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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20화 (720/741)
  • 720화

    "……???"

    권민국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민해졌던 감각이 실시간으로 죽어 가는 내장의 기능을 보고하면서 섬뜩한 죽음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통제를 벗어난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이 공포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왜? 나는 화신지경인데? 독이? 어째서?'

    납득하지 못할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선이 이윽고 위연서의 곁에 서는 또 한 명의 인물을 보았다.

    그녀 또한, 권민국은 알고 있었다.

    '위, 취, 련…….'

    위연서의 스승이라고 했다.

    다만 그 경지는 미지수여서 경계 대상이라고 했는데 정보가 틀렸다.

    저건 경계 대상이 아니라.

    '재앙, 이잖아…….'

    "쿠에에에에엑!"

    "꺼, 꺼걱."

    피를 토하고,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한다.

    모두 권민국의 곁에서 기세를 높이던 무인들이었다.

    개중에는 권민국보다 오히려 경지가 높았을 카자카미 카즈히코마저 있었으니 거짓말처럼.

    그들은 독으로 한순간에 전멸하고 말았다. 항거할 수 없는 재앙에 휩쓸린 모양으로.

    그렇게 바닥을 기는 그들에게 위연서가 조용히, 그러나 독보다 깊게 스며드는 목소리로 고했다.

    "감히 교주님을 삿되이 입에 담은 죄는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중죄이나, 교주님의 뜻에 따라 목숨을 거두지는 않을 것이니 그 헤아릴 수 없는 은혜로움을 평생 감사하도록."

    '지랄, 을…….'

    "쿠에에에엑!"

    권민국은 생각을 말로 하지 못하고 그저 피를 토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차오르는 검은 피를 줄줄 흘리는 카즈히코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마, 는. 어디 있지?'

    불안했다.

    그들의 임무는 이곳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천마를 붙잡아 두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그 얼굴이라도 보았어야 안전하게 거사를 치를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천마는 어디 있지.

    주르륵-

    그렇게 묻고 싶은데 차오르는 피만이 벌린 입 밖으로 흐를 뿐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꿈틀거리는 카즈히코의 그 모습을 위연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굳이 그가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말해주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독마전이 나타날 때부터 천마가 이곳에 없었음을 말이다.

    "무림전댐타격대입니다! 협조 하십시오!"

    그리고 내공이 가득 담긴 외침이 퍼져 나가며 이곳에서의 일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 * * *

    '어떻게 된 거지?'

    한유성은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한유성은 바보가 아니었으며 보신(保身)에 아주 큰 가치를 두는 만큼 납득이 갈 만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결코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에 김도진이 나타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됐다.

    그것은 한유성의 상식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미끼가 된 태양 그룹의 취임식장에서 여기까지는 직선으로 '날아온다' 해도 15분은 걸릴 거리였다.

    경계를 넘어선 무인의 감각으로 한유성은 아직 이곳에서 15분을 채 쓰지 않았으니, 제아무리 천마라 해도 절대로. 결코.

    이렇게 한유성의 감각에 걸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로 인한 크나큰 충격은 한유아의 도발에도 한유성이 반응하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었으며 찰나 판단이 늦어지게 만들었다.

    채채챙-!

    컥.

    빠각!

    이번 일을 보조하기 위해 데려온 떨거지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애초에 시간을 끌고 버릴 용도였기에 천마신교가 준비한 무인들을 오래 상대할 만한 실력이 못 됐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틴 게 상정 외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끌게 만든 한유아와 민지서.

    스윽-

    두 사람이 한유성의 정면 도주로를 차단하는 방위를 밟고 있었다.

    뿌득-

    이가 갈렸다.

    단번에 뿌리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무려 10분에 가까운 시간을 대치하면서 확실하게 알았다.

    결코 단번에 뿌리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김도진이 한유성을 추적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체크메이트였다.

    "……흐으."

    한유성은 결국 움직이는 대신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안 덤빌 거야?"

