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화
[한유성 씨는 무형독, 천마신교의 이단에 의하여 누명을 쓰고 금화를 잃었습니다.]
[금화를 잃고 억울하게 도피하며 큰 충격을 받아 심신이 피폐해졌고 그 이유로 무형독에 협조하여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상기 이유를 참작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인단은 그런 논리로 한유성을 변호하였다.
몇 번 틱틱거리다 이내 입을 다물어 버린 한유성을 대신하여 지껄이는 그 소리는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어처구니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미친 새끼들임?
-저새끼들 머리가 폭발했다www
-신이시여 시발 십자가로 뚝배기를 깨소서..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그 논리는 그러나, 법적으로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개소리 이상으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이제와서 당시의 행동이 오해였고 그 오해 때문에 심신미약으로 무형독에 협조했다 이거지.
한유성은 속았다.
한동군 회장의 탈을 쓴 무형독의 간부 홍괴산에게 속아 잘못을 저질렀고 또 그 오해를 풀기도 전에 금화를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되면서 판단을 잘못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골때리네."
나지윤의 정리에 도진이 피식 웃었다.
얼토당토 않은 개소리인데, 이게 또 말이 되긴 한다.
당시 '누가봐도 그렇다'는 게 그 잘난 '법적으로' 따져 보면 어디까지나 심증이지 물증이 아니라는 거다.
한동군 회장이 진짜라 믿고 그 말에 따랐을 뿐이며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몰렸고 그래서 두려워하던 한유성을 무형독이 도왔다.
그러니까 무형독에 투신하여 협조하였고 지금에 이르렀으니 참작할 요소가 있지 않은가.
지금 한유성을 변호하는 자들은 이걸 강력하게 밀고 있다.
힘있고 돈 있는 자들이 호화로운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무죄, 그게 안 된다면 집행유예를 받아내는 경우는 이 세계에 얼마든지 있었다.
같은 짓거릴 한유성의 변호인단이 시도하고 있는 거다.
"한유성이 또 자존심을 제법 긁히고 있겠어."
-그렇지.
지금 그들의 논리는 한유성을 심신미약으로 만들면서 성립하는 것이다.
한유성이 충격을 받아, 그러니까 못난 꼴이 되어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그 잘난 맛에 사는 한유성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거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자존심이 상하고 있겠지.
그래서 의문이 또 커진다.
"씨알도 안 먹힐 텐데."
당연한 말이지만, 제아무리 '다툼의 여지'가 있다 해도 결국 저게 통할 리가 만무하다.
한유성은 속된 말로 '빼박'이란 말이다.
변호인단의 조언에 따라 이악물고 발언을 자제하고 방침에 따른다 하여도 결과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지금 한유성을 심문하고 또 판결하는 쪽에는 법조계의 전설이었던 나성보의 계보를 잇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지금 오성 그룹 법무팀에 속해 있는 나성보는 또한 천마신교의 이념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이다.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다.
그런 나성보를 추종하고 또 동경하여 법조계에 입문한 이들이 지금 철저하게 벼르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한 개수작이었고.
-이렇게 시간을 벌어서 뭘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니까 잘 부탁해.
"오케이."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통신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맞은편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정장 무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소담이다.
"우리 소담이는 왜 뭘 입어도 다 이렇게 예쁠까?"
"에헤헤."
노골적인 칭찬에 소담의 하얀 볼이 옅게 물들고 미소가 흘러 나온다.
그 미소에 약간의 긴장이 섞여 있다 녹아 사라졌다.
"지켜보고 있을게."
"응!"
나란히 서서 함께 걸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소담은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럴 뿐, 항상 곁에 있어 주던 사람의 시선이 등을 받쳐주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어깨를 곧게 펴고 당당히 걸을 수 있었다.
또각. 또각.
굽소리와 함께 걸어 나간 소담은 이내 조금 넓어진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과 합류했다.
천마신교의 무인들, 그리고 오늘 '폭로 회견'의 스태프들.
그 안에 회견의 주인공.
"……."
장영준, 나가요시 쥰이 있었다.
복수심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소담의 투명하고 깊은 눈동자와 일순 마주하였고 꾸벅, 장영준이 작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어긋났다.
"…가죠."
"예."
