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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26화 (726/741)

726화

위연서는 함께 움직일 때면 도진의 보좌를 자청하였다.

도진의 한 걸음 뒤에서 다소곳이, 그리고 또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였으니 과연 천마의 보좌를 자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위연서가 그럴 때마다 소담이 어쩐지 뿌우, 귀엽게 불만스런 얼굴이 되곤 했지만…….

"한국으로 빠르게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예.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모든 의문을 접어두고 준비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던 귀국 절차를 밟다 보면 위연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하고 있던 차량으로 눈밭을 벗어난 뒤 허가 받은 헬기로 갈아타고 공항이 있는 도시의 헬리포트에 내린다.

그리고 또 거기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타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과정은 너무나 깔끔하였고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덕분에 한국행 비행기의 탑승까지 본래 소요됐어야 할 시간의 절반이나 줄일 수 있었다.

"역시 연서야."

"감읍하나이다."

"아니, 진짜 울지는 말고."

"예, 지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은 뒤 도진은 노트북을 열면서 물었다.

"한유성은?"

"엄중한 감시 하에 한국으로 송환 중입니다."

"그래."

노트북의 화면으로도 관련 뉴스와 위연서가 정리한 자료가 떠올랐다.

천마신교와 국제 무림맹에 심지어 군대까지.

가소천 이후 가장 중요한, 무형독 잔당의 핵심이 되는 빌런의 압송이다 보니 이 정도나 되는 규모도 납득이 간다.

무엇보다 한유성은 경계를 넘어선 고수이니까.

제아무리 도진이, 천마가 완벽하게 제압하여 넘겼다 해도 방심하지 않는 게 당연했고 그것이 옳았다.

그리고 그렇게나 엄중하게 압송하는 곳이 한국인 건 그곳에 천마신교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한유성의 제거에 대비함에 있어 가장 적합한 곳이 천마신교가 있는 한국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카자카미랑 레너 공방 쪽은 어때?"

한유성이 붙잡혔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러시아에서.

분명히 카자카미 노보루와 레너 집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을 텐데…….

"내부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그래."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그것이 안에서부터 구멍을 꼭꼭 틀어막은 형태라고 한다.

외부의 활동보다 내부의 꿍꿍이를 감추는 데 더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아직 한유성은 압송 중이고 그 어떤 진술도 할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니 본격적인 일의 진행은 내일부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도진은 그에 관한 일을 뒤에 두고 진나라, 쉬르네폴리아에 연락을 넣었고.

-네, 도진 씨.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너머로 진나라의 여왕 위서린과 사신 장호의 손녀 장소유를 마주할 수 있었다.

"쉬고 있는데 방해한 건 아니죠?"

-도진 씨와 이야기하는 게 저에게는 쉬는 거예요.

"아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쁘지만 또 죄송스럽네요."

-왜요? 제가 무언가 잘못했나요?

"아뇨. 쉬시는데 죄송하게도 일 이야기를 좀 해야 해서 연락드린 거거든요."

-으응. 괜찮아요! 얼마든지 하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도진은 그렇게 말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부 무림의 백성들. 그리고 그 외에도 이쪽 사회에서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복잡한 문제였으나 도진은 굳이 어렵지 않게 물었고 그에 관해 한때 부담을 느꼈던 위서린도 이제는 웃으며 답할 수 있었다.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조금씩, 정말로 조금씩이라도 서로를 이해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행이네요."

사실은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

간극이 있는, 마주치면 갈등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란 갈등하는 부분을 깎아 나가는 것이 지난하고 또 지난했으니까.

당장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사례 몇 개만 가져와도 그렇다.

묻지마 폭행으로 몇 번이나 붙잡힌 범죄자를 일반적인 사회의 '법'은 용서하고 또 교화하려 든다.

하지만 과거 명나라의 국민들이었고 천마신교를 믿는, 그러나 쉬르네폴리아에 속하길 거부하는 이들은 그 범죄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 하나를 용서하기 위하여 수십, 수백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드는 건 결단코 옳지 않다고 믿는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가 좁히기 힘든 간극을 만들고 갈등을 유발한다.

진나라는, 바할라는 비교적 그 갈등 요소가 적은 나라이긴 하다.

진나라와 바할라가 바로 그들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니까.

허나 그렇다 하여도.

결국 진나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나라 중 하나인 바할라에 합쳐질 것이고 명나라부터 시작하여 진나라로 이어진 명맥이 이윽고 끊기는 것을 그들은 바라지 않았다.

그들의 여왕이 쉬르네폴리아에 있기에 더더욱.

그러니까 어려운 문제이지만…… 위서린은 이제 그에 짓눌리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나아가야 한다고.

그녀가 바라보는 등의 주인이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반짝이는 눈을 통하여 그런 위서린의 결심을 보며 도진은 미소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 문제에 관해서 말인데요, 서린 씨."

-네, 도진 씨.

"다른 방법이 하나. 생겼어요."

-다른 방법이요?

"네. 그거 관련해서 다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해야 할 거 같은데, 그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눌까 해요."

-다 같이 모여야 할 정도라니, 어떤 방법인지 궁금해지네요.

"음. 좀 놀라운 이야기가 될 거예요."

-아이, 자꾸 궁금하게 하지 마세요.

"음. 그러니까 말예요."

-네.

"나라를 하나, 새로 세우는 건 어떨까 싶어요."

-네?

