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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29화 (729/741)

729화

'세계의 적' 가소천은 미국에 유폐되어 있다.

한유성과 달리, 한유성보다 위험한 범죄자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 유폐된 것은 나름 미국의 자존심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무림의 중심이 천마와 천마신교의 존재로 인해 한국으로 기울어 가는 추세에서 적어도 가소천 정도 되는 범죄자만큼은 미국에서 관리하여야 체면을 차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이 자존심을 챙기기 위한 미국의 주장을 세계는, 그리고 천마신교는 받아들였다.

그럴 만큼의 투자를 미국이 했기 때문에.

미국 영해 안에 '무인도(Desert island)'라 불리는 외딴섬이 있다.

미국은 무림의 범죄자들을 포함한 흉악 범죄자들을 특별 관리하기 위하여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을 만들었으니 바다 위 외딴섬의 감옥이었다.

무인도(無人島). 사람을 가두는 곳이나 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니 그 이름이 참으로 어울린다.

바로 그 무인도 가장 깊은 곳에 새로운, 인권을 완전히 배제한 독방을 만들었으니 가소천을 유폐하기 위하여 만든 구역이었다.

징역조차 지우지 않는다.

몇 겹이나 되는 속박구를 씌워 식사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철저하게 모든 것이, 숨쉬는 것조차 감시 하에 놓여 있으며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다.

이미 단전이 박살났음에도 24시간 내공을 흩어 버리는 산공독에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온갖 약물을 섞어 안개처럼 안에 살포한다.

그 독방이 열두 겹이나 되는 보안 체계로 둘러싸여 격리되어 있다.

섬의 외부 또한 보안 체계를 완전히 새로 하여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또.

그런 섬을 미 항모 전단이 경계 구역 안에 두고 철저하게 관리한다.

쏴아아아아아-

"대단하네요."

갑판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두 눈에 담으며 도진이 말했다.

도진의 곁에 선, 몇 개나 되는 훈장으로 깔끔한 군복을 장식한 중년의 대령이 각진 얼굴로 미소를 띠었다.

"흉악한 무림의 범죄자가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임무이고 또 소원이니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입니다."

도진과 그는 사람이 개미처럼 보일 만큼 드넓은 활주로 위에 서 있었다.

주변으로는 몇 대나 되는 전투기가 대기하고 있으니 마치 공군 기지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이곳은 바로 그, 무인도를 경계 구역 안에 포함하여 감시하고 또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는 항모 전단의 항모 위다.

따지고 보면 '민간인'인, 그것도 외국인인 도진이 이렇게나 특수한 곳에 서 있는 건 예의 가소천을 면회하고 싶다는 연락이 원인이었다.

도진은 직접 미국의 무림을 담당하는 기관인 '연방 무림 특무 사령부'에 연락하여 가소천의 면회를 요청하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가소천에 대한 면회는 설령 일국의 대통령이라 하여도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그 부분을 직통 핫라인을 통하여 해결하였고 이렇게, 무인도로 가기 위하여 항모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허허. 직접 보니 이 시대의 기술은 새삼 놀랍구나.

-예. 스승님들이 즐거우시니 저도 좋습니다.

무인도로 가기 위해선 무조건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일단은 항모 전단을 통하여서만 근처까지 갈 수 있는데, 사실 이렇게 항모에 탑승할 필요까진 없고 원칙상 갑판 위에 올라서서도 안 된다.

항모를 호위하는 전단의 위용을 볼 일도 없다.

허나 도진은 지금 무려 항모의 갑판에 서서 호위 전단을 두 눈에 담게 됐으니 뭐.

으쓱.

곁에 서서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 군인에게서 엿볼 수 있듯, 과시다.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인 천마에게 우리가 무공은 한 수 쳐져도 이쪽으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과시.

그리고 그렇게 과시하는 군인들의 태도가…….

