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화
[오늘 저녁 있었던 외곽의 별장 습격 사건의 중심에 배군 한유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배군 한유성이 별장을 습격한 이유에 대해 천마신교에서는 카자카미 가문과 관련한 사건의 중요 증인의 입막음을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카자카미 가문에서는 크게 불쾌감을 드러내며 무형독과 연관지으려는 얼토당토않은 수작을 그만두기 바란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아니 이게 뭔 미친 뉴스야?
-한유성이 카자카미 사건 중요 증인을 죽이러 왔다고? 왜?
-왜긴 왜야 ㅋㅋㅋ 카자카미 가문이 무형독이었다는 거지 ㅋㅋㅋㅋㅋ
-씨바 빼도박도 못하게 됐죠? 카자카미 조졌죠?
외곽의 한적한 곳에 있던 별장의 습격 사건은 그러나 은폐되지 못했고 만천하에 알려졌다.
애초에 천마신교는 은폐할 생각 자체가 없었고 오히려 널리 알릴 생각이었으니 아예 한유성이 찍힌 CCTV 자료까지 언론에 제공해 버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경계를 넘어선 무인이자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의 주인이 될 자였으면서도 인류를 배신한 한유성에 관한 빅뉴스였으니 채 몇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으로 제공한 자료가 장식되었고 특히나 일본이 뒤집어졌다.
[카자카미에 관하여, 입을 열다.]
[카자카미는 무형독과 협력 관계가 아닌 몸통이었다.]
소위 말하는 '찌라시'가 일본에 범람하고 있었다.
그들은 카자카미가 무형독과 협력하여 누굴 죽였니 누굴 묻었니 떠들어댔고 아예 카자카미가 단순 협력 관계가 아닌 몸통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그것이 현실이든 뜬소문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자극적인 요소를 때려부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평소라면 감히 하지 못할, 지금도 아직은 건재한 카자카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런 짓거릴 온갖 찌라시에서 뿌려대는 건 뒷배가 있기 때문이었으니 두말해서 뭐하랴.
카자카미를 견제하던 쿄야마 의원 일파다.
카자카미 가문은, 가문의 수장인 카자카미 노보루는 열이 올라 머리가 익어 버릴 것만 같았다.
상황이 너무나 안 좋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이런 미친, 겁대가리 없는 놈들이 지껄이는 걸 함부로 닥치게 할 수가 없었다.
더욱 미치겠는 건 이게 거짓말이 아닌 사실이고 어떻게든 '사실'을 틀어막느라 허덕이고 있는 스스로의 꼴이었다.
하지만 그 화를 발산해서는 안 됐다.
억눌러야 했다.
이 위기를 넘겨야 했으니까.
그리고 기다렸다.
한유성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나가요시 쥰의 암살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를.
한데.
[배군의 암살 시도. 카자카미 가문을 위해서.]
"이런 병신 새끼가……!!"
한유성이 실패했다. 암살을.
그냥 실패한 것도 아니고 기본 중의 기본인 정체를 숨기는 것조차 실패하여 이 사단이 나 버렸다.
그 실패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 한유성이 카자카미 가문을 위해 움직였으니 카자카미 가문은 무형독이라는 이야기가 힘을 얻고 마른 들판에 번지는 불처럼 강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사태는 최악을 향해 치닫게 됐다.
이제, 천마신교가 철저히 준비하여 장영준을 내세워 기자 회견을 가지고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꽁꽁 감춰 두고 있던 자료를 풀면.
지금껏 공들여 왔던 모든 것이 무너질 판이었다.
"…아직 놈의 연락은 없나?"
"……그래."
억누르고 또 짓이긴 것을 뱉어내듯 카자카미 노보루가 레너 집스의 말에 답했다.
일을 이따위로 망쳐 놓은 한유성은 여지껏 연락이 없었다.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권민국의 취임식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도진은 귀신도 아니고 있을 수 없는 간격을 두고 장영준이 숨어 있던 안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었다.
한 가지 최악이 겹치는 상황에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유성은 도주에 성공했다.
