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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19화 (719/741)

719화

연회장.

일의 발단은 일본에서 건너와 취임식에 참석한 중견의 야쿠자였다.

나름 번듯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나 그 출신과 본질이 야쿠자였던 남자가 이곳에 조용히 스며들었던 무림전담타격대의 무인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즉시 상급자에게 알렸다.

"뭐라?"

"틀림없습니다. 부산에서 우리를 지독히도 방해했던 광견 좀비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그들은 겉으로는 멀쩡한 소규모 해운사를 여럿 운영하고 있었으나 그 실체는 마약에 장기 등을 취급하는, 일본과 한국 양측 경찰이 눈에 불을 켜는 악랄한 야쿠자 집단이었다.

중견의 야쿠자는 지금이야 사장 직함을 달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있지만 과거엔 잔챙이이자 애송이였으니 그 당시 조직의 골칫거리였던 한국의 '광견 좀비'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넘도록 보이지 않아 보직 이동을 했든 어디서 칼을 맞아 뒈졌든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보게 됐다.

그 말은 즉.

"천마신교에서 정보를 푼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은밀히 핵심 인사들이 모인 자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태양권가의 권민국을 필두로 하여 카자카미 가문 직속 무인들까지.

조직의 뿌리가 무형독임을 아는 이들이었으니 심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자리는 적어도 겉으로는 평범한 취임식이었으니까.

그런 곳에 무림전담타격대의 요원이 스며들었고 그 정보를 천마신교에서 풀었다면.

그들의 정체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말이 된다.

"이런 개 같은……."

권민국이 씹어뱉듯 쌍욕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아주 개같은 상황이 돼 버렸다.

여기에 어수선한 가운데 금방이라도 터질 듯 경직된 연회장의 분위기가 특수 제작된 통유리 아래로 보여 더욱 스트레스가 쌓이게 만든다.

그새를 못 버티고 장내에 정보가 풀리고 만 거다.

입이 무겁지 못한 깡패 새끼들 때문에.

'이래서 하등한 깡패 새끼들은 상대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조용히, 침착하게 일을 풀어 나가도 힘들 상황이 아주 개판으로 치달아 버렸다.

더 짜증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단을 낸 야쿠자 새끼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깡패 새끼들을 관리하는 게 다름 아닌 카자카미 가문이었으니까.

직접적으로야 당연히 아니었으나 타고 올라가면 카자카미 가문이 있었으니 깡패 새끼들을 욕하면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카자카미 가문의 중요 인물의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우선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그 중요 인물의 말에 부글거리는 속을 억누르고 있던 권민국의 시선이 향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인이다.

누가 보아도 일본인이었지만 훤칠한 키에 고른 치아, 진한 이목구비까지 이국적인 외모여서 시선을 끈다.

일본에서 아주 크게 무역 회사를 하는 사람인데 당연히 위장 신분이고 실제로는 카자카미 가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인물이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 무형독의 간부로 세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경계 너머를 엿보는 대단한 고수이기도 했다.

그래서 권민국은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예의를 차려 물었다.

"빠져 나가자는 말씀입니까. 카즈히코 상."

카자카미 카즈히코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비가 내린다면 우선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랄을.'

이 와중에도 여유로운 게 짜증났으나 권민국은 티를 내지 않고 거기에 동의했다.

"…그러시죠."

그 말대로 일단은 자리를 피하고 볼 일이었다.

행사의 주인공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는 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낌새를 채고서도 머무는 건 안 좋은 걸 넘어 아주 자살 행위다.

바로 이 자리에, 다른 누구도 아닌 천마가 나타날 수 있었으니까.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다.

천마신교가 카자카미 가문을 향해 칼을 뽑아든 것을.

그 카자카미 가문과 은밀하게 내통하여 암살단을 한국으로 보내는 데 태양 그룹이 협조하였다는 정보를 천마신교가 입수하여 이곳에 개입하는 거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고 그렇게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다음 일을 생각할 수 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은밀하게.

권민국과 카자카미 카즈히코의 무리가 연회장의 뒷문을 통하여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 길목에서.

"뭐야. 태양 그룹의 부회장님이자 이번 연회의 주인공이 쥐새끼처럼 어딜 가려는 거야?"