"이미 말씀드리고 주의를 드렸지만, 무림인의 자유분방함을 경계하는 게 저희의 성격이다 보니 실례를 무릅쓰고 한 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무인도로의 진입 절차는 엄숙하게 지켜져야만 합니다. 제아무리 천마라고 하셔도 이 부분에 있어선 주의해 주십시오."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다.

군인이라 딱딱한 게 아니라 정말로, 명백하게 까칠했다.

그 이유를 도진은 알고 있었다.

무인도와 관련하여 배치된 군인들 중에 무림에 호의적이지 않은 걸 넘어 적의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림의 범죄자들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무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그것은 설령 천마라 하여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뭐, 그런 만큼 사심없이 엄격하고도 단호하게 무인도를 대할 수 있었으니 적절하다면 적절한 인선이다.

단지 그런 이들을 '굳이' 천마의 안내역으로 배치한 데에선 의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쏴아아아-

그래서 조금은 건조한 분위기에서 항모는 나아가 이내 바다 위의 감옥 무인도에 도착하였다.

무인도는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았다.

중심의 거대한 구조물을 제외한 모든 구역이 깨끗했다. 마치 거대하고 날카로운 칼로 튀어나온 부분을 모조리 잘라내 버린 것처럼.

그 어떤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저곳에서는 은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없도록 모조리 콘크리트를 발라 버렸으며 나무 한 그루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도진이라면.

사신 장호의 진전을 잇고 부지역에 이른 도진이라면 수많은 점이 자신에게 닿는 선을 잇지 않음으로써 사람의 시야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런 도진이라 하여도, 온갖 첨단 장비로 이루어진 경계 시스템은 피할 수 없다.

그 정도나 되는 시스템을 구축한 무인도에는 부두가 없었다.

애초에 배를 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헬기를 이용해 가야 합니다. 수칙에 따라 탑승해 주십시오."

대령은 그리 말하며 군인들과 함께 다가와 섰다.

아까부터 은근히 '수칙'을 논하며 도진에게 그것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강조한다.

그 수칙에 따라 도진은 대령과 함께 헬기에 탑승하였다.

헬기 또한 보통 물건이 아니어서 예의 헬기하면 떠오르는 시끄러운 소음이 없었다.

소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특히 조금만 거리가 떨어지면 안 들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이 또한 소음이 만에 하나라도 범죄자들의 무기가 되지 않도록 경계한 것이었다.

항모에서 이륙한 헬기가 금방 섬의 위에서 제자리 비행을 했다.

"여기서 강하하여 섬에 내리면 됩니다. 안전 수칙에 따라 저희 요원이 함께 강하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는 대령의 옆으로 무뚝뚝한 인상의 젊은 군인 한 명이 온갖 장비를 들고 섰다.

그러니까 저 장비를 차고, 군인에게 매달려서 낙하하라는 이야기였다.

'흐음.'

도진이 옅게 웃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신경질적이고 과할 정도의 절차지만 오히려 그래서 도진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무언가 보여주기를 바라니까, 그래.

"질문이 있는데요."

도진의 말에 대령은 이제서야 반응이 있구나, 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답했다.

"예, 천마. 질문이 있습니까?"

"네. 여기서 저기까지. 그러니까 땅까지 문제없이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예. 다만 시설을 파손해서는 안 되며 커다란 소리를 내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그로 인해 천마께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를 저희는 바라지 않습니다. 숙련된 저희 요원의 안내와 지시에 따라 이동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헬기에서부터 지상까지의 높이는 대략 20미터.

일반인이라면 추락시 목숨이 위험하겠지만 경지에 이른 무림인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내공과 극한까지 갈고 닦아 예(藝)의 영역에 이른 기술이 낙법을 통하여 안전한 착지를 가능케 한다.

하지만 그런 무림인이라 하여도 소리조차 없이, 땅을 파손하지 않고 내려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대령은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가능하지 않다면 얌전히 요원에게 매달려 내려가라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진은.