천마의 손아귀에서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잡히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고 그렇다면 연락을 해야만 했다.
한유성이 잡히면 그들 또한 그냥 넘어가지 못하니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도주를 도울 것이고 그걸 한유성 또한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연락이 없는 것이냐, 한유성!'
자작극을 해서라도 카자카미와 한유성이 같은 무형독이 아니라는 걸 보여 줘야 하는데!
자력으로 한국을 탈출한 건 아니었다.
놈이 한국을 벗어난 흔적을 그 어디서도 찾지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아직 한국에 있어야 했고 그렇게 고립돼 있다면 연락을 해야 할 거 아닌가!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 카자카미 노보루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고.
"뭐라?"
"처, 천마가 러시아행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또 하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보고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 지금? 거길 왜 가는 거지?'
* * * *
냐아앙-
하늘 위.
도진은 위연서를 필두로 한 충직한 독마전의 무인들, 그리고 솜이와 함께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있었다.
여러가지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굳이 러시아행 비행기를 급하게 탄 건 도진의 손가락을 붙잡기 위해 휙휙, 열심히 고개와 함께 몸을 흔들고 있는 솜뭉치. 솜이 때문이다.
하아아아악-!
천마전으로 돌아와 마주한 순간 털을 뾰족하게 세우고 하악질을 했던 솜이.
도진을 상대로 그럴 이유는 결코 없었으니 그 외의 것이 이유였고 도진은 어렵지 않게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이질적인 기운의 흔적 때문이로구나.
-예.
바로 한유성이 이용했던 포털이 사라지고 자리에 남았던 흔적에, 솜이가 반응한 것이었다.
즉각적이고 선명했던 적대적인 솜이의 태도에 도진은 즉시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으니 '러시아'라는 단어에 처음으로 하악질을 보여 주었던 솜이였고.
-러시아?
-냐아아아앙!
다시 한 번 러시아행을 결정한 것이었다.
영물인 천산설표가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세 마리나 한국에 흘러들었던 사건의 원인은 아직도 규명되지 못했다.
이제와서는 알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할 만큼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러시아라는 단어에 반응한 솜이에 의해 그 시작이 러시아의 극동 지역이라는 것만을 알게 됐을 뿐이었다.
한데 지금. 또다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이 당시의 사건과 연결되었다.
'이질적인 기운.'
한유성이 통과했던 포털이 닫히고 남았던 기운은 내공이 아니었으며 자연지기 또한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질적인, 자연지기가 내공이 아닌 '전혀 다른 이치로 가공된' 그동안 이 세계에 없었던 기운이라 해야 할 것이었다.
한데 그 기운에 솜이는 반응하였고 또 러시아를 지목하였으니 이런 상황임에도 충분히.
러시아행을 결정할 이유가 되었다.
'절대로 바로 움직이지 못해.'
결정을 내리고 러시아의 극동 지역을 밟을 때까지 아무리 서둘러도 반나절은 걸렸다.
한유성이 평소의 컨디션이었다면 포기해야 했겠지만, 놈은 그 반나절 동안 결코 멀리갈 수가 없었다.
도진의 천마기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한유성이 심상치 않은 포털을 여는 걸 보았으나 도진은 그것을 저지할 만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계를 넘은 한 수, 초살(初煞)의 수법으로 격공장을 쏘아냈으니 그 기운이 한계 거리를 돌파하여 한유성의 호신강기를 뚫고 놈의 어깨를 박살내 놓았다.
그리고 격공장에 담겨 있던 천마기가 독과 같이 한유성의 내부를 헤집었으니 놈이 도진만큼의 정신력을 가진 게 아닌 이상에야 우선은 몸을 추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은, 헛짚은 걸 수도 있다.
놈이 포털을 타고 넘어간 것이 러시아가 아닐 확률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어쩐지. 도진의 육감은 한유성이 포털을 타고 도주한 곳이 러시아일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다.
"어서 오십시오."