"…무진혁."

권민국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고등학교 동기를 마주하게 됐다.

무진혁.

학창시절 함께 일진 노릇을 하며 'S4'라는 이름으로 묶여 불리던 친구.

그러나 김도진과의 마찰에서 박쥐 새끼마냥 빠져 나갔던, 이제는 친구가 아니게 된 놈이었다.

그 놈의 발언이 권민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뭐라고 했냐. 쥐새끼?"

"아, 쏘리. 그냥 행동이 그렇다고. 네가 쥐새끼란 게 아니라."

"이 씨발 새끼가……."

"에이. 오랜만에 만나서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쥐새끼가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지. 쥐새끼가 아니면 쥐새끼란 말에 화낼 필요가 없잖아. 그지?"

"…돌았냐?"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태도였다.

이건 대놓고 길을 막고 시간을 벌려는 거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도발을 하면서.

자의로, 단독으로 벌이는 일일 리는 결코 없으니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거고 그것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천마신교일 것이다.

그렇게 짧은 순간 판단을 내리는 사이 무진혁이 다시 이죽였다.

"민국아. 태양 그룹 부회장씩이나 돼서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살아서 되겠어? 여기서 도망쳐 봐야 달라질 것도 없을 텐데."

"뭔 개소리지?"

"배 말이야. 배. 거기 탄 새끼들 어차피 항구에서 걸릴 텐데 여기서 쥐새끼 돼 봐야 달라질 거 없잖아?"

"……."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그 말에 권민국은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은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카즈히코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이것마저 새어 나간 것이었다.

이걸 들키면 빼도 박도 못하는 치명적인 건수를 잡히게 되는 것인데.

스윽-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즈히코가 여유가 묻어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전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씀은?

-놈은 성급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무사들은 모두 수공에 능합니다. 지금 연락하여 배에서 내리라 하면 오히려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과연!

일본의 무인들 중에는 특히 수공(水功)에 집중한 이들이 있으니 설령 바다 한복판에 떨어져도 뭍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그 수준이 뛰어났다.

조금 밝아진 얼굴이 된 권민국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판을 짜기 시작했다.

그 성격과 달리 권민국 또한 천재였다.

애초에 수준이 다른 천재가 아니고서야 태양권가의 후계자 자리를 쟁취할 수는 없다.

지금 상황의 핵심은 태양 그룹의 배에 장영준을 암살하기 위한 암살자들이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데 그 '의심'이 '거짓'이 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좋아.'

찰나에 판을 다 짠 권민국이 비죽 웃고선 자신있게.

"뭔 개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터무니없는 걸로 뻗대는 건 그 역겨운 도진이 새, 컥!"

…선언을 하다 목을 부여잡았다.

충혈된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 뜨였고 권민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독……!'

몸속을 도는 소름끼치게 이질적이고 또 위협적인 이물질.

독(毒)이 어느새, 내부를 돌고 있었다.

그리고 무진혁이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가 둔해진 귓가를 선명하게 때린다.

"감히 삿된 종자가 지고하신 교주님의 존함을 더럽히려 들다니. 죽어 마땅한 죄이다."

독으로 군데군데 검게 물든 시야가 새롭게 나타난 이를 확인한다.

새하얀 도화지를 끝없이 검게 물들인 물감과 같은 미녀였다.

새하얀 피부여서 더욱 대비되는 검은 무복과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화룡점정과 같이 찍힌 눈가의 눈물점까지.

이 여자를 권민국은 알고 있었다.

'위연, 서……!'

무서우리만치 지독한 독공을 구사하는 독공의 고수.

그리고 독공 이상으로 지독하게 천마를 추앙하는 광신도라 했던가.

과연 무형독 내에서 광신도라 부를 만한 여자였다.

김도진에 대한 욕 한 마디를 채 다 듣기도 전에 다짜고짜 손을 쓰다니.

'그러나 넌 실수했어!'

뿌득-

이를 악문 권민국이 가문 비전의 수법에 따라 열양지기를 폭발시켰다.

화아아악-!!

권민국을 중심으로 하여 열풍(熱風)이 치솟았다.

사람의 몸을 중심으로 하여 뜨거운 열기가 돌풍처럼 몰아치는 현실을 벗어난 신비한 현상.