소담의 말에 따라 소담을 필두로, 가운데 장영준을 두고 무리는 나아갔다.
웅성웅성-
커다란 웅성임 속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묻히고.
차차차차착-!
셔터 소리와 빛이 파도처럼 밀려들며 회견장에 들어서는 무리를 휩쓸었다.
천마신교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소담이 가장 앞에서 쏟아지는 관심을 우선 받아내고 그 뒤에서, 오늘의 주인공이 나온다.
카자카미 게이트.
"장영준, 카자카미에 의해 나가요시 쥰으로 개명당했던 장영준입니다."
그 사건의 유일하면서도 절대적인 증인 장영준의 폭로 기자 회견의 시작이었다.
* * * *
[카자카미 게이트의 유일한 증인은 장영준!]
[나가요시 쥰, 개명까지 하며 충성했던 그의 폭로는?]
-누구임?
-예에에에전에 교주님이 아직 잠룡이실적 빌런.
-누구임?
-윤상미한테 껄떡대다가 교주님한테 걸려서 존나 혼났다더라.
-그래서 누구임?
-몰라 ㅅㅂㅋㅋㅋㅋㅋ 걍 딱 그정도였음.
-그 아빠가 국회의원인데 카자카미랑 손잡고 나쁜일 하다가 부산에서 살해당한 사람 중 한 명이더라. 그때 난리났었지. 문제는 그 아빠 명령으로 조용히 후쿠오카 사관학교로 유학갔었던 장영준이 낙동강 오리알 되면서 고생을 많이 당한 모양이던데.
-님 왤케 잘 앎?
-꺼라위키 가니까 잘 정리돼 있더라.
-여윽시.. 민족사관..
-근데 이걸 그렇게 꽁꽁 감춰두고 보호하더니 폭로 전에 먼저 밝혀도 되는 거임?
-우리 소담 여신님이 지키고 계시는데 문제가 되겠냐.
-모르지. 그 미친놈들이 무슨 수작 벌일지 모르는데.. 교주님 계셔야 되는 거 아님?
-계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무형독이 안 나타나면 안 나타나실 수도 있고.. 나타나면 교주님도 나타나실 수도 있고..
-아니 뭔ㅋㅋ 슈뢰딩거야? ㅋㅋㅋ
-뭐 어쩌겠음ㅋㅋㅋ 그새끼들이 방구석에서 물건 던지고 욕하는 거 말고 뭘 더 할 수 있겠음ㅋㅋㅋ 꼬우면 50%에 걸어야짘ㅋㅋㅋ
-와.. 50%나 됨? 존나 혜자네. 이거 가챠 안하면 병신 아님?
-미친놈잌ㅋㅋㅋㅋ
워낙 사람이 몰려 실시간 방송의 채팅창은 그렇게나 가벼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폭로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장영준이란 인간은 사라지고 나가요시 쥰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나가요시 쥰은, 공주님이 키우는 개의 똥을 받아먹으면서 살아남았습니다."
"……."
회견장의 가장 주목을 받는 곳에서 장영준은 긴장으로 이를 드러낸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얘는 화장실이 따로 없습니다. 제 옆에 싸죠. 보여드리고 싶은데, 이렇게나 긴장해서 얘가 볼일을 보겠습니까? 그래서 영상 준비했습니다."
말과 함께 그의 뒤로 녹화된 영상이 커다란 스크린에 재생됐다.
잘 관리받은 개가 방석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곁에 있던 장영준의 옆에 볼일을 본다.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제가 화장실이었거든요. 그, 공주님 있잖아요. 카자카미 공주님. 그 씨이발년이 절 화장실로 교육시키니까 얘도 그렇게 배운 거죠."
"……."
"얘가 하도 날 따라서 눈물을 머금고 저한테 보냈다던데. 아주 개새끼 같은 소리죠. 질린 겁니다. 크니까 질려서, 못생겨져서. 나한테 떠넘겼어요."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얘가 제법 똑똑하거든요. 화장실이 다른 곳이라고. 나는 화장실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근데 그러지 않았어요. 왜? 그러면 증명이 안 되잖아. 증거를 없앨 순 없지. 나는 그 씨발년이랑 카자카미 개새끼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거든. 이미 몇 번이나 처먹었는데 그거 조금 더 먹는다고 내가 뭐가 되겠어요?"