현지에 법인을 둔 오성 그룹의 도움을 받아 극동 지역으로 향했고 또 그들과 연계하여 탐색을 시작했다.
도진의 감각대로라면 한유성이 슬슬 몸을 추스르고 움직일 시기였다.
혹독한 환경에서 겨우겨우 희미해진 천마기를 몰아내고 움직일 시기.
만일 포털 너머가 이곳이 맞다면 한유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고.
냐아아앙!
"알 것 같아?"
냐아앙!
빙고.
도진은 앞장서서 나아가는 솜이를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놈이 눈치챌 수 있으니까 아주 넓게 포위망만 구성해 줘."
-존명!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면 계속 넓게 수색을 했곘으나 솜이가 흔적을 잡았기에 방법을 바꾸었다.
위연서를 통하여 이야기를 해 두고 눈이 몰아치는 땅을 솜이를 따라 거침없이 나아간다.
시야가 제한되는 환경이었으나 날카롭게 벼린 도진의 감각마저 덮지는 못했다.
곧, 도진은 솜이가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자연지기를 가공하였으나 내공이 아닌 기운.
그 흔적이 솜이가 나아가는 방향과 일치하였고 곧.
"솜이야."
냐아앙.
도진은 솜이를 안아들고 기척을 감추었으니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그러나 도진의 감각 안에 있는 거리에서 한유성을 포착할 수 있었다.
'하.'
정말로, 찾았다.
그러나 도진은 즉시 한유성을 붙잡지 않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극한의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몸을 추스른 한유성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은밀히 뒤를 따라가 놈이 왜 이곳으로 왔는지 확인할 생각이다.
서벅. 서벅.
평범한 사람이 달리는 것보다 빠르게 한유성이 걷는다.
그 뒤를 도진이 은밀하게 밟으며 걷기를 한 시간.
냐아앙.
놈이 겨우 멈춘 곳에서, 도진이 펼친 기의 막 안에서 솜이가 나직이 울었다.
이곳은…… 한 번 온 적이 있는 곳이었다.
다름 아닌 처음 러시아라는 단어에 솜이가 반응하였던 때.
극동 지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왔던 곳.
그러나 당시엔 다른 곳보다 미세하게 자연지기의 농도가 높다는 것 이외엔 무엇 하나 특별할 게 없던 곳이었는데.
'…달라졌어.'
그 미세하게 높았던 자연지기의 농도만큼, 이질적인 기운이 떠돌고 있었다.
"흐으."
도진의 눈동자가 깊어진 가운데 한유성이 안도하여 숨을 내쉬었다.
마치 다 왔다는 듯.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안전하다는 듯이.
그리고 다시 한 번 주위를 감각을 넓혀 확인하고서는 품에서.
스윽-
'열쇠'를 꺼내 들었다.
'열쇠?'
이질적인 기운이 담긴, 또한 이질적인 열쇠였다.
고풍스런 문양의 열쇠는 그러나 이 세계의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열쇠를 한유성은.
스윽-
허공에 대고.
지이이잉-
돌렸다.
파아아앗-!
그리고 문, '포털'이 열렸다.
-허어…….
도진의 심상세계 안에서 위지혁마저 놀랐다.
완전히 상리를 벗어난 현상이었다.
허공에서 열쇠를 돌려 포털을 열다니.
한유성은 그렇게 열린 포털 너머로 들어가려 했고.
퉁-!
"꺽."
다음 순간 도진이 공간을 접듯 한유성과의 거리를 좁히고서 옆구리를 쳐 날려 버렸다.
옆구리를 얻어맞고 눈밭에 나뒹군 한유성은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꺽꺽거렸다.
몇 초나 그렇게 꼴사납게 꺽꺽거리고서야 겨우 충격을 해소할 수 있었고.
"이야, 한유성.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 근데 이건 뭐야?"
"김도지이이이이이이인!!"
도진의 손에 들린 '열쇠'를 보고선 눈이 뒤집혀 절규하듯 소리쳤다.
물론.
"응, 안 돌려줄 거야."
한유성은 두 번 다시 그 열쇠를 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