    한유아가 다시 도발했다.

    그러나 한유성은 거기에 화내지 않았다.

    어느 선을 넘어서 버려 아예 무감각해진 것이었다.

    "그래. 인정하지. 이번만큼은, 너희 버러지들이 이겼다."

    "……."

    한유아의 도발을 위해 짓고 있던 미소가 흐려졌다.

    오히려 저렇게 말하는 것이 경계를 높이게 만들었다.

    '비장의 한 수'를 숨겨 두고 있다는 걸 아까 확인했기에 더더욱.

    그래서 긴장한 한유아와 민지서를 앞에 두고 한유성이 한 손을 무복의 품에 넣었다.

    공격하기보다는 방어를 택한 두 사람은 그 틈을 노리는 대신 경계를 높였고 그녀들은 곧 품에서 나온 한유성의 손에 들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을 보게 됐다.

    '…뭐야?'

    둘둘 말린 족자 같은 것이었다.

    중세 서양풍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것을 취미가 게임이고 나름 조예가 있는 우서진이 보았다면 단번에 이런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스크롤(Scroll), 이라고.

    그래. 그것은 판타지 세계관을 차용한 마법이 있는 게임의 스크롤 아이템 같은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유아와 민지서는 일순 대처를 망설였고.

    쫘아악!

    한유성은 그 순간을 이용하여 단번에 스크롤을 찢어 버렸다.

    그러자.

    "……!!"

    한유성의 앞으로 '포털'이 나타났다.

    '뭐야.'

    연속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한유아와 민지서는 당황한다.

    "이번 같은 행운은, 다시는 없을 거다."

    씹어뱉듯 말한 한유성이 포털로 몸을 던졌다.

    그제서야 한유아와 민지서가 움직이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날아드는 매서운 무형의 기운이 있었다.

    콰직!

    그 기운은 대번에 한유성이 본능으로 두른 호신강기를 뚫고 어깨를 꿰뚫었다.

    "끄으아아아아악!!"

    천마기로 이루어진 무형의 기운에 꿰뚫린 한유성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스윽-

    그리고 그 비명은, 한유성을 삼킨 포털이 닫히면서 비현실적으로 끊겨 사라졌다.

    그렇게 한유성이 사라지고서야 도진이 한유아와 민지서의 앞에 내려섰다.

    "후우. 괜찮아요?"

    "아, 응."

    "예. 괜찮습니다."

    대답하며 한유아는 흐트러진 도진의 호흡을 의식했다.

    단 한순간이었지만 도진의 호흡이 흐트러진 건 정말로 생소한 일이었다.

    평소 도진의 호흡은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고 끝 또한 없었으니 마치 바다의 호흡을 엿보는 듯한 아득함이 있었다.

    그 호흡이 지금 흔들린 것이었으니 생소한 일이었고 그만큼, 이곳까지 달려오는 일이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다.

    오늘의 계획은 한 가지의 무형독이 상상도 못할 변수를 토대로 하여 세워졌다.

    태양 그룹 권민국의 취임식은 분명히 미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미끼에 걸려주지 않고서는 장영준을 죽이려 들 놈들의 패를 유도할 수 없다.

    도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결코 일을 도모하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그래서 도진은 보란 듯이 미끼에 걸려 주었다.

    놈들에게 태양 그룹 연회장 근처에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그 뒤.

    '전력으로 달려서' 이곳으로 왔다.

    천마군림의 이치에 따라 도진은 끊임없이 거대한 기운을 운용할 수 있다.

    그 특성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오로지 빠르게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하여 전력으로 달려왔으니 그 속도가 무형독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다만 효율은 지독히도 나빠서 이를테면 다이아몬드를 기름 대신 녹여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했는데 연비가 백 미터도 나오지 않은 것에 댈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효율'이란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법.

    도진은 그 비효율로써 무형독의 예상을 깨고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저걸 어떻게 예상했겠어.'