"그거라면, 문제 없겠네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제가 주의드린 내용을 분명히 숙지하고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좋은 청자거든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헬기 밖으로 나아가.

스윽-

"……!!"

"……!!"

허공에 섰다.

대령을 포함한 하늘과 지상의 군인들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다.

허공답보(虛空踏步).

지금까지 오직 단 한 명.

천마 김도진만이 보여 주었던, 몇 년 동안은 볼 수 없었던 상상 속의 기예가 다시 한 번 그들의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스윽-

마치 계단이 있는 것처럼.

허공에서 그저 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상을 향하여 도진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급하지 않게. 여유롭게.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처럼.

20미터 상공에서 지상에 도달하여 발을 딛을 때까지 그리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도진은 그렇게 무인도를 지켜야 할 이들의 시선과 정신을 빼앗아 버렸다.

* * * *

"정말로 좋은 것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요. 서비스 좀 해드렸습니다."

"이거 참. 역시 조르고 볼 일이군요."

감옥 안에 들어선 도진은 새로운 인물과 마주 보며 웃었다.

직책도 말하지 않고 그저 미스터 키퍼라 불러달라고 한 인물이었다.

포커페이스에 아슬아슬하지만 결코 선을 넘지는 않는 처세술까지 보통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곳 무인도에서 천마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앞서 도진을 안내한 이들이 일부러 도진을 자극하여 무언가 하나라도 엿보기 위한 시도였다면 미스터 키퍼는 그 뻔한 시도를 부드럽게 넘기기 위한 인선이었다.

그의 안내로 도진은 수많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의 앞.

"이 안에는 아시다시피 산공독을 포함한 좋지 않은 것들을 살포하고 있어서요. 방호복과 방독면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감사히 빌리도록 하죠."

도진은 비치되어 있던 방호복과 방독면을 쓰고, 마지막 문을 넘었다.

그 너머에.

구속복과 구속용 의자에 철저하게 구속된 채 얼굴을 숙이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은 세계의 적이 있었다.

"오랜만이야? 가소천."

"우스운 꼴이로구나, 찬탈자의 후예."

마르고 갈라졌을지언정 가소천의 목소리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단전을 파괴당하고 수저를 드는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범죄자로 추락한 가소천의 몰골은 빈말로도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은 쇠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고 유폐되어 다시는 무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되었음에도.

그 눈동자에는 꺾이지 않은 희망이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도진의 전혀 필요가 없음에도 걸치고 있는 방호복과 방독면을 쓴 모습을 조롱하려 든다.

그것을 무시하고서 도진이 물었다.

"그때, 널 따르던 사람들까지도 집어삼킨 건 질렸기 때문이었지? 나라를 세우고 황제 노릇을 하는 것에도 질려서. 어차피 망가진 걸 수정하기보다는, 이쪽으로 넘어와 아예 새로 시작하겠다는 생각이지 않았어?"

가소천이 피식 웃었다.

"제법이로구나."

그리고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그런 생각이었던 것이다.

무형독에 교나라까지. 그 정도나 되는 걸 이룩해 놓고도 조금 어긋나자 흥미를 잃고 질려서 아무렇지 않게 버려 버렸다.

진법을 펼쳐 수하들의 모든 것을 빨아먹고서는.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을 만큼 가소천에게는 그것들이 하찮고 또 얼마든지 새로 쌓을 수 있는 것이었던 거다.

"단전을 파괴당하고 다시 재기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망가졌지만 그런 꼴로도 아직 여유가 있는 건…… 술법사로서의 지식을 믿는 건가?"

가소천은 여기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찮고도 수준 낮은 추론에는 일말의 가치조차 두지 않는 것이다.

이는 생포된 뒤 가소천이 가진 일관적인 태도였고 심문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도진은 자연스럽게 아니면, 하고서.

"마나를, 믿는 건가?"

"……!!!"

가소천의 격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단어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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