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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31화 (731/741)
  • 731화

    다같이 둘러앉아 아주 커다란 나무 아래서 피크닉을 즐겼다.

    나무는 마치 처마처럼 해를 가려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그 아래 흐드러지게 핀 꽃들에 둘러싸여 오대용이 들고 온 간식을 나눠먹었다.

    냐아앙-

    "그러면 나중에, 솜이도 백화님처럼 사람으로 변신할 수도 있는 거예요?"

    품에 안겨 고롱거리는 솜이를 보며 묻는 건 소담이었다.

    백화는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 다만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둔갑술은, 특히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선술의 이치에 닿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십 년도 아니고 무려 백 년 단위를 논하는 백화의 말에서 그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기실 백화 또한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이 있지 않았다면 여전히 신선이 아닌 '동물'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상미는 솜이를 품에 안은 백화를 보다가 오대용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태어날 아이의 이름은, 생각해 두셨어요?"

    "응? 아니, 아직. 후보들은 있는데 계속 고민하고 있어. 사실 할아버지도 그렇고 주 할아버님도 경쟁 중이시라 나는 어떻게 입을 못 떼고 있는 처지야."

    상미의 물음에 오대용은 푸후후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주정아의 배는 어느새 커다랗게 불러 있었고 출산이 채 세 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해야 할 일은 하라고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내쫓은 주정아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오대용은 있지 않았을 거다.

    상미는 직접 보진 못했으나 간접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 부러웠다.

    그런 행복한 시간이었다.

    바쁜 중에도 놓칠 수 없는.

    그랬던 시간이.

    "…가소천이 사라졌습니다."

    세이전의 요원이 다급히 이쪽으로 달려와 전한 소식으로 인해 강제로 중단되고 말았다.

    도진을 포함한 모두가 즉시 분위기를 바꾸어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의 세계로 돌아갔다.

    포털을 넘어선 곳은 러시아의 동토(凍土)가 아닌 천마전으로, 백화의 조언으로 '입구'를 옮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되짚을 틈도 없이 즉시, 도진은 총괄부와 세이전을 소집하여 대응을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말 그대로, 가소천이 증발했어."

    나지윤은 평소와 같이, 그래서 믿음이 가는 어조로 짧게 말하고선 영상을 보여 주었다.

    '무인도'에서 찍힌 모든 자료를 미국에서 공유해 준 것이었다.

    360도, 일체의 사각도 그늘도 없이 감시당하고 있던 가소천이.

    [파아앗!]

    돌연 강렬한 빛에 휩싸이더니 다음 순간.

    [……!!!!]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소란이 영상에 섞였다.

    "……."

    이해에 집중하여 내부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포털이 아니야.'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상상 속에서나 있던 많은 것들이 현실이 되었다지만 그럼에도 '저런 것'은 아직 없었다.

    포털로 도주한 것이 아니라 저건, 말 그대로 빛에 휩싸여 증발한 것이었고 미국도 아직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텔레포트(Teleport)?'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단어는 그것이다.

    쉽게 말해 공간 이동. 공간 이동 마법의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단어다.

    하지만 그것을 가소천이 썼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확인을 위해 도진이 직접 가소천을 마주하지 않았던가.

    가소천은 분명히 단전이 파괴되었고 그 몸에 내공도, '마나'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충격이 큰 가운데 연속으로 충격이 몰아쳤으니.

    "하, 한유성이 사라졌습니다."

    가소천에 이어 한국에 유폐되어 있던 한유성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카자카미 우에토가 사라졌습니다.

    핫라인으로 일본에서는 카자카미 우에토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몰아치는 소식은 하나같이 충격적이었고 오래 가지 않아 외부에까지 유출되고 말았다.

    [혐의를 부정할 수 없게 된 카자카미 우에토, 탈주?!]

    [일본 무림청, 무능인가. 혹은 배신자의 소행인가.]

    시작은 일본이었다.

    그야말로 특급 기밀로 취급되는 가소천이나 한유성과 달리 카자카미 우에토는 아직은,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혐의자'로서 취급되고 있었기에 정보가 빠르게 새 버린 것이다.

    이후 한유성의 증발을 숨기다 일어날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한국 쪽의 책임 기관이 실토를 했고 이어서 미국마저 가소천의 증발을 발표함으로써 세상이 뒤집어졌다.

    -아니, 뭐야.

    -뭐지? 무형독 그거, 퇴물 아니었어?..

    -뭐야 저거. 이상하잖아. 어떻게 한 거야?

    단순히 떠들썩한 게 아니라 근거 없는 공포감이 퍼져 나가게 됐다.

    계엄령에 준하는 비상 사태가 선포되었고 그즈음 도진은 일본의 후쿠오카 구치소에 들어서고 있었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별말없이 도진은 급히 구성된 조사단과 함께 카자카미 우에토가 머물던 독방에 들어섰다.

    카자카미 가문이 지배하던 영역의, 특히나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구역의 구치소였던 만큼 구치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호화로운 내부였다.

    그 내부에서 도진은 생활의 흔적과 함께 오직 하나.

    이 세계에는 없어야 할, 전혀 다른 이치가 깃든 잔류하는 마나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마가 말씀하셨던 마나, 군요."

    "네."

    마나에 관해선 이미 공유했다. 그러니까 조사단 모두가 이곳에 마나가 작용하였음을 확인하였고.

    그 외의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미국의 말대로였어. 잔류하는 마나 외에는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어.

    마침 미국에 머물고 있었기에 무인도로 향했던 한유아와 민지서에게도 같은 것을 확인했고 한유성 또한 다르지 않았다.

    거의 동시에.