조용하게 말한다. 아주 조금,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조곤조곤했다.
그래서. 그 안에 압축된 광기와 복수심이 너무나 진하게 퍼져 나가는 목소리를 통하여 회견장을 채우고 있었고 기자들은 홀린 듯 폭로를 들었다.
"압니다. 내가 좀 양아치였지. 그래서 잘못을 하고, 일본으로 가야 했지. 근데 거기에 대해서 천마님에게 뭐 원한이 있다거나 그러진 않아요. 천마님이 날 뭐, 아주 조지신 건 아니잖아. 날 조진 건 카자카미였지. 고아 새끼. 사람이 아니라 화장실. 개보다 못한 개새끼.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건 하납니다."
"카자카미. 그 씨발놈들을 찢어 버리는 거. 그래도 내가, 나도 머리가 나쁜 건 아닙니다. 숭무고에야 못 들어갔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은 무림 학교엔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은 됐지. 덕분에, 아주 많은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새끼들 조질 수 있는 거라면 대가리에 이 악물고 쑤셔 넣어 놨거든. 그러니까, 그래."
폭로는 조용한 가운데, 그러나 고함치는 것보다 진득하고도 끈적하게 이어졌다.
"찌라시 중에 그게 있더군요. 술집에서 마약을 팔고 그 마약을 미끼로 그 씹새끼. 우에토. 토쏠리는 씹새끼. 씹새끼가 죽일 여자를 조달했다지. 그 술집 중 한 곳으로 지목된 곳에서 아무것도 안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당연합니다. 거기가 아니거든. 거기가 아니라, 그 근처. 빌딩. 그 낡은 빌딩 1층에 도장집 있죠? 거깁니다. 거기가 진짜예요. 술집은 위장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또."
충격적인 정보가 계속 나열되던 중에야 기자들은 헛, 겨우 정신을 차리고 키보드를 두드렸고.
[카자카미의 무사, 인간이 아니었던 나가요시 쥰의 인간 장영준으로서의 폭로.]
카자카미의 기둥을 찍었다.
* * * *
천마신교의 인식과는 참으로 동떨어져 있는데, 일반 대중에게 있어 카자카미가 무형독이라는 건 '증거가 없는' 이야기였다.
심증은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거다.
더 정확히는, 카자카미의 힘이 존재하는 증거들을 증거가 아니게 만들고 있었다.
이 부분에 있어선 가소천이 악당이라는 걸 떠나 인신(人神)이라 불리던 게 허세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놈은 아주 철저하게 증거가 남지 않도록 그 거대한 조직을, 두 차원의 조직을 관리했다.
물론 100% 완벽하게 증거를 지울 순 없었지만 그렇게 남은 증거들은 금화나 카자카미 가문, 레너 공방 정도 되는 조직을 흔들 정도로 대단치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레너 공방도 카자카미 가문도 가소천이 붙잡히고 천마신교 이단의 핵심이 전멸했음에도 꼬리를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한유성이 지금 얼토당토 않은 논리로 버틸 수도 있고 말이다.
도진이 이제 이단의 흔적을 신안으로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면서 구분이 가능해졌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진에게만 가능한 일.
이것이 객관적이고 또 물리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이니 한유성처럼 카자카미 가문이, 일본 정계의 핵심에 선 놈들이 오리발을 내밀고 또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낯짝을 덮고 있는 두터운 철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감추고 있던 추악한 면모를.
장영준을 통하여 철면피를 사정없이 찍고, 파헤치고, 부쉈다.
도저히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낯가죽이 결국 부서졌고 감추고 있던 토악질이 나오는 민낯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일본 최고의 가문이면서 무가. 나라를 통째로 삼키려 들었던 명문은 그렇게 민낯을 드러내었고 이제, 무형독임을 감추던 위장은 기능하지 못한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지윤이 이를 드러내며, 도진을 닮은 표정으로 말했다.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무너졌으니 아껴두었던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 내부를 공략한다.
비로소 복수의 화룡점정이 찍히려 하고 있었으니 도진은 그 복수를 응원하였다.
그리고 도진은.
-……예? 천마께서 말입니까?
"네. 가소천을 좀,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