그것이 가능한 경지를 태양권가에서는 화신지경(火身之境)이라 칭하였으니 경계 너머에 도전할 수 있는 경지로 보았다.

바로 그 경지에, 권민국은 도달해 있었다.

후욱-

권민국의 내뱉는 숨에 뜨거운 열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내뿜는 열기에 지독한 독연(毒煙)이 섞여 있었으니 몸속에 있던 독이 열기에 타 연기가 되어 배출되는 것이었다.

독은 결코 불을 이길 수 없다.

태양권가하면 회자되는, 지고한 경지에 올랐던 당대 가주가 아무렇지 않게 독차를 마시고선 그 독기를 불태운 연기로 오히려 수작을 건 무리를 전멸시킨 무용담을 되새기며 권민국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천마신교는, 이렇게 이유도 없이 사람을 공격하는 범죄자 집단이었나?"

"독을 쓰다니!!"

채채챙!!

권민국의 말에 박자를 맞추듯 카즈히코와 휘하의 무리들도 무기를 뽑아들었다.

드드드드드드-

그리고 그들이 발산하는 기세에 무진혁이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뭐야, 이 새끼들.'

조용할 때는 몰랐는데 기세를 드러내니 한 명 한 명의 경지가 말도 안 되게 높다.

이건 차라리, 그래.

'…김도진이랑 한 판 하려고 작정한 건가? 이 새끼들?'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전력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놀랍게도 정답이었다.

'왜 급발진을 하고 지랄이야!'

권민국이 당황할 정도로 카자카미의 무인들이 내뿜는 기세는 극단적이었다.

언뜻 독으로 선공을 당했으니 격노하여 무기를 뽑아들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었으나 진실은 달랐다.

카즈히코는 내심 독을 푼 위연서를 반겼다.

'오히려 좋다.'

그들은 사실 목숨을 바칠 각오로 이 자리에 왔다.

-천마의 발을 묶어다오.

목숨과 충성을 바친 주군 카자카미 노보루의 부탁이자 명령인 것이다.

여기에 천마신교의 시선이 끌리게 하고 천마를 붙잡고 늘어지라고.

무사가 먼저 패배를 떠올려선 안 되겠지만, 아마도 그들은 패배할 것이고 붙잡힐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들에게는 무형독이라는 직접적인 혐의와 증거가 없을 테니까.

권민국에게 했던 말은 사실이다.

기실 태양 그룹의 배에 탄 무사들의 정보를 흘린 것부터가 계획의 일환이었고 무사들은 처음부터 중간에 바다를 헤엄쳐 증발할 것이었다.

그렇게 증거없이 무리수를 두었던 천마신교는 열세에 처할 것이고 몇 년 인내하면 주군께서 구해주실 터. 그리하여 목숨을 바쳤던 그들은 영광을 누릴 것이다.

'씨발.'

그들의 생각을 모르는 권민국은 속으로 욕지거릴 했으나 겉으로 티내지는 못하고 분위기를 맞추기로 했다.

어차피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었으니까.

"먼저 공격한 건 그쪽이야. 평생 지고 갈 화상을 입어도, 날 원망하지 말도록."

화아악!

권민국을 근원으로 하는 열기가 기세 좋게 솟구친다.

당장 상대해야 할 건 무진혁을 포함한 떨거지 소수와 독을 쓰는 위연서뿐이다.

권민국이 태양권가가 아니었다면. 혹은 화신지경에 이르지 못했다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화신지경에 오른 지금 위연서는 상대가 아니었다.

상성이 너무나 극단적이었으니까.

저 보기 좋은 면상을 화상으로 짓이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니 아랫도리가 뻐근해질 지경이다.

카즈히코 패거리도 나름의 해독제와 장비를 바로 꺼내드는 걸 보니 괜찮아 보인다.

그러니까 문제는 하나.

천마 김도진이었는데 그것도 지금 곁에 선 카즈히코 패거리를 보니 할 만해 보였다.

적어도 자신이 도주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이죽일 여유가 생겼다.

"김도진 그 새끼를 믿고 이 짓거리를 벌, 크웨엑?!"

…그리고 시커멓게 죽은 피를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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