    가소천과 한유성, 그리고 카자카미 우에토는 마나에 의하여 증발하였다.

    * * * *

    [카자카미 가문. 명문의 탈을 쓴 무형독이었나.]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 믿고 싶지 않은 형태로…….]

    카자카미 우에토가 증발하던 때.

    카자카미 가문은 결국 몰락으로 치달았다.

    카자카미 우에토가 저질렀던 범죄 혐의 대다수가 나지윤에 의해, 그리고 장영준에 의해 입증되었고 이내 몸통에까지 닿아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카자카미 노보루의 더러운 진면목까지 드러나고 만 것이다.

    카자카미는 더 이상 후쿠오카를 지배하던 '막부'일 수 없었고 '정치 가문'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가문을 지키던 성벽, 그리고 갑옷이 사라지자 억누르고 있던 모든 혐의에 맨몸으로 노출 되었고 무엇 하나 막지 못했다.

    결국.

    카자카미 가문은 무형독임이 드러났고 전면적인 압수수색이 진행되었으며.

    [카자카미 노보루, 잠적.]

    가문의 수장이자 지주였던 카자카미 노보루가 측근들과 함께 잠적하면서 카자카미 가문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 * * *

    "하. 말세인가. 정말로."

    "세상은 모르겠지만 일본은 정말 끝난 느낌이야."

    혼슈, 야마나시현.

    일대의 치안을 경찰과 함께 담당하고 있는 청산문(靑山門)의 문도들은 사무실에서 그렇게 한탄 섞인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가소천에 한유성, 카자카미 우에토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 사라지고 영원할 것만 같던 카자카미 가문은 몰락하였으며 그 수장인 카자카미 노보루가 잠적.

    하나만 일어나도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 몇 개나 겹쳐 일어났으니 다른 세계의 존재가 밝혀지고 천마신교 이단의 존재가 밝혀졌을 때만큼이나 뒤숭숭하다.

    특히나 일본은 일본의 기둥이라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던 카자카미 가문이 무너지면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고 치안마저 불안정해질 지경이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거라고.

    청산문의 두 문도는 갑자기 들어온 사건의 이유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수해에서 귀신이 나와?"

    "예. 그렇답니다. 벌써 몇 명이나 안에 들어갔다가 실종됐다고……."

    "아니 그게 언젯적 이야긴데."

    수해(樹海). 말 그대로 '나무의 바다'라는 뜻이다.

    후지산 북서쪽 원시림 지대, 아오키가하라(青木ヶ原).

    그 이름처럼 넓은 삼림으로 한때 자살의 명소로 유명했던 곳이며 자연스레 관련한 괴담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전 이야기이고 잘 모르는 외국인 혹은 타지역 사람들이나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사실은 전혀 다르다.

    캠프장과 공원이 있고 산책하기도 좋은 곳이며 CCTV도 많고 순찰도 다닌다.

    애초에 성인 남성이라면 아무리 헤매도 반나절도 되지 않아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빠져나오지 못해 죽을 만한 규모도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아오키가하라는 꾸준히 괴담이 이어졌으니 귀신이 아닌 사람 탓이다.

    불법적으로 그곳을 점거하고 사람의 시선을 피하여 나쁜짓을 벌일 수 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하여 수작을 부리던 흑도 무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치안이 불안정한 시기.

    머리 나쁜 흑도 무리가 수작을 부리기에 최적이지 않은가.

    청산문은 그래서 매뉴얼대로 대처했다.

    무림청의 무인들에게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하여 아오키가하라 깊은 곳에 처박혀서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을 흑도를 소탕하러 들어간 것이다.

    '이래서 머리가 나쁘면 밑바닥 범죄자 밖에 못 되는 거지.'

    청산문의 무인 중 한 명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려면 그냥 쫓아내기나 할 것이지 왜 몇 명이나 납치를 해서 일을 만드는 걸까.

    근시안적으로만 생각을 하고 행동하니 뭔가 일을 벌이기도 전에 이렇게 토벌대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냐고.

    "별 거 없군요."

    "그러게요. 정말 잔챙이인 것 같습니다."

    매뉴얼에 따라 여러가지 장비를 가져와서 확인했는데 이렇다 할 함정 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흑도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양아치들이 충동적으로 벌인 범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토벌대는 조금 느슨해진 채 아오키가하라 깊은 곳에 진입하였고.

    "…아오키가하라가 이상하다구요."

    "예."

    그들을 포함한 대규모의 실종 사건으로 커져 천마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백 명이 넘는 인원이 실종되었고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시작은 몇 명의 실종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실종을 조사하기 위해 조직된 토벌대가 단 한 명도 돌아오지 않으면서 심각한 사건이 되었고 이내, '괴담(怪談)'이 되었다.

    백 명이 넘는 무인이 아오키가하라에 들어갔고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으며 흔적조차 단절되었다.

    들어간 흔적이 어느 순간 끊겼으며 나온 흔적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오키가하라는 작은 곳이다.

    여의도 택지 면적의 10배 정도 되니 절대적으로 보면 작은 건 아닌데 아마존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는 전혀 댈 수가 없을 정도로 '작은 숲'이 되고 만다.

    그 정도 숲에서 백 명이 넘는 인원이, 그것도 무인들이 흔적도 없이 증발하여 돌아오지 못하는 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그래서 모두는 떠올린 것이다.

    이것은, 무형독의 수작인 것 같다고.

    도진은 즉시 아오키가하라로 향했다.

    그리고 신안(神眼)으로 보았다.

    -음.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림의 것도 아닌 전혀 다른 것이.

    스멀스멀 이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현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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