 상황이었고 실종자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였다.
"위연서."
"예, 교주님."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존명!"
도진은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현상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신안(神眼)은 꼬이고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도 바깥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냈다.
나가는 데에 문제는 없으니 하나만 더.
도진은 욕심을 낼 생각이었다.
지직-
서벅.
깨져 버린 파일을 재생한 듯 이질적인 기척이 망가지고 또 끊긴 소리가 되어 귀를 자극하였고 가까워지는 기척에 섞였다.
자연지기와 동화하였던 도진의 감각이 잡아냈던, 이 기괴하게 망가진 숲을 배회하던 자들이 다가온 것이었다.
지직- 스슷-
일그러져 있었다.
어디가 다치거나 훼손되거나 부서진 것도 아닌데.
두 눈은 그 존재들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고 노이즈가 끼고 일그러진 형태로 인식하였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무복을 입은 채 인간의 문명이 만든 무기를 들고 있는 그들은.
'실종자들.'
바로 사건이 커지게 만든 근래 실종된 자들이었다.
청산문의 문도들이 보였고 그 전에 실종되었던 일반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고 이 세계의 이치에서 어긋나 있었으니.
"크, 카, 앗."
침식하는 세계에 잡아먹혀 이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적대하는 존재가 되어 도진과 위연서에게 폭발적인 적의(敵意)를 내비치며 덤벼들었다.
즈즛-
청산문의 무복을 입은 자가 휘두른 검이 지직이며 뚝뚝 끊기는 궤적을 그렸다.
평범하게 휘두르는 검인데 이 세계에게 부정당하여 존재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그리 보이는 것이다.
도진은 그 검에 굳이 임시로 가져온 검을 맞댔다. 그러자.
꽈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일대를 휩쓸었다.
"교주님."
"응, 괜찮아."
어느새 조금 떨어져 있던 위연서의 곁에 선 도진이 폭발이 일어난 자리를 확인했다.
검을 맞댔던 무인은 폭발에 휩쓸려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허나 그것이 오롯이 폭발 때문은 아니었다.
"독은 통하지 않지?"
"예."
그들에게는 독이 작용하지 않았다.
이미 '인간'이라 부르지 못할 만큼 마나로 인해 변질된 탓이다.
숨을 쉬고 있고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더 이상 본인이 아니었다.
차라리 마나의 덩어리.
그러니까 도진의 강력한 천마기와 맞닿은 순간 반발하여 폭발이 일어났고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것이다.
꽈과과과광!!
몇 번의 폭발이 더 일어났고 몰려들었던 이십여 명이 그에 휩쓸려 사라졌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되었다.
우선은 돌아가서 방책을 세우자.
그렇게 판단하고 몸을 돌리려던 차였다.
스으-
새로운 존재가 몇, 다가왔다.
도진이 우뚝 멈추어 섰다.
그들에게는 '노이즈'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상대한 이들이 아직 완벽하게 마나에 잠식당하지 않아 불안정했다면 이들은 완전하게 마나에 잠식당한 존재였다.
그래서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고.
-……!
처음으로, 도진은 스승 위지혁의 커다란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하게 되었다.
* * * *
혼슈 무림청의 강당.
넓은 그곳에 회의장을 급조하였고 전 세계의 인사들이 모였다.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 김도진에 의하여 아오키가하라 사태에 관한 대책위원회가 소집되었기 때문이다.
각국의 고위 관료에 각국 무림맹의 총책임자들까지.
그야말로 정상회담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면면들을 마주하는 자리에서 도진이 말했다.
"아오키가하라는 다른 세계에 침식당하고 있습니다."
"침식?"
"예. 침식입니다. 숲은 어디까지나 입구에 불과하고 안에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고 보면 됩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인 만큼 완전히 다른 법칙이 작용하고 있고 서로 얽히고, 부딪쳐서 엉망이 되었으니 실종자들은 그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그 세계에 잡아먹힌 겁니다."
"……."
"무림이라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곳을 오가는 것이 특별하지 않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정 이상 현대의 문물은 무림으로 넘어가는 순간 망가지고 분해됩니다. 다들 아시는 이야기죠."
"무림이 무림이라는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던 과학, 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현상이라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치와 이치가 충돌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것을 참으로 둔다면, 그렇다면 말입니다."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는 일 또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
도진을 응시하던 이들의 눈이 커졌다.