    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심장이 멎지 않을 정도로, 옷으로도 감출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선 질주의 여파가 느껴진다.

    인간의 몸으로 한계에 내몰리는 스포츠카의 엔진을 대체하는 걸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럴 능력이 있다 해도 웬만한 정신력으론 감히 시도조차 못할 혹독한 질주였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극한까지 내몰린 상태에서 한 번 더 극한에 부딪쳐야 하는 그런 가혹한 일이었을 텐데.

    도진은 그것을 이곳까지 오는 내내 감당하고 또 계속했다.

    그랬으면서.

    스윽-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아무렇지 않게 한 순간에 호흡을 고르고, 웃는 얼굴로 오히려 한유아와 민지서의 손을 붙잡고 두 사람을 걱정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내공이 고갈된 몸에, 따스한 자연지기를 불어 넣어 준다.

    "어땠어요, 선배?"

    "뭐가? 한유성?"

    "네."

    한유아는 빨라졌던 심장을 애써 통제하며 짐짓 여유있게 웃었다.

    "후련했어."

    이 자리는 한유아와 민지서가 자처하여 온 자리다.

    이곳에 오는 건 분명히 한유성일 테니까.

    채 다 녹이지 못한 응어리를 녹이기 위하여 자처했다.

    그리고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한 대 콱, 쥐어 박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뭐. 후련하게 치고박았으니까 만족해."

    "다행이네요."

    한유아는 항상 바랐다.

    이기고 지는 건 두 번째다. 다만 속에 든 것을 시원하게, 단 한 번도 내색하지 못했고 대놓고 소리치지 못했던 오랜 세월 쌓였던 응어리를 한 번쯤은 시원하게 발산하고 싶다고.

    그 바람을 오늘 이룰 수 있었다.

    이루었으니까, 이제 정말로 아무런 거칠 것 없이 과거를 뒤로 하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쉽네. 잡았어야 했는데."

    도진은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다.

    양립하지 못하는 이상 언젠가는 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충돌에서 깨지는 건 한유성일 것이다.

    쥐고 있던 두 사람의 손을 놓고 도진은 한유성이 사라진 곳에 섰다.

    포털이 열렸다 사라진 곳에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공적인 흔적이었다.

    본래 포털이란 인간이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장 지금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아직 다 해석하지 못한 무형독이 운용하던 포털의 '시스템'마저도 자연적으로 발생한 포털을 유지하고 또 사용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포털 자체를 생성하진 못한다.

    한데 그 포털을, 한유성이 스크롤 하나를 찢어 생성하고 또 닫아 버렸으니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었다.

    '비장의 무기였겠지.'

    이런 게 남아돌진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제한없이 쓸 수 있는 건 아닐 터.

    그러나 이런 게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질적이구나. 이것은 주술과는 완전히 다르다.

    도진의 눈을 통하여 본 사신 장호는 그렇게 말했다.

    무공이 아닌데 주술마저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어떤 이치로 가능했던 일일까.

    무형독은 이와 같은 것을 어디서 얻었고 또 어떻게 사용한 것일까.

    알 수 없는 변수가 하나 생겨 버렸지만, 그로 인해 한유성을 놓치긴 했지만 철저히 감춰 두고 있었을 비장의 패를 뒤집게 한 것만으로도 성과였기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이 뒤집은 패보다 한유성이 뒤집은 패가 훨씬 더 큰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뒷정리를 하고 천마전으로 돌아온 도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데에서 한유성을 붙잡을 방법을 찾게 되었다.

    하아아아아악-!

    "솜이야?"

    도진을 마주한 솜이가 하악질을 했다. 꼬리를 바짝 세우고.

    지극히 이질적인 일이었기에 도진은 원인을 찾고자 시간을 들였고 이내.

    "러시아?"

    냐아아아앙!

    다시 한 번, 솜이와 함께 러시아의 극동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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