* * * *

도진이 땅을 밟는 순간 수많은 이들이 말 그대로 구름처럼 밀려들었다.

그들은 연신 '한유성'을 언급하며 많은 것을 물었고 도진은 이렇게 답했다.

"철저하게 규명하여서, 만천하에 알리겠습니다."

한유성이 이송되고 아직 심문 전이었기에 그것이 답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기자들도 이해하였다.

심문은 준비를 철저하게 하여 내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었기에 도진은 한유성의 상태만을 확인하고 천마전으로 향했다.

모두 모여 회의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둔 것이 몇 시간 전 비행기에서였기에 이미 다들 자리해 있어 도진이 입장하고 바로 회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총괄부의 오성아와 한유아, 나지윤의 답청문, 소담의 암산서가에 직접 오지 못한 바할라의 투마전, 쉬르네폴리아의 위서린과 장소유 등은 화상으로.

심지어 웨일스 후작까지 천마신교와 깊이 연관된 이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도진이 운을 뗐다.

"우리가 제법, 경계를 받고 있죠?"

갑작스런 내용이었으나 오성아가 자연스럽게 받았다.

"응. 너무 커져 버렸으니까 말야."

천마신교는 이제 '천하제일문파'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너무 강력해졌다.

무림의 문파로서 그 어느 곳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다.

교주이자 천하제일인인 천마 김도진이 그 어떤 무인도 감히 댈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월등하게.

천마신교의 핵심이 되는 이들 또한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니 그 전력은 흔히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단일로 무림 전체를 상대할 수 있다던 마교보다 나으면 나았지 부족하지 않았다.

사회에서의 천마신교 또한 떨어지지 않았다.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이 바할라 전체가 천마신교를 믿고 사실상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이 끝나 버린다.

다국적 기업이 잘 나가니 어쩌니 할 것 없이 비중 있는 산유국이 천마신교에 포함되어 있단 말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요소만큼이나 특기하여 언급되는 것이 천마신교 구성원들의 소속감이다.

문파라는 것이 회사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속감을 강조한다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다.

소수를 제외하면 결국 '회사원'의 감각을 가진 이가 적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천마신교는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 천마신교는 말 그대로 굳건하게 믿는 종교요 목숨을 바칠 '나라'와 같았다.

그래, 나라.

그러니까 주변에서는 천마신교를 경계한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새로이 탄생한 국가에 준하는 경쟁자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가소천이 세상을 똘똘 뭉치게 해 주었고 지금은 무형독의 잔당이 그 역할을 이어서 하고 있지만 곧 그 위험도 종식될 거다.

그렇게 되면 다음은.

천마신교가 대두될 것이다.

세계의 적이 되는 건 아니다.

당장 한국이 그렇고 미국마저 천마신교를 친구로서 대하고 그런 관계를 쌓아 나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노골적으로, 집중적인 견제를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에 대한 대비를 총괄부를 포함하여 천마신교의 인재들이 충분히 대비하고 또 준비하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커질 수는 없게 될 거다.

"한유성을 잡으러 가서 말예요. 또 다른 세계를 보게 됐어요."

"또 다른 세계?"

"네. 무림이지만, 우리가 모르던 무림이요."

그렇게 도진은 백화를 만나 알게 된 것을 말했다.

-무림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화면 너머 위연서의 많은 감정이 담긴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림은 멸망하는 게 아니었어요. 다만, 재해를 만나 크게 다쳤던 거죠."

백화는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자연재해가 있듯, 차원 단위에서도 자연재해가 있습니다.

홍수에 논밭이 휩쓸리듯, 태풍에 집이 부서지듯.

차원 단위에서의 자연재해가 이 우주에는 있다고.

무림은 바로 그런 재해에 휩쓸린 것이었다.

-무림은 거기에 휩쓸려 크게 다친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다친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지 않은 차원은 회복되는 중이었다.

서서히, 조금씩.

다친 뼈가 아물어 더 단단하게 붙고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그랬군요. 그랬던 것이었군요…….

"제가 한유성의 열쇠를 빼앗아 넘어간 곳이 그렇게 아물고 있던, 우리가 기존에 이용했던 포털로는 갈 수 없던 회복된 영역이었어요."

무림은 지금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기존의 불안정한 붕괴에서 생성된 포털로 넘어갈 수 있는, 낫는 과정에서 떨어질 '딱지'에 해당하는 영역.

그리고 다른 하나가 몇 명이, 몇 번을 통과하든 불안정해지지 않는 포털을 이용해야만 넘어갈 수 있는 '새살이 돋은' 영역.

무림의 사람들은 그 딱지에 해당하는 영역에서 살고 있었으니 세계가 멸망하고 있다고, 이내 완전히 붕괴할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아직은 그 영역이 그렇게 크지 않아요. 지구로 따지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정도죠."

측정하기를 무림 세계는 지구와 쌍둥이별이었으니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절대적으로 작은 건 아니지만 지구에 비하면 크지 않은 게 맞다.

"백화님의 말씀대로라면 그 영역이 점점 커지긴 할 테지만 아마도, 우리 세대에서는 유의미할 만큼의 변화는 없을 거라고 해요. 천 년이 지나도 지금의 두 배가 되기 힘들 거라고 하셨죠."

하나의 세계의 회복이다.

그 단위는 당연하게도 '천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땅의 주인을 누구로 할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 것인지.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도진이 씨익 웃었다.

"그 땅에 우리의 나라를 세우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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