이 자리에 나올 만큼 유능하고 머리가 돌아가는 이들이기에, 도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번에 깨달은 것이다.
"우리의 세계와 무림은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무림의 파편이 이쪽 세계에 스며들어 영향을 주긴 했지만 서로가 충돌하는 일은 없었단 말이죠. 다만 포털로 연결되었고 인간이 오갈 뿐."
"하지만 아오키가하라는 달랐습니다. 그곳은. 다른 세계가, 다른 세계의 이치가 우리의 세계를 침식하고 있었습니다. 이치와 이치의 충돌. 현대의 문물이 무림으로 넘어가며 부서진 것처럼. 아오키가하라의 내부는 부서져 있었습니다."
"……."
"시공이 엉망이 되었고 법칙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그곳에 들어간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고 그 사람들은 그 안에서 침식하는 세계의 법칙에 잠식당해 완전히 변질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외계 생명체에 잠식당해 존재가 변질되어 버리는 그런 것.
다만 그것이 허구가 아닌 현실이라는 데에서, 그리고 생명체만이 아닌 세계까지도 침식되고 있는 데에서 이번 사태가 절대적인 비극이 되고 만다.
"천마께서는 어떤 방책을 이미 생각해 두신 것 같습니다."
차분한 미 국방부 소속 장군의 말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는, 이곳을 공략해야만 합니다. 가능한 빨리요."
"어째서입니까?"
아직 그곳이 어떤 곳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석대로라면 우선은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를 토대로 하여 방책을 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시간보다는 안전과 확실성을 더 추구하는 게 기본이지 않은가.
허나 그것을 모르지 않을 천마는 지금 가능한 한 빨리 그곳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진이 그 이유를 말했다.
"우리 세계와 무림은 서로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각 세계가 서로를 침범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것은."
"예. 지금 아오키가하라를 침식하고 있는 세계는, 마나의 법칙이 작용하는 세계는 우리 세계를 침략하고 있는 겁니다."
"……!!"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생각지 못했다.
그것이 너무나 큰 단위의 일이라서.
그래. 충돌할 수 있다면 자의로 부딪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침략'의 가능성이, 당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 아오키가하라에서 있었던 실종 사건에서도 그렇고 청산문의 문도들이 사라지는 등 사건이 크게 발전했을 때도 그랬는데, 이때까지의 보고서에는 마나의 존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갔을 때에는. 아오키가하라에는 농도 짙은 마나가 떠돌고 있었죠."
"현대의 물건이 무림으로 넘어가며 부서지는 건 작은 이치가 더 큰 이치에 의해 배제된 것입니다. 이것은 백혈구의 작용과 비슷합니다. 세계에 들어온 존재하지 않던 이치, 이물질을 제거하는 거죠. 우리 세계도 비슷한 작용을 해서 당연히 마나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마나를 만들어도 금방 흩어지는 것처럼요. 하지만 아오키가하라에는 이제 마나가 떠돌고 있죠. 침식하는 세계가 그 구역에서만큼은, 이쪽 세계보다 그쪽 세계의 법칙이 우선할 만큼 세력이 강해진 겁니다."
그러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오키가하라를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침식은 강해지고 더 넓어질 겁니다."
암세포와 비슷하다.
최악의 경우.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여 공멸하는, 그런 미래의 가능성마저 존재한다고.
도진은 선언했고 사람들은 굳어 버렸다.
"앞서 조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을 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하여 몇 번의 조사를 더 거쳐서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침식당한 아오키가하라 내부의 원인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 세계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기 전에."
그 원인은 십중팔구.
사라진 무형독의 간부들일 것이다.
그들의 세력이 더 강해지기 전에 쳐야 한다.
"그리고 그 선봉에는 저와,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앞장설 겁니다."
이는 이후의 논공행상을 논하거나 명분을 챙기기 위한 포석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행위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
진짜 이유는 이것이 천마신교의 일원으로서,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천마 김도진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오키가하라 내부에서 도진이 보았던 이들.
노이즈가 끼지 않는, 이미 완전히 마나에 침식되고 동화되어 버린 이들.
그들은.
무림의 붕괴에 휩쓸린 옛 천마신